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원의 비명 “고객님, 죽어도 빨리 갈게요”

입력 2017.03.22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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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또 다른 이름 '배달 공화국.' 음식은 물론 꽃과 택배, 각종 심부름까지 안 되는 게 없는 배달 서비스의 나라다. 최근에는 아예 배달만을 전문으로 하는, 신종 '배달 대행 업체'들이 등장했다. 음식점들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스마트폰 앱을 통해 배달원과 연결해주는 업체다. 이처럼 다양한 배달 서비스의 등장으로 더 빠르고 더 편리해진 세상은 얼핏 당연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다.

일명 '전투콜 배차'로 불리는 '배달 대행 업체'의 배달원 이민재 씨(가명)의 일상은 전쟁이다. 신호위반과 중앙선 침범은 물론, 인도와 차도를 넘나들며 무법질주를 하다 보니 아찔한 순간도 한두 번이 아니다. 무엇이 이들을, 사고의 위험으로 몰아넣고 있을까.



배달원, 노동자가 아니라 사장님?

지난 2011년, 등록금을 벌기 위해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19세 청년이 숨지면서, 이른바 '30분 배달제'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확산됐다. 결국 해당 업체는 30분 배달제를 폐지했다. 2016년 또 다른 패스트푸드점 배달원이 택시와 충돌해 목숨을 잃으면서 다시 문제가 불거졌다. 숨진 배달원이, 10분 더 빨라진 '20분 배달'에 쫓기고 있었다는 것. 문제는 빨라진 속도만이 아니다.


4년 전 이상우 씨(가명)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18살 나이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 평생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배달을 서두르다가 사고로 척수 손상을 입고 하반신이 마비된 것이다.


배달 중 일어난 사고였던 만큼 이 씨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를 인정받았지만, 이후 배달대행 업주는 치료비를 낼 수 없다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상우 씨가 업체에 소속된 근로자가 아니라, 스스로 콜을 받아 건당 수입을 챙겼던 개인사업자라는 이유에서였다.

속도는 더 빨라졌지만, 사고 위험에 대한 부담은 '배달대행'이라는 이름으로, 청년들에게 떠넘겨지고 있다.

"(타이머를) 20분으로 늘 맞춰놔요. 한 달 사이에 사고가 세 번 났어요. 깁스하고 배달 나간 적도 있어요."
-배달원 A 씨-

1년간 집배원 10명 사망


'신속 배달'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다. 지난 2월 6일, 15년간 성실하게 일했던 집배원 조만식(44) 씨가 침대에서 홀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대표적인 돌연사 원인인 '동맥경화에 따른 심정지'였다. 유가족은 건강했던 조 씨가 과도한 업무로 인해 사망한 것이라며 정밀 부검을 신청했다.

"이 일 하면서 항상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기쁘다고, 그런 좋은 얘기만 하니까 그런 줄 알았는데…. 무엇보다도 가족인데 이렇게 일하는 줄 몰랐던 게 가슴이 아프죠."
-故 조만식 씨 유가족-


최근 1년 동안 숨진 집배원은 10명. 대부분은 故 조만식 씨처럼 40,5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았다. 우정사업본부는 2015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여러 시민단체가 조사한 '최악의 살인기업' 4위를 차지했다. 대형 건설사들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순위다. 오늘도 집배원들은 속도에 쫓기고 과로에 시달리며 일하는 중이다.

택시, '공정속도'를 말하다


배달 서비스는 '소비자들의 편의'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의 위험과 희생을 담보로 더 빨라지고 있다. 희생자는 누구든지 될 수 있다. 속도의 편의를 보고 있는 소비자 역시 다른 한편에선 누군가를 위해 일해야 하는 노동자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공정속도'는 없을까.

2015년 7월에 출범한 한국 택시협동조합은 기존의 택시회사들과 달리, 택시 기사들이 주인이다. 매일 회사에 내야 하는 사납금에 쫓기는 대신, 조합 출자금을 낸 기사들이 지분을 공동 소유하고, 수익을 나눠 갖는 방식으로 이뤄져 있다. 속도와 시간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워지면서 사고율마저 낮아졌다.


대한민국은 고객의 권리가 극단적으로 존중받는 사회, 즉 과잉서비스 사회다. '고객 만족'이라는 허울 아래, 기업의 극단적 이윤 추구와 이에 고통받는 노동자가 있다. 대다수 구성원이 소비자이자 곧 노동자인 사회에서, 모두가 만족할 만한 정도의 '속도'와 '편리함'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추적 60분'은 2주에 걸쳐 우리 사회의 노동력은 과연 올바른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는지 묻는다. 22일(수) 밤 11시 KBS 2TV에서 방송되는 '1편-죽음을 부르는 배달 전쟁'에서는 위험천만한 도로 위 속도 경쟁의 문제를 지적하고 '공정속도'를 모색해 본다.

