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북한] ‘완공 임박’ 려명거리…김정은 집착 이유는?

입력 2017.03.25 (08:07) 수정 2017.03.25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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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평양에서는 우리의 뉴타운식 재개발을 거리 단위로 하고 있는데요.

최근에는 김정은 정권 속도전의 상징인 려명거리가 막바지 공사에 한창입니다.

1년도 채 안 돼 70층 건물을 짓기도 한다는 건데, 김정은도 수시로 들러서 완공을 독촉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대북제재와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북한 정권이 유난스레 려명거리 건설에 집착하는 이유를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평양 시내 한 복판에 위치한 대규모 공사 현장.

각종 중장비가 오가며 흙과 자재를 나르고, 건설노동자와 군인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건물 내부에서도 마감 공사가 한창인 모습.

최근 북한 매체들이 완공을 앞두고 있다며 연일 속도전의 성과를 선전하고 있는 려명거리 건설 현장이다.

<녹취> 한정철 : “우리는 이 려명거리 건설을 태양절(김일성 생일) 전으로 무조건 완공함으로써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아 보려는 적대 세력들에게 무자비한 철추를 내리고 우리 조국의 위력을 온 세상에 힘 있게 과시하겠습니다.”

지난 1월, 려명거리 건설 현장을 시찰한 김정은.

당시 김정은은 오는 4월 15일, 김일성의 105회 출생일인 이른바 ‘태양절’까지 무조건 완공하라고 지시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달 8일) :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려명거리 건설을 태양절까지 무조건 완공하자고 열렬히 호소하셨습니다.”

완공 시점을 못 박은 최고 권력자의 지시에 맞춰 려명거리 속도전에 한층 가속도가 붙었다.

두 달도 되지 않아 최근 다시 현장을 방문한 김정은.

완공 시점까지 언급하며 완공을 재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뷰> 조봉현(IBK 경제연구소 부소장) : “려명거리를 완공해서 김정은 시대의 최고의 업적으로 내세우기 위한 측면에서 태양절에 맞춘 것으로 보입니다. 평양의 일부에 김정은 시대에 와서 신도시를 조성함으로써 평양의 시대를 새로 열고 과거 할아버지, 아버지와는 다른 새로운 변모를 보여주기 위한 그런 측면에서 려명거리 조성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북한의 심장이자 거대한 전시장으로도 불리는 평양.

려명거리가 들어서는 곳은 김일성, 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과 영생탑 등 북한의 대표적인 우상화 건축물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도로 양쪽으로 70층 높이의 고층 아파트를 비롯해 수천세대의 주거시설과 각종 편의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북한이 대대적인 착공식을 열고 려명거리 조성에 들어간 것은 김정은의 대관식인 7차 노동당 대회 직전인 지난해 4월.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본격화되던 시기였다.

<녹취> 길명호(北 군인/지난해 4월/조선중앙TV) : “원수들의 제재책동이 극도에 달한 시기에 려명거리 건설이 선포되는 것 자체부터가 원수들의 숨통을 조이는 것이며...”

강력한 대북제재 국면에서 주민들을 틀어쥐는 동시에 지배 정당성을 위한 김정은의 치적이 필요했던 상황.

착공 1년도 채 되지 않는 2016년 말을 완공 목표로 세웠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해 4월) : “만리마의 속도로 려명거리 건설을 제 기일에 무조건 끝내자! (끝내자! 끝내자! 끝내자!!)”

이후 북한 매체들은 연일 려명거리 관련 보도를 쏟아냈다.

‘기적의 창조’라 부르며 유례없는 속도전을 선전했다.

<녹취> 오농운(지난해 5월/조선중앙TV) : “우리 부대는 이런 초고층 살림집 건설이 처음입니다. 앉으면 배우고 일어서면 실천하자 이런 각오를 가지고 적극 노력했습니다. 하루에 한 층씩 살림집 건설을 해 나갈 수 있습니다.”

수많은 인력이 동원돼 그야말로 불철주야 진행된 공사.

착공 두 달 만에 15층짜리 건물 골조가 완공됐다 보도했고, 한달여 뒤엔 려명거리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70층 고층 빌딩의 골조공사 완료 소식까지 전한다.

