[클로즈업 북한] 北 강원도 정신 강조…이유는?

입력 2017.03.04 (08:09) 수정 2017.03.04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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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과거 천리마운동 기억하시나요?

북한은 이같은 슬로건의 나라, 정치 구호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최근에는 이른바 ‘강원도 정신’이란 구호를 부쩍 많이 쓰고 있는데요.

생산력 증대를 위한 독려 차원을 넘어 중요한 정치적 복선을 깔고 있습니다.

이번 주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왜 강원도인지, 그리고 김정은 정권은 과연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를 북한 구호 정치의 역사와 함께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불을 밝힌 갱도 안, 폭포수처럼 세차게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면서도 망치질을 멈추지 않는다.

가슴까지 차오른 차디찬 물속을 헤치며 나무기둥을 옮기고, 심지어 터져 나오는 지하수를 온 몸으로 막아낸다.

<녹취> 조선중앙TV 특집 ‘강원도 정신이 안아온 자랑찬 전변’ : “입고 있던 자기의 옷을 주저 없이 벗어 석수 내뿜는 물구멍에 밀어 넣으며 물막이 전투를 벌여간 지휘관들과 돌격대원들... ”

지난해 완공된 북한 강원도 원산군민발전소 건설 당시의 모습이다.

변변한 장비도 없이 산속에 수로를 뚫어 유역 변경식 발전소를 건설하는 그야말로 목숨을 건 작업.

<녹취> 조선중앙TV 특집 ‘강원도 정신이 안아온 자랑찬 전변’ : “물구멍이 또 크게 터져서 정황이 매우 위급한 것 같습니다. 직접 갱에 들어가서 소식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물이 쏟아지는 굴속에서 주먹밥을 먹어가며 세운 발전소.

북한TV는 이것을 강원도 사람들의 혁명 정신이 투영된 결과라며 이른바 ‘강원도 정신’으로 선전하고 있다.

<녹취> 조선중앙TV 특집 ‘강원도 정신이 안아온 자랑찬 전변’ : “보라! 자력자강의 위대한 동력으로 보다 큰 승리의 목표를 향하여 용약 떨쳐 나선강원도 인민들...”

‘강원도 정신’이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해 12월, 김정은이 원산군민발전소를 현지 시찰하면서부터다.

2009년 착공됐지만 진척을 보이지 못하던 발전소는 김정은의 대관식이었던 지난해 7차 당 대회를 앞두고 ‘무조건 공사를 마치라’는 김정은의 지시로 지난해 4월 완공됐다.

이후 북한 정권은 원산군민발전소를 자력갱생의 창조물로 치켜세웠고, ‘강원도 정신’이라는 구호까지 만들어 냈다.

<녹취> 조선중앙TV 특집 ‘강원도 정신이 안아온 자랑찬 전변’ : “위대한 장군님의 애국염원, 강국염원을 반드시 풀어드리겠다는 충정의 마음이 바로 강원도정신입니다.”

‘강원도 정신’을 본받아 자력자강을 통한 생산력 향상에 총력을 다 하자는 선전물들이 잇따라 전파를 탔다.

<녹취> 허은영(수도건설위원회 방송원) : “강원도 인민들처럼 당의 구상과 의도를 앞장에서 실현해 나갈 결의가 지금 우리 수도건설자들의 심장마다에 뜨겁게 맥박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매체를 동원해 연일 ‘강원도 정신’ 띄우기에 몰두하고 있는 북한.

왜 이렇게 ‘강원도정신’을 부각시키고 있는 걸까?

<인터뷰> 김영희(KDB산업은행 북한경제팀장) : “강도 높은 대북제재를 받고 있는 지난해부터 지금 지난해 말부터 이게 지금 강원도 정신이 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강력한 대북제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취지에서 나온 슬로건이다, 이렇게 볼 수가 있고요. 또 하나는 뭐냐면 김정은 정권 들어서 주민들에 대한... 주민생활을 좀 향상을 시켜야 되는데 그게 5년 동안 지금까지 되지 않고 있으니 전형화된 약간 전형, 본보기를 하나 만들어서 거기 주민생활을 향상시키고 각 지역에서 그렇게 주민생활을 향상시키도록 노력을 해라. 하는 그런 시대상을 반영한 슬로건이다...”

북한 정권은 정치적·경제적 돌파구가 필요할 때마다 선전구호를 내세워 왔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김일성 시대인 1950년대 ‘천리마 운동’이다.

