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뉴스에서 못 다룬 사드 보복 ‘백태’…광고금지에 소방점검까지

입력 2017.03.07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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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론으로 들어가면 훨씬 교묘하고 조직적이에요. 시나리오가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요…." 중국에서 5년째 근무 중인 한 대기업 직원의 말이다. '한류 금지'에서 시작해 '한국 관광상품 판매 금지', '롯데 죽이기' 같은 뉴스 머리기사에 나오는 조치들보다도, 눈에 띄지 않는 교묘한 보복 행태들이 더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조여온다는 하소연이다.

식당 코너 전체 30여 개 가운데 한국인 식당 2곳만 영업정지됐다.식당 코너 전체 30여 개 가운데 한국인 식당 2곳만 영업정지됐다.

사례1#
중국 선양의 한 지하 푸드코트. 지난 주말 점심 준비가 한창인 오전 11시쯤, 갑자기 이곳에 소방점검을 위한 단속반이 들이닥쳤다. 이 푸드코트에는 30여 개의 식당이 영업하고 있는데 이날 단속반은 딱 두 곳만 소방 점검을 했다. 바로 한국인이 주인인 한식당과 한국계 프랜차이즈 음식점이었다.

소방당국은 크고 화려한 중국 식당들은 건드리지도 않고 김치찌개와 떡볶이를 파는 작은 한국 식당 두 곳만 '찍어서' 단속을 했다. 이 식당들은 이번 주부터 영업정지를 당했다.

사례2#
롯데건설이 선양에서 분양 중인 아파트의 모델하우스. 이곳 역시 보복을 피해가지 못했다. 화려하게 인테리어를 하고 손님을 끌어야 하지만 시공돼 있던 고급 카펫이 다 벗겨져 있다. 소방 점검에서 지적을 받아 철거했다는 것.

카펫은 불연성 자재를 사용한 고급 제품이다. 원래 소방점검을 하고 허가를 내 줄 때는 통과가 됐었던 것인데 인제 와서는 각종 트집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 시공할 때는 모범 시설로 선정됐던 곳이에요. 선양에 이런 곳이 없다고 말이에요. 그래서 소방국에서 다른 업주들을 데리고 와서 교육까지 하던 곳이었습니다." 모델하우스 담당자는 이렇게 하소연을 했다. 이번엔 이렇게 겨우 넘어갔지만, 언제 다시 꼬투리를 잡고 폐쇄 명령을 내릴지 모르겠다며 담당자는 걱정이 태산이다.

정문 앞에 경찰차가 서 있고, 상설할인 공간은 텅텅 비어 있다.정문 앞에 경찰차가 서 있고, 상설할인 공간은 텅텅 비어 있다.

사례3#
불매 운동 플래카드가 하루가 멀다고 내걸리는 롯데 백화점. 정문 앞에 중국 공안의 차가 떡 버티고 있다. 치안을 위해서라지만 백화점을 이용하려는 고객들이 보기에는 뭔가 불안하기만 할 풍경이다.

백화점 내부를 들어가 보면 매대가 꽉 차 있어야 할 상설 할인 공간이 휑하니 비어있다. 매대를 차려 놓으면 비상 대피로를 확보 안 했다며 단속반이 각종 꼬투리를 잡으니까, 아예 백화점이 이 공간을 비워 놓은 것이다. 영업정지 조치는 내려지지 않았지만 사실상 장사 하지 말란 얘기다.

사례4#
중국에서 수년째 사업을 하는 한 대기업. 도로변에 설치된 광고판을 통해 기업 상품 광고를 해오고 있는데, 이번 주부터 광고를 내려야 할 처지다. 광고 대행사가 더는 재계약을 않겠다고 통보한 것. 돈을 주겠다는 데도 싫다며 더는 한국 기업의 홍보는 않겠다고 통지를 해왔다.

만약 한국 기업 광고를 수주하면 오히려 자기 광고회사가 세무조사를 받고 죽게 생겼다며 하소연을 하더란다. 앞으로 중국에서 광고도 못 하면 어떻게 상품을 팔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기업 담당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례5#
"가장 우려되는 게 은행에서 돈을 조달하지 못하게 될 것 같은 상황입니다." 한국인 중소업체 사장들끼리 만나면 요즘 이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안부를 묻는다. 은행이 저승사자처럼 무서워하는 '은감국', 우리로 말하면 은행감독원격인 기관이 요즘 한국계 은행을 돌고 있다. 명목은 정기적인 조사라고 하는데, 석 달 전 이미 다 조사를 마친 뒤에 또 나올 이유가 없다는 게 관계자의 말이다.

