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 VS “미친 발언”, 터키- 유럽 외교 갈등 격화

입력 2017.03.13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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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4월 16일 실시되는 '터키 개헌안' 국민투표를 앞두고 터키 정부가 유럽 재외 국민들을 대상을 개최하려던 개헌 지지 집회를 놓고 터키와 유럽 국가들과의 외교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개헌을 통해 사실상 독재체제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며 개헌지지 집회에 터키 장관들이 참석하는 것을 제지하고 있다.

이에 맞서 터키 정부는 '나치'라는 용어까지 동원해 이들 국가를 비난하는 등 강력히 반발해 유럽 지역의 외교 갈등이 전방위적으로 확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터키 대통령, “나치즘이 아직도 서구에 퍼져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각) 이스탄불 인근 코카엘리 지방을 방문해 가진 연설에서 "나치즘이 끝난 것으로 생각했는데 틀렸다. 나치즘이 아직도 서구에 퍼져 있다"고 말했다고 터키 아나돌루 통신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또 "서방국들이 '이슬람 공포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보다 앞서 개헌 집회를 허락하지 않은 독일 정부를 겨냥해서도 "나치와 다를 바 없다"고 비난하는 등 유럽 주요 국가들에 대한 발언 수위를 점차 높이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특히 개헌 지지 집회에 참석하려던 터키 외무 장관의 입국을 막은 네덜란드를 제재해달라고 유럽 각국에 촉구하기도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유럽이 네덜란드에 대해 뭐라고 말한 적이 있나?. 네덜란드는 '바나나 공화국'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바나나 공화국이란 바나나와 같은 한정된 농산물 수출에 경제를 의존하고 미국 등 서구의 거대자본에 좌지우지되는 부패한 독재정권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 장관 12일 프랑스에서 열린 친정부 집회에서 가진 연설에서 "네덜란드는 파시즘 수도"라며 에르도안 대통령과 같은 맥락의 주장을 했다.

터키는 일 단계 보복조치로 자국 주재 네덜란드 대사관과 영사관을 봉쇄한 상태이다. 휴리예트 등을 따르면 친정부 성향 정당들은 네덜란드와의 국교 단절까지도 요구하고 있다.

12일(현지시각) 터키 이스탄불의 네덜란드 영사관 앞에서 터키인들이 네덜란드의 터키 외교장관 입국을 막는 조치에 반발, 국기를 흔들며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AP)12일(현지시각) 터키 이스탄불의 네덜란드 영사관 앞에서 터키인들이 네덜란드의 터키 외교장관 입국을 막는 조치에 반발, 국기를 흔들며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AP)

네덜란드 총리, “용납할 수 없는 말”

이에 대해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는 12일(현지시각) "네덜란드는 2차 세계대전 때 나치의 폭격을 받았던 국가이다. 용납할 수 없는 말이다. 미친 발언이다."라고 터키의 도발을 강력히 비판했다.

덴마크는 이달로 예정된 터키 총리와 회담을 전격 취소했다.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는 "지난해 12월 앙카라에서 터키 총리와 진솔하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눴다. 앞으로 정상적인 환경에서 그를 반가이 맞이할 것"이라는 말로 정상회담 취소를 공식화했다. 라스무센 총리는 또 "터키에서 민주주의 원칙이 상당한 압력을 받는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프랑스 외교부는 네덜란드행이 불발된 터키 외무장관이 자국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하자 터키 측에 도발을 자제하라고 촉구했다. 스웨덴 정부도 12일 열릴 예정이던 친(親) 에르도안 집회를 취소시키는 등 터키에 대한 유럽 각국의 반발도 확산하고 있다.

12일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 장관이 프랑스 메츠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AP)12일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 장관이 프랑스 메츠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AP)

에르도안 개헌 통해 장기 집권 도모

유럽연합(EU) 국가들이 터키 정부의 개헌 집회에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추진하는 개헌이 대통령 절대 독재체제를 장기화하려는 의도라고 보기 때문이다.

