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캐나다 총리가 트럼프 딸과 뮤지컬 본 이유?

입력 2017.03.17 (09:27) 수정 2017.03.17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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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건물에 여객기가 충돌한다. 전대미문의 테러에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충격에 휩싸인다.

추가 테러를 우려한 미국은 하늘 문을 닫는다. 미국을 향하던 다른 여객기들은 목적지를 잃는다. 이런 여객기들 가운데 38대가 캐나다 동부 해안의 섬에 있는 갠더 공항으로 향한다.

갠더는 인구 만 명의 작은 도시다. 이런 곳에 하루 새 여객기 38대가 세계 곳곳에서 온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 7천 명을 내려놓는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9.11 당시 캐나다 갠더공항, 미국에 가지 못한 여객기들이 줄지어 서있다. 9.11 당시 캐나다 갠더공항, 미국에 가지 못한 여객기들이 줄지어 서있다.

갠더에 내린 여객기의 승객들이 체육관에 수용돼 있다.갠더에 내린 여객기의 승객들이 체육관에 수용돼 있다.

갠더 주민들은 빈방을 청소하고, 주방에 가서 요리하고, 나눌 수 있는 옷가지와 침구류를 챙겼다. 목적지를 잃고 비상착륙(?)한 외국인들을,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사람들을, 따뜻하게 환대했다는 얘기다. 실화다. 감동적인 실화다.

이 실화가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제목은 'Come From Away'. 캐나다 부부 작가인 이렌 샌코프와 데이비드 세인의 작품이다. 2년 전부터 캐나다와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공연됐고, 호평을 받았다. 이 뮤지컬이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다. 참 묘한 때에 말이다.


뮤지컬 Come From Away의 한 장면뮤지컬 Come From Away의 한 장면

현지시간 지난 15일 수요일 저녁,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뉴욕을 방문했다. 뮤지컬 'Come From Away'를 보기 위해서다. 물론 혼자가 아니고 니키 헤일리 미국 대사를 비롯해 유엔 주재 세계 각국 대사 125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그리고 트뤼도 총리는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맏딸 이방카 트럼프도 초대했다. 조금 민망한 표현이지만 "재미있다." 트뤼도 총리는 왜 이반카를 이 뮤지컬에 초대했을까?

트뤼도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트뤼도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

트뤼도 총리는 공연에 앞서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했다. "세계는, 서로에게 기대는 법을, 그 어두운 때에 서로 의지하는 법을 알게 됐습니다." 트뤼도 총리는 이렇게 짧게 뮤지컬을 소개했다.


트뤼도 총리는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트뤼도가 관객들에게 이렇게 환대를 받은 것은 다른 두 지도자(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가 브로드웨이 뮤지컬 '해밀턴'을 보러 왔을 때 받았던 인사와는 대비된다. 그 두 지도자는 야유를 받았다." 캐나다의 한 신문은 이렇게 썼다. 제 나라의 총리가 무척 자랑스러운 듯. 그럴만도 하다.

트뤼도 총리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도 대비된다. 트뤼도 총리가 취임한 이후 지난 1년여 사이 캐나다는 시리아 난민 4만 명을 받아들였다. 트뤼도 총리는 내각을 남녀 동수로 구성했다. 트뤼도 총리는 온갖 '차별'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던진다.

하와이 주 연방지방법원하와이 주 연방지방법원

트뤼도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와 함께 '관용과 포용'의 뮤지컬을 본 날, 바로 그날 트럼프 대통령에겐 '나쁜 소식'이 전해졌다. 하와이 주 연방지방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 수정판의 효력을 정지시킨 것이다. 행정명령 발효 불과 몇 시간을 앞두고 말이다.

다음날 메릴랜드 주 연방지방법원도 같은 결정을 내렸다. 지방법원이지만 연방법원의 결정이기 때문에 그 효력은 전국에 영향을 미친다.

이슬람 7개국 국민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 1호는 공항의 혼란과 거센 시위 속에 법원의 결정으로 효력이 정지됐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라크를 입국 금지 대상 국가에서 빼고, 기존의 비자와 영주권 소지자의 입국은 허용한 '반이민 행정명령' 2호에 서명했지만, 이 수정판 역시 법원에 제지를 당한 것이다. 이번엔 시행조차 못 해보고 말이다.