한국 기업인들에게 대출을 얼마나 해줬는지 등을 꼬치꼬치 캐묻는다고 한다. 한국계 은행뿐 아니라 한국인을 대상으로 대출을 많이 해주는 중국은행에도 은감국의 조사가 이뤄진다고 한다. 은행으로서는 한국인 사업자에 대한 대출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은행에서 돈 빌려서 사업하는 한국인 사업가들은 만기가 도래하는 대출이 연장이 안 될 거라는 위기감에 잠을 잘 못 잘 지경이라고 토로한다.

사례6#
요즘 한국에서 중국으로 들어오는 탑승객들은 공항을 빠져나가는 데 유난히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한국에서 사온 물건이 담긴 짐 가방을 전수 검사하기 때문이다. 짐을 다 풀어헤치고 각종 트집을 잡아 애를 먹이는 통에, 절로 '한국에서 물건 사오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최근 다롄 공항을 통해 중국으로 들어온 지인이 털어놓는다.

중국인 승객도 한국에서 입국할 경우에는 마찬가지로 짐 가방을 뒤진다는데, 한마디로 한국에서 물건 사오는 사람은 공항에서 괴롭히겠다는 메시지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관광객 자체도 큰 폭으로 줄겠지만, 그나마 왔던 관광객도 한국 물건을 사가기 힘들게 생겼다.

불과 일주일 사이에 동시 다발적으로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문제는 이보다 더 심한 일들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롯데와 국방부 간 '사드 부지 체결'을 계기로 사드 보복이 거세졌지만, 앞으로 단계별로 상황이 진척될 때마다 그 강도는 더 커질 수 있어 보인다.

이러다 보니 일부 중국 교민들 사이에서는 '도대체 왜 실익도 없이 사드 배치를 강행하는가?'라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바로 이런 걸 중국이 노리는 것일 텐데, 우리가 중국을 너무 몰랐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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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뉴스에서 못 다룬 사드 보복 ‘백태’…광고금지에 소방점검까지
    • 입력 2017-03-07 16:31:21
    특파원 리포트
"각론으로 들어가면 훨씬 교묘하고 조직적이에요. 시나리오가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요…." 중국에서 5년째 근무 중인 한 대기업 직원의 말이다. '한류 금지'에서 시작해 '한국 관광상품 판매 금지', '롯데 죽이기' 같은 뉴스 머리기사에 나오는 조치들보다도, 눈에 띄지 않는 교묘한 보복 행태들이 더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조여온다는 하소연이다.

식당 코너 전체 30여 개 가운데 한국인 식당 2곳만 영업정지됐다.
사례1#
중국 선양의 한 지하 푸드코트. 지난 주말 점심 준비가 한창인 오전 11시쯤, 갑자기 이곳에 소방점검을 위한 단속반이 들이닥쳤다. 이 푸드코트에는 30여 개의 식당이 영업하고 있는데 이날 단속반은 딱 두 곳만 소방 점검을 했다. 바로 한국인이 주인인 한식당과 한국계 프랜차이즈 음식점이었다.

소방당국은 크고 화려한 중국 식당들은 건드리지도 않고 김치찌개와 떡볶이를 파는 작은 한국 식당 두 곳만 '찍어서' 단속을 했다. 이 식당들은 이번 주부터 영업정지를 당했다.

사례2#
롯데건설이 선양에서 분양 중인 아파트의 모델하우스. 이곳 역시 보복을 피해가지 못했다. 화려하게 인테리어를 하고 손님을 끌어야 하지만 시공돼 있던 고급 카펫이 다 벗겨져 있다. 소방 점검에서 지적을 받아 철거했다는 것.

