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서울대를 없앤다면…고등학교 사교육비 해법은?

입력 2017.03.15 (18:27)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현재 대학 입시 구조에서 행복한 국민이 과연 있을까요? 공부를 잘 하면 잘 하는 대로, 못 하면 못 하는 대로, 우리나라에서 대입 준비 시기는 당사자 대부분이 괴롭고 힘든 시기입니다. 대입 준비 기간은 이제 '최소' 3년으로 봐야 합니다. 고등학교 3년 동안의 생활이 담긴 ‘학교생활기록부’가 대입 전형에서 핵심 평가 요소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학교생활기록부가 도입된 취지는 학생의 꿈과 끼를 살리고 공교육을 ‘정상화’하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학교를 입시 위주 수업이 아닌 전인 교육을 펼치는 장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입니다. 결과는 어떨까요?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고등학생들의 사교육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점입니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지난해 사교육비를 조사한 결과, 고등학생들의 총 사교육비가 전년 대비 8.7%나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초등학생 사교육비는 2.9% 늘었고, 중학생 사교육비는 8.2%가 줄어들었는데, 고등학교만 유독 증가폭이 큽니다.

고등학생만 놓고 봤을 때,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집계한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6만 2천 원이었는데요, 사교육을 받는 학생들만 놓고 계산해 보니, 1인당 월평균 49만 9천 원을 사교육에 썼습니다. 이건 말 그대로 평균 액수입니다. 고등학생 학부모들은 자녀 학원비를 벌기 위해 본래 직업 외에 대리운전같은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사교육비 추이(교육부)사교육비 추이(교육부)

고등학생 사교육비가 왜 갑자기 늘었을까?

몇몇 유명 학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습니다. 각 학교별로 중간고사반, 기말고사반이 구성돼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국영수에 사회, 과학 과목까지, 전과목 내신 시험을 준비하는 학원이 활성화되고 있는 겁니다.

시험 한 번 한 번이 바로 대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모든 시험에 전력 투구를 하고 있습니다. 공교육을 강화하겠다며 만든 학교생활기록부, 오히려 사교육을 더 일으킨 결과를 낳았습니다.

또 다른 부작용은 인성, 적성 교육마저 입시 경쟁으로 귀결되고 있는 현상입니다. 적성 계발을 위한 교육연구 활동, 인성 함양을 위한 독서나 봉사활동마저 사교육 시장에서 이른바 ‘입시 컨설턴트’라는 사람들이 각본을 짜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신 중심이 아닌 수능 성적 위주로 입시 체제를 바꾸면 사교육이 줄어들까요? 교육 문제를 고민해 온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고개를 흔듭니다. 풍선 누르기라고, 여기를 누르면 저기가 튀어오를 뿐이라고요. 오히려 수능이야 말로, 사교육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영역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오늘 서울시교육청이 대학체제 개혁안을 불쑥 꺼냈습니다. 수직화된 대학 서열 구조를 개혁하지 않으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과도한 입시 체제를 개혁하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초중등 교육을 정상화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준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서울시교육청 대학체제개편(안)서울시교육청 대학체제개편(안)

개혁안의 핵심은 서울대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1단계로 통합국립대학 구축을 제안했는데요. 서울대를 포함해 10개의 거점 국립대학을 포괄하는 ‘통합국립대학’을 구성하는 1안과, 서울대를 제외한 나머지 광역 시도 국립대를 중심으로 ‘통합국립대학’을 구성하는 2안을 내놨습니다.

통합국립대학이 구성되면, 각 대학들은 공동학위제를 운영하고 교수와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하자는 방안입니다. 그러면 서울대 입학 정원인 3천 명 안에 들어가려는 경쟁이, 10개 대학 정원을 합친 3만 7천 명 안에 들어가려는 경쟁으로 완화될 수 있다는 겁니다.

2단계는 '공영형 사립대학’을 만드는 것입니다. 사립대 법인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지원을 받고, 대신 국공립대에 준하는 공공성과 책무성을 지녀야 한다는 방안입니다.

3단계로, 통합국립대와 사립대를 포괄하는 권역별 대학 연합 네트워크를 구축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과도한 입시 경쟁 해소를 위해 대학 체제를 개편하자는 제안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2003년에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를 만들자는 방안이 나왔습니다. 2007년 대선 때는 정동영 후보가 ‘국공립대 공동학위제’ 공약을, 권영길 후보가 ‘국공립대 공동학위제 및 서울대 학부 폐지’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2012년 대선 때는 박근혜 당시 후보가 서울대 일부 단과대학을 세종시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엔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대 폐지’를 주장하기도 했고요.

