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고기 먹고 금지약물 검출…빙상 연맹은 ‘쉬쉬’

입력 2017.03.24 (16:36) 수정 2017.03.2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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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중국 하얼빈에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1차 스피드 월드컵대회가 열렸다.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A 선수에게는 한 시즌을 시작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성과도 있었다. 동료들과 함께 한 팀 추월 종목에서 당당히 동메달도 따냈다.

그런데, 해가 바뀐 지난 1월말, 국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통보장을 받았다. 도핑 결과, A 선수에게서 금지약물 성분이 나왔다는 것이다. A 선수는 결코 불법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소명했다. 그리고, 중국 현지에서 먹은 음식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과연 무슨 사연인 걸까?


A 선수에게서 검출된 금지약물은 바로 '클렌부테롤'이다. 천식치료제인 클렌부테롤은 근육강화제로도 쓰여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금지한 약물이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수치다. A 선수의 검출량은 0.08ng/ml으로 허용 제한선인 0.05ng/ml을 살짝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중국반도핑기구는 "이 정도 수치라면 음식 오염이라고 볼 수 있다"는 의견을 첨부했다.

유사한 전례도 있었다. 중국반도핑위원회는 지난해 1월과 11월, 중국 빙상 선수 두 명이 클렌부테롤 검출로 적발된 사실을 ISU에 보고했다. 두 경우 모두 A 선수처럼 검출 수치가 높지 않았다. WADA 역시 '특정 환경에서는 음식 오염으로 인해 도핑 결과 낮은 수준의 클렌부테롤이 검출될 수 있다'고 알리고 있다.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해 당시 ISU는 이를 '음식 오염'으로 결론 내렸다.

A 선수는 두 번째 샘플에 대한 추가 검사를 요청했다. 결과는 0.09ng/ml 검출. 첫 번째 샘플과 비슷할 정도로 낮은 수치였다. 이에 따라 A 선수와 대한빙상경기연맹는 절차에 따라 소명에 나섰다. 일단, A 선수는 하얼빈 대회가 열리기 직전인 10월 28일 태릉에서 열린 종목별 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그리고 한국반도핑기구(KADA)가 시행한 도핑 결과 음성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면 원인은 중국 현지 음식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중국에서는 중량을 늘리기 위해 근육강화제인 클렌부테롤이 섞인 사료를 먹인 고기가 시중에 유통돼 문제가 되기도 했다. 중국반도핑위원회의 보고에 따라, ISU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A 선수는 대회 공식 숙소인 호텔에서 제공하는 음식만 먹었다고 진술했다. 다만 고기를 워낙 좋아해 다른 선수들보다 섭취량이 많다 보니 그런 수치가 나온 것 같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결국 ISU 징계위원회는 지난 21일 다음과 같은 최종 결론을 내렸다. 'A 선수가 하얼빈 대회에서 얻은 기록만 삭제한다'는 내용이었다. 추가적인 제재는 하지 않기로 했다. ISU 규정에 따라 도핑 적발 선수는 최대 4년까지 자격 정지를 받을 수 있다. 의도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사안에 따라 부분적인 징계도 가능하다. 하지만 추가적인 제재가 전혀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사실상 A 선수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A 선수와 대한빙상경기연맹은 항소 없이 결과를 받아 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금지약물이 검출된 만큼 ISU 규정에 따라 기록 삭제는 피할 수 없게 됐다. 동료 선수들도 덩달아 선의의 피해자가 됐다. 팀 추월에서 함께 3위에 오른 동료들도 메달을 박탈당하게 된 것이다.

물론 A 선수 역시 억울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이제 갓 대학생이 된 어린 선수을 좌절시킬 수도 있었던 사건이다. 다행히 그 이후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따기도 했던 A 선수는 전도유망한 차세대 선수이기도 하다.

[연관 기사] [단독] “중국서 음식 먹고 도핑 검출”…성적만 박탈

이 같은 어처구니 없는 사실은 KBS의 단독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대한빙상경기연맹에서는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팀 B 감독은 취재진의 사실 확인에 대해 처음에는 "그런 일 없다"고 잘라 말했다. A 선수의 이름을 언급하고서야 취재진에 사실을 인정했다.

B 감독은 "중국이나 카자흐스탄에 가서 많은 양의 고기를섭취하면 도핑 적발 수치가 나올 수 있다고 하더라. 처벌은 면했지만 선수에게 좋은 일도 아니고 하니까 지도자로서는 숨길 수 밖에 없었다"고 호소했다.

다른 종목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지난 2010년 일본컵 로드 사이클 대회에 출전했던 한 남자 선수도 도핑에서 클렌부테롤이 적발됐다. 이 선수는 일본 입국 3일 전 중국에서 열린 투르 드 베이징 대회에 참가했다. 결국, 이 클렌부테롤은 오염된 고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정됐고, 이 선수는 징계를 받지 않았다.

