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한국과 브라질의 탄핵 ‘닮은꼴’

입력 2017.03.13 (08:16) 수정 2017.03.13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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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파울루 시내 봉헤치로는 한국 교민들이 의류 상가를 형성하고 있는 브라질 속 한국 거리다. 이곳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한 교민은 가끔 브라질 사람들이 "당신네 나라 대통령도 탄핵당했다면서요?"라고 물어올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한다. "작년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브라질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올해는 조국인 한국에서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걸 보니 마음이 착잡하다"는 설명이다.

탄핵으로 물러난 박근혜 전 대통령과 호세프 전 대통령탄핵으로 물러난 박근혜 전 대통령과 호세프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기 약 6개월 전, 브라질에서는 호세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났다. 두 대통령은 한국과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게 처음 있는 일이지만, 브라질에서는 1992년 롤로르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 겪는 사태였다.

호세프 전 태통령의 탄핵 사유는 연방정부의 막대한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영은행의 돈을 사용하고 갚지 않는 등 재정회계법을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3월 처음 탄핵안이 발의됐을 때만 해도 브라질 사회 분위기는 '과연 탄핵이 가능할까?'하는 회의론이 더 컸었다.

탄핵의 원인이 된 최순실 씨와 룰라 전 대통령탄핵의 원인이 된 최순실 씨와 룰라 전 대통령

하지만 호세프 대통령의 정치적 후견인인 룰라 전 대통령이 부정부패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호세프 대통령이 룰라 전 대통령에게 검찰 수사를 피할 수 있도록 면책 특권이 있는 장관직을 제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국적으로 탄핵 불씨가 확산하게 된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태가 측근인 최순실 씨로부터 비롯됐다는 점에서, 두 대통령 모두 주변 사람을 챙기려다가 불명예스럽게 물러나게 된 셈이다.

브라질에서는 지난해 3월 16일 하원의장이 탄핵안을 발의한 이후 하원과 상원 표결을 통해 8월 31일 탄핵이 최종 확정됐다. 하원에서는 전체의원 513명 가운데 367명이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고, 상원에서는 81명 의원 가운데 31명이 탄핵을 지지했다. 탄핵안 발의에서 최종 확정까지는 168일이 걸렸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12월 3일 국회의원 171명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12월 9일 국회 통과 이후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97일이 소요됐다. 두 나라 제도와 절차의 차이점도 있었겠지만, 브라질보다 우리나라에서 탄핵안이 훨씬 신속하게 처리됐다는 걸 찾아볼 수 있다.

브라질에서는 테메르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했다.브라질에서는 테메르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대통령 파면 이후 새롭게 대선을 치러야 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브라질에서는 테메르 부통령이 곧바로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 룰라 전 대통령 이후 집권 노동자당(PT)과 함께 연정을 구성한 브라질민주운동당(PMDB)를 이끌고 있던 테메르 부통령은 탄핵 사태를 계기로 노동자당과 결별하고 호세프 축출을 주도해 새 대통령으로 취임할 수 있었다.

