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반도체 직업병’ 10년 전쟁…삼성은 ‘진실’을 말했나?

입력 2017.03.25 (07:09) 수정 2017.03.25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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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기흥공장(반도체)에서 일했던 황유미 씨가 백혈병으로 숨진 지 10년이 됐습니다. 삼성과 유가족, 정부 간에 그간 많은 조사와 협의, 소송 등이 이뤄졌음에도 '반도체 직업병'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10년 전 산재 처리를 받도록 해달라는 황유미 씨 측 요청에 대해 삼성전자의 반응은 "삼성 반도체공장은 안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10년 간 질병으로 산업재해 판정을 받은 삼성 반도체 노동자는 16명(확정 13명, 1심 승소 3명)입니다. 근로복지공단이나 법원이 이들의 근로환경과 질병이 인과관계가 있음을 인정한 겁니다.

백혈병과 림프종, 유방암, 난소암, 폐암 등 병명도 다양합니다. 이달 들어서는 뇌종양과 불임에 대해 처음으로 산재 판정이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근로환경과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삼성전자가 건네는 사과와 보상은 '원인과 관계없이 근로자의 아픔을 돌보는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반도체 직업병 논란과 관련된 삼성전자의 인식과 판단은 얼마나 타당할까요? 지난 10년간 축적돼온 정부기관 자료와 법원 판결문을 토대로 따져보겠습니다.

반도체 백혈병 논란의 '오해와 진실'

삼성반도체이야기라는 인터넷사이트가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와 관련해 운영하는 홍보 블로그입니다. 메인페이지 오른쪽에 '반도체 백혈병 논란의 오해와 진실'이라는 코너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클릭하면 다음 화면이 나옵니다.


2012년 개설된 이 코너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잘못된 주장으로 근거없이 매도당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며 "삼성 반도체를 둘러싼 외부의 오해와 그에 대한 진실을 전하겠다"고 합니다.

반도체 직업병 논쟁과 관련한 삼성의 인식과 판단이 이곳에 모여있습니다. 삼성전자가 이곳에서 밝힌 여러 '진실' 가운데 핵심적인 3가지를 들여다보겠습니다.


'벤젠'은 10년 전쟁의 첫 단추인 황유미 씨 사건의 산재 소송에서 핵심 쟁점이 된 발암물질입니다. 2008년 국정감사에 삼성전자 안재근 전무가 출석했습니다. 반도체 공장에서 벤젠의 사용 여부를 묻는 질문에 안 전무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라고 답변합니다.

그런데 2009년 서울대 산학협력단 조사와 2012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조사에서 벤젠이 검출됩니다. 그러자, 삼성전자는 위와 같이 "벤젠이 검출됐다지만 작업자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 다른 검사에서는 검출되지 않았다"는 게 '진실'이라고 말합니다.

백혈병 사망자인 황유미 씨와 이숙영 씨에 대한 산재 소송에서 재판부는 삼성이 말한 '벤젠 검출의 진실'을 다각도로 조사하고 검증했습니다. 4년에 걸친 소송에서 법원은 황 씨 등이 일하는 과정에서 벤젠 등에 노출됐으며 이로 인해 백혈병에 걸렸을 개연성을 인정하고 산재 판정을 내렸습니다. 1심도, 2심도 판결은 같았고,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받아들여 상고를 포기했습니다.

63쪽에 이르는 판결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삼성전자가 게시한 '벤젠 검출의 진실'과 관련된 부분이 있습니다.


법원은 삼성전자가 밝힌 '진실'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법원의 판결 역시 '과학적이지 않은 일부의 주장'에 불과할까요?


삼성전자가 "건강과 관련된 모든 법규를 엄격하게 준수하고 있다"고 밝힌 지 6개월 뒤에, 고용노동부가 다음과 같은 보도자료를 내놓습니다.

‘삼성전자 화성공장 특별감독’ 결과 보도자료(2013. 3. 4)‘삼성전자 화성공장 특별감독’ 결과 보도자료(2013. 3. 4)

보도자료에서 보이듯, 고용노동부는 삼성전자 화성공장(반도체)에 대해 "총체적인 안전보건관리 부실이 드러났다"고 규정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안이 1,934건. 단일 공장으로서는 사상 최대 규모였습니다.

대규모 법규 위반이 드러나자, 정부는 기흥과 온양공장에 대해서도 안전보건 진단을 했습니다. 황유미 씨를 비롯해 직업병 피해 제보가 가장 많이 나온 곳이 기흥공장입니다. 기흥공장 진단보고서 가운데 반도체 직업병 논란과 밀접한 '화학물질 관리분야'에 대한 총평을 보겠습니다.


