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의 섬’ 선갑도에 채석장이라니…

입력 2017.03.22 (12:00) 수정 2017.03.2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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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갑(仙甲)도', 선녀가 갑옷을 두른 형상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위 항공사진만 봐선 선뜻 이해되질 않습니다. 선녀나 갑옷 형상이 어디에 있는 걸까요? 배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아보면 그 답이 나옵니다.





섬 둘레가 대부분 바위 절벽입니다. 특이하게 절벽마다 4각, 5각 등의 돌기둥이 선명합니다. 이렇게 늘어선 돌기둥들이 마치 갑옷을 닮았다고 해서 선갑도라는 이름이 붙은 거지요.

돌기둥 바위 위에 자라고 있는 나무돌기둥 바위 위에 자라고 있는 나무


돌기둥은 섬 바깥 해안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섬 안쪽 어디든 바위가 노출된 곳에서는 돌기둥을 볼 수 있습니다. 섬 정상 부위의 돌출된 암벽도 돌기둥 형상이 선명합니다. 섬 안쪽 임도를 따라가다 보면 도로 건설 과정에서 노출된 돌기둥도 만납니다. 섬 전체가 거대한 돌기둥 덩어리인 셈입니다. 이 돌기둥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1억 년 전, 선갑도 일대는 화산활동이 활발했습니다. 화산에서 뿜어져 나온 화산재, 화산쇄설물이 두껍게 쌓였습니다. 뜨겁던 화산재가 서서히 식으면서 4~6각형 모양으로 갈라지고 굳습니다. 가뭄 때 저수지 바닥이 갈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암석이 수많은 세월 침식과 풍화를 거쳐 지상에 노출됩니다. 이렇게 탄생한 돌기둥을 '주상절리'라고 부릅니다. 주상절리는 독특한 모양 때문에 지질관광자원으로 가치가 큽니다. 대표적인 곳이 제주도와 무등산, 한탄-임진강, 경주 양산 등입니다.

무등산 서석대 주상절리무등산 서석대 주상절리

제주 서귀포 주상절리제주 서귀포 주상절리

경주 양산 주상절리경주 양산 주상절리

대부분 주상절리는 용암이 식은 현무암입니다. 제주도와 한탄-임진강 주상절리도 현무암이지요. 하지만 선갑도는 화산재가 굳은 응회암입니다. 현무암은 검은빛을 띠지만 응회암은 회색에 가까운 잿빛입니다.

응회암으로 회색빛을 띤 선갑도응회암으로 회색빛을 띤 선갑도

응회암 봉우리가 솟은 주왕산 국립공원응회암 봉우리가 솟은 주왕산 국립공원

주왕산 국립공원 역시 응회암으로 이뤄졌습니다. 멀리서 선갑도를 보면 마치 주왕산 산봉우리를 보는 듯합니다. 더구나 섬 정상이 해발 352m로 덕적군도 섬 중에서 가장 높습니다. 이 때문에 '바다의 주왕산'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선갑산. 해발 352m.선갑산. 해발 352m.

국내에서 응회암으로 이뤄진 주상절리는 선갑도와 무등산이 유일합니다. 또 수도권에서 주상절리를 볼 수 있는 곳은 선갑도와 한탄-임진강 유역 두 곳뿐입니다. 지질학적 가치뿐만 아니라 관광자원으로서 잠재력도 큰 겁니다.

위화석(僞化石)위화석(僞化石)

절리가 많은 덕분에 다양한 지질현상도 볼 수 있습니다. 위 사진은 암벽에 마치 그림을 그린 듯, 식물 문양이 보입니다. 언뜻 화석처럼 보이지만 아닙니다. 절리면을 따라 스며들어간 물 속의 이산화망간이 굳으면서 만들어진 문양입니다. 자연이 만든 가짜 화석이라 해서 위화석(僞化石)이라고 부릅니다.

