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미국 유엔 지원 감축 하면, 중국의 영향력은?

입력 2017.03.23 (15:30) 수정 2017.03.23 (15:3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아메리카 퍼스트”란 이름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첫 번째로 내놓은 예산안, 2018회계연도 예산안은, 31%나 예산을 삭감당한 환경보호청 등 미국에 있는 사람들만을 충격에 빠뜨린 게 아니다. 전 세계의 평화, 기아, 난민, 여성, 동물, 환경, 기후변화 등등을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과 조직들이 충격에 빠졌다. 각종 국제기구와 국제구호에 대한 가장 큰 기부자인 미국이, 관련 예산을 많게는 50% 넘게 삭감할 계획이 현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기 만들기 위한 예산안’이란 부제까지 붙은 이 예산안의 핵심 방향은 미 국방부 예산을 10% 늘리는 대신, 다른 모든 예산을 삭감하는 것이다. 환경보호청이 가장 많은 31%의 예산이 삭감됐고, 국무부 예산이 28%, 농업,노동.법무.보건.상무 등 주요 부처 예산이 대부분 15~20% 내외로 삭감됐다.

그런데 국무부와 국제개발처(USAID) 예산을 28% 삭감하면서, 새 예산안은 각국 미 대사관의 보안은 강화하겠다고 했다. 각국 대사관 조직을 축소하거나 지출을 줄일 게 아니라면, 오히려 각국 대사관의 보안을 강화하겠다면, 대체 어떤 곳에서 지출을 줄여 국무부 전체 예산을 28%나 줄인단 말인가? 결국, 미국의 유엔 지원과, 각종 국제적 지원이 타격을 받게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미, 유엔 지원 50% 이상 삭감 방침

미 백악관은 국무부에 각종 유엔기구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50% 이상 삭감할 방안을 강구할 것을 지시했다고 미국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 유엔본부를 비롯해 유엔평화유지군, 세계식량계획, 유엔난민기구 등 각종 유엔 조직에 연간 백억달러(약 11조원) 가량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의 유엔본부를 통한 지원 금액은 6억 천 달러 가량으로 유엔 193개 회원국 가운데 1위, 무려 전체의 22%를 지원한다. 뒤이어, 일본, 중국, 독일, 프랑스, 영국, 브라질, 러시아, 캐나다가 올해 유엔 지원 10위권 국가들이다. 한국도 반기문 총장 취임 뒤 지원금을 늘려, 현재 5천6백여만 달러를 지원, 약 2%를 분담하는 13위 지원국이다.


하지만 미국의 유엔본부를 통한 지원은 미국의 각종 지원의 작은 일부일 뿐이다. 더 큰 지원이 유엔평화유지군을 통해 이뤄진다. 미국은 유엔평화유지군에 연간 25억 달러를 지원해, 79억 달러에 달하는 전체 유엔평화유지군 운영비의 28.43%를 부담한다. 중국이 10.23%로 2위,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러시아, 이탈리아, 캐나다, 스페인 등이 10위권이다. 한국은 2%를 분담해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유엔난민기구의 경우 지난해 전체 예산 40억 달러 가운데 15억 달러를 미국에서 지원받았고, 세계식량계획은 올해 전체 예산 10억 달러 가운데 3억 2천만 달러를 미국에서 지원받았다. 이런 지원에는 국무부뿐만 아니라 농무부 등 다른 부처들의 지원도 포함된다. 미 국무부 산하 국제개발처에서만 지난 한해, 세계 각국의 평화와 민주주의 증진, 건강, 교육, 사회, 경제 개발, 인도 위기 등을 위해 125억 달러를 지원했을 정도다.

예를 들어, 지난 2015년, 미국 국무부와 국제개발처는 아프리카의 가장 열악한 사하라 이남 지역 국가들에만 80억 달러를 지원했다. 2위인 영국의 지원은 30억 달러였다. 아프리카 대륙의 경우, 많은 나라가 분쟁지역 평화 유지, 에이즈/말라리아 퇴치와 에볼라 대응 등 긴급 보건 관리, 기아, 식수, 전기 등 생존의 절대적인 부분에 대해, 미국으로부터 일상적 지원을 받아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지원의 50% 이상 삭감이 정말로 당장 이뤄질까? 새 예산안에 따른다면, 그렇게 해야 할 수도 있다. 국방부 예산을 10% 늘린다고 했다. 2017년 회계연도 미 국방부의 전체 예산은 5,830억달러였다. 국무부 예산은 그 10분의 1도 안되는 500억 달러 수준이다. 국방부 예산을 10% 늘린다는 건 국무부 전체 예산 이상을 늘린다는 거다. 실제로 트럼프 예산안은 국방부 예산의 530억달러 증액을 계획하고 있다. 이 정도를 늘리려면, 국제 지원은 50% 정도는 삭감해야 가능하지 않을까?