카펫은 불연성 자재를 사용한 고급 제품이다. 원래 소방점검을 하고 허가를 내 줄 때는 통과가 됐었던 것인데 인제 와서는 각종 트집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 시공할 때는 모범 시설로 선정됐던 곳이에요. 선양에 이런 곳이 없다고 말이에요. 그래서 소방국에서 다른 업주들을 데리고 와서 교육까지 하던 곳이었습니다." 모델하우스 담당자는 이렇게 하소연을 했다. 이번엔 이렇게 겨우 넘어갔지만, 언제 다시 꼬투리를 잡고 폐쇄 명령을 내릴지 모르겠다며 담당자는 걱정이 태산이다.

정문 앞에 경찰차가 서 있고, 상설할인 공간은 텅텅 비어 있다.
사례3#
불매 운동 플래카드가 하루가 멀다고 내걸리는 롯데 백화점. 정문 앞에 중국 공안의 차가 떡 버티고 있다. 치안을 위해서라지만 백화점을 이용하려는 고객들이 보기에는 뭔가 불안하기만 할 풍경이다.

백화점 내부를 들어가 보면 매대가 꽉 차 있어야 할 상설 할인 공간이 휑하니 비어있다. 매대를 차려 놓으면 비상 대피로를 확보 안 했다며 단속반이 각종 꼬투리를 잡으니까, 아예 백화점이 이 공간을 비워 놓은 것이다. 영업정지 조치는 내려지지 않았지만 사실상 장사 하지 말란 얘기다.

사례4#
중국에서 수년째 사업을 하는 한 대기업. 도로변에 설치된 광고판을 통해 기업 상품 광고를 해오고 있는데, 이번 주부터 광고를 내려야 할 처지다. 광고 대행사가 더는 재계약을 않겠다고 통보한 것. 돈을 주겠다는 데도 싫다며 더는 한국 기업의 홍보는 않겠다고 통지를 해왔다.

만약 한국 기업 광고를 수주하면 오히려 자기 광고회사가 세무조사를 받고 죽게 생겼다며 하소연을 하더란다. 앞으로 중국에서 광고도 못 하면 어떻게 상품을 팔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기업 담당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례5#
"가장 우려되는 게 은행에서 돈을 조달하지 못하게 될 것 같은 상황입니다." 한국인 중소업체 사장들끼리 만나면 요즘 이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안부를 묻는다. 은행이 저승사자처럼 무서워하는 '은감국', 우리로 말하면 은행감독원격인 기관이 요즘 한국계 은행을 돌고 있다. 명목은 정기적인 조사라고 하는데, 석 달 전 이미 다 조사를 마친 뒤에 또 나올 이유가 없다는 게 관계자의 말이다.

한국 기업인들에게 대출을 얼마나 해줬는지 등을 꼬치꼬치 캐묻는다고 한다. 한국계 은행뿐 아니라 한국인을 대상으로 대출을 많이 해주는 중국은행에도 은감국의 조사가 이뤄진다고 한다. 은행으로서는 한국인 사업자에 대한 대출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은행에서 돈 빌려서 사업하는 한국인 사업가들은 만기가 도래하는 대출이 연장이 안 될 거라는 위기감에 잠을 잘 못 잘 지경이라고 토로한다.

사례6#
요즘 한국에서 중국으로 들어오는 탑승객들은 공항을 빠져나가는 데 유난히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한국에서 사온 물건이 담긴 짐 가방을 전수 검사하기 때문이다. 짐을 다 풀어헤치고 각종 트집을 잡아 애를 먹이는 통에, 절로 '한국에서 물건 사오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최근 다롄 공항을 통해 중국으로 들어온 지인이 털어놓는다.

중국인 승객도 한국에서 입국할 경우에는 마찬가지로 짐 가방을 뒤진다는데, 한마디로 한국에서 물건 사오는 사람은 공항에서 괴롭히겠다는 메시지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관광객 자체도 큰 폭으로 줄겠지만, 그나마 왔던 관광객도 한국 물건을 사가기 힘들게 생겼다.

불과 일주일 사이에 동시 다발적으로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문제는 이보다 더 심한 일들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롯데와 국방부 간 '사드 부지 체결'을 계기로 사드 보복이 거세졌지만, 앞으로 단계별로 상황이 진척될 때마다 그 강도는 더 커질 수 있어 보인다.

이러다 보니 일부 중국 교민들 사이에서는 '도대체 왜 실익도 없이 사드 배치를 강행하는가?'라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바로 이런 걸 중국이 노리는 것일 텐데, 우리가 중국을 너무 몰랐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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