[프로덕션2] 최정윤 kbs.choij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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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달원의 비명 “고객님, 죽어도 빨리 갈게요”
    • 입력 2017-03-22 18:47:47
    방송·연예
대한민국의 또 다른 이름 '배달 공화국.' 음식은 물론 꽃과 택배, 각종 심부름까지 안 되는 게 없는 배달 서비스의 나라다. 최근에는 아예 배달만을 전문으로 하는, 신종 '배달 대행 업체'들이 등장했다. 음식점들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스마트폰 앱을 통해 배달원과 연결해주는 업체다. 이처럼 다양한 배달 서비스의 등장으로 더 빠르고 더 편리해진 세상은 얼핏 당연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다.

일명 '전투콜 배차'로 불리는 '배달 대행 업체'의 배달원 이민재 씨(가명)의 일상은 전쟁이다. 신호위반과 중앙선 침범은 물론, 인도와 차도를 넘나들며 무법질주를 하다 보니 아찔한 순간도 한두 번이 아니다. 무엇이 이들을, 사고의 위험으로 몰아넣고 있을까.



배달원, 노동자가 아니라 사장님?

지난 2011년, 등록금을 벌기 위해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19세 청년이 숨지면서, 이른바 '30분 배달제'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확산됐다. 결국 해당 업체는 30분 배달제를 폐지했다. 2016년 또 다른 패스트푸드점 배달원이 택시와 충돌해 목숨을 잃으면서 다시 문제가 불거졌다. 숨진 배달원이, 10분 더 빨라진 '20분 배달'에 쫓기고 있었다는 것. 문제는 빨라진 속도만이 아니다.


4년 전 이상우 씨(가명)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18살 나이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 평생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배달을 서두르다가 사고로 척수 손상을 입고 하반신이 마비된 것이다.


배달 중 일어난 사고였던 만큼 이 씨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를 인정받았지만, 이후 배달대행 업주는 치료비를 낼 수 없다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상우 씨가 업체에 소속된 근로자가 아니라, 스스로 콜을 받아 건당 수입을 챙겼던 개인사업자라는 이유에서였다.

속도는 더 빨라졌지만, 사고 위험에 대한 부담은 '배달대행'이라는 이름으로, 청년들에게 떠넘겨지고 있다.

"(타이머를) 20분으로 늘 맞춰놔요. 한 달 사이에 사고가 세 번 났어요. 깁스하고 배달 나간 적도 있어요."
-배달원 A 씨-

1년간 집배원 10명 사망


'신속 배달'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다. 지난 2월 6일, 15년간 성실하게 일했던 집배원 조만식(44) 씨가 침대에서 홀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대표적인 돌연사 원인인 '동맥경화에 따른 심정지'였다. 유가족은 건강했던 조 씨가 과도한 업무로 인해 사망한 것이라며 정밀 부검을 신청했다.

"이 일 하면서 항상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기쁘다고, 그런 좋은 얘기만 하니까 그런 줄 알았는데…. 무엇보다도 가족인데 이렇게 일하는 줄 몰랐던 게 가슴이 아프죠."
-故 조만식 씨 유가족-


최근 1년 동안 숨진 집배원은 10명. 대부분은 故 조만식 씨처럼 40,50대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았다. 우정사업본부는 2015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여러 시민단체가 조사한 '최악의 살인기업' 4위를 차지했다. 대형 건설사들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순위다. 오늘도 집배원들은 속도에 쫓기고 과로에 시달리며 일하는 중이다.

택시, '공정속도'를 말하다


배달 서비스는 '소비자들의 편의'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들의 위험과 희생을 담보로 더 빨라지고 있다. 희생자는 누구든지 될 수 있다. 속도의 편의를 보고 있는 소비자 역시 다른 한편에선 누군가를 위해 일해야 하는 노동자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공정속도'는 없을까.

2015년 7월에 출범한 한국 택시협동조합은 기존의 택시회사들과 달리, 택시 기사들이 주인이다. 매일 회사에 내야 하는 사납금에 쫓기는 대신, 조합 출자금을 낸 기사들이 지분을 공동 소유하고, 수익을 나눠 갖는 방식으로 이뤄져 있다. 속도와 시간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워지면서 사고율마저 낮아졌다.


대한민국은 고객의 권리가 극단적으로 존중받는 사회, 즉 과잉서비스 사회다. '고객 만족'이라는 허울 아래, 기업의 극단적 이윤 추구와 이에 고통받는 노동자가 있다. 대다수 구성원이 소비자이자 곧 노동자인 사회에서, 모두가 만족할 만한 정도의 '속도'와 '편리함'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추적 60분'은 2주에 걸쳐 우리 사회의 노동력은 과연 올바른 방향을 향해 가고 있는지 묻는다. 22일(수) 밤 11시 KBS 2TV에서 방송되는 '1편-죽음을 부르는 배달 전쟁'에서는 위험천만한 도로 위 속도 경쟁의 문제를 지적하고 '공정속도'를 모색해 본다.

[프로덕션2] 최정윤 kbs.choij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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