미, 유엔평화유지군 등 각종 유엔기구 지원 재검토 착수

트럼프 대통령의 이 ‘아메리카 퍼스트’란 첫 예산안이 발표되던 날, 니키 헤일리 미 유엔 대사는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배포한다.

“미 유엔대표부는 유엔사무총장, 안보리 이사국들과 유엔 평화유지군과 유엔 운영을 개혁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고 있습니다. 유엔 개혁은 미국인에 대한 약속이며 유엔에 대한 가치와 신뢰를 복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많은 분야에서, 유엔은 해야 하는 수준보다 더 많은 돈을 쓰고, 많은 경우, 그게 다른 나라들보다 미국에 훨씬 더 많은 재정적 부담을 지웁니다. 유엔에서의 미국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예산안에 대해 의회와 숙고할 것이고, 또 유엔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유엔의 다른 나라들과 협력하길 기대합니다.”

미 유엔 대사가, 의회에서 트럼프 예산안의 유엔에 대한 대규모 지원 삭감 계획 철회를 주장해주리라고 기대하기 어렵게 만드는 대목이다. 니키 헤일리 대사는 오히려, 유엔의 개혁을 명분으로 한 유엔의 전반적인 재정 삭감과 결과적으로 미국의 유엔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삭감하는 것을 새로운 임무로 삼고, 유엔에 파견됐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헤일리 대사는 이미 지난 1월 의회 인준 청문회 때부터, 미국의 유엔에 대한 지원 중 가장 큰 금액을 차지하고 있는 유엔 평화유지군 지원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헤일리 대사는 우선 16개의 유엔평화유지군을 가리켜, 일부는 성공적이지만, 일부는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최근 몇 년간 유엔평화유지군은 물론 유엔 전체의 명예에 커다란 흠집을 내온, 유엔평화유지군의 성폭력, 사기 등 각종 범죄 등을 거론하며, 유엔평화유지군이 다르게 운영되거나, 필요에 따라서는 철수돼야 할지 생각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반기문 전 유엔총장이 지난 2014년 가을 드물게 토크쇼에 출연한 적이 있다.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 존 스튜어트가 진행하는 쇼였는데, 당시 반 총장이 진행자인 스튜어트에게 선물한 게 블루 헬멧이다. 바로 유엔평화유지군이 쓰는 헬멧으로, UN을 상징하는 푸른색 바탕에 UN이란 글자가 선명한 블루 헬멧은,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유엔평화유지군의 자부심을 뜻한다.

물론 최근 몇 년간 유엔 평화유지군의 성폭력 논란, 주민과의 불화, 범죄 등이 불거지면서 다소 명예에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반총장이 유엔이 사람들에게 보여줄 한 가지로 블루 헬멧을 골랐을 정도로 유엔평화유지군은 유엔에 중요하다.

무엇보다 유엔평화유지군은 유엔에서 운영하는 조직 중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조직으로, 유엔으로서는 그 운영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헤일리 미 대사가 유엔 지원을 대폭 삭감하겠다는 정부 예산안이 나오자, 가장 먼저 유엔 평화유지군의 개혁을 들고 나온 것도, 구테흐스 유엔 총장이 트럼프 정부의 예산안을 비판하면서, ‘테러리즘에 대비하려면 군비 증강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충돌 방지와 해결, 평화유지와 구축 등 테러리즘의 근본 동인을 해결해야 한다’며 평화유지군의 활동을 변호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유엔평화유지군은 유엔이 운영하는 유일한 군대지만, 임무는 전쟁은 아니다. 오히려 분쟁이 끝났거나 휴전상태지만, 아직 정치, 사회, 군사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지역의 전쟁 재발을 억제하고, 재건과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돕고, 주민들의 생존과 정착을 돕는 게 주 임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안전하지만은 않다. 말리 평화유지군의 경우, 쿠데타 이후 정정 불안으로 알카에다 등 폭력이슬람단체의 테러 등이 계속돼, 지난해에만 38명이 희생되는 등 2013년 창설 이래 지금까지 114명의 유엔평화유지군이 숨졌다.