단순한 증산운동을 넘어 주민들에게 공산주의 사상을 주입하는 ‘사상개조운동’의 의미도 컸다.

김정일 역시 최악의 경제난을 겪던 1998년 1월, 자강도 강계시 일대를 모범 지역으로 시찰한 뒤 이른바 ‘강계정신’을 구호로 제시했다.

<녹취> 北 노래 ‘우리는 만리마기수’ : “자기 힘을 믿고 만난 헤쳐 가는 우리들은 만리마 기수~ 만리마~ 조선의 기상이여~”

김정은 집권 이후 가장 두드러진 구호는 지난해 당 대회를 전후해 등장한 ‘만리마 속도’다.

천리마보다도 열 배 빠른 속도로 성과를 내라는 것.

여기에 ‘자강력 제일주의’와 6.25 전쟁 당시 밤새워 무기를 만들었다는 ‘군자리 정신’, 최근엔 이를 망라한 듯한 ‘강원도 정신’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녹취> “강원도정신으로 자력자강의 승전 포성을 힘차게 울려나가자!”

그렇다면 왜 강원도일까?

척박한 환경인 강원도가 어려움을 극복하는 정신을 보여주기에 좋은 지역이라는 것이 한 이유로 꼽힌다.

모든 것을 지역 스스로 해결하는 자력갱생의 본보기를 강원도에서 찾고 있다는 것.

실제 원산군민발전소 공사현장에 동원됐던 탈북민은 노동력 동원은 물론 수시로 자금과 물자도 상납했다고 증언한다.

<인터뷰> 박은미(北 강원도 원산 출신/2012년 탈북) : “공부를 하다가도 2강의 끝나고 3강의는 안 하고 이제 집에 가서 밥 먹고 도구랑 챙겨가지고 발전소 동원을 나가야 된다라고 하면 아무 때든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그런 학생들이 되어야 돼요. 심지어 뭐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까지 다 합쳐서...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들이 하라는 과업이 있어요. 시멘트를 1Kg씩 내라, 그리고 돈을 5천 원씩 내라. 이게 다 발전소 동원 위한 거다라고 하면 그런 것들이 다 그쪽에서 마련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걸 우리가 부담하는 거랑 똑같은 거죠. ”

이런 점에서 김정은의 구호정치는 김일성·김정일 시대와 차이점을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인터뷰> 김영희(KDB산업은행 북한경제팀장) : “강원도 정신이 나오게 된 것은 김정은이가 중점 사업으로 틀어쥐고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이런 본보기 모델이죠. 어찌보면 김정은이 자기가 줄 걸 자기가 못해주니까 지역에서 알아서 하라는 거죠. 천리마 운동도 처음에는 강선제강소라는 한 곳을 통해서 생산 증산의 목적이 있었지만 이거는 투자도 못주고 원자재도 못 주고 노력도 못 주니까 너네 지역에서 알아서 지역을 주민들의 삶을 책임을 져라. 그러니까 말하자면 김정은이 자기가 해야 될 몫을 지역에다가 떠넘기는 식이죠. ”

김정은의 고향이 강원도 원산으로 알려져 있는 것도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인터뷰> 김영희(KDB산업은행 북한경제팀장) : “만약 김정은이가 함경남도 함흥을 모델로 만들겠다 하고 작정을 해서 함경남도 함흥을 계속 현지시찰했다면 함흥정신이라는 게 나왔겠죠. 그런데 왜 하필이면 강원도정신이냐는 거죠. 김정은으로서는 기본적으로 자기 고향을 모델로 만들어서 그 모델을 전국에 일반화하자, 이런 취지에서 접근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강원도 정신이 나오게 됐던 거고요.”

권력 승계를 마무리했지만, 정작 자신의 생일조차도 밝히지 못하고 있는 김정은.

생모 고용희가 북한에서 천시받는 재일동포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은은 집권 뒤 한때 아버지 김정일 곁을 30년 넘게 지킨 어머니 고용희를 우상화해 출생의 정통성과 권력승계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녹취> 고용희(北 김정은 생모) :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장군님의 어려운 7년 세월을 바로 저는 보았으며, 장군님의 가장 어려웠던 그 시기를 언제나 장군님 곁에서 함께 하여 왔으며 겪어왔습니다.”