<녹취> 리용익(지난해 7월/조선중앙TV) : “우리는 오늘 골조 공사를 시작해서 74일 만에 초고층 살림집 골조공사를 끝내게 되었습니다. 매일 한 층씩 최고 18시간 만에 한층 씩 올렸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여름, 태풍 라이언록이 함경북도를 강타하면서 공사에 차질이 빚어졌다.

가옥 수만 채가 파괴되고 10만명 넘는 이재민이 발생해 복구 지원이 시급한 상황.

결국 북한 당국은 려명거리 건설을 중단하기에 이른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해 9월) : “오늘 200일 전투의 주타격방향, 최전방은 북부피해복구 전선이다. 우리 당은 완공을 눈앞에 둔 려명거리 건설도 중지하고 여기에 집중하였던 일체 건설역량과 설비 자재를 북부 전선에 돌리는 조치부터 취하였다.”

여기에 강력한 대북제재까지 겹치며 연말 완공이라는 야심찬 목표는 결국 무산됐다.

하지만 김정은은 연초 신년사에서 려명거리를 주요 사업으로 언급하며 사업 완수에 다시 박차를 가했다.

<녹취> 김정은(2017년 신년사) : “건설부문에서는 려명거리건설을 최상의 수준에서 완공하고 교육문화시설과 살림집들을 더 많이 훌륭히 일떠세워야 합니다.”

김정은은 왜 이토록 려명거리에 집착하는 것일까?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최대 70층짜리의 빌딩까지 포함을 하고 있기 때문에 평양에 스카이라인이 많이 달라지게 됩니다. 집권 5년을 넘어서고 있지만 북한 경제의 펀더멘탈이나 아니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데 전혀 의미있는 진전이 없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김정은 입장에서는 상징적으로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치적 사업을 대규모 토목 공사 쪽으로 지금 선택을 한 거고요.”

수도 평양을 개발해 지도자의 업적을 쌓는 것은 북한에서 계속 이어져 온 현상이다.

1950년대, 김일성은 6.25 전쟁 직후 이른바 ‘평양속도’를 구호로 내걸고 폐허가 된 도시 재건에 집중했다.

1970년대 후계자 신분이던 김정일 역시 평양의 건설 사업을 주도하며 창광거리, 광복거리, 통일거리 등 대규모 거리를 조성했다.

<녹취> 北 기록영화 ‘위대한 전환의 1970년대’ : “천리마거리, 낙원거리들이 연이어 짧은 기간에 웅장 화려하게 일떠섰으니 일찍이 없었던 일대 융성 번영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 들어 대규모 토목공사와 기념비 건설에 집착하는 경향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일일이 건설 현장을 시찰하며 사소한 것에도 간부들을 질책하는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녹취> 조선중앙TV(2012년 6월) : “유희장 구내의 보도블록 그 사이로 돋아난 잡풀을 몸소 뽑으시며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려는 양심이 있다면 이렇게 일할 수 있는가라고 격하신 어조로 말씀하시었습니다.”

2014년 11월엔 평양 순안국제공항을 찾아 자신의 지적사항이 개선되었는지를 확인하기까지 했다.

<녹취> 조선중앙TV(2014년 11월) : “다른 나라의 좋은 것들을 받아들이면서도 주체성, 민족성이 살아나게 마감하라고 과업을 주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지적하시었습니다.”

이후 공항 설계 총책임자인 마원춘 국방위 설계국장이 양강도 산골 농장으로 추방되기도 했다.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김일성처럼 항일 빨치산이라고 하는 정치적 자산도 없고 김정은에게는. 또 아버지 김정일처럼 수십 년간에 권력을 승계하는 준비 기간도 없었기 때문에 상당한 권력 구조에 권위의 취약성을 가지고 있는 김정은이 대규모의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기념비적인 건축물 토목공사 이런 데서 주력을 하고 있고요.”

결국 보여주기식, 과시성 사업으로 대규모 건설만한 게 없다는 것.

그러나 무리한 속도전 탓에 부작용도 잇따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부실공사다.

2014년 5월 평양 평천지구에서 건설중이던 23층짜리 아파트가 붕괴돼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북한 당국은 공사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아 생긴 일이라고 했지만 실제는 속도만을 강조한 부실공사가 원인으로 지적됐다.