미국은 현재 25억 달러에 달하는 유엔평화유지군에 대한 지원을 10억 달러까지 삭감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이미 미 유엔 대표부는 16개 유엔평화유지군에 대해 개별적 검토에 들어갔다. 유엔평화유지군 하나하나가 유지될지 폐지될지의 운명이 이제 미국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이 유엔 지원을 줄이면 중국의 영향력이 커진다?


유엔 회원국은 193개국이다. 유엔총회에서의 투표든 각 위원회에서의 투표든 어떤 곳에서의 투표든 모든 회원국은 한 표를 행사한다. 그렇다고 모든 회원국의 영향력이 같은가? 그렇지 않다. 유엔 안보리의 5개 상임이사국은 절대적인 권리, 즉 거부권을 갖고 있어서, 상임이사국이 한 곳이라도 반대하면, 어떤 일도 이뤄질 수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유엔 내에도 여론이란 게 있고, 외교적 역학관계가 있다. 그건 훨씬 더 복잡하다. 하지만 그 영향력을 결정하는 가장 단순한 기준이 있다면, 그건 돈이 아니겠는가? 일본이 그토록 오랫동안 국제적으로 대접을 받아온 이유고, 아직도 일본이 그 어려운 가운데도, 유엔 지원을 극단적으로 삭감하지 않는 이유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20여 년간, 유엔에 대한 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려온 나라가 있는데, 바로 중국이다. 유엔 홈페에지에 나와 있는 연도까지의 자료를 토대로, 중국의 유엔본부와 유엔평화유지군에 대한 지원 추이를 살펴왔다.


2001년 1.54%에 불과하던 중국의 유엔본부 지원금은 10배 가까이 뛰어 일본에 뒤이은 3위로 올라섰고, 중국이 그보다 더 획기적으로 증가시켜온 게 유엔 평화유지군 분담금이다. 미국에 이어 2위로 10% 이상을 내고 있다.

물론 중국의 경제가 지난 20년 동안 고속 성장을 해 미국과 더불어 빅 2로 일컬어지는 만큼 그에 따른 부담을 지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중국의 유엔평화유지군에 대한 지원 속에선 다른 국제경제적 역학관계도 읽힌다. 현재 주둔하고 있는 유엔평화유지군 16개 가운데 9개가 아프리카에 있다. 또 가장 규모가 크고 돈이 많이 드는 5개 중 4개가 아프리카에 있다. 유엔평화유지군 활동의 3분의 2 이상이 아프리카 지역의 안보와 재건에 투여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낙후돼있지만 광범위한 자원과 인력을 갖고 있는 아프리카는, 지구상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성장 잠재력이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최근 중국이 아프리카에 공격적인 투자를 해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의 유엔평화유지군에 대한 지원 확대가, 중국의 이런 국제경제적 이익과 무관할 수 있겠는가? 유엔평화유지군의 창설과 운영, 폐지 등에 대한 모든 결정은 유엔 안보리에서 이뤄진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앞으로 유엔평화유지군 문제에 있어, 안보리에서 미국과 어떤 다른 목소리를 낼지 주목된다.

중국의 영향력은 현재도 유엔에서 막강하다. 안보리에서 이뤄지는 중요한 결정은 미국과 중국이 먼저 조율한 뒤에라야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유엔에 대한 독보적 지원자였던 미국이 유엔에 대한 지원을 절반이나 삭감한다면, 앞으로 유엔에서 그만한 발언권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그러는 사이, 유엔에 대한 지원을 계속해서 늘리고 있는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될 수도 있다.

트럼프 정부 새 예산안이 발표된 뒤 유엔과 각종 국제기구, 비정부기구 등이, 미국이 국제적 지원을 삭감하는 것이 전 세계에 큰 위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를 쏟아냈지만, 그런 공식적 성명에서 중국의 부상을 우려한 경우는 없었다. 어쩌면 그들에겐 중국의 부상이 필요할 지도 모를 일이다.