<녹취> 北 기록영화 ‘위대한 선군조선의 어머니’ : “앞으로 김일성 민족, 김정일 조선의 미래를 떠밀고 나가야 한다고 하시며 백두산 위인들의 풍모를 그대로 닮은 또 한분의 청년장군을 안아 키우신 우리 어머니...”

하지만 이런 김정은의 노력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

외할아버지의 친일 전력에 미국으로 망명한 이모 등 외가의 약점이 자신의 정통성을 흔들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너무나 많은 단점을 가지고 있거든요. 재일교포, 친일파, 탈북자 가족. 또 김정은이 강조하고 있는 백두혈통 또 할아버지 외모를 닮으려고 그러지만 사실 김정은이 집권 5년 동안 김일성과 찍은 사진 단 한 장도 공개한 적이 없어요. 할아버지로서 인정을 받지 못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의 가장 큰 딜레마는 바로 혈통의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김정은이 유년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진 강원도라는 지역을 통해 우회적으로 우상화를 완성하려는 밑작업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김정은 입장에서는 만일에 백두혈통을 상징하기 어렵다 그러면은 자기가 태어나고 성장한 곳으로 추정이 되는 강원도를 일종의 성지화하는, 다시 말해서 김정은 시대를 상징하는 어떤 지역으로 만들 생각이 있는 거죠. 그니까 중장기적 관점에서 강원도를 강조하는 그런 의도가 있다고 보여 집니다.”

강원도 원산 갈마 비행장.

지난해 9월, 이곳에서 북한의 첫 에어쇼가 개최됐다.

김정은 집권 이후인 2013년부터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한 곳이다.

김정은은 이처럼 지난 5년간 강원도 일대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자주 방문해 왔다.

<녹취> 조선중앙TV : “경애하는 원수님의 깊은 관심과 지도 속에 온 나라에 스키 바람이 일어나고 스키 종목은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유난히 공을 들인 마식령 스키장도 원산 인근에 있고, 강원도 ‘송도원 야영소’도 개보수해 대표적인 청소년 시설로 선전하고 있다.

여기에 구두공장부터 애육원까지.

김정은의 현지지도와 이에 열광하는 강원도 주민들의 모습은 기록영화 등 선전물에도 단골로 등장했다.

<녹취> 2014년 9월, 北 기록영화 : “이곳에서 행복의 웃음소리, 세상에 부럼 없어라의 노래 소리가 높이 울려나오게 해야 한다고 하신 경애하는 원수님...”

연일 ‘강원도정신’을 강조하며 자력갱생의 노력을 독려하고 있는 북한 정권, 북한 주민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을까.

<인터뷰> 박은미(北강원도 원산 출신/2012년 탈북) : “쌀이라도 좀 주면서 하라고 하면 아, 나는 이거를 해도 먹을 식량이 생기니까 나는 해야 돼 라는 정신이 들 텐데, 아무것도 안 주고 맨날 동원만 하라고 하니까 사람들은 더 지쳐있겠죠. 정부에서 뭐 한다 뭐 한다라고 하면, 아니 뭐 하는 건 많은데 왜 우리한테 차려주는 건 왜 하나도 없냐, 저희 친구도 그랬고 저의 집안에서도... 맨날 그 뉴스나 뭐 이런... 계속 보도를 내잖아요. 그러면 그걸 안 봐요. 다 꺼버려요.”

<녹취> 北노래 ‘세상에 부럼 없어라’ : “우리는 모두다 친형제 세상에 부럼없어라~”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김일성 시대의 노래 ‘세상에 부럼 없어라’를 다시 부르는 날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강원도정신’처럼 자활과 사상만 강조하면 북한이 처해있는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지금 김정은은 매우 궁색한 입장에 놓여있고, 강력한 대북제재 국면에서 자력갱생을 외치고 있거든요. 스스로 지역의 자원과 물자와 노력을 가지고 목표를 달성하라고 강조하는 것은 결국은 또 다른 형태의 노력 동원인거고요. 지금 제시하고 있는 강원도정신이 요구하는 자력갱생과 내핍 절대적인 충성을 통한 어떤 체제결속과 어떤 목표의 달성은 김정은 체제에서는 매우 불확실하다고 볼 수 있어요.”

거듭되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국면을 극복하고자 김정은 정권이 꺼내든 구호, ‘강원도정신’.