기흥공장 진단보고서에 기재된 법규 위반사항도 화성공장 못지않게 다양하지만, 삼성전자는 영업비밀이라며 진단보고서의 대부분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KBS가 단독 입수한 비공개 자료에는 "발암물질에 노출될 수 있음을 알리는 경고표시 누락(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의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건강과 관련된 모든 법규를 엄격하게 준수하고 있다는 삼성전자 측 '진실'과 산업안전보건법을 대규모로 위반했고 수차례 지적됐는데도 개선하지 않는다는 정부 기관 측 '진실' 가운데 어느 쪽이 진짜 진실일까요?


산재 소송에서 원고(노동자 측)가 산재를 입증하기 위해 회사 측 자료가 필요하다고 요청하면, 재판부가 이를 검토해 그 필요성이 인정될 경우에 회사에 자료 제출을 요구합니다. 즉 해당 자료가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주체는 노동자도, 사업주도 아닌 재판부인 겁니다.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반도체 직업병 산재 소송에서 법원이 요구한 자료 가운데 13건을 "사건과 관련이 없는 자료"라며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재판부가 그 필요성을 인정해서 요청한 자료들을 삼성전자가 '관련이 없다'며 내주지 않은 것입니다.

사례를 보겠습니다. 지난해 3월 서울고등법원은, 뇌종양으로 숨진 삼성반도체 노동자 이윤정 씨 유족의 산재 소송에서, 삼성의 자체 보상절차에 접수된 뇌종양 사례가 몇 건인지 제출하도록 요구했습니다. 동일한 질병이 얼마나 발생했는지를 아는 것은 질병의 업무 관련성을 따질 때 중요한 요소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삼성은 "사건과 관련이 없다"며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법원이 법적 강제력이 높은 문서제출 '명령'을 내렸고, 삼성은 그제야 해당 자료를 제출했습니다.

하나 더. 지난달 서울행정법원은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다발성경화증 등의 질환이 발병한 김미선 씨에 대해 업무와 질병이 인과관계가 있다며 산재 판정을 내렸습니다. 당시 내놓은 판결문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산재 소송은 노동자와 근로복지공단 간 소송이고, 사업주는 제3자입니다. 따라서 법원이 판결문에 사업주의 잘못을 적시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정부기관의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왔다는 '진실'을 밝힌 삼성전자를 법원은 왜 판결문에서 비판했을까요?

"결함이 많은데도 스스로의 수준이 높은 것으로 판단"

우리나라 대표기업인 삼성전자가 법원의 판결도, 정부기관의 조사 결과도 외면하며 '삼성만의 진실'을 외치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글로벌 대기업의 자부심과 막대한 이익을 고려한다면 직원의 건강과 생명을 경시한다거나 돈 좀 아껴보겠다고 그러는 건 아닐 겁니다.

위에서 언급한, 삼성전자가 영업비밀이 많다며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기흥공장 진단보고서에 그 궁금증을 풀어줄 단서가 들어있습니다. 삼성 반도체의 '안전보건 문화'에 대한 산업안전보건공단의 평가가 그것입니다.


첨단산업을 자랑하는 초일류 기업에 대해 전문가 그룹이 내린 평가치고는 충격적입니다. 삼성 반도체의 이런 문화가 직업병 논란에 대해서도 '나만의 진실'을 고집케하는 동력일지 모릅니다.

반도체 직업병 10년..."삼성전자는 노동환경이 안전함을 입증하지 못했다"

반도체 직업병 논쟁이 10년을 끌어오고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일반 시민들은 그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내 삶과 직접 관련이 없고, 내용은 복잡하고, '귀족 시위꾼' 운운하는 얘기도 들려오니 일각에서는 '이제 그만하면 됐지'라는 피로감도 토로합니다.

하지만, 이달 들어서만 새로운 질병에서 산재 판정 2건이 나왔습니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이번 피해자들도 특별한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 일상적 업무를 하다 병에 걸렸습니다.

한창 공부할 나이에 '산업역군'으로 일했던 황유미 씨는 국정감사장에서 "벤젠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증언했던 삼성전자와 업무 관련성을 다투는 동안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했고, 세상을 떠난 뒤에야 업무 관련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질병이 산업재해인지 아닌지를 묻는 건 삼성전자를 처벌하기 위해서도,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노동자가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다른 피해자가 나오는 걸 예방하기 위해서 일뿐입니다.