유엔과 국제기구로서는 그들이 받고 있던 지원을 유지하고 그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의 지원 삭감을 상충해줄 다른 나라가 절실히 필요하지 않겠는가. 국제기구로서는 중국이 지금보다 더 부담해주기를 기대할 수 있고, 그럴수록 중국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의회 통과를 앞둔 예산 전쟁의 시작

트럼프 정부가 국무부 예산을 대폭 삭감할 것이란 보도가 나오자마자, 예산안이 나오기도 전에, 121명의 퇴역 장성 등 군인들이 의회 지도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국무부 예산을 삭감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 각지에서 복무했던 이들은, 테러와 전 세계적 분쟁에 대한 대응은 군사적인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고, 극단주의의 근원 즉 기회의 결핍과 불안정, 절망 등을 경감시켜 그 지역의 시민들을 동조자로 만들어야만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외교와 국제 개발 예산은 절대 삭감돼서는 안 되니, 의회에서 예산안을 심사할 때 바로 잡아달라는 호소문인 것이다.

미 하원 외교위원회의 에드 로이스(공화당) 위원장도, 외교 분야 예산 삭감이 테러리즘을 퇴치하려는 노력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린지 그래함 상원의원(공화당)도 트럼프 새 예산안 중 미 국무부 예산 삭감을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꼽으며 이런 재앙적 예산안은 의회에서 절대 통과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전문가들은, 외교와 국제적 지원 활동은 단지 그 자체로 이해돼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미국의 다양한 국제적 지원은 테러리즘 지역의 우호세력을 만들고, 극단주의화를 막기 때문에 안보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미국이 각종 외교, 또 경제적 진출을 하는데도 윤활유의 역할을 하는, 미국의 모든 국제 활동의 밑거름이라는 것이다.

2017년 10월부터 2018년 9월까지 적용되는 2018년 회계연도 예산안은 아직 완성된 게 아니다. 정부 재량 예산안만 나왔고, 고정 예산안 등과 합해서 5월에 최종 예산안이 만들어지고 이후 의회의 심사를 받을 예정이다.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 여당인 공화당에서도 지금의 예산안이 그대로 통과될 것이라고 보는 의원은 거의 없다.
국무부 28% 예산 삭감도 어떤 식으로든 수정돼, 많은 부분이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트럼프 정부가 원래대로 되돌리겠는가,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아메리카 퍼스트” 미국 우선주의 예산은 분명, 유엔을 비롯한 각종 국제기구에 대한 지원의 대폭 삭감이라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특파원리포트] 미국 유엔 지원 감축 하면, 중국의 영향력은?
    • 입력 2017-03-23 15:30:18
    • 수정2017-03-23 15:30:31
    특파원 리포트
“아메리카 퍼스트”란 이름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첫 번째로 내놓은 예산안, 2018회계연도 예산안은, 31%나 예산을 삭감당한 환경보호청 등 미국에 있는 사람들만을 충격에 빠뜨린 게 아니다. 전 세계의 평화, 기아, 난민, 여성, 동물, 환경, 기후변화 등등을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과 조직들이 충격에 빠졌다. 각종 국제기구와 국제구호에 대한 가장 큰 기부자인 미국이, 관련 예산을 많게는 50% 넘게 삭감할 계획이 현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기 만들기 위한 예산안’이란 부제까지 붙은 이 예산안의 핵심 방향은 미 국방부 예산을 10% 늘리는 대신, 다른 모든 예산을 삭감하는 것이다. 환경보호청이 가장 많은 31%의 예산이 삭감됐고, 국무부 예산이 28%, 농업,노동.법무.보건.상무 등 주요 부처 예산이 대부분 15~20% 내외로 삭감됐다.

그런데 국무부와 국제개발처(USAID) 예산을 28% 삭감하면서, 새 예산안은 각국 미 대사관의 보안은 강화하겠다고 했다. 각국 대사관 조직을 축소하거나 지출을 줄일 게 아니라면, 오히려 각국 대사관의 보안을 강화하겠다면, 대체 어떤 곳에서 지출을 줄여 국무부 전체 예산을 28%나 줄인단 말인가? 결국, 미국의 유엔 지원과, 각종 국제적 지원이 타격을 받게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미, 유엔 지원 50% 이상 삭감 방침

미 백악관은 국무부에 각종 유엔기구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50% 이상 삭감할 방안을 강구할 것을 지시했다고 미국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 유엔본부를 비롯해 유엔평화유지군, 세계식량계획, 유엔난민기구 등 각종 유엔 조직에 연간 백억달러(약 11조원) 가량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의 유엔본부를 통한 지원 금액은 6억 천 달러 가량으로 유엔 193개 회원국 가운데 1위, 무려 전체의 22%를 지원한다. 뒤이어, 일본, 중국, 독일, 프랑스, 영국, 브라질, 러시아, 캐나다가 올해 유엔 지원 10위권 국가들이다. 한국도 반기문 총장 취임 뒤 지원금을 늘려, 현재 5천6백여만 달러를 지원, 약 2%를 분담하는 13위 지원국이다.