절리면에 석회 성분을 품은 빗물이 스며들어 형성된 문양절리면에 석회 성분을 품은 빗물이 스며들어 형성된 문양

타포니. 바닷물의 소금 성분이 굳으면서 바위 입자를 밀어내 구멍이 형성됐다.타포니. 바닷물의 소금 성분이 굳으면서 바위 입자를 밀어내 구멍이 형성됐다.

선갑도 만선갑도 만

선갑도의 독특함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섬 서쪽으로 커다랗게 동그란 만이 있습니다. 선갑산을 쌓던 망구할매가 한쪽 산이 무너지자 화가 나서 주먹으로 내리쳐 가운데가 파였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만을 둘러싼 산들의 형상을 보면 섬 전체가 마치 화산 분화구처럼 보입니다. 이 때문에 선갑도가 분화구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일부는 운석이 떨어져 파인 지형이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아직 정확한 지질학적 연구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독특한 지형과 경관 때문에 선갑도는 예부터 명성이 높았습니다. 신선이 접하는 곳이라 해서 선접(仙接)도, 선녀가 놀다간 섬이라 해서 선협(仙俠)도라는 별칭도 있습니다. 생태경관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인천시가 '준보전도서'에 해당한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관이 최근 위기에 놓였습니다.

선갑도 관리사옥선갑도 관리사옥

선갑도는 과거 국내 무인도 중에서 가장 큰 섬이었습니다. 지금은 한 명, 사람이 삽니다. 서쪽 만 가운데에 집이 있습니다. 2006년 선갑도를 매입한 지금의 소유주가 사람을 거주시킨 겁니다. 배도 안 다니는 외딴 섬에 왜 사람을 굳이 거주시키는 걸까요? 무인도는 특정 도서로 지정돼 개발이 어려워지지만, 유인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선갑도 만을 가로지르는 제방선갑도 만을 가로지르는 제방

섬 소유주는 물고기 양식을 하겠다며 만을 가로막는 제방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양식은 실패했습니다. 섬 소유주는 이제 선도공영이라는 회사를 통해 다른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바로 채석장입니다.


만 안쪽으로 해발 10m에서 120m까지 동그랗게 산을 파낸다는 것이 회사 측의 계획입니다. 36만4천㎡, 대략 12만 평가량을 14년 동안 개발하는 겁니다. 회사 측은 지난 2016년 12월 채석장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을 산림청에 제출했습니다.

채석장 개발을 위해 시추한 돌채석장 개발을 위해 시추한 돌

선갑도는 섬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응회암 바위 덩어리입니다. 임도 곳곳에 회사 측이 파낸 시추석이 있습니다. 1m짜리 돌기둥이 모두 30개, 시추한 지점에서 지하 30m까지 모두 응회암 암석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풍도 채석장풍도 채석장

채석장이 될 경우 섬의 경관은 훼손될 수밖에 없습니다. 계단식으로 암벽이 깎여 나가 본래의 자연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맙니다. 주변 섬의 채석장 경관을 보면 선갑도가 어떻게 변할지 짐작이 갑니다. 선갑도 만에서 바라보는 독특한 경관이 위 사진과 같은 계단식 암벽으로 둘러싸이는 겁니다. 환경단체는 선갑도의 자연유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며 채석단지 개발을 반대합니다.


선갑도의 유산은 독특한 지형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사람의 간섭이 적었던 탓에 각종 보호대상 동식물도 많습니다. 매와 구렁이는 선갑도에 서식하는 대표적인 멸종위기종입니다. 특히 구렁이의 경우 과거 땅꾼들이 대규모로 잡아갈 정도로 많았습니다. 매와 구렁이의 정확한 서식 실태는 아직 연구된 적이 없습니다.


선갑도 만을 따라 얕은 물 속에서 대규모로 서식하는 수생식물이 있습니다. 언뜻 미역이나 김 같은 해조류로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닙니다. 엄연히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광합성을 하면서 열매를 맺는 식물입니다. 바로 '거머리말'입니다.

거머리말. 해양수산부 보호대상해양생물.거머리말. 해양수산부 보호대상해양생물.