행정명령 효력 정지 가처분 결정을 내린 데릭 왓슨 연방판사는 "사람들에겐 여행의 자유를 누리고, 가족과의 이별을 피하고,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반발했다. "사법권이 과도하다."고, "형편없는 법원의 결정에 맞서 싸울 것이다"라고, "필요하다면 연방대법원까지 가서 싸울 것이고 이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의회에서도, 또 학계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반 이민 정책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세 중에 공약으로 내걸었던 '무슬림 입국 금지'라는 정치적 수사의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그래도 트럼프 대통령은 반 이민 정책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처음 만들어 제출한 2018 회계연도 예산안에는 멕시코 장벽 건설 비용이 41억 달러, 우리 돈 4조 6천억 원이 포함돼 있다. 장벽 건설 첫해 예산으로 26억 달러, 2조 9천억 원으로 추가로 요청할 계획이라고 백악관은 밝혔다.

민주당은 장벽 건설 예산이 편성된다면 연방정부 폐쇄도 불사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의회에서, 법원에서, 또 불법 체류자 단속 현장에서, 반 이민 정책에 따르는 혼란과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다시 뮤지컬 얘기를 해보자.

"미국이 불명예스럽고 분열적인 행동으로 악명이 높아진 때에, 이 뮤지컬은 당신에게 필요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해 줄지도 모릅니다." 뮤지컬 'Come From Away'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평이다.

"캐나다인들의 선한 의지로 감싸인 이 열광적인 뮤지컬은, 미국인들의 영혼을 괴롭히는 무언가에 대한 해독제다" 워싱턴 포스트의 평이다.


뮤지컬 'Come From Away' 공연이 끝났을 때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쳤다.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반카도 커튼콜을 받는 배우들을 향해 '행복한' 표정으로 기립박수를 쳤다. 기립박수를 치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트뤼도 총리가 이반카와 함께 아버지 트럼프 대통령도 이 뮤지컬에 초대했으면 어땠을까?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그 초대에 응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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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캐나다 총리가 트럼프 딸과 뮤지컬 본 이유?
    • 입력 2017-03-17 09:27:21
    • 수정2017-03-17 09:57:43
    특파원 리포트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건물에 여객기가 충돌한다. 전대미문의 테러에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충격에 휩싸인다.

추가 테러를 우려한 미국은 하늘 문을 닫는다. 미국을 향하던 다른 여객기들은 목적지를 잃는다. 이런 여객기들 가운데 38대가 캐나다 동부 해안의 섬에 있는 갠더 공항으로 향한다.

갠더는 인구 만 명의 작은 도시다. 이런 곳에 하루 새 여객기 38대가 세계 곳곳에서 온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 7천 명을 내려놓는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9.11 당시 캐나다 갠더공항, 미국에 가지 못한 여객기들이 줄지어 서있다.
갠더에 내린 여객기의 승객들이 체육관에 수용돼 있다.
갠더 주민들은 빈방을 청소하고, 주방에 가서 요리하고, 나눌 수 있는 옷가지와 침구류를 챙겼다. 목적지를 잃고 비상착륙(?)한 외국인들을,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사람들을, 따뜻하게 환대했다는 얘기다. 실화다. 감동적인 실화다.

이 실화가 뮤지컬로 만들어졌다. 제목은 'Come From Away'. 캐나다 부부 작가인 이렌 샌코프와 데이비드 세인의 작품이다. 2년 전부터 캐나다와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공연됐고, 호평을 받았다. 이 뮤지컬이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다. 참 묘한 때에 말이다.


뮤지컬 Come From Away의 한 장면
현지시간 지난 15일 수요일 저녁,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뉴욕을 방문했다. 뮤지컬 'Come From Away'를 보기 위해서다. 물론 혼자가 아니고 니키 헤일리 미국 대사를 비롯해 유엔 주재 세계 각국 대사 125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그리고 트뤼도 총리는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맏딸 이방카 트럼프도 초대했다. 조금 민망한 표현이지만 "재미있다." 트뤼도 총리는 왜 이반카를 이 뮤지컬에 초대했을까?