서열화된 대학 구조를 깨지 않는 한 입시 문제에 해법은 없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대학체제 개편도, 대학 입시 개선도, 여러 당사자들의 이해 관계가 맞물려 있는 만큼, 쉽게 결론이 날 문제는 아닙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갈 인재를 어떤 방식으로 키워낼 것이냐의 문제도 있습니다. 곧 대선이 치러집니다. 후보들의 공약 경쟁이 본격화될 것입니다. 과도한 대학 입시를 해소하고 학생들이 진정한 ‘앎’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교육, 그런 교육을 위한 정책 대안은 무엇일지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장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서울대를 없앤다면…고등학교 사교육비 해법은?
    • 입력 2017-03-15 18:27:06
    취재후·사건후
현재 대학 입시 구조에서 행복한 국민이 과연 있을까요? 공부를 잘 하면 잘 하는 대로, 못 하면 못 하는 대로, 우리나라에서 대입 준비 시기는 당사자 대부분이 괴롭고 힘든 시기입니다. 대입 준비 기간은 이제 '최소' 3년으로 봐야 합니다. 고등학교 3년 동안의 생활이 담긴 ‘학교생활기록부’가 대입 전형에서 핵심 평가 요소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학교생활기록부가 도입된 취지는 학생의 꿈과 끼를 살리고 공교육을 ‘정상화’하자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학교를 입시 위주 수업이 아닌 전인 교육을 펼치는 장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입니다. 결과는 어떨까요?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고등학생들의 사교육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점입니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지난해 사교육비를 조사한 결과, 고등학생들의 총 사교육비가 전년 대비 8.7%나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초등학생 사교육비는 2.9% 늘었고, 중학생 사교육비는 8.2%가 줄어들었는데, 고등학교만 유독 증가폭이 큽니다.

고등학생만 놓고 봤을 때,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집계한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6만 2천 원이었는데요, 사교육을 받는 학생들만 놓고 계산해 보니, 1인당 월평균 49만 9천 원을 사교육에 썼습니다. 이건 말 그대로 평균 액수입니다. 고등학생 학부모들은 자녀 학원비를 벌기 위해 본래 직업 외에 대리운전같은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사교육비 추이(교육부)
고등학생 사교육비가 왜 갑자기 늘었을까?

몇몇 유명 학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습니다. 각 학교별로 중간고사반, 기말고사반이 구성돼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국영수에 사회, 과학 과목까지, 전과목 내신 시험을 준비하는 학원이 활성화되고 있는 겁니다.

시험 한 번 한 번이 바로 대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모든 시험에 전력 투구를 하고 있습니다. 공교육을 강화하겠다며 만든 학교생활기록부, 오히려 사교육을 더 일으킨 결과를 낳았습니다.

또 다른 부작용은 인성, 적성 교육마저 입시 경쟁으로 귀결되고 있는 현상입니다. 적성 계발을 위한 교육연구 활동, 인성 함양을 위한 독서나 봉사활동마저 사교육 시장에서 이른바 ‘입시 컨설턴트’라는 사람들이 각본을 짜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내신 중심이 아닌 수능 성적 위주로 입시 체제를 바꾸면 사교육이 줄어들까요? 교육 문제를 고민해 온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고개를 흔듭니다. 풍선 누르기라고, 여기를 누르면 저기가 튀어오를 뿐이라고요. 오히려 수능이야 말로, 사교육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영역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오늘 서울시교육청이 대학체제 개혁안을 불쑥 꺼냈습니다. 수직화된 대학 서열 구조를 개혁하지 않으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과도한 입시 체제를 개혁하지 않으면, 근본적으로 초중등 교육을 정상화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준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서울시교육청 대학체제개편(안)
개혁안의 핵심은 서울대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1단계로 통합국립대학 구축을 제안했는데요. 서울대를 포함해 10개의 거점 국립대학을 포괄하는 ‘통합국립대학’을 구성하는 1안과, 서울대를 제외한 나머지 광역 시도 국립대를 중심으로 ‘통합국립대학’을 구성하는 2안을 내놨습니다.

통합국립대학이 구성되면, 각 대학들은 공동학위제를 운영하고 교수와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하자는 방안입니다. 그러면 서울대 입학 정원인 3천 명 안에 들어가려는 경쟁이, 10개 대학 정원을 합친 3만 7천 명 안에 들어가려는 경쟁으로 완화될 수 있다는 겁니다.

2단계는 '공영형 사립대학’을 만드는 것입니다. 사립대 법인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지원을 받고, 대신 국공립대에 준하는 공공성과 책무성을 지녀야 한다는 방안입니다.

3단계로, 통합국립대와 사립대를 포괄하는 권역별 대학 연합 네트워크를 구축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과도한 입시 경쟁 해소를 위해 대학 체제를 개편하자는 제안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2003년에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를 만들자는 방안이 나왔습니다. 2007년 대선 때는 정동영 후보가 ‘국공립대 공동학위제’ 공약을, 권영길 후보가 ‘국공립대 공동학위제 및 서울대 학부 폐지’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2012년 대선 때는 박근혜 당시 후보가 서울대 일부 단과대학을 세종시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엔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대 폐지’를 주장하기도 했고요.

서열화된 대학 구조를 깨지 않는 한 입시 문제에 해법은 없다는 지적이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대학체제 개편도, 대학 입시 개선도, 여러 당사자들의 이해 관계가 맞물려 있는 만큼, 쉽게 결론이 날 문제는 아닙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갈 인재를 어떤 방식으로 키워낼 것이냐의 문제도 있습니다. 곧 대선이 치러집니다. 후보들의 공약 경쟁이 본격화될 것입니다. 과도한 대학 입시를 해소하고 학생들이 진정한 ‘앎’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교육, 그런 교육을 위한 정책 대안은 무엇일지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장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