거머리말 군락은 어류의 산란장이자 치어들의 서식지입니다. 물고기들이 거머리말에 붙여서알을 낳고 치어들은 수초 속에서 천적을 피합니다. 또 오염물질을 흡수하는 수질 정화기능도 뛰어납니다. 해양생태계에서 육지의 숲과 같은 역할을 하는 '바다의 숲'인 겁니다. 하지만 해안 개발과 수질 오염, 온난화 등으로 갈수록 서식지가 줄어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거머리말은 해양수산부가 지정한 '보호대상해양생물'입니다.

새우말. 해양수산부 보호대상해양생물.새우말. 해양수산부 보호대상해양생물.

바닷가 물웅덩이 속에도 녹색의 잎을 가진 식물이 보입니다. 거머리말보다 좁은 잎맥을 가진 '새우말'입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개체 수가 현저하게 감소하고 있어서 역시 해양수산부가 학술적, 경제적 가치가 높다고 지정한 '보호대상해양생물'입니다.

말미잘말미잘

굴로 덮인 갯바위굴로 덮인 갯바위

채석장 개발이 시작된다면 돌가루와 오염물질이 바다에 유입돼 새우말과 거머리말 군락지는 위기에 놓일 수 있습니다. 선갑도는 사람의 접근이 거의 없었던 덕분에 말미잘을 비롯한 각종 해양생물이 풍성합니다. 바닷가 바위는 굴과 홍합 등이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합니다. 이런 생태계 전체가 흔들리게 됩니다.

보라색 노루귀보라색 노루귀

대극대극

흰색 노루귀흰색 노루귀

선갑도는 육상 식생도 다양합니다. 해발고도가 높은 데다가 능선과 계곡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가침박달, 쇠뿔석이, 멱쇠채, 두루미천남성 등 산림청이 정한 보호식물도 많습니다. 취재진이 방문했을 때는 섬 곳곳에서 야생화 군락지를 만났습니다. 1㏊(3천평)가량 넓은 공간에 노루귀와 대극이 빼곡한 곳도 있습니다. 야생화로 유명한 풍도에 못지 않은 천연의 꽃밭입니다. 하지만 채석장이 개발되면 서식지 자체가 사라집니다. 선갑도 식생은 채석장말고도 또다른 위험에 놓여 있습니다.

선갑도 관리사옥 염소선갑도 관리사옥 염소

3년 전 회사 측은 선갑도에 20마리가량의 염소를 들여왔습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울타리 안에 있지만, 나머지는 방목된 상태입니다. 염소는 섬의 생태계를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아무런 천적도 없는 상태에서 개체 수가 급증하면 초본류뿐만 아니라 나무껍질까지 먹어치워 섬의 사막화가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수풀 속에 숨은 염소수풀 속에 숨은 염소

실제로 섬 곳곳에 염소가 흩어져 있습니다. 환경단체는 회사 측이 개발사업을 위해 염소를 의도적으로 방목한 것은 아닌지 우려합니다. 식생의 보전가치를 떨어뜨리려는 의도가 의심된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묶어둔 염소가 달아났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선갑도 전경. (출처: 옹진군)선갑도 전경. (출처: 옹진군)

선도공영측의 개발 계획은 채석장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채석장으로 평탄해진 지역에 앞으로 관광시설을 짓겠다고 합니다. 현재는 섬의 경사도가 급해 시설 건축 허가가 나질 않습니다. 하지만 채석으로 산을 파내 평지가 만들어지면 관광시설 부지로 활용한다는 겁니다. 회사 측은 섬과 어장 매입, 제방 건설 등에 140억 원을 투입했다며 수익사업을 실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사유지에 대한 정당한 권리 행사라는 겁니다.