A 선수의 도핑 적발은 쉬쉬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 체육회 차원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조직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할 사안이다. 중국반도핑위원회는 자국 선수들에게 '오염된 고기를 섭취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경계령까지 내린 바 있다. 메달을 향해 흘린 땀이 헛되이 되지 않기 위해서, 국가대표로서 억울하게 명예가 실추되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지원과 예방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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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서 고기 먹고 금지약물 검출…빙상 연맹은 ‘쉬쉬’
    • 입력 2017-03-24 16:36:21
    • 수정2017-03-24 19:30:44
    취재K
지난해 11월 중국 하얼빈에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1차 스피드 월드컵대회가 열렸다.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A 선수에게는 한 시즌을 시작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성과도 있었다. 동료들과 함께 한 팀 추월 종목에서 당당히 동메달도 따냈다.

그런데, 해가 바뀐 지난 1월말, 국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통보장을 받았다. 도핑 결과, A 선수에게서 금지약물 성분이 나왔다는 것이다. A 선수는 결코 불법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소명했다. 그리고, 중국 현지에서 먹은 음식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과연 무슨 사연인 걸까?


A 선수에게서 검출된 금지약물은 바로 '클렌부테롤'이다. 천식치료제인 클렌부테롤은 근육강화제로도 쓰여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금지한 약물이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수치다. A 선수의 검출량은 0.08ng/ml으로 허용 제한선인 0.05ng/ml을 살짝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중국반도핑기구는 "이 정도 수치라면 음식 오염이라고 볼 수 있다"는 의견을 첨부했다.

유사한 전례도 있었다. 중국반도핑위원회는 지난해 1월과 11월, 중국 빙상 선수 두 명이 클렌부테롤 검출로 적발된 사실을 ISU에 보고했다. 두 경우 모두 A 선수처럼 검출 수치가 높지 않았다. WADA 역시 '특정 환경에서는 음식 오염으로 인해 도핑 결과 낮은 수준의 클렌부테롤이 검출될 수 있다'고 알리고 있다.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해 당시 ISU는 이를 '음식 오염'으로 결론 내렸다.

A 선수는 두 번째 샘플에 대한 추가 검사를 요청했다. 결과는 0.09ng/ml 검출. 첫 번째 샘플과 비슷할 정도로 낮은 수치였다. 이에 따라 A 선수와 대한빙상경기연맹는 절차에 따라 소명에 나섰다. 일단, A 선수는 하얼빈 대회가 열리기 직전인 10월 28일 태릉에서 열린 종목별 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그리고 한국반도핑기구(KADA)가 시행한 도핑 결과 음성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렇다면 원인은 중국 현지 음식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중국에서는 중량을 늘리기 위해 근육강화제인 클렌부테롤이 섞인 사료를 먹인 고기가 시중에 유통돼 문제가 되기도 했다. 중국반도핑위원회의 보고에 따라, ISU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A 선수는 대회 공식 숙소인 호텔에서 제공하는 음식만 먹었다고 진술했다. 다만 고기를 워낙 좋아해 다른 선수들보다 섭취량이 많다 보니 그런 수치가 나온 것 같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결국 ISU 징계위원회는 지난 21일 다음과 같은 최종 결론을 내렸다. 'A 선수가 하얼빈 대회에서 얻은 기록만 삭제한다'는 내용이었다. 추가적인 제재는 하지 않기로 했다. ISU 규정에 따라 도핑 적발 선수는 최대 4년까지 자격 정지를 받을 수 있다. 의도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사안에 따라 부분적인 징계도 가능하다. 하지만 추가적인 제재가 전혀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사실상 A 선수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A 선수와 대한빙상경기연맹은 항소 없이 결과를 받아 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금지약물이 검출된 만큼 ISU 규정에 따라 기록 삭제는 피할 수 없게 됐다. 동료 선수들도 덩달아 선의의 피해자가 됐다. 팀 추월에서 함께 3위에 오른 동료들도 메달을 박탈당하게 된 것이다.

물론 A 선수 역시 억울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이제 갓 대학생이 된 어린 선수을 좌절시킬 수도 있었던 사건이다. 다행히 그 이후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따기도 했던 A 선수는 전도유망한 차세대 선수이기도 하다.

[연관 기사] [단독] “중국서 음식 먹고 도핑 검출”…성적만 박탈

이 같은 어처구니 없는 사실은 KBS의 단독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대한빙상경기연맹에서는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팀 B 감독은 취재진의 사실 확인에 대해 처음에는 "그런 일 없다"고 잘라 말했다. A 선수의 이름을 언급하고서야 취재진에 사실을 인정했다.

B 감독은 "중국이나 카자흐스탄에 가서 많은 양의 고기를섭취하면 도핑 적발 수치가 나올 수 있다고 하더라. 처벌은 면했지만 선수에게 좋은 일도 아니고 하니까 지도자로서는 숨길 수 밖에 없었다"고 호소했다.

다른 종목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지난 2010년 일본컵 로드 사이클 대회에 출전했던 한 남자 선수도 도핑에서 클렌부테롤이 적발됐다. 이 선수는 일본 입국 3일 전 중국에서 열린 투르 드 베이징 대회에 참가했다. 결국, 이 클렌부테롤은 오염된 고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정됐고, 이 선수는 징계를 받지 않았다.

A 선수의 도핑 적발은 쉬쉬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 체육회 차원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조직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할 사안이다. 중국반도핑위원회는 자국 선수들에게 '오염된 고기를 섭취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경계령까지 내린 바 있다. 메달을 향해 흘린 땀이 헛되이 되지 않기 위해서, 국가대표로서 억울하게 명예가 실추되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지원과 예방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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