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플러스] 선거의 계절…권력 철새, ‘폴리페서’

입력 2017.03.2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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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대통령 선거를 한 달 여 앞두고 각 후보 진영에서는 ‘세(勢) 불리기’에 한창이다.

이 과정에서 유독 눈에 띄는 직업군이 있다. 바로 교수 집단이다. 최근 문재인 캠프에는 천 명이 넘는 교수와 전문가들이 들어왔다고 한다. 다른 유력 후보 캠프에도 수백 명의 교수들이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세간의 눈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서 일부 정치참여 교수들의 폐해를 봐 왔던 탓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등에 연루돼 구속된 인사들 가운데는 대학교수 출신들이 유독 많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이 모두 교수 출신이다.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을 비롯해 5명의 이대 교수들도 정유라의 특혜 입학 건으로 무더기 구속됐다.

이 가운데 최순실 국정 농단 구도의 중심에 서 있던 안종범 전 수석을 살펴 보자.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안 전 수석은 1998년 모교인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로 자리를 잡는다. 그가 정치권에 발을 내디딘 것은 2002년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민생·복지 특보를 맡으면서 부터이다. 하지만 이 후보가 낙선하자 그는 곧바로 대학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2006년, 그는 다시 정치판에 기웃거린다.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앞두고 박근혜 캠프 경제참모 모임인 ‘경제자문회의’에 참여한 것이다. 이는 최경환 의원 등 미국 위스콘신대 동문들의 추천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에는 박 전 대통령을 위한 이른바 ‘5인 공부 모임’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후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의원이 된다. 2012년 대선 정국에는 박근혜 후보 캠프의 정책·메시지본부장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을 맡는다.

청와대 입성은 2014년 6월로 처음에는 경제수석비서관에 임명됐고, 2016년 5월에는 정책조정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화려한 이력이다.

안 전 수석은 요직을 거치는 동안에도 성균관대 교수직은 계속 가지고 있었다. 사표는 검찰 소환조사를 앞둔 지난해 10월 말에야 제출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교수직을 유지한 채 관직을 맡고 있거나 정치판에 기웃거리는 사람을 이른바 ‘폴리페서(polifessor)’라 부른다. 이들은 주로 대선 캠프 참여 등을 통해 청와대나 내각에 진출한다.

이번 대선 정국에서도 각 캠프에는 교수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자신들의 전문적인 지식을 정책 생산 과정에 반영할 기회를 갖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과연 양심과 소신에 따라 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캠프를 발판 삼아 정무직이나 산하기관 자리 혹은 공천이라는 떡고물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대우조선 거액 대출’과 관련해 검찰에 출두한 홍기택 전 산은회장‘대우조선 거액 대출’과 관련해 검찰에 출두한 홍기택 전 산은회장

폴리페서의 실패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홍기택 씨이다.

그는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4월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으로 취임한다. 2016년 2월에는 국제기구인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의 부총재로 자리를 옮긴다. 하지만 넉 달 만에 휴직계를 내고 돌연 잠적한다. 산은의 대우조선해양 부당 지원과 관련해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이다.

홍 씨가 AIIB 부총재직을 갑자기 그만두면서 국가적으로 큰 손실을 봤다. 우리나라는 AIIB에 37억 달러를 내는 등 외교적 노력 끝에 부총재 한 자리를 얻었다. 하지만 그가 갑자기 휴직계를 내면서 물의를 일으키자 AIIB는 한국 몫 부총재 자리를 박탈해버렸다.

평범한 대학 교수였던 그가 국책은행장에다 국제기구 부총재까지 오를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시작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맺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다. 그 뒤 홍 씨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분과 인수위원으로 참여하게 되는 데 새 정부 출범 뒤 곧바로 산업은행 회장 자리를 꿰차는 등 승승장구한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능력 여부와 상관없이 단지 정치권과의 인연으로 과분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학자들의 정치권 줄대기는 계속 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자리를 차지한 교수들은 학자로서의 소신과 양심은 뒤로 한 채 권력만을 추종한다거나 오로지 개인의 출세만을 꾀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대학과 정치판을 오가면서 사적 이익만을 취하는 폴리페서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지난 2013년 국회법 개정으로 교수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교수직을 사임하도록 했다. 이제는 더 나아가 교수가 정무직 공무원 등으로 임명될 경우에도 그 직을 내려놓도록 해야 한다.

장관이나 차관, 청와대 비서관 등을 하면서도 계속 교수직을 붙잡고 있는 것은 나만 좋은 것을 다 갖겠다는 극단적 이기주의의 다름이 아니다. 또한 그만 둬도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관직이나 교수직 어느 쪽에도 목을 매지 않는다.

정치에 참여했으면 과감히 교수직을 내려놓자. 그리고 당당히 정치를 하자. 그 뒤 대학에 복귀할 생각이 있다면 엄격한 심사 과정을 밟고 강단에 서자. 그래야 국민 보기에도, 동료 교수와 제자 보기에도 떳떳할 것이 아닌가.