서해 섬 가운데 개발을 놓고 논란에 쌓인 곳은 선갑도만이 아닙니다. 선갑도에서 북쪽으로 10km가량 떨어진 굴업도 역시 비슷한 갈등을 겪었습니다. 대기업이 섬을 매입한 뒤 산을 깎아내고 골프장을 지으려다 반대에 부딪혀 결국 개발이 중단됐습니다. 소유자라도 그 땅에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과 자연의 유산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선의 섬'이라는 선갑도, 당장 눈앞의 이익을 위해 수억 년 이어 내려온 아름다움을 영원히 사라지게 해도 좋은 걸까요? 우리는 이 땅에 잠시 머물 뿐이지만 우리가 남긴 흔적은 자칫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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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선의 섬’ 선갑도에 채석장이라니…
    • 입력 2017-03-22 12:00:36
    • 수정2017-03-22 14:01:48
    취재K
'선갑(仙甲)도', 선녀가 갑옷을 두른 형상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위 항공사진만 봐선 선뜻 이해되질 않습니다. 선녀나 갑옷 형상이 어디에 있는 걸까요? 배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아보면 그 답이 나옵니다.





섬 둘레가 대부분 바위 절벽입니다. 특이하게 절벽마다 4각, 5각 등의 돌기둥이 선명합니다. 이렇게 늘어선 돌기둥들이 마치 갑옷을 닮았다고 해서 선갑도라는 이름이 붙은 거지요.

돌기둥 바위 위에 자라고 있는 나무

돌기둥은 섬 바깥 해안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섬 안쪽 어디든 바위가 노출된 곳에서는 돌기둥을 볼 수 있습니다. 섬 정상 부위의 돌출된 암벽도 돌기둥 형상이 선명합니다. 섬 안쪽 임도를 따라가다 보면 도로 건설 과정에서 노출된 돌기둥도 만납니다. 섬 전체가 거대한 돌기둥 덩어리인 셈입니다. 이 돌기둥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1억 년 전, 선갑도 일대는 화산활동이 활발했습니다. 화산에서 뿜어져 나온 화산재, 화산쇄설물이 두껍게 쌓였습니다. 뜨겁던 화산재가 서서히 식으면서 4~6각형 모양으로 갈라지고 굳습니다. 가뭄 때 저수지 바닥이 갈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암석이 수많은 세월 침식과 풍화를 거쳐 지상에 노출됩니다. 이렇게 탄생한 돌기둥을 '주상절리'라고 부릅니다. 주상절리는 독특한 모양 때문에 지질관광자원으로 가치가 큽니다. 대표적인 곳이 제주도와 무등산, 한탄-임진강, 경주 양산 등입니다.

무등산 서석대 주상절리
제주 서귀포 주상절리
경주 양산 주상절리
대부분 주상절리는 용암이 식은 현무암입니다. 제주도와 한탄-임진강 주상절리도 현무암이지요. 하지만 선갑도는 화산재가 굳은 응회암입니다. 현무암은 검은빛을 띠지만 응회암은 회색에 가까운 잿빛입니다.

응회암으로 회색빛을 띤 선갑도
응회암 봉우리가 솟은 주왕산 국립공원
주왕산 국립공원 역시 응회암으로 이뤄졌습니다. 멀리서 선갑도를 보면 마치 주왕산 산봉우리를 보는 듯합니다. 더구나 섬 정상이 해발 352m로 덕적군도 섬 중에서 가장 높습니다. 이 때문에 '바다의 주왕산'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선갑산. 해발 352m.
국내에서 응회암으로 이뤄진 주상절리는 선갑도와 무등산이 유일합니다. 또 수도권에서 주상절리를 볼 수 있는 곳은 선갑도와 한탄-임진강 유역 두 곳뿐입니다. 지질학적 가치뿐만 아니라 관광자원으로서 잠재력도 큰 겁니다.

위화석(僞化石)
절리가 많은 덕분에 다양한 지질현상도 볼 수 있습니다. 위 사진은 암벽에 마치 그림을 그린 듯, 식물 문양이 보입니다. 언뜻 화석처럼 보이지만 아닙니다. 절리면을 따라 스며들어간 물 속의 이산화망간이 굳으면서 만들어진 문양입니다. 자연이 만든 가짜 화석이라 해서 위화석(僞化石)이라고 부릅니다.