하지만 미국의 유엔본부를 통한 지원은 미국의 각종 지원의 작은 일부일 뿐이다. 더 큰 지원이 유엔평화유지군을 통해 이뤄진다. 미국은 유엔평화유지군에 연간 25억 달러를 지원해, 79억 달러에 달하는 전체 유엔평화유지군 운영비의 28.43%를 부담한다. 중국이 10.23%로 2위,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러시아, 이탈리아, 캐나다, 스페인 등이 10위권이다. 한국은 2%를 분담해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유엔난민기구의 경우 지난해 전체 예산 40억 달러 가운데 15억 달러를 미국에서 지원받았고, 세계식량계획은 올해 전체 예산 10억 달러 가운데 3억 2천만 달러를 미국에서 지원받았다. 이런 지원에는 국무부뿐만 아니라 농무부 등 다른 부처들의 지원도 포함된다. 미 국무부 산하 국제개발처에서만 지난 한해, 세계 각국의 평화와 민주주의 증진, 건강, 교육, 사회, 경제 개발, 인도 위기 등을 위해 125억 달러를 지원했을 정도다.

예를 들어, 지난 2015년, 미국 국무부와 국제개발처는 아프리카의 가장 열악한 사하라 이남 지역 국가들에만 80억 달러를 지원했다. 2위인 영국의 지원은 30억 달러였다. 아프리카 대륙의 경우, 많은 나라가 분쟁지역 평화 유지, 에이즈/말라리아 퇴치와 에볼라 대응 등 긴급 보건 관리, 기아, 식수, 전기 등 생존의 절대적인 부분에 대해, 미국으로부터 일상적 지원을 받아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지원의 50% 이상 삭감이 정말로 당장 이뤄질까? 새 예산안에 따른다면, 그렇게 해야 할 수도 있다. 국방부 예산을 10% 늘린다고 했다. 2017년 회계연도 미 국방부의 전체 예산은 5,830억달러였다. 국무부 예산은 그 10분의 1도 안되는 500억 달러 수준이다. 국방부 예산을 10% 늘린다는 건 국무부 전체 예산 이상을 늘린다는 거다. 실제로 트럼프 예산안은 국방부 예산의 530억달러 증액을 계획하고 있다. 이 정도를 늘리려면, 국제 지원은 50% 정도는 삭감해야 가능하지 않을까?

미, 유엔평화유지군 등 각종 유엔기구 지원 재검토 착수

트럼프 대통령의 이 ‘아메리카 퍼스트’란 첫 예산안이 발표되던 날, 니키 헤일리 미 유엔 대사는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배포한다.

“미 유엔대표부는 유엔사무총장, 안보리 이사국들과 유엔 평화유지군과 유엔 운영을 개혁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고 있습니다. 유엔 개혁은 미국인에 대한 약속이며 유엔에 대한 가치와 신뢰를 복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많은 분야에서, 유엔은 해야 하는 수준보다 더 많은 돈을 쓰고, 많은 경우, 그게 다른 나라들보다 미국에 훨씬 더 많은 재정적 부담을 지웁니다. 유엔에서의 미국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한 예산안에 대해 의회와 숙고할 것이고, 또 유엔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유엔의 다른 나라들과 협력하길 기대합니다.”

미 유엔 대사가, 의회에서 트럼프 예산안의 유엔에 대한 대규모 지원 삭감 계획 철회를 주장해주리라고 기대하기 어렵게 만드는 대목이다. 니키 헤일리 대사는 오히려, 유엔의 개혁을 명분으로 한 유엔의 전반적인 재정 삭감과 결과적으로 미국의 유엔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삭감하는 것을 새로운 임무로 삼고, 유엔에 파견됐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헤일리 대사는 이미 지난 1월 의회 인준 청문회 때부터, 미국의 유엔에 대한 지원 중 가장 큰 금액을 차지하고 있는 유엔 평화유지군 지원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다. 헤일리 대사는 우선 16개의 유엔평화유지군을 가리켜, 일부는 성공적이지만, 일부는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최근 몇 년간 유엔평화유지군은 물론 유엔 전체의 명예에 커다란 흠집을 내온, 유엔평화유지군의 성폭력, 사기 등 각종 범죄 등을 거론하며, 유엔평화유지군이 다르게 운영되거나, 필요에 따라서는 철수돼야 할지 생각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반기문 전 유엔총장이 지난 2014년 가을 드물게 토크쇼에 출연한 적이 있다.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 존 스튜어트가 진행하는 쇼였는데, 당시 반 총장이 진행자인 스튜어트에게 선물한 게 블루 헬멧이다. 바로 유엔평화유지군이 쓰는 헬멧으로, UN을 상징하는 푸른색 바탕에 UN이란 글자가 선명한 블루 헬멧은,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유엔평화유지군의 자부심을 뜻한다.