그보다 학자적 양식을 지켜낼 자신이 없으면 아예 정치판에 얼쩡거리지 말자. 정권의 ‘영혼 없는 심부름꾼’ 역할 보다 연구와 후학 양성이 훨씬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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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2 11: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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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대통령 선거를 한 달 여 앞두고 각 후보 진영에서는 ‘세(勢) 불리기’에 한창이다.

이 과정에서 유독 눈에 띄는 직업군이 있다. 바로 교수 집단이다. 최근 문재인 캠프에는 천 명이 넘는 교수와 전문가들이 들어왔다고 한다. 다른 유력 후보 캠프에도 수백 명의 교수들이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세간의 눈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서 일부 정치참여 교수들의 폐해를 봐 왔던 탓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등에 연루돼 구속된 인사들 가운데는 대학교수 출신들이 유독 많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이 모두 교수 출신이다.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을 비롯해 5명의 이대 교수들도 정유라의 특혜 입학 건으로 무더기 구속됐다.

이 가운데 최순실 국정 농단 구도의 중심에 서 있던 안종범 전 수석을 살펴 보자.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안 전 수석은 1998년 모교인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로 자리를 잡는다. 그가 정치권에 발을 내디딘 것은 2002년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민생·복지 특보를 맡으면서 부터이다. 하지만 이 후보가 낙선하자 그는 곧바로 대학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2006년, 그는 다시 정치판에 기웃거린다.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앞두고 박근혜 캠프 경제참모 모임인 ‘경제자문회의’에 참여한 것이다. 이는 최경환 의원 등 미국 위스콘신대 동문들의 추천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에는 박 전 대통령을 위한 이른바 ‘5인 공부 모임’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후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의원이 된다. 2012년 대선 정국에는 박근혜 후보 캠프의 정책·메시지본부장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을 맡는다.

청와대 입성은 2014년 6월로 처음에는 경제수석비서관에 임명됐고, 2016년 5월에는 정책조정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화려한 이력이다.

안 전 수석은 요직을 거치는 동안에도 성균관대 교수직은 계속 가지고 있었다. 사표는 검찰 소환조사를 앞둔 지난해 10월 말에야 제출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교수직을 유지한 채 관직을 맡고 있거나 정치판에 기웃거리는 사람을 이른바 ‘폴리페서(polifessor)’라 부른다. 이들은 주로 대선 캠프 참여 등을 통해 청와대나 내각에 진출한다.

이번 대선 정국에서도 각 캠프에는 교수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자신들의 전문적인 지식을 정책 생산 과정에 반영할 기회를 갖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과연 양심과 소신에 따라 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캠프를 발판 삼아 정무직이나 산하기관 자리 혹은 공천이라는 떡고물을 얻고자 하는 것일까?

‘대우조선 거액 대출’과 관련해 검찰에 출두한 홍기택 전 산은회장
폴리페서의 실패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홍기택 씨이다.

그는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4월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으로 취임한다. 2016년 2월에는 국제기구인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의 부총재로 자리를 옮긴다. 하지만 넉 달 만에 휴직계를 내고 돌연 잠적한다. 산은의 대우조선해양 부당 지원과 관련해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이다.

홍 씨가 AIIB 부총재직을 갑자기 그만두면서 국가적으로 큰 손실을 봤다. 우리나라는 AIIB에 37억 달러를 내는 등 외교적 노력 끝에 부총재 한 자리를 얻었다. 하지만 그가 갑자기 휴직계를 내면서 물의를 일으키자 AIIB는 한국 몫 부총재 자리를 박탈해버렸다.

평범한 대학 교수였던 그가 국책은행장에다 국제기구 부총재까지 오를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시작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맺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다. 그 뒤 홍 씨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분과 인수위원으로 참여하게 되는 데 새 정부 출범 뒤 곧바로 산업은행 회장 자리를 꿰차는 등 승승장구한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능력 여부와 상관없이 단지 정치권과의 인연으로 과분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학자들의 정치권 줄대기는 계속 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자리를 차지한 교수들은 학자로서의 소신과 양심은 뒤로 한 채 권력만을 추종한다거나 오로지 개인의 출세만을 꾀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대학과 정치판을 오가면서 사적 이익만을 취하는 폴리페서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지난 2013년 국회법 개정으로 교수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교수직을 사임하도록 했다. 이제는 더 나아가 교수가 정무직 공무원 등으로 임명될 경우에도 그 직을 내려놓도록 해야 한다.

장관이나 차관, 청와대 비서관 등을 하면서도 계속 교수직을 붙잡고 있는 것은 나만 좋은 것을 다 갖겠다는 극단적 이기주의의 다름이 아니다. 또한 그만 둬도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관직이나 교수직 어느 쪽에도 목을 매지 않는다.

정치에 참여했으면 과감히 교수직을 내려놓자. 그리고 당당히 정치를 하자. 그 뒤 대학에 복귀할 생각이 있다면 엄격한 심사 과정을 밟고 강단에 서자. 그래야 국민 보기에도, 동료 교수와 제자 보기에도 떳떳할 것이 아닌가.

그보다 학자적 양식을 지켜낼 자신이 없으면 아예 정치판에 얼쩡거리지 말자. 정권의 ‘영혼 없는 심부름꾼’ 역할 보다 연구와 후학 양성이 훨씬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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