절리면에 석회 성분을 품은 빗물이 스며들어 형성된 문양
타포니. 바닷물의 소금 성분이 굳으면서 바위 입자를 밀어내 구멍이 형성됐다.
선갑도 만
선갑도의 독특함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섬 서쪽으로 커다랗게 동그란 만이 있습니다. 선갑산을 쌓던 망구할매가 한쪽 산이 무너지자 화가 나서 주먹으로 내리쳐 가운데가 파였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만을 둘러싼 산들의 형상을 보면 섬 전체가 마치 화산 분화구처럼 보입니다. 이 때문에 선갑도가 분화구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일부는 운석이 떨어져 파인 지형이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아직 정확한 지질학적 연구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독특한 지형과 경관 때문에 선갑도는 예부터 명성이 높았습니다. 신선이 접하는 곳이라 해서 선접(仙接)도, 선녀가 놀다간 섬이라 해서 선협(仙俠)도라는 별칭도 있습니다. 생태경관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인천시가 '준보전도서'에 해당한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관이 최근 위기에 놓였습니다.

선갑도 관리사옥
선갑도는 과거 국내 무인도 중에서 가장 큰 섬이었습니다. 지금은 한 명, 사람이 삽니다. 서쪽 만 가운데에 집이 있습니다. 2006년 선갑도를 매입한 지금의 소유주가 사람을 거주시킨 겁니다. 배도 안 다니는 외딴 섬에 왜 사람을 굳이 거주시키는 걸까요? 무인도는 특정 도서로 지정돼 개발이 어려워지지만, 유인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선갑도 만을 가로지르는 제방
섬 소유주는 물고기 양식을 하겠다며 만을 가로막는 제방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양식은 실패했습니다. 섬 소유주는 이제 선도공영이라는 회사를 통해 다른 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바로 채석장입니다.


만 안쪽으로 해발 10m에서 120m까지 동그랗게 산을 파낸다는 것이 회사 측의 계획입니다. 36만4천㎡, 대략 12만 평가량을 14년 동안 개발하는 겁니다. 회사 측은 지난 2016년 12월 채석장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을 산림청에 제출했습니다.

채석장 개발을 위해 시추한 돌
선갑도는 섬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응회암 바위 덩어리입니다. 임도 곳곳에 회사 측이 파낸 시추석이 있습니다. 1m짜리 돌기둥이 모두 30개, 시추한 지점에서 지하 30m까지 모두 응회암 암석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풍도 채석장
채석장이 될 경우 섬의 경관은 훼손될 수밖에 없습니다. 계단식으로 암벽이 깎여 나가 본래의 자연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맙니다. 주변 섬의 채석장 경관을 보면 선갑도가 어떻게 변할지 짐작이 갑니다. 선갑도 만에서 바라보는 독특한 경관이 위 사진과 같은 계단식 암벽으로 둘러싸이는 겁니다. 환경단체는 선갑도의 자연유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한다며 채석단지 개발을 반대합니다.


선갑도의 유산은 독특한 지형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사람의 간섭이 적었던 탓에 각종 보호대상 동식물도 많습니다. 매와 구렁이는 선갑도에 서식하는 대표적인 멸종위기종입니다. 특히 구렁이의 경우 과거 땅꾼들이 대규모로 잡아갈 정도로 많았습니다. 매와 구렁이의 정확한 서식 실태는 아직 연구된 적이 없습니다.


선갑도 만을 따라 얕은 물 속에서 대규모로 서식하는 수생식물이 있습니다. 언뜻 미역이나 김 같은 해조류로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닙니다. 엄연히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광합성을 하면서 열매를 맺는 식물입니다. 바로 '거머리말'입니다.