그러나 국제적 고립 속에 잇따른 속도전에 이미 지친 북한 주민들의 희생만 강요한다면, 체제의 모순만 더 극대화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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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04 08:36:53
    • 수정2017-03-04 08:5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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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과거 천리마운동 기억하시나요?

북한은 이같은 슬로건의 나라, 정치 구호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최근에는 이른바 ‘강원도 정신’이란 구호를 부쩍 많이 쓰고 있는데요.

생산력 증대를 위한 독려 차원을 넘어 중요한 정치적 복선을 깔고 있습니다.

이번 주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왜 강원도인지, 그리고 김정은 정권은 과연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를 북한 구호 정치의 역사와 함께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불을 밝힌 갱도 안, 폭포수처럼 세차게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면서도 망치질을 멈추지 않는다.

가슴까지 차오른 차디찬 물속을 헤치며 나무기둥을 옮기고, 심지어 터져 나오는 지하수를 온 몸으로 막아낸다.

<녹취> 조선중앙TV 특집 ‘강원도 정신이 안아온 자랑찬 전변’ : “입고 있던 자기의 옷을 주저 없이 벗어 석수 내뿜는 물구멍에 밀어 넣으며 물막이 전투를 벌여간 지휘관들과 돌격대원들... ”

지난해 완공된 북한 강원도 원산군민발전소 건설 당시의 모습이다.

변변한 장비도 없이 산속에 수로를 뚫어 유역 변경식 발전소를 건설하는 그야말로 목숨을 건 작업.

<녹취> 조선중앙TV 특집 ‘강원도 정신이 안아온 자랑찬 전변’ : “물구멍이 또 크게 터져서 정황이 매우 위급한 것 같습니다. 직접 갱에 들어가서 소식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물이 쏟아지는 굴속에서 주먹밥을 먹어가며 세운 발전소.

북한TV는 이것을 강원도 사람들의 혁명 정신이 투영된 결과라며 이른바 ‘강원도 정신’으로 선전하고 있다.

<녹취> 조선중앙TV 특집 ‘강원도 정신이 안아온 자랑찬 전변’ : “보라! 자력자강의 위대한 동력으로 보다 큰 승리의 목표를 향하여 용약 떨쳐 나선강원도 인민들...”

‘강원도 정신’이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해 12월, 김정은이 원산군민발전소를 현지 시찰하면서부터다.

2009년 착공됐지만 진척을 보이지 못하던 발전소는 김정은의 대관식이었던 지난해 7차 당 대회를 앞두고 ‘무조건 공사를 마치라’는 김정은의 지시로 지난해 4월 완공됐다.

이후 북한 정권은 원산군민발전소를 자력갱생의 창조물로 치켜세웠고, ‘강원도 정신’이라는 구호까지 만들어 냈다.

<녹취> 조선중앙TV 특집 ‘강원도 정신이 안아온 자랑찬 전변’ : “위대한 장군님의 애국염원, 강국염원을 반드시 풀어드리겠다는 충정의 마음이 바로 강원도정신입니다.”

‘강원도 정신’을 본받아 자력자강을 통한 생산력 향상에 총력을 다 하자는 선전물들이 잇따라 전파를 탔다.

<녹취> 허은영(수도건설위원회 방송원) : “강원도 인민들처럼 당의 구상과 의도를 앞장에서 실현해 나갈 결의가 지금 우리 수도건설자들의 심장마다에 뜨겁게 맥박치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매체를 동원해 연일 ‘강원도 정신’ 띄우기에 몰두하고 있는 북한.

왜 이렇게 ‘강원도정신’을 부각시키고 있는 걸까?

<인터뷰> 김영희(KDB산업은행 북한경제팀장) : “강도 높은 대북제재를 받고 있는 지난해부터 지금 지난해 말부터 이게 지금 강원도 정신이 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강력한 대북제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취지에서 나온 슬로건이다, 이렇게 볼 수가 있고요. 또 하나는 뭐냐면 김정은 정권 들어서 주민들에 대한... 주민생활을 좀 향상을 시켜야 되는데 그게 5년 동안 지금까지 되지 않고 있으니 전형화된 약간 전형, 본보기를 하나 만들어서 거기 주민생활을 향상시키고 각 지역에서 그렇게 주민생활을 향상시키도록 노력을 해라. 하는 그런 시대상을 반영한 슬로건이다...”

북한 정권은 정치적·경제적 돌파구가 필요할 때마다 선전구호를 내세워 왔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김일성 시대인 1950년대 ‘천리마 운동’이다.

