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야!…주민대피 돕다 숨진 60대 경비원

입력 2017.03.20 (16:39) 수정 2017.03.20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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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 기사] [뉴스9] “아저씨가 우리의 영웅”…주민 구한 ‘의로운 경비원’

지난 18일 오전 9시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났다.지난 18일 오전 9시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났다.

지난 18일 오전 9시 35분,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9층 계단에서 경비원 양 모(60) 씨가 쓰러진 채 발견됐다. 곧이어 출동한 119구조대가 양 씨를 발견해 응급 처치를 한 뒤 인근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그는 숨졌다. 그가 아파트 9층 계단에 쓰러져 있었던 이유는 뭘까?

아파트 기계실에서 불…. 정전으로 승강기 안에 갇힌 주민들

양 씨가 숨지기 30분 전, 아파트 지하 1층 기계실에서 큰불이 났다. 노후한 급수관을 교체하던 작업자들이 배관을 절단하다 불티가 튀면서 난 사고였다. 현장 작업자들이 자체 진화에 나섰지만, 기계실의 복잡한 구조 탓에 불은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

양 씨는 가장 먼저 주민들을 챙겼다. 우선 양 씨는 자신이 근무하는 1~5호 세대 주민들에게 화재 사실을 알렸다. 특히 고령의 주민들에게는 직접 전화를 해서 대피를 유도했다. 아파트 주민 최 모(47, 여) 씨는 "어머니가 구순이 넘어 대처 능력이 떨어지는데 경비 아저씨가 직접 전화를 해 화를 면한 것 같다"고 말했다.

양 씨는 비록 자신의 근무지는 아니었지만 6~9호 세대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기계실에 불이 나면서 아파트 전체 동의 전력 공급이 중단됐다. 이 때문에 6~9호 세대 승강기가 8층에 멈춰 버렸는데 당시 승강기 안엔 주민들이 갇혀 있었다. 양 씨는 갇힌 이들을 구하기 위해 9층까지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지하실에서 난 불로 인해 아파트 환기구에서 검은 연기가 나오고 있다.지하실에서 난 불로 인해 아파트 환기구에서 검은 연기가 나오고 있다.

경찰 "사인은 심장마비" 동료 "불 나서 숨진 것"

하지만 양 씨는 9층 계단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이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양 씨는 끝내 숨지고 말았다. 경찰은 부검 결과 "직접적인 사인은 심장마비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애초 양 씨가 심장 질환을 앓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계단을 오르면서 심장에 무리가 간 것 같다"고 경찰 관계자는 덧붙였다.

하지만 동료 경비원 A 씨는 "불이 났기 때문에 양 씨가 숨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A 씨는 "불이 나지 않았다면 양 씨가 9층에 갈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전되면서 아파트 내 방송이 제대로 되지 않아 양 씨가 직접 주민들에게 일일이 화재 사실을 알렸다는 것이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소방서 상황일지를 보면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양 씨가 쓰러지기 불과 7분 전, 노원소방서는 '대응 1단계'를 발령했다. 대응 1단계가 발령되면 화재 발생 지점과 인접한 소방서의 119대원들이 모두 투입되고 긴급구조통제단이 가동된다. 긴급 상황에서 양 씨는 불이 번질 것을 대비해 승강기 안에 갇힌 주민들을 구하려고 계단을 오르다 숨졌을 가능성이 크다.

아파트에서 한 주민이 아이를 안고 빠져나오고 있다.아파트에서 한 주민이 아이를 안고 빠져나오고 있다.

아파트 주민들 "당신은 우리의 영웅"

양 씨의 사망 소식을 접한 주민들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일부 주민들은 양 씨가 근무하던 경비실 앞에 하얀 국화와 함께 메모지를 붙였다. 메모지 안엔 '아저씨는 우리들의 영웅입니다. 꼭 기억할게요.'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주민들은 한목소리로 양 씨를 '친절한 아저씨'였다고 치켜세웠다. 주민 이 모(37, 여) 씨는 "무거운 짐을 대신 옮겨주고 늘 밝은 표정으로 주민들을 대해주시는 분"이었다고 양 씨를 기억했다.

양 씨의 발인이 있었던 오늘(20일) 오후 장례식장 앞에서 양 씨의 동생을 만났다. 그는 아직 형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취재진에게 "많은 분이 형님의 죽음을 슬퍼했다. 어제오늘 다녀간 조문객만 서른 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유족들에게 조의금으로 150만 원을 전달했다.