거머리말. 해양수산부 보호대상해양생물.
거머리말 군락은 어류의 산란장이자 치어들의 서식지입니다. 물고기들이 거머리말에 붙여서알을 낳고 치어들은 수초 속에서 천적을 피합니다. 또 오염물질을 흡수하는 수질 정화기능도 뛰어납니다. 해양생태계에서 육지의 숲과 같은 역할을 하는 '바다의 숲'인 겁니다. 하지만 해안 개발과 수질 오염, 온난화 등으로 갈수록 서식지가 줄어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거머리말은 해양수산부가 지정한 '보호대상해양생물'입니다.

새우말. 해양수산부 보호대상해양생물.
바닷가 물웅덩이 속에도 녹색의 잎을 가진 식물이 보입니다. 거머리말보다 좁은 잎맥을 가진 '새우말'입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개체 수가 현저하게 감소하고 있어서 역시 해양수산부가 학술적, 경제적 가치가 높다고 지정한 '보호대상해양생물'입니다.

말미잘
굴로 덮인 갯바위
채석장 개발이 시작된다면 돌가루와 오염물질이 바다에 유입돼 새우말과 거머리말 군락지는 위기에 놓일 수 있습니다. 선갑도는 사람의 접근이 거의 없었던 덕분에 말미잘을 비롯한 각종 해양생물이 풍성합니다. 바닷가 바위는 굴과 홍합 등이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합니다. 이런 생태계 전체가 흔들리게 됩니다.

보라색 노루귀
대극
흰색 노루귀
선갑도는 육상 식생도 다양합니다. 해발고도가 높은 데다가 능선과 계곡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가침박달, 쇠뿔석이, 멱쇠채, 두루미천남성 등 산림청이 정한 보호식물도 많습니다. 취재진이 방문했을 때는 섬 곳곳에서 야생화 군락지를 만났습니다. 1㏊(3천평)가량 넓은 공간에 노루귀와 대극이 빼곡한 곳도 있습니다. 야생화로 유명한 풍도에 못지 않은 천연의 꽃밭입니다. 하지만 채석장이 개발되면 서식지 자체가 사라집니다. 선갑도 식생은 채석장말고도 또다른 위험에 놓여 있습니다.

선갑도 관리사옥 염소
3년 전 회사 측은 선갑도에 20마리가량의 염소를 들여왔습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울타리 안에 있지만, 나머지는 방목된 상태입니다. 염소는 섬의 생태계를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아무런 천적도 없는 상태에서 개체 수가 급증하면 초본류뿐만 아니라 나무껍질까지 먹어치워 섬의 사막화가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수풀 속에 숨은 염소
실제로 섬 곳곳에 염소가 흩어져 있습니다. 환경단체는 회사 측이 개발사업을 위해 염소를 의도적으로 방목한 것은 아닌지 우려합니다. 식생의 보전가치를 떨어뜨리려는 의도가 의심된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묶어둔 염소가 달아났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선갑도 전경. (출처: 옹진군)
선도공영측의 개발 계획은 채석장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채석장으로 평탄해진 지역에 앞으로 관광시설을 짓겠다고 합니다. 현재는 섬의 경사도가 급해 시설 건축 허가가 나질 않습니다. 하지만 채석으로 산을 파내 평지가 만들어지면 관광시설 부지로 활용한다는 겁니다. 회사 측은 섬과 어장 매입, 제방 건설 등에 140억 원을 투입했다며 수익사업을 실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사유지에 대한 정당한 권리 행사라는 겁니다.


서해 섬 가운데 개발을 놓고 논란에 쌓인 곳은 선갑도만이 아닙니다. 선갑도에서 북쪽으로 10km가량 떨어진 굴업도 역시 비슷한 갈등을 겪었습니다. 대기업이 섬을 매입한 뒤 산을 깎아내고 골프장을 지으려다 반대에 부딪혀 결국 개발이 중단됐습니다. 소유자라도 그 땅에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과 자연의 유산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선의 섬'이라는 선갑도, 당장 눈앞의 이익을 위해 수억 년 이어 내려온 아름다움을 영원히 사라지게 해도 좋은 걸까요? 우리는 이 땅에 잠시 머물 뿐이지만 우리가 남긴 흔적은 자칫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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