단순한 증산운동을 넘어 주민들에게 공산주의 사상을 주입하는 ‘사상개조운동’의 의미도 컸다.

김정일 역시 최악의 경제난을 겪던 1998년 1월, 자강도 강계시 일대를 모범 지역으로 시찰한 뒤 이른바 ‘강계정신’을 구호로 제시했다.

<녹취> 北 노래 ‘우리는 만리마기수’ : “자기 힘을 믿고 만난 헤쳐 가는 우리들은 만리마 기수~ 만리마~ 조선의 기상이여~”

김정은 집권 이후 가장 두드러진 구호는 지난해 당 대회를 전후해 등장한 ‘만리마 속도’다.

천리마보다도 열 배 빠른 속도로 성과를 내라는 것.

여기에 ‘자강력 제일주의’와 6.25 전쟁 당시 밤새워 무기를 만들었다는 ‘군자리 정신’, 최근엔 이를 망라한 듯한 ‘강원도 정신’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녹취> “강원도정신으로 자력자강의 승전 포성을 힘차게 울려나가자!”

그렇다면 왜 강원도일까?

척박한 환경인 강원도가 어려움을 극복하는 정신을 보여주기에 좋은 지역이라는 것이 한 이유로 꼽힌다.

모든 것을 지역 스스로 해결하는 자력갱생의 본보기를 강원도에서 찾고 있다는 것.

실제 원산군민발전소 공사현장에 동원됐던 탈북민은 노동력 동원은 물론 수시로 자금과 물자도 상납했다고 증언한다.

<인터뷰> 박은미(北 강원도 원산 출신/2012년 탈북) : “공부를 하다가도 2강의 끝나고 3강의는 안 하고 이제 집에 가서 밥 먹고 도구랑 챙겨가지고 발전소 동원을 나가야 된다라고 하면 아무 때든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그런 학생들이 되어야 돼요. 심지어 뭐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까지 다 합쳐서...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들이 하라는 과업이 있어요. 시멘트를 1Kg씩 내라, 그리고 돈을 5천 원씩 내라. 이게 다 발전소 동원 위한 거다라고 하면 그런 것들이 다 그쪽에서 마련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걸 우리가 부담하는 거랑 똑같은 거죠. ”

이런 점에서 김정은의 구호정치는 김일성·김정일 시대와 차이점을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인터뷰> 김영희(KDB산업은행 북한경제팀장) : “강원도 정신이 나오게 된 것은 김정은이가 중점 사업으로 틀어쥐고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이런 본보기 모델이죠. 어찌보면 김정은이 자기가 줄 걸 자기가 못해주니까 지역에서 알아서 하라는 거죠. 천리마 운동도 처음에는 강선제강소라는 한 곳을 통해서 생산 증산의 목적이 있었지만 이거는 투자도 못주고 원자재도 못 주고 노력도 못 주니까 너네 지역에서 알아서 지역을 주민들의 삶을 책임을 져라. 그러니까 말하자면 김정은이 자기가 해야 될 몫을 지역에다가 떠넘기는 식이죠. ”

김정은의 고향이 강원도 원산으로 알려져 있는 것도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인터뷰> 김영희(KDB산업은행 북한경제팀장) : “만약 김정은이가 함경남도 함흥을 모델로 만들겠다 하고 작정을 해서 함경남도 함흥을 계속 현지시찰했다면 함흥정신이라는 게 나왔겠죠. 그런데 왜 하필이면 강원도정신이냐는 거죠. 김정은으로서는 기본적으로 자기 고향을 모델로 만들어서 그 모델을 전국에 일반화하자, 이런 취지에서 접근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강원도 정신이 나오게 됐던 거고요.”

권력 승계를 마무리했지만, 정작 자신의 생일조차도 밝히지 못하고 있는 김정은.

생모 고용희가 북한에서 천시받는 재일동포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은은 집권 뒤 한때 아버지 김정일 곁을 30년 넘게 지킨 어머니 고용희를 우상화해 출생의 정통성과 권력승계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녹취> 고용희(北 김정은 생모) :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장군님의 어려운 7년 세월을 바로 저는 보았으며, 장군님의 가장 어려웠던 그 시기를 언제나 장군님 곁에서 함께 하여 왔으며 겪어왔습니다.”