<녹취> 북한 주민(2014년 5월/음성변조) : “서로 경쟁을 시켰으니까.. 경쟁에서 이기려고 질보다 속도 높이고... 질 떨어지고 부실 할 수 밖에 없죠.”

<녹취> 조선중앙TV : “전국 각지의 수많은 사람들이 성의껏 마련한 지원물자를 가지고 려명거리 건설장을 찾아 건설자들을 적극 고무해 주고 있습니다.”

자원의 편중으로 인한 경제구조의 왜곡도 심각한 문제로 꼽힌다.

막대한 자금이 동원되는 가운데, 부족한 자금을 국경지역 주민들에게 부담 지우고 있다고자유아시아방송이 보도하기도 했다.

<인터뷰> 조봉현(IBK 경제연구소 부소장) : “여기에 들어가는 엄청난 자재와 또 재원 같은 경우는 결국은 지방으로부터 조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지역 단위에 있는 이러한 어떤 자재나 그다음에 지역 단위에서 생산된 돈 자체가 대부분 평양을 중심으로 려명거리라든지 대대적인 건설 사업에 투입기 때문에 지역 경제는 더욱더 나빠질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은 평양과 지방간에 어떤 양극화, 갈등 문제도 앞으로 더욱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래도 부족한 돈과 자원은 결국 북한의 신흥 부자 이른바 ‘돈주’에게서 조달하고 있다.

<인터뷰> 차리혁(2014년 탈북) : “일명 돈주들 물주들이 한목을 좀 하죠. 돈 많은 사람들은 뭐 이때가 기회니까 그때 한 번만 잘 보이면 타이밍만 잘 맞춰버리면 이제 정치적으로 크게 상도 받을 수 있고 자기가 좀 발전, 자녀의 발전에도 좀 큰 이런 있으니까 그때 돈을 좀 투자해가지고 무슨 큰 상을 바라고 그런 걸 하는 거죠.”

이른바 돈 많은 개인 자본가들의 투자를 받는 것인데 이는 자연스럽게 일종의 투기로 이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인터뷰> 조봉현(IBK 경제연구소 부소장) : “돈주로부터 자금을 흡수하고 그 다음에 이런 건설 사업이 완공이 되면 거기에 대한 특혜 형태로 돈주에게 권한을 주기 때문에, 하나를 투자하고 나중에는 열 개을 얻어낼 수 있는, 돈주들 입장에서 훨씬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 중에 하나가 이 여명거리 사업입니다.”

결국 돈이 되는 분양권이나 이권은 자금을 댄 돈주들에게 넘어가는 일종의 정경유착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무상이나 다름없는 노력 동원과 물자 상납을 강요받은 주민들은 정작 혜택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 빈익빈 부익부가 더 심해지는 불평등, 부패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 차리혁(2014년 탈북) : “평백성들은 그런 집에 들어가기는커녕 평양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도 없어요. 이렇게 해버리니까 아니 평양에 아무리 좋은 아파트를 건설해도 우리 피와 땀만 바치지. 우리는 거기 살 수가 없는 존재들이잖아요. 1226 차라리 그게 세울 바에는 개인들을 위해서 뭐 하나 해주는 게 더 좋아하죠. 쌀 1키로 주는 게...”

완공 목표일까지 3주를 남겨둔 려명거리.

그러나 일부 엘리트 간부나 특권층에게만 허락될 북한식 뉴타운의 실상이 드러날수록 주민들의 불만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소수만의 특혜 계층을 위한 려명거리 건설을 위해서 일반적인, 북한의 일반적인 정상적인 인민 경제는 모두 교란이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피해는 인민 전체에게 돌아오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겉으로는 과시적으로 정치적인 어떤 업적을 내세울 수는 있지만 그러나 집권 기반을 강화하는 그런 어떤 기층적인 효과는 전혀 없다 이렇게 볼 수 있죠. 민심은 그만큼 더 멀어져 간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우리의 식목일인 북한 식수절을 앞두고 북한 당국은 려명거리 건설 현장에서 외국인 식수 행사를 열며 체제 선전을 했다.