물론 최근 몇 년간 유엔 평화유지군의 성폭력 논란, 주민과의 불화, 범죄 등이 불거지면서 다소 명예에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반총장이 유엔이 사람들에게 보여줄 한 가지로 블루 헬멧을 골랐을 정도로 유엔평화유지군은 유엔에 중요하다.

무엇보다 유엔평화유지군은 유엔에서 운영하는 조직 중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조직으로, 유엔으로서는 그 운영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헤일리 미 대사가 유엔 지원을 대폭 삭감하겠다는 정부 예산안이 나오자, 가장 먼저 유엔 평화유지군의 개혁을 들고 나온 것도, 구테흐스 유엔 총장이 트럼프 정부의 예산안을 비판하면서, ‘테러리즘에 대비하려면 군비 증강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충돌 방지와 해결, 평화유지와 구축 등 테러리즘의 근본 동인을 해결해야 한다’며 평화유지군의 활동을 변호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유엔평화유지군은 유엔이 운영하는 유일한 군대지만, 임무는 전쟁은 아니다. 오히려 분쟁이 끝났거나 휴전상태지만, 아직 정치, 사회, 군사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지역의 전쟁 재발을 억제하고, 재건과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돕고, 주민들의 생존과 정착을 돕는 게 주 임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안전하지만은 않다. 말리 평화유지군의 경우, 쿠데타 이후 정정 불안으로 알카에다 등 폭력이슬람단체의 테러 등이 계속돼, 지난해에만 38명이 희생되는 등 2013년 창설 이래 지금까지 114명의 유엔평화유지군이 숨졌다.

미국은 현재 25억 달러에 달하는 유엔평화유지군에 대한 지원을 10억 달러까지 삭감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이미 미 유엔 대표부는 16개 유엔평화유지군에 대해 개별적 검토에 들어갔다. 유엔평화유지군 하나하나가 유지될지 폐지될지의 운명이 이제 미국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이 유엔 지원을 줄이면 중국의 영향력이 커진다?


유엔 회원국은 193개국이다. 유엔총회에서의 투표든 각 위원회에서의 투표든 어떤 곳에서의 투표든 모든 회원국은 한 표를 행사한다. 그렇다고 모든 회원국의 영향력이 같은가? 그렇지 않다. 유엔 안보리의 5개 상임이사국은 절대적인 권리, 즉 거부권을 갖고 있어서, 상임이사국이 한 곳이라도 반대하면, 어떤 일도 이뤄질 수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유엔 내에도 여론이란 게 있고, 외교적 역학관계가 있다. 그건 훨씬 더 복잡하다. 하지만 그 영향력을 결정하는 가장 단순한 기준이 있다면, 그건 돈이 아니겠는가? 일본이 그토록 오랫동안 국제적으로 대접을 받아온 이유고, 아직도 일본이 그 어려운 가운데도, 유엔 지원을 극단적으로 삭감하지 않는 이유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20여 년간, 유엔에 대한 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려온 나라가 있는데, 바로 중국이다. 유엔 홈페에지에 나와 있는 연도까지의 자료를 토대로, 중국의 유엔본부와 유엔평화유지군에 대한 지원 추이를 살펴왔다.


2001년 1.54%에 불과하던 중국의 유엔본부 지원금은 10배 가까이 뛰어 일본에 뒤이은 3위로 올라섰고, 중국이 그보다 더 획기적으로 증가시켜온 게 유엔 평화유지군 분담금이다. 미국에 이어 2위로 10% 이상을 내고 있다.