파울리스타 대로에서 벌어진 탄핵 찬·반 집회파울리스타 대로에서 벌어진 탄핵 찬·반 집회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브라질에서도 심각한 국론 분열 현상이 나타났다. 상파울루 시내 중심가인 파울리스타 대로에서는 브라질 역사상 최대 규모인 2백만 명이 모여 '호세프 퇴진' 시위를 벌였고, 노동자당 지지층은 '탄핵 반대'를 외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호세프 대통령이 물러난 뒤에도 국영 석유회사인 '페트로브라스'와 최대 건설기업인 '오데브레시'사의 정치권 뇌물 스캔들까지 얽히면서, 브라질 사회의 혼란과 분열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연말 시행된 한 여론조사에서는 '테메르 대통령이 스스로 사임하거나 탄핵으로 물러난 뒤 조기 대선을 실시하는 방안'에 63%가 찬성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대통령 탄핵 과정을 보면 우리나라와 브라질에서 여러 가지 '닮은꼴'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탄핵 이후 우리 사회는 지금의 브라질과 어떤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대선을 준비하는 정치권에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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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한국과 브라질의 탄핵 ‘닮은꼴’
    • 입력 2017-03-13 08:16:43
    • 수정2017-03-13 08:16:55
    특파원 리포트
상파울루 시내 봉헤치로는 한국 교민들이 의류 상가를 형성하고 있는 브라질 속 한국 거리다. 이곳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한 교민은 가끔 브라질 사람들이 "당신네 나라 대통령도 탄핵당했다면서요?"라고 물어올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한다. "작년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브라질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올해는 조국인 한국에서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걸 보니 마음이 착잡하다"는 설명이다. 탄핵으로 물러난 박근혜 전 대통령과 호세프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기 약 6개월 전, 브라질에서는 호세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났다. 두 대통령은 한국과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게 처음 있는 일이지만, 브라질에서는 1992년 롤로르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 겪는 사태였다. 호세프 전 태통령의 탄핵 사유는 연방정부의 막대한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영은행의 돈을 사용하고 갚지 않는 등 재정회계법을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3월 처음 탄핵안이 발의됐을 때만 해도 브라질 사회 분위기는 '과연 탄핵이 가능할까?'하는 회의론이 더 컸었다. 탄핵의 원인이 된 최순실 씨와 룰라 전 대통령 하지만 호세프 대통령의 정치적 후견인인 룰라 전 대통령이 부정부패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호세프 대통령이 룰라 전 대통령에게 검찰 수사를 피할 수 있도록 면책 특권이 있는 장관직을 제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국적으로 탄핵 불씨가 확산하게 된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태가 측근인 최순실 씨로부터 비롯됐다는 점에서, 두 대통령 모두 주변 사람을 챙기려다가 불명예스럽게 물러나게 된 셈이다. 브라질에서는 지난해 3월 16일 하원의장이 탄핵안을 발의한 이후 하원과 상원 표결을 통해 8월 31일 탄핵이 최종 확정됐다. 하원에서는 전체의원 513명 가운데 367명이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고, 상원에서는 81명 의원 가운데 31명이 탄핵을 지지했다. 탄핵안 발의에서 최종 확정까지는 168일이 걸렸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12월 3일 국회의원 171명이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12월 9일 국회 통과 이후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97일이 소요됐다. 두 나라 제도와 절차의 차이점도 있었겠지만, 브라질보다 우리나라에서 탄핵안이 훨씬 신속하게 처리됐다는 걸 찾아볼 수 있다. 브라질에서는 테메르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대통령 파면 이후 새롭게 대선을 치러야 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브라질에서는 테메르 부통령이 곧바로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 룰라 전 대통령 이후 집권 노동자당(PT)과 함께 연정을 구성한 브라질민주운동당(PMDB)를 이끌고 있던 테메르 부통령은 탄핵 사태를 계기로 노동자당과 결별하고 호세프 축출을 주도해 새 대통령으로 취임할 수 있었다. 파울리스타 대로에서 벌어진 탄핵 찬·반 집회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브라질에서도 심각한 국론 분열 현상이 나타났다. 상파울루 시내 중심가인 파울리스타 대로에서는 브라질 역사상 최대 규모인 2백만 명이 모여 '호세프 퇴진' 시위를 벌였고, 노동자당 지지층은 '탄핵 반대'를 외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호세프 대통령이 물러난 뒤에도 국영 석유회사인 '페트로브라스'와 최대 건설기업인 '오데브레시'사의 정치권 뇌물 스캔들까지 얽히면서, 브라질 사회의 혼란과 분열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연말 시행된 한 여론조사에서는 '테메르 대통령이 스스로 사임하거나 탄핵으로 물러난 뒤 조기 대선을 실시하는 방안'에 63%가 찬성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대통령 탄핵 과정을 보면 우리나라와 브라질에서 여러 가지 '닮은꼴'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탄핵 이후 우리 사회는 지금의 브라질과 어떤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대선을 준비하는 정치권에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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