유럽 국가들은 겉으로는 내부 통합을 해치고 마찰을 초래할 수 있다는 등 안보상의 우려를 내세워 개헌집회를 허락하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터키 민주주의의 퇴행과 장기 독재체제의 현실화를 경계하고 있다. 권력 강화에 몰두하는 에르도안이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독재자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오는 4월 16일 국민 투표가 실시되는 터키 개헌안의 핵심은 대통령 중심제이다. 이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숙원 사업으로, 터키의 권력 구조를 의원내각제에서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로 바꾸는 것이다.

개헌안에 따르면, 기존 총리직은 폐지되고 대통령이 부통령과 장관을 모두 임명한다. 또 대통령에게 예산 편성권과 고위 법관 과반을 임명할 권한을 주며, 대통령령으로 법률 공포도 가능해진다.

대통령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국가비상사태 선포권과 의회 해산권도 갖게 된다. 대통령 임기는 5년으로 1회에 한해 중임이 가능하다. 대선과 총선은 같은 날 치러져 여당이 원내 1당까지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새 헌법에 따라 치러지는 2019년 대선과 2024년 대선에서 모두 승리하면, 2029년까지 장기집권할 수도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과거 이슬람 제국 시절 최고 통치자인 '술탄'으로 군림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11년간 총리를 지낸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2010년 국민투표로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을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꾼 다음, 2014년 대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취임 직후부터 대통령중심제 개헌을 추진했으나 야당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지난해 7월 쿠데타 진압 후 개헌을 신속히 추진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불발 쿠데타 이후 대대적인 숙청에 나서 야당 정치인과 언론인, 인권운동가 등 수천 명을 쿠데타 연루 죄로 투옥했다. 직책을 박탈당한 공무원만 1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의 재외 국민은 55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독일에만 140만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터키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개헌안이 국민투표를 통과하려면 이들의 찬성표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개헌안 통과를 낙관하기 어려울 만큼 찬반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터키 정부가 나토 우방들과의 외교 갈등을 무릅쓰며 재외국민들에게 개헌 당위성을 설명하고 지지를 촉구하고 나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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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치” VS “미친 발언”, 터키- 유럽 외교 갈등 격화
    • 입력 2017-03-13 14:27:14
    취재K
오는 4월 16일 실시되는 '터키 개헌안' 국민투표를 앞두고 터키 정부가 유럽 재외 국민들을 대상을 개최하려던 개헌 지지 집회를 놓고 터키와 유럽 국가들과의 외교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개헌을 통해 사실상 독재체제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며 개헌지지 집회에 터키 장관들이 참석하는 것을 제지하고 있다.

이에 맞서 터키 정부는 '나치'라는 용어까지 동원해 이들 국가를 비난하는 등 강력히 반발해 유럽 지역의 외교 갈등이 전방위적으로 확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터키 대통령, “나치즘이 아직도 서구에 퍼져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각) 이스탄불 인근 코카엘리 지방을 방문해 가진 연설에서 "나치즘이 끝난 것으로 생각했는데 틀렸다. 나치즘이 아직도 서구에 퍼져 있다"고 말했다고 터키 아나돌루 통신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또 "서방국들이 '이슬람 공포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보다 앞서 개헌 집회를 허락하지 않은 독일 정부를 겨냥해서도 "나치와 다를 바 없다"고 비난하는 등 유럽 주요 국가들에 대한 발언 수위를 점차 높이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특히 개헌 지지 집회에 참석하려던 터키 외무 장관의 입국을 막은 네덜란드를 제재해달라고 유럽 각국에 촉구하기도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유럽이 네덜란드에 대해 뭐라고 말한 적이 있나?. 네덜란드는 '바나나 공화국'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바나나 공화국이란 바나나와 같은 한정된 농산물 수출에 경제를 의존하고 미국 등 서구의 거대자본에 좌지우지되는 부패한 독재정권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 장관 12일 프랑스에서 열린 친정부 집회에서 가진 연설에서 "네덜란드는 파시즘 수도"라며 에르도안 대통령과 같은 맥락의 주장을 했다.

