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칠레에 소방관이 없는 이유는?

입력 2017.03.13 (08:39) 수정 2017.03.13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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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칠레는 사상 최악의 산불 피해를 보았다. 3천여 건의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서울시 면적의 10배에 육박하는 5,885㎢의 숲과 농지 등이 소실됐다. 이 산불을 진화하는 과정에서 소방대원 11명이 숨졌는데, 이들은 모두 민간인 신분이었다. 칠레에는 공식적으로 소방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칠레 소방대원들이 산불을 진화하고 있다. 칠레 소방대원은 모두 민간인 자원봉사자로 운영되고 있다.칠레 소방대원들이 산불을 진화하고 있다. 칠레 소방대원은 모두 민간인 자원봉사자로 운영되고 있다.

1850년 12월 15일, 칠레 수도 산티아고 북쪽의 발파라이소 지역에서 아주 큰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에는 전문적으로 불을 끄는 소방서나 소방관이 없어서, 자발적으로 지원한 지역 주민들의 도움으로 불을 끌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지원한 사람들은 '정부가 하지 못하는 일은 국민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화재 진압 이후 1851년 6월 30일 칠레의 첫 공식 소방서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이 소방서는 정부 조직이 아니었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도 소방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 자원봉사자로 구성됐다. 그 이후 지금까지 칠레의 소방서는 돈을 받지 않고 일하는 자원봉사자들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칠레 전국에는 312곳의 소방서가 있고, 약 4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소방대원으로 등록돼 있다. 각자 자신의 직업이 따로 있기 때문에 항상 화재나 재난 현장에 달려갈 수는 없지만, 2만 5천 명 정도는 꾸준히 소방대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3천 달러, 3백만 원이 넘는 방화복도 개인 비용으로 구매하고 있다. 이런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소방서들은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각종 행사를 개최해 자금을 모으기도 한다.

칠레에는 약 4만 명의 자원봉사 소방대원이 등록돼 있다. 이들은 월급을 받지 않고, 방화복도 개인 비용으로 구매한다. 칠레에는 약 4만 명의 자원봉사 소방대원이 등록돼 있다. 이들은 월급을 받지 않고, 방화복도 개인 비용으로 구매한다.

UN 소속으로 칠레에 파견돼 있던 수산나 푸엔테스는 2014년 칠레의 소방서 운영방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푸엔테스는 "소방관이라는 공식 직업이 있어야 자원봉사로 지원하는 소방대원이 없어질 것이다. 취미생활(자원봉사 소방대원)과 전문적으로 하는 일은 다르다"고 말하고, "소방서를 유지하기 위해 대원들이 행사를 만들고 돈을 모으는데, 정부에서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월급을 받는 소방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었지만 칠레 소방대원들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한 소방대원은 "우리에게 줄 월급이 있으면 차라리 국민을 위해 사용했으면 좋겠다"며 자원봉사로 일하는 것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물론 칠레 정부가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소방차 등 소방서 운영 예산의 55%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일부 지원하는 역할일 뿐, 소방서를 운영하는 주체는 자원봉사로 나서는 칠레 국민들이다.

2015년 4월 분화한 칼부코 화산. 환태평양지진대에 속한 칠레는 전 세계에서 활화산이 가장 많고, 지진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2015년 4월 분화한 칼부코 화산. 환태평양지진대에 속한 칠레는 전 세계에서 활화산이 가장 많고, 지진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칠레는 남미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재난재해가 많은 나라 가운데 하나다. '불의 고리'라고 불리는 환태평양지진대에 포함돼 지진도 자주 발생하고, 활화산도 90여 개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소방대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활동해야 할 일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칠레 국민들은 그 위험을 자원봉사라는 형태로 함께 분담하고 있는 것이다.

칠레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한 교민은 "선생님이 장래 희망을 물으면 많은 학생이 소방대원이라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한다. 칠레에 소방관이라는 직업은 없지만, 소방대원이 하는 일이 중요하고 꼭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방증이다. 바로 그런 국민들의 공감이 '소방관 없는 나라'를 유지하는 힘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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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칠레에 소방관이 없는 이유는?
    • 입력 2017-03-13 08:39:04
    • 수정2017-03-13 08:39:34
    특파원 리포트
올해 초 칠레는 사상 최악의 산불 피해를 보았다. 3천여 건의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서울시 면적의 10배에 육박하는 5,885㎢의 숲과 농지 등이 소실됐다. 이 산불을 진화하는 과정에서 소방대원 11명이 숨졌는데, 이들은 모두 민간인 신분이었다. 칠레에는 공식적으로 소방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칠레 소방대원들이 산불을 진화하고 있다. 칠레 소방대원은 모두 민간인 자원봉사자로 운영되고 있다. 1850년 12월 15일, 칠레 수도 산티아고 북쪽의 발파라이소 지역에서 아주 큰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에는 전문적으로 불을 끄는 소방서나 소방관이 없어서, 자발적으로 지원한 지역 주민들의 도움으로 불을 끌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지원한 사람들은 '정부가 하지 못하는 일은 국민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화재 진압 이후 1851년 6월 30일 칠레의 첫 공식 소방서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이 소방서는 정부 조직이 아니었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도 소방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 자원봉사자로 구성됐다. 그 이후 지금까지 칠레의 소방서는 돈을 받지 않고 일하는 자원봉사자들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칠레 전국에는 312곳의 소방서가 있고, 약 4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소방대원으로 등록돼 있다. 각자 자신의 직업이 따로 있기 때문에 항상 화재나 재난 현장에 달려갈 수는 없지만, 2만 5천 명 정도는 꾸준히 소방대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3천 달러, 3백만 원이 넘는 방화복도 개인 비용으로 구매하고 있다. 이런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소방서들은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각종 행사를 개최해 자금을 모으기도 한다. 칠레에는 약 4만 명의 자원봉사 소방대원이 등록돼 있다. 이들은 월급을 받지 않고, 방화복도 개인 비용으로 구매한다. UN 소속으로 칠레에 파견돼 있던 수산나 푸엔테스는 2014년 칠레의 소방서 운영방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푸엔테스는 "소방관이라는 공식 직업이 있어야 자원봉사로 지원하는 소방대원이 없어질 것이다. 취미생활(자원봉사 소방대원)과 전문적으로 하는 일은 다르다"고 말하고, "소방서를 유지하기 위해 대원들이 행사를 만들고 돈을 모으는데, 정부에서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월급을 받는 소방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었지만 칠레 소방대원들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한 소방대원은 "우리에게 줄 월급이 있으면 차라리 국민을 위해 사용했으면 좋겠다"며 자원봉사로 일하는 것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물론 칠레 정부가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소방차 등 소방서 운영 예산의 55%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일부 지원하는 역할일 뿐, 소방서를 운영하는 주체는 자원봉사로 나서는 칠레 국민들이다. 2015년 4월 분화한 칼부코 화산. 환태평양지진대에 속한 칠레는 전 세계에서 활화산이 가장 많고, 지진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칠레는 남미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재난재해가 많은 나라 가운데 하나다. '불의 고리'라고 불리는 환태평양지진대에 포함돼 지진도 자주 발생하고, 활화산도 90여 개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소방대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활동해야 할 일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칠레 국민들은 그 위험을 자원봉사라는 형태로 함께 분담하고 있는 것이다. 칠레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한 교민은 "선생님이 장래 희망을 물으면 많은 학생이 소방대원이라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한다. 칠레에 소방관이라는 직업은 없지만, 소방대원이 하는 일이 중요하고 꼭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방증이다. 바로 그런 국민들의 공감이 '소방관 없는 나라'를 유지하는 힘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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