물론 중국의 경제가 지난 20년 동안 고속 성장을 해 미국과 더불어 빅 2로 일컬어지는 만큼 그에 따른 부담을 지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중국의 유엔평화유지군에 대한 지원 속에선 다른 국제경제적 역학관계도 읽힌다. 현재 주둔하고 있는 유엔평화유지군 16개 가운데 9개가 아프리카에 있다. 또 가장 규모가 크고 돈이 많이 드는 5개 중 4개가 아프리카에 있다. 유엔평화유지군 활동의 3분의 2 이상이 아프리카 지역의 안보와 재건에 투여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낙후돼있지만 광범위한 자원과 인력을 갖고 있는 아프리카는, 지구상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성장 잠재력이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최근 중국이 아프리카에 공격적인 투자를 해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의 유엔평화유지군에 대한 지원 확대가, 중국의 이런 국제경제적 이익과 무관할 수 있겠는가? 유엔평화유지군의 창설과 운영, 폐지 등에 대한 모든 결정은 유엔 안보리에서 이뤄진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앞으로 유엔평화유지군 문제에 있어, 안보리에서 미국과 어떤 다른 목소리를 낼지 주목된다.

중국의 영향력은 현재도 유엔에서 막강하다. 안보리에서 이뤄지는 중요한 결정은 미국과 중국이 먼저 조율한 뒤에라야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유엔에 대한 독보적 지원자였던 미국이 유엔에 대한 지원을 절반이나 삭감한다면, 앞으로 유엔에서 그만한 발언권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그러는 사이, 유엔에 대한 지원을 계속해서 늘리고 있는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될 수도 있다.

트럼프 정부 새 예산안이 발표된 뒤 유엔과 각종 국제기구, 비정부기구 등이, 미국이 국제적 지원을 삭감하는 것이 전 세계에 큰 위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를 쏟아냈지만, 그런 공식적 성명에서 중국의 부상을 우려한 경우는 없었다. 어쩌면 그들에겐 중국의 부상이 필요할 지도 모를 일이다.

유엔과 국제기구로서는 그들이 받고 있던 지원을 유지하고 그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의 지원 삭감을 상충해줄 다른 나라가 절실히 필요하지 않겠는가. 국제기구로서는 중국이 지금보다 더 부담해주기를 기대할 수 있고, 그럴수록 중국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의회 통과를 앞둔 예산 전쟁의 시작

트럼프 정부가 국무부 예산을 대폭 삭감할 것이란 보도가 나오자마자, 예산안이 나오기도 전에, 121명의 퇴역 장성 등 군인들이 의회 지도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국무부 예산을 삭감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 각지에서 복무했던 이들은, 테러와 전 세계적 분쟁에 대한 대응은 군사적인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고, 극단주의의 근원 즉 기회의 결핍과 불안정, 절망 등을 경감시켜 그 지역의 시민들을 동조자로 만들어야만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외교와 국제 개발 예산은 절대 삭감돼서는 안 되니, 의회에서 예산안을 심사할 때 바로 잡아달라는 호소문인 것이다.

미 하원 외교위원회의 에드 로이스(공화당) 위원장도, 외교 분야 예산 삭감이 테러리즘을 퇴치하려는 노력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린지 그래함 상원의원(공화당)도 트럼프 새 예산안 중 미 국무부 예산 삭감을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꼽으며 이런 재앙적 예산안은 의회에서 절대 통과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전문가들은, 외교와 국제적 지원 활동은 단지 그 자체로 이해돼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미국의 다양한 국제적 지원은 테러리즘 지역의 우호세력을 만들고, 극단주의화를 막기 때문에 안보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미국이 각종 외교, 또 경제적 진출을 하는데도 윤활유의 역할을 하는, 미국의 모든 국제 활동의 밑거름이라는 것이다.

2017년 10월부터 2018년 9월까지 적용되는 2018년 회계연도 예산안은 아직 완성된 게 아니다. 정부 재량 예산안만 나왔고, 고정 예산안 등과 합해서 5월에 최종 예산안이 만들어지고 이후 의회의 심사를 받을 예정이다.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 여당인 공화당에서도 지금의 예산안이 그대로 통과될 것이라고 보는 의원은 거의 없다.
국무부 28% 예산 삭감도 어떤 식으로든 수정돼, 많은 부분이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트럼프 정부가 원래대로 되돌리겠는가,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아메리카 퍼스트” 미국 우선주의 예산은 분명, 유엔을 비롯한 각종 국제기구에 대한 지원의 대폭 삭감이라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