려명거리는 향후 김정은 체제가 대내외에 과시할 대표 상징물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그 실상은 일반 주민들의 민생과는 거리가 먼 북한식 속도전의 상징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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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즈업 북한] ‘완공 임박’ 려명거리…김정은 집착 이유는?
    • 입력 2017-03-25 08:08:59
    • 수정2017-03-25 08: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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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평양에서는 우리의 뉴타운식 재개발을 거리 단위로 하고 있는데요.

최근에는 김정은 정권 속도전의 상징인 려명거리가 막바지 공사에 한창입니다.

1년도 채 안 돼 70층 건물을 짓기도 한다는 건데, 김정은도 수시로 들러서 완공을 독촉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클로즈업 북한>에서는 대북제재와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북한 정권이 유난스레 려명거리 건설에 집착하는 이유를 분석했습니다.

<리포트>

평양 시내 한 복판에 위치한 대규모 공사 현장.

각종 중장비가 오가며 흙과 자재를 나르고, 건설노동자와 군인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건물 내부에서도 마감 공사가 한창인 모습.

최근 북한 매체들이 완공을 앞두고 있다며 연일 속도전의 성과를 선전하고 있는 려명거리 건설 현장이다.

<녹취> 한정철 : “우리는 이 려명거리 건설을 태양절(김일성 생일) 전으로 무조건 완공함으로써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아 보려는 적대 세력들에게 무자비한 철추를 내리고 우리 조국의 위력을 온 세상에 힘 있게 과시하겠습니다.”

지난 1월, 려명거리 건설 현장을 시찰한 김정은.

당시 김정은은 오는 4월 15일, 김일성의 105회 출생일인 이른바 ‘태양절’까지 무조건 완공하라고 지시했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달 8일) :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려명거리 건설을 태양절까지 무조건 완공하자고 열렬히 호소하셨습니다.”

완공 시점을 못 박은 최고 권력자의 지시에 맞춰 려명거리 속도전에 한층 가속도가 붙었다.

두 달도 되지 않아 최근 다시 현장을 방문한 김정은.

완공 시점까지 언급하며 완공을 재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터뷰> 조봉현(IBK 경제연구소 부소장) : “려명거리를 완공해서 김정은 시대의 최고의 업적으로 내세우기 위한 측면에서 태양절에 맞춘 것으로 보입니다. 평양의 일부에 김정은 시대에 와서 신도시를 조성함으로써 평양의 시대를 새로 열고 과거 할아버지, 아버지와는 다른 새로운 변모를 보여주기 위한 그런 측면에서 려명거리 조성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북한의 심장이자 거대한 전시장으로도 불리는 평양.

려명거리가 들어서는 곳은 김일성, 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과 영생탑 등 북한의 대표적인 우상화 건축물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도로 양쪽으로 70층 높이의 고층 아파트를 비롯해 수천세대의 주거시설과 각종 편의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북한이 대대적인 착공식을 열고 려명거리 조성에 들어간 것은 김정은의 대관식인 7차 노동당 대회 직전인 지난해 4월.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본격화되던 시기였다.

<녹취> 길명호(北 군인/지난해 4월/조선중앙TV) : “원수들의 제재책동이 극도에 달한 시기에 려명거리 건설이 선포되는 것 자체부터가 원수들의 숨통을 조이는 것이며...”

강력한 대북제재 국면에서 주민들을 틀어쥐는 동시에 지배 정당성을 위한 김정은의 치적이 필요했던 상황.

착공 1년도 채 되지 않는 2016년 말을 완공 목표로 세웠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해 4월) : “만리마의 속도로 려명거리 건설을 제 기일에 무조건 끝내자! (끝내자! 끝내자! 끝내자!!)”

이후 북한 매체들은 연일 려명거리 관련 보도를 쏟아냈다.

‘기적의 창조’라 부르며 유례없는 속도전을 선전했다.

<녹취> 오농운(지난해 5월/조선중앙TV) : “우리 부대는 이런 초고층 살림집 건설이 처음입니다. 앉으면 배우고 일어서면 실천하자 이런 각오를 가지고 적극 노력했습니다. 하루에 한 층씩 살림집 건설을 해 나갈 수 있습니다.”

수많은 인력이 동원돼 그야말로 불철주야 진행된 공사.

착공 두 달 만에 15층짜리 건물 골조가 완공됐다 보도했고, 한달여 뒤엔 려명거리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70층 고층 빌딩의 골조공사 완료 소식까지 전한다.