터키는 일 단계 보복조치로 자국 주재 네덜란드 대사관과 영사관을 봉쇄한 상태이다. 휴리예트 등을 따르면 친정부 성향 정당들은 네덜란드와의 국교 단절까지도 요구하고 있다.

12일(현지시각) 터키 이스탄불의 네덜란드 영사관 앞에서 터키인들이 네덜란드의 터키 외교장관 입국을 막는 조치에 반발, 국기를 흔들며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AP)
네덜란드 총리, “용납할 수 없는 말”

이에 대해 마르크 뤼테 네덜란드 총리는 12일(현지시각) "네덜란드는 2차 세계대전 때 나치의 폭격을 받았던 국가이다. 용납할 수 없는 말이다. 미친 발언이다."라고 터키의 도발을 강력히 비판했다.

덴마크는 이달로 예정된 터키 총리와 회담을 전격 취소했다.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는 "지난해 12월 앙카라에서 터키 총리와 진솔하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눴다. 앞으로 정상적인 환경에서 그를 반가이 맞이할 것"이라는 말로 정상회담 취소를 공식화했다. 라스무센 총리는 또 "터키에서 민주주의 원칙이 상당한 압력을 받는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프랑스 외교부는 네덜란드행이 불발된 터키 외무장관이 자국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하자 터키 측에 도발을 자제하라고 촉구했다. 스웨덴 정부도 12일 열릴 예정이던 친(親) 에르도안 집회를 취소시키는 등 터키에 대한 유럽 각국의 반발도 확산하고 있다.

12일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 장관이 프랑스 메츠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AP)
에르도안 개헌 통해 장기 집권 도모

유럽연합(EU) 국가들이 터키 정부의 개헌 집회에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추진하는 개헌이 대통령 절대 독재체제를 장기화하려는 의도라고 보기 때문이다.

유럽 국가들은 겉으로는 내부 통합을 해치고 마찰을 초래할 수 있다는 등 안보상의 우려를 내세워 개헌집회를 허락하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터키 민주주의의 퇴행과 장기 독재체제의 현실화를 경계하고 있다. 권력 강화에 몰두하는 에르도안이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독재자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오는 4월 16일 국민 투표가 실시되는 터키 개헌안의 핵심은 대통령 중심제이다. 이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숙원 사업으로, 터키의 권력 구조를 의원내각제에서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로 바꾸는 것이다.

개헌안에 따르면, 기존 총리직은 폐지되고 대통령이 부통령과 장관을 모두 임명한다. 또 대통령에게 예산 편성권과 고위 법관 과반을 임명할 권한을 주며, 대통령령으로 법률 공포도 가능해진다.

대통령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국가비상사태 선포권과 의회 해산권도 갖게 된다. 대통령 임기는 5년으로 1회에 한해 중임이 가능하다. 대선과 총선은 같은 날 치러져 여당이 원내 1당까지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새 헌법에 따라 치러지는 2019년 대선과 2024년 대선에서 모두 승리하면, 2029년까지 장기집권할 수도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과거 이슬람 제국 시절 최고 통치자인 '술탄'으로 군림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11년간 총리를 지낸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2010년 국민투표로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을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꾼 다음, 2014년 대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취임 직후부터 대통령중심제 개헌을 추진했으나 야당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지난해 7월 쿠데타 진압 후 개헌을 신속히 추진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불발 쿠데타 이후 대대적인 숙청에 나서 야당 정치인과 언론인, 인권운동가 등 수천 명을 쿠데타 연루 죄로 투옥했다. 직책을 박탈당한 공무원만 1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의 재외 국민은 55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독일에만 140만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터키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개헌안이 국민투표를 통과하려면 이들의 찬성표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개헌안 통과를 낙관하기 어려울 만큼 찬반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터키 정부가 나토 우방들과의 외교 갈등을 무릅쓰며 재외국민들에게 개헌 당위성을 설명하고 지지를 촉구하고 나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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