<녹취> 北 기록영화 ‘위대한 선군조선의 어머니’ : “앞으로 김일성 민족, 김정일 조선의 미래를 떠밀고 나가야 한다고 하시며 백두산 위인들의 풍모를 그대로 닮은 또 한분의 청년장군을 안아 키우신 우리 어머니...”

하지만 이런 김정은의 노력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

외할아버지의 친일 전력에 미국으로 망명한 이모 등 외가의 약점이 자신의 정통성을 흔들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너무나 많은 단점을 가지고 있거든요. 재일교포, 친일파, 탈북자 가족. 또 김정은이 강조하고 있는 백두혈통 또 할아버지 외모를 닮으려고 그러지만 사실 김정은이 집권 5년 동안 김일성과 찍은 사진 단 한 장도 공개한 적이 없어요. 할아버지로서 인정을 받지 못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의 가장 큰 딜레마는 바로 혈통의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김정은이 유년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진 강원도라는 지역을 통해 우회적으로 우상화를 완성하려는 밑작업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김정은 입장에서는 만일에 백두혈통을 상징하기 어렵다 그러면은 자기가 태어나고 성장한 곳으로 추정이 되는 강원도를 일종의 성지화하는, 다시 말해서 김정은 시대를 상징하는 어떤 지역으로 만들 생각이 있는 거죠. 그니까 중장기적 관점에서 강원도를 강조하는 그런 의도가 있다고 보여 집니다.”

강원도 원산 갈마 비행장.

지난해 9월, 이곳에서 북한의 첫 에어쇼가 개최됐다.

김정은 집권 이후인 2013년부터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한 곳이다.

김정은은 이처럼 지난 5년간 강원도 일대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자주 방문해 왔다.

<녹취> 조선중앙TV : “경애하는 원수님의 깊은 관심과 지도 속에 온 나라에 스키 바람이 일어나고 스키 종목은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유난히 공을 들인 마식령 스키장도 원산 인근에 있고, 강원도 ‘송도원 야영소’도 개보수해 대표적인 청소년 시설로 선전하고 있다.

여기에 구두공장부터 애육원까지.

김정은의 현지지도와 이에 열광하는 강원도 주민들의 모습은 기록영화 등 선전물에도 단골로 등장했다.

<녹취> 2014년 9월, 北 기록영화 : “이곳에서 행복의 웃음소리, 세상에 부럼 없어라의 노래 소리가 높이 울려나오게 해야 한다고 하신 경애하는 원수님...”

연일 ‘강원도정신’을 강조하며 자력갱생의 노력을 독려하고 있는 북한 정권, 북한 주민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을까.

<인터뷰> 박은미(北강원도 원산 출신/2012년 탈북) : “쌀이라도 좀 주면서 하라고 하면 아, 나는 이거를 해도 먹을 식량이 생기니까 나는 해야 돼 라는 정신이 들 텐데, 아무것도 안 주고 맨날 동원만 하라고 하니까 사람들은 더 지쳐있겠죠. 정부에서 뭐 한다 뭐 한다라고 하면, 아니 뭐 하는 건 많은데 왜 우리한테 차려주는 건 왜 하나도 없냐, 저희 친구도 그랬고 저의 집안에서도... 맨날 그 뉴스나 뭐 이런... 계속 보도를 내잖아요. 그러면 그걸 안 봐요. 다 꺼버려요.”

<녹취> 北노래 ‘세상에 부럼 없어라’ : “우리는 모두다 친형제 세상에 부럼없어라~”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김일성 시대의 노래 ‘세상에 부럼 없어라’를 다시 부르는 날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강원도정신’처럼 자활과 사상만 강조하면 북한이 처해있는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지금 김정은은 매우 궁색한 입장에 놓여있고, 강력한 대북제재 국면에서 자력갱생을 외치고 있거든요. 스스로 지역의 자원과 물자와 노력을 가지고 목표를 달성하라고 강조하는 것은 결국은 또 다른 형태의 노력 동원인거고요. 지금 제시하고 있는 강원도정신이 요구하는 자력갱생과 내핍 절대적인 충성을 통한 어떤 체제결속과 어떤 목표의 달성은 김정은 체제에서는 매우 불확실하다고 볼 수 있어요.”

거듭되는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국면을 극복하고자 김정은 정권이 꺼내든 구호, ‘강원도정신’.

그러나 국제적 고립 속에 잇따른 속도전에 이미 지친 북한 주민들의 희생만 강요한다면, 체제의 모순만 더 극대화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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