<녹취> 리용익(지난해 7월/조선중앙TV) : “우리는 오늘 골조 공사를 시작해서 74일 만에 초고층 살림집 골조공사를 끝내게 되었습니다. 매일 한 층씩 최고 18시간 만에 한층 씩 올렸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여름, 태풍 라이언록이 함경북도를 강타하면서 공사에 차질이 빚어졌다.

가옥 수만 채가 파괴되고 10만명 넘는 이재민이 발생해 복구 지원이 시급한 상황.

결국 북한 당국은 려명거리 건설을 중단하기에 이른다.

<녹취> 조선중앙TV(지난해 9월) : “오늘 200일 전투의 주타격방향, 최전방은 북부피해복구 전선이다. 우리 당은 완공을 눈앞에 둔 려명거리 건설도 중지하고 여기에 집중하였던 일체 건설역량과 설비 자재를 북부 전선에 돌리는 조치부터 취하였다.”

여기에 강력한 대북제재까지 겹치며 연말 완공이라는 야심찬 목표는 결국 무산됐다.

하지만 김정은은 연초 신년사에서 려명거리를 주요 사업으로 언급하며 사업 완수에 다시 박차를 가했다.

<녹취> 김정은(2017년 신년사) : “건설부문에서는 려명거리건설을 최상의 수준에서 완공하고 교육문화시설과 살림집들을 더 많이 훌륭히 일떠세워야 합니다.”

김정은은 왜 이토록 려명거리에 집착하는 것일까?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최대 70층짜리의 빌딩까지 포함을 하고 있기 때문에 평양에 스카이라인이 많이 달라지게 됩니다. 집권 5년을 넘어서고 있지만 북한 경제의 펀더멘탈이나 아니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데 전혀 의미있는 진전이 없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김정은 입장에서는 상징적으로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치적 사업을 대규모 토목 공사 쪽으로 지금 선택을 한 거고요.”

수도 평양을 개발해 지도자의 업적을 쌓는 것은 북한에서 계속 이어져 온 현상이다.

1950년대, 김일성은 6.25 전쟁 직후 이른바 ‘평양속도’를 구호로 내걸고 폐허가 된 도시 재건에 집중했다.

1970년대 후계자 신분이던 김정일 역시 평양의 건설 사업을 주도하며 창광거리, 광복거리, 통일거리 등 대규모 거리를 조성했다.

<녹취> 北 기록영화 ‘위대한 전환의 1970년대’ : “천리마거리, 낙원거리들이 연이어 짧은 기간에 웅장 화려하게 일떠섰으니 일찍이 없었던 일대 융성 번영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 들어 대규모 토목공사와 기념비 건설에 집착하는 경향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일일이 건설 현장을 시찰하며 사소한 것에도 간부들을 질책하는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녹취> 조선중앙TV(2012년 6월) : “유희장 구내의 보도블록 그 사이로 돋아난 잡풀을 몸소 뽑으시며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려는 양심이 있다면 이렇게 일할 수 있는가라고 격하신 어조로 말씀하시었습니다.”

2014년 11월엔 평양 순안국제공항을 찾아 자신의 지적사항이 개선되었는지를 확인하기까지 했다.

<녹취> 조선중앙TV(2014년 11월) : “다른 나라의 좋은 것들을 받아들이면서도 주체성, 민족성이 살아나게 마감하라고 과업을 주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지적하시었습니다.”

이후 공항 설계 총책임자인 마원춘 국방위 설계국장이 양강도 산골 농장으로 추방되기도 했다.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김일성처럼 항일 빨치산이라고 하는 정치적 자산도 없고 김정은에게는. 또 아버지 김정일처럼 수십 년간에 권력을 승계하는 준비 기간도 없었기 때문에 상당한 권력 구조에 권위의 취약성을 가지고 있는 김정은이 대규모의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기념비적인 건축물 토목공사 이런 데서 주력을 하고 있고요.”

결국 보여주기식, 과시성 사업으로 대규모 건설만한 게 없다는 것.

그러나 무리한 속도전 탓에 부작용도 잇따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부실공사다.

2014년 5월 평양 평천지구에서 건설중이던 23층짜리 아파트가 붕괴돼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북한 당국은 공사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아 생긴 일이라고 했지만 실제는 속도만을 강조한 부실공사가 원인으로 지적됐다.