트뤼도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
트뤼도 총리는 공연에 앞서 무대에 올라 인사말을 했다. "세계는, 서로에게 기대는 법을, 그 어두운 때에 서로 의지하는 법을 알게 됐습니다." 트뤼도 총리는 이렇게 짧게 뮤지컬을 소개했다.


트뤼도 총리는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트뤼도가 관객들에게 이렇게 환대를 받은 것은 다른 두 지도자(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가 브로드웨이 뮤지컬 '해밀턴'을 보러 왔을 때 받았던 인사와는 대비된다. 그 두 지도자는 야유를 받았다." 캐나다의 한 신문은 이렇게 썼다. 제 나라의 총리가 무척 자랑스러운 듯. 그럴만도 하다.

트뤼도 총리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도 대비된다. 트뤼도 총리가 취임한 이후 지난 1년여 사이 캐나다는 시리아 난민 4만 명을 받아들였다. 트뤼도 총리는 내각을 남녀 동수로 구성했다. 트뤼도 총리는 온갖 '차별'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던진다.

하와이 주 연방지방법원
트뤼도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와 함께 '관용과 포용'의 뮤지컬을 본 날, 바로 그날 트럼프 대통령에겐 '나쁜 소식'이 전해졌다. 하와이 주 연방지방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 수정판의 효력을 정지시킨 것이다. 행정명령 발효 불과 몇 시간을 앞두고 말이다.

다음날 메릴랜드 주 연방지방법원도 같은 결정을 내렸다. 지방법원이지만 연방법원의 결정이기 때문에 그 효력은 전국에 영향을 미친다.

이슬람 7개국 국민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 1호는 공항의 혼란과 거센 시위 속에 법원의 결정으로 효력이 정지됐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라크를 입국 금지 대상 국가에서 빼고, 기존의 비자와 영주권 소지자의 입국은 허용한 '반이민 행정명령' 2호에 서명했지만, 이 수정판 역시 법원에 제지를 당한 것이다. 이번엔 시행조차 못 해보고 말이다.

행정명령 효력 정지 가처분 결정을 내린 데릭 왓슨 연방판사는 "사람들에겐 여행의 자유를 누리고, 가족과의 이별을 피하고,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반발했다. "사법권이 과도하다."고, "형편없는 법원의 결정에 맞서 싸울 것이다"라고, "필요하다면 연방대법원까지 가서 싸울 것이고 이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의회에서도, 또 학계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반 이민 정책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세 중에 공약으로 내걸었던 '무슬림 입국 금지'라는 정치적 수사의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그래도 트럼프 대통령은 반 이민 정책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처음 만들어 제출한 2018 회계연도 예산안에는 멕시코 장벽 건설 비용이 41억 달러, 우리 돈 4조 6천억 원이 포함돼 있다. 장벽 건설 첫해 예산으로 26억 달러, 2조 9천억 원으로 추가로 요청할 계획이라고 백악관은 밝혔다.

민주당은 장벽 건설 예산이 편성된다면 연방정부 폐쇄도 불사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의회에서, 법원에서, 또 불법 체류자 단속 현장에서, 반 이민 정책에 따르는 혼란과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다시 뮤지컬 얘기를 해보자.

"미국이 불명예스럽고 분열적인 행동으로 악명이 높아진 때에, 이 뮤지컬은 당신에게 필요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해 줄지도 모릅니다." 뮤지컬 'Come From Away'에 대한 뉴욕타임스의 평이다.

"캐나다인들의 선한 의지로 감싸인 이 열광적인 뮤지컬은, 미국인들의 영혼을 괴롭히는 무언가에 대한 해독제다" 워싱턴 포스트의 평이다.


뮤지컬 'Come From Away' 공연이 끝났을 때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쳤다.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반카도 커튼콜을 받는 배우들을 향해 '행복한' 표정으로 기립박수를 쳤다. 기립박수를 치며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그리고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트뤼도 총리가 이반카와 함께 아버지 트럼프 대통령도 이 뮤지컬에 초대했으면 어땠을까?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그 초대에 응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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