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영국 노인들의 반란…“부모 떠나면 유산 없다”

입력 2017.03.19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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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도 부모가 숨지면 자식들에게 유산이 돌아간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말이다. 그런데 영국에서 자식들에게 유산을 주지 않으려는 부모가 늘고 있다. 특히 부모를 돌보지 않는 자식들에게는 한 푼의 유산도 남길 수 없다며 유서를 작성하는 부모도 있다. 자식들은 이런 부모가 야속하다며 소송을 제기해 유산 일부라도 받으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최근 영국 대법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 내려져 주목을 받고 있다.

메리타 잭슨씨의 외동딸 해더 일로트. 결혼 문제로 어머니와 결별한 지 20여년 동안 연락을 안했고 결국 어머니는 딸의 상속권을 박탈하는 유서를 남겼다.메리타 잭슨씨의 외동딸 해더 일로트. 결혼 문제로 어머니와 결별한 지 20여년 동안 연락을 안했고 결국 어머니는 딸의 상속권을 박탈하는 유서를 남겼다.

메리타 잭슨(작고 당시 70세)은 지난 2004년 숨지면서 전 재산을 동물 보호 단체에 기부했다. 50만 파운드, 우리 돈 6억 9천여만원을 3개의 동물 보호 단체에 나누어 주라는 유서에 따른 것이다. 메리타 잭슨에게는 외동딸이 있었지만, 그에게는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의지도 명확히 밝혔다. 더 나아가 만약 자신이 숨진 뒤 딸이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돈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변호사에게 명확히 전달했다.

메리타 잭슨과 외동딸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야기는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7살이었던 딸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다. 그러나 메리타 잭슨이 딸의 남자 친구를 인정하지 않자 딸은 아예 집을 나와버렸고 결혼까지 했다.

모녀 사이는 극도로 나빠졌고 몇 차례 화해의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딸은 이후 20년 이상 어머니 부양은 물론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메리타 잭슨은 결국 눈을 감기 2년 전 딸의 유산 상속권을 박탈한다는 유서를 작성하게 됐다.

해더 일로트씨는 어머니는 냉혹했고 변덕스러웠다며 자신은 사랑을 위해 어머니를 떠났다고 주장했다.해더 일로트씨는 어머니는 냉혹했고 변덕스러웠다며 자신은 사랑을 위해 어머니를 떠났다고 주장했다.

어머니의 유산을 한 푼도 받지 못한 딸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유산의 10%인 5만 파운드, 우리돈 6천9백만원을 받아 낸 것이다. 자신이 상속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합당하지 않고 특히 5명의 어린 자녀들에게 옷을 못 사줄 정도로 궁핍한 현재의 생활 등이 참작된 것이다.

그러나 액수가 적다고 생각한 그는 고등법원에 항소했고 8년 동안의 법정 다툼 끝에 이번엔 당초 금액의 3배인 16만 4천 파운드, 우리 돈 2억 2천만 원의 유산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자신은 사랑을 위해 어머니와 결별했고 어머니는 냉혹했으며 변덕스러웠다는 주장까지 더해졌다.

영국의 대법관. 우리가 눈을 감을 때 누구에게 유산을 물려 줄 것인가에 대한 선택권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판결했다.영국의 대법관. 우리가 눈을 감을 때 누구에게 유산을 물려 줄 것인가에 대한 선택권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번엔 3개의 동물 보호 단체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전 재산을 동물 보호 단체에게 기부하겠다는 고인의 명확한 의사가 실현되지 않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변했다. 결국 대법원은 당초 5만 파운드만 딸에게 상속되어야 한다고 판결하며 동물 보호 단체의 손을 들어 주었다(5만 파운드는 생활이 어려운 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로 해석된다) 우리가 죽을 때 누구에게 유산을 물려 줄 것인가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권이 존중받았다는 의미가 더해졌다.

돈 데이씨 부부(2011년). 6년 동안 연락 한 번 하지 않은 자식과 손자 손녀에게는 유산을 한 푼도 주지 않겠다는 유서를 작성했다. 사진:다니엘 존(Daniel Jones)돈 데이씨 부부(2011년). 6년 동안 연락 한 번 하지 않은 자식과 손자 손녀에게는 유산을 한 푼도 주지 않겠다는 유서를 작성했다. 사진:다니엘 존(Daniel Jones)

나이든 부모를 돌보지 않는 것은 물론 연락조차 없는 자식에게는 한 푼도 물려 줄 수 없다는 부모는 또 있다. 올 해 나이 86세인 돈 데이씨 부부는 몇 년 전 유서를 작성했다. 자신과 부인이 세상을 뜨면 백 75만 파운드, 우리돈 24억원에 해당하는 전 재산을 알츠하이머 재단에 기부하겠다는 내용이다.