반도체 직업병 전쟁 10년, "삼성 반도체 공장은 그때도 안전했고, 지금도 안전하다"는 삼성의 '진실'에 대해 UN 인권이사회는 지난해 9월 총회에서 특별보고관이 내놓은 다른 '진실'을 채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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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반도체 직업병’ 10년 전쟁…삼성은 ‘진실’을 말했나?
    • 입력 2017-03-25 07:09:59
    • 수정2017-03-25 09:07:48
    취재후·사건후
삼성전자 기흥공장(반도체)에서 일했던 황유미 씨가 백혈병으로 숨진 지 10년이 됐습니다. 삼성과 유가족, 정부 간에 그간 많은 조사와 협의, 소송 등이 이뤄졌음에도 '반도체 직업병'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10년 전 산재 처리를 받도록 해달라는 황유미 씨 측 요청에 대해 삼성전자의 반응은 "삼성 반도체공장은 안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10년 간 질병으로 산업재해 판정을 받은 삼성 반도체 노동자는 16명(확정 13명, 1심 승소 3명)입니다. 근로복지공단이나 법원이 이들의 근로환경과 질병이 인과관계가 있음을 인정한 겁니다.

백혈병과 림프종, 유방암, 난소암, 폐암 등 병명도 다양합니다. 이달 들어서는 뇌종양과 불임에 대해 처음으로 산재 판정이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근로환경과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삼성전자가 건네는 사과와 보상은 '원인과 관계없이 근로자의 아픔을 돌보는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반도체 직업병 논란과 관련된 삼성전자의 인식과 판단은 얼마나 타당할까요? 지난 10년간 축적돼온 정부기관 자료와 법원 판결문을 토대로 따져보겠습니다.

반도체 백혈병 논란의 '오해와 진실'

삼성반도체이야기라는 인터넷사이트가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와 관련해 운영하는 홍보 블로그입니다. 메인페이지 오른쪽에 '반도체 백혈병 논란의 오해와 진실'이라는 코너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클릭하면 다음 화면이 나옵니다.


2012년 개설된 이 코너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잘못된 주장으로 근거없이 매도당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며 "삼성 반도체를 둘러싼 외부의 오해와 그에 대한 진실을 전하겠다"고 합니다.

반도체 직업병 논쟁과 관련한 삼성의 인식과 판단이 이곳에 모여있습니다. 삼성전자가 이곳에서 밝힌 여러 '진실' 가운데 핵심적인 3가지를 들여다보겠습니다.


'벤젠'은 10년 전쟁의 첫 단추인 황유미 씨 사건의 산재 소송에서 핵심 쟁점이 된 발암물질입니다. 2008년 국정감사에 삼성전자 안재근 전무가 출석했습니다. 반도체 공장에서 벤젠의 사용 여부를 묻는 질문에 안 전무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라고 답변합니다.

그런데 2009년 서울대 산학협력단 조사와 2012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조사에서 벤젠이 검출됩니다. 그러자, 삼성전자는 위와 같이 "벤젠이 검출됐다지만 작업자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 다른 검사에서는 검출되지 않았다"는 게 '진실'이라고 말합니다.

백혈병 사망자인 황유미 씨와 이숙영 씨에 대한 산재 소송에서 재판부는 삼성이 말한 '벤젠 검출의 진실'을 다각도로 조사하고 검증했습니다. 4년에 걸친 소송에서 법원은 황 씨 등이 일하는 과정에서 벤젠 등에 노출됐으며 이로 인해 백혈병에 걸렸을 개연성을 인정하고 산재 판정을 내렸습니다. 1심도, 2심도 판결은 같았고,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받아들여 상고를 포기했습니다.

63쪽에 이르는 판결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삼성전자가 게시한 '벤젠 검출의 진실'과 관련된 부분이 있습니다.


법원은 삼성전자가 밝힌 '진실'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법원의 판결 역시 '과학적이지 않은 일부의 주장'에 불과할까요?


삼성전자가 "건강과 관련된 모든 법규를 엄격하게 준수하고 있다"고 밝힌 지 6개월 뒤에, 고용노동부가 다음과 같은 보도자료를 내놓습니다.

‘삼성전자 화성공장 특별감독’ 결과 보도자료(2013. 3. 4)
보도자료에서 보이듯, 고용노동부는 삼성전자 화성공장(반도체)에 대해 "총체적인 안전보건관리 부실이 드러났다"고 규정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안이 1,934건. 단일 공장으로서는 사상 최대 규모였습니다.

대규모 법규 위반이 드러나자, 정부는 기흥과 온양공장에 대해서도 안전보건 진단을 했습니다. 황유미 씨를 비롯해 직업병 피해 제보가 가장 많이 나온 곳이 기흥공장입니다. 기흥공장 진단보고서 가운데 반도체 직업병 논란과 밀접한 '화학물질 관리분야'에 대한 총평을 보겠습니다.