유족들에 따르면 양 씨는 중소기업에서 일하다가 은퇴하고 1년 전 아파트 경비 일을 시작했다. 양 씨는 평소 심장 질환을 앓고 있었지만 생활하는 데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평소 경비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던 양 씨는 긴급 상황에서도 끝까지 본분을 다했다. 아파트 주민들에게 그는 오랫동안 영웅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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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이야!…주민대피 돕다 숨진 60대 경비원
    • 입력 2017-03-20 16:39:34
    • 수정2017-03-20 21:43:15
    사회
[연관 기사] [뉴스9] “아저씨가 우리의 영웅”…주민 구한 ‘의로운 경비원’ 지난 18일 오전 9시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났다. 지난 18일 오전 9시 35분,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9층 계단에서 경비원 양 모(60) 씨가 쓰러진 채 발견됐다. 곧이어 출동한 119구조대가 양 씨를 발견해 응급 처치를 한 뒤 인근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그는 숨졌다. 그가 아파트 9층 계단에 쓰러져 있었던 이유는 뭘까? 아파트 기계실에서 불…. 정전으로 승강기 안에 갇힌 주민들 양 씨가 숨지기 30분 전, 아파트 지하 1층 기계실에서 큰불이 났다. 노후한 급수관을 교체하던 작업자들이 배관을 절단하다 불티가 튀면서 난 사고였다. 현장 작업자들이 자체 진화에 나섰지만, 기계실의 복잡한 구조 탓에 불은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 양 씨는 가장 먼저 주민들을 챙겼다. 우선 양 씨는 자신이 근무하는 1~5호 세대 주민들에게 화재 사실을 알렸다. 특히 고령의 주민들에게는 직접 전화를 해서 대피를 유도했다. 아파트 주민 최 모(47, 여) 씨는 "어머니가 구순이 넘어 대처 능력이 떨어지는데 경비 아저씨가 직접 전화를 해 화를 면한 것 같다"고 말했다. 양 씨는 비록 자신의 근무지는 아니었지만 6~9호 세대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기계실에 불이 나면서 아파트 전체 동의 전력 공급이 중단됐다. 이 때문에 6~9호 세대 승강기가 8층에 멈춰 버렸는데 당시 승강기 안엔 주민들이 갇혀 있었다. 양 씨는 갇힌 이들을 구하기 위해 9층까지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지하실에서 난 불로 인해 아파트 환기구에서 검은 연기가 나오고 있다. 경찰 "사인은 심장마비" 동료 "불 나서 숨진 것" 하지만 양 씨는 9층 계단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이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양 씨는 끝내 숨지고 말았다. 경찰은 부검 결과 "직접적인 사인은 심장마비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애초 양 씨가 심장 질환을 앓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계단을 오르면서 심장에 무리가 간 것 같다"고 경찰 관계자는 덧붙였다. 하지만 동료 경비원 A 씨는 "불이 났기 때문에 양 씨가 숨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A 씨는 "불이 나지 않았다면 양 씨가 9층에 갈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전되면서 아파트 내 방송이 제대로 되지 않아 양 씨가 직접 주민들에게 일일이 화재 사실을 알렸다는 것이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소방서 상황일지를 보면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양 씨가 쓰러지기 불과 7분 전, 노원소방서는 '대응 1단계'를 발령했다. 대응 1단계가 발령되면 화재 발생 지점과 인접한 소방서의 119대원들이 모두 투입되고 긴급구조통제단이 가동된다. 긴급 상황에서 양 씨는 불이 번질 것을 대비해 승강기 안에 갇힌 주민들을 구하려고 계단을 오르다 숨졌을 가능성이 크다. 아파트에서 한 주민이 아이를 안고 빠져나오고 있다. 아파트 주민들 "당신은 우리의 영웅" 양 씨의 사망 소식을 접한 주민들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일부 주민들은 양 씨가 근무하던 경비실 앞에 하얀 국화와 함께 메모지를 붙였다. 메모지 안엔 '아저씨는 우리들의 영웅입니다. 꼭 기억할게요.'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주민들은 한목소리로 양 씨를 '친절한 아저씨'였다고 치켜세웠다. 주민 이 모(37, 여) 씨는 "무거운 짐을 대신 옮겨주고 늘 밝은 표정으로 주민들을 대해주시는 분"이었다고 양 씨를 기억했다. 양 씨의 발인이 있었던 오늘(20일) 오후 장례식장 앞에서 양 씨의 동생을 만났다. 그는 아직 형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취재진에게 "많은 분이 형님의 죽음을 슬퍼했다. 어제오늘 다녀간 조문객만 서른 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유족들에게 조의금으로 150만 원을 전달했다. 유족들에 따르면 양 씨는 중소기업에서 일하다가 은퇴하고 1년 전 아파트 경비 일을 시작했다. 양 씨는 평소 심장 질환을 앓고 있었지만 생활하는 데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평소 경비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던 양 씨는 긴급 상황에서도 끝까지 본분을 다했다. 아파트 주민들에게 그는 오랫동안 영웅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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