치매를 앓고 있는 부인과 함께 평소 알츠하이머 재단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온 것이 이런 결정의 한 배경이다. 돈 데이씨에게도 딸과 손자 손녀들이 있지만 그들에게는 상속권을 주지 않았다. 6년 전 장녀가 숨진 이후 둘째 딸과 결별했고 그 이후 딸과 손자 손녀들은 찾아 오는 것은 물론 연락 한 번 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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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19 07:10:54
    특파원 리포트
영국에서도 부모가 숨지면 자식들에게 유산이 돌아간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말이다. 그런데 영국에서 자식들에게 유산을 주지 않으려는 부모가 늘고 있다. 특히 부모를 돌보지 않는 자식들에게는 한 푼의 유산도 남길 수 없다며 유서를 작성하는 부모도 있다. 자식들은 이런 부모가 야속하다며 소송을 제기해 유산 일부라도 받으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최근 영국 대법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 내려져 주목을 받고 있다.

메리타 잭슨씨의 외동딸 해더 일로트. 결혼 문제로 어머니와 결별한 지 20여년 동안 연락을 안했고 결국 어머니는 딸의 상속권을 박탈하는 유서를 남겼다.
메리타 잭슨(작고 당시 70세)은 지난 2004년 숨지면서 전 재산을 동물 보호 단체에 기부했다. 50만 파운드, 우리 돈 6억 9천여만원을 3개의 동물 보호 단체에 나누어 주라는 유서에 따른 것이다. 메리타 잭슨에게는 외동딸이 있었지만, 그에게는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의지도 명확히 밝혔다. 더 나아가 만약 자신이 숨진 뒤 딸이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돈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변호사에게 명확히 전달했다.

메리타 잭슨과 외동딸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야기는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7살이었던 딸에게 남자 친구가 생겼다. 그러나 메리타 잭슨이 딸의 남자 친구를 인정하지 않자 딸은 아예 집을 나와버렸고 결혼까지 했다.

모녀 사이는 극도로 나빠졌고 몇 차례 화해의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딸은 이후 20년 이상 어머니 부양은 물론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메리타 잭슨은 결국 눈을 감기 2년 전 딸의 유산 상속권을 박탈한다는 유서를 작성하게 됐다.

해더 일로트씨는 어머니는 냉혹했고 변덕스러웠다며 자신은 사랑을 위해 어머니를 떠났다고 주장했다.
어머니의 유산을 한 푼도 받지 못한 딸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유산의 10%인 5만 파운드, 우리돈 6천9백만원을 받아 낸 것이다. 자신이 상속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합당하지 않고 특히 5명의 어린 자녀들에게 옷을 못 사줄 정도로 궁핍한 현재의 생활 등이 참작된 것이다.

그러나 액수가 적다고 생각한 그는 고등법원에 항소했고 8년 동안의 법정 다툼 끝에 이번엔 당초 금액의 3배인 16만 4천 파운드, 우리 돈 2억 2천만 원의 유산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자신은 사랑을 위해 어머니와 결별했고 어머니는 냉혹했으며 변덕스러웠다는 주장까지 더해졌다.

영국의 대법관. 우리가 눈을 감을 때 누구에게 유산을 물려 줄 것인가에 대한 선택권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번엔 3개의 동물 보호 단체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전 재산을 동물 보호 단체에게 기부하겠다는 고인의 명확한 의사가 실현되지 않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변했다. 결국 대법원은 당초 5만 파운드만 딸에게 상속되어야 한다고 판결하며 동물 보호 단체의 손을 들어 주었다(5만 파운드는 생활이 어려운 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로 해석된다) 우리가 죽을 때 누구에게 유산을 물려 줄 것인가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권이 존중받았다는 의미가 더해졌다.

돈 데이씨 부부(2011년). 6년 동안 연락 한 번 하지 않은 자식과 손자 손녀에게는 유산을 한 푼도 주지 않겠다는 유서를 작성했다. 사진:다니엘 존(Daniel Jones)
나이든 부모를 돌보지 않는 것은 물론 연락조차 없는 자식에게는 한 푼도 물려 줄 수 없다는 부모는 또 있다. 올 해 나이 86세인 돈 데이씨 부부는 몇 년 전 유서를 작성했다. 자신과 부인이 세상을 뜨면 백 75만 파운드, 우리돈 24억원에 해당하는 전 재산을 알츠하이머 재단에 기부하겠다는 내용이다.

치매를 앓고 있는 부인과 함께 평소 알츠하이머 재단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온 것이 이런 결정의 한 배경이다. 돈 데이씨에게도 딸과 손자 손녀들이 있지만 그들에게는 상속권을 주지 않았다. 6년 전 장녀가 숨진 이후 둘째 딸과 결별했고 그 이후 딸과 손자 손녀들은 찾아 오는 것은 물론 연락 한 번 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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