기흥공장 진단보고서에 기재된 법규 위반사항도 화성공장 못지않게 다양하지만, 삼성전자는 영업비밀이라며 진단보고서의 대부분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KBS가 단독 입수한 비공개 자료에는 "발암물질에 노출될 수 있음을 알리는 경고표시 누락(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의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건강과 관련된 모든 법규를 엄격하게 준수하고 있다는 삼성전자 측 '진실'과 산업안전보건법을 대규모로 위반했고 수차례 지적됐는데도 개선하지 않는다는 정부 기관 측 '진실' 가운데 어느 쪽이 진짜 진실일까요?


산재 소송에서 원고(노동자 측)가 산재를 입증하기 위해 회사 측 자료가 필요하다고 요청하면, 재판부가 이를 검토해 그 필요성이 인정될 경우에 회사에 자료 제출을 요구합니다. 즉 해당 자료가 사건과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주체는 노동자도, 사업주도 아닌 재판부인 겁니다.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반도체 직업병 산재 소송에서 법원이 요구한 자료 가운데 13건을 "사건과 관련이 없는 자료"라며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재판부가 그 필요성을 인정해서 요청한 자료들을 삼성전자가 '관련이 없다'며 내주지 않은 것입니다.

사례를 보겠습니다. 지난해 3월 서울고등법원은, 뇌종양으로 숨진 삼성반도체 노동자 이윤정 씨 유족의 산재 소송에서, 삼성의 자체 보상절차에 접수된 뇌종양 사례가 몇 건인지 제출하도록 요구했습니다. 동일한 질병이 얼마나 발생했는지를 아는 것은 질병의 업무 관련성을 따질 때 중요한 요소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삼성은 "사건과 관련이 없다"며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법원이 법적 강제력이 높은 문서제출 '명령'을 내렸고, 삼성은 그제야 해당 자료를 제출했습니다.

하나 더. 지난달 서울행정법원은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다발성경화증 등의 질환이 발병한 김미선 씨에 대해 업무와 질병이 인과관계가 있다며 산재 판정을 내렸습니다. 당시 내놓은 판결문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산재 소송은 노동자와 근로복지공단 간 소송이고, 사업주는 제3자입니다. 따라서 법원이 판결문에 사업주의 잘못을 적시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정부기관의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왔다는 '진실'을 밝힌 삼성전자를 법원은 왜 판결문에서 비판했을까요?

"결함이 많은데도 스스로의 수준이 높은 것으로 판단"

우리나라 대표기업인 삼성전자가 법원의 판결도, 정부기관의 조사 결과도 외면하며 '삼성만의 진실'을 외치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글로벌 대기업의 자부심과 막대한 이익을 고려한다면 직원의 건강과 생명을 경시한다거나 돈 좀 아껴보겠다고 그러는 건 아닐 겁니다.

위에서 언급한, 삼성전자가 영업비밀이 많다며 공개를 거부하고 있는 기흥공장 진단보고서에 그 궁금증을 풀어줄 단서가 들어있습니다. 삼성 반도체의 '안전보건 문화'에 대한 산업안전보건공단의 평가가 그것입니다.


첨단산업을 자랑하는 초일류 기업에 대해 전문가 그룹이 내린 평가치고는 충격적입니다. 삼성 반도체의 이런 문화가 직업병 논란에 대해서도 '나만의 진실'을 고집케하는 동력일지 모릅니다.

반도체 직업병 10년..."삼성전자는 노동환경이 안전함을 입증하지 못했다"

반도체 직업병 논쟁이 10년을 끌어오고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일반 시민들은 그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내 삶과 직접 관련이 없고, 내용은 복잡하고, '귀족 시위꾼' 운운하는 얘기도 들려오니 일각에서는 '이제 그만하면 됐지'라는 피로감도 토로합니다.

하지만, 이달 들어서만 새로운 질병에서 산재 판정 2건이 나왔습니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이번 피해자들도 특별한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 일상적 업무를 하다 병에 걸렸습니다.

한창 공부할 나이에 '산업역군'으로 일했던 황유미 씨는 국정감사장에서 "벤젠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증언했던 삼성전자와 업무 관련성을 다투는 동안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했고, 세상을 떠난 뒤에야 업무 관련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질병이 산업재해인지 아닌지를 묻는 건 삼성전자를 처벌하기 위해서도,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노동자가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다른 피해자가 나오는 걸 예방하기 위해서 일뿐입니다.

반도체 직업병 전쟁 10년, "삼성 반도체 공장은 그때도 안전했고, 지금도 안전하다"는 삼성의 '진실'에 대해 UN 인권이사회는 지난해 9월 총회에서 특별보고관이 내놓은 다른 '진실'을 채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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