<녹취> 북한 주민(2014년 5월/음성변조) : “서로 경쟁을 시켰으니까.. 경쟁에서 이기려고 질보다 속도 높이고... 질 떨어지고 부실 할 수 밖에 없죠.”

<녹취> 조선중앙TV : “전국 각지의 수많은 사람들이 성의껏 마련한 지원물자를 가지고 려명거리 건설장을 찾아 건설자들을 적극 고무해 주고 있습니다.”

자원의 편중으로 인한 경제구조의 왜곡도 심각한 문제로 꼽힌다.

막대한 자금이 동원되는 가운데, 부족한 자금을 국경지역 주민들에게 부담 지우고 있다고자유아시아방송이 보도하기도 했다.

<인터뷰> 조봉현(IBK 경제연구소 부소장) : “여기에 들어가는 엄청난 자재와 또 재원 같은 경우는 결국은 지방으로부터 조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지역 단위에 있는 이러한 어떤 자재나 그다음에 지역 단위에서 생산된 돈 자체가 대부분 평양을 중심으로 려명거리라든지 대대적인 건설 사업에 투입기 때문에 지역 경제는 더욱더 나빠질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은 평양과 지방간에 어떤 양극화, 갈등 문제도 앞으로 더욱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래도 부족한 돈과 자원은 결국 북한의 신흥 부자 이른바 ‘돈주’에게서 조달하고 있다.

<인터뷰> 차리혁(2014년 탈북) : “일명 돈주들 물주들이 한목을 좀 하죠. 돈 많은 사람들은 뭐 이때가 기회니까 그때 한 번만 잘 보이면 타이밍만 잘 맞춰버리면 이제 정치적으로 크게 상도 받을 수 있고 자기가 좀 발전, 자녀의 발전에도 좀 큰 이런 있으니까 그때 돈을 좀 투자해가지고 무슨 큰 상을 바라고 그런 걸 하는 거죠.”

이른바 돈 많은 개인 자본가들의 투자를 받는 것인데 이는 자연스럽게 일종의 투기로 이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인터뷰> 조봉현(IBK 경제연구소 부소장) : “돈주로부터 자금을 흡수하고 그 다음에 이런 건설 사업이 완공이 되면 거기에 대한 특혜 형태로 돈주에게 권한을 주기 때문에, 하나를 투자하고 나중에는 열 개을 얻어낼 수 있는, 돈주들 입장에서 훨씬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 중에 하나가 이 여명거리 사업입니다.”

결국 돈이 되는 분양권이나 이권은 자금을 댄 돈주들에게 넘어가는 일종의 정경유착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무상이나 다름없는 노력 동원과 물자 상납을 강요받은 주민들은 정작 혜택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 빈익빈 부익부가 더 심해지는 불평등, 부패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 차리혁(2014년 탈북) : “평백성들은 그런 집에 들어가기는커녕 평양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도 없어요. 이렇게 해버리니까 아니 평양에 아무리 좋은 아파트를 건설해도 우리 피와 땀만 바치지. 우리는 거기 살 수가 없는 존재들이잖아요. 1226 차라리 그게 세울 바에는 개인들을 위해서 뭐 하나 해주는 게 더 좋아하죠. 쌀 1키로 주는 게...”

완공 목표일까지 3주를 남겨둔 려명거리.

그러나 일부 엘리트 간부나 특권층에게만 허락될 북한식 뉴타운의 실상이 드러날수록 주민들의 불만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인터뷰> 조한범(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소수만의 특혜 계층을 위한 려명거리 건설을 위해서 일반적인, 북한의 일반적인 정상적인 인민 경제는 모두 교란이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피해는 인민 전체에게 돌아오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겉으로는 과시적으로 정치적인 어떤 업적을 내세울 수는 있지만 그러나 집권 기반을 강화하는 그런 어떤 기층적인 효과는 전혀 없다 이렇게 볼 수 있죠. 민심은 그만큼 더 멀어져 간다. 이렇게 볼 수 있어요.”

우리의 식목일인 북한 식수절을 앞두고 북한 당국은 려명거리 건설 현장에서 외국인 식수 행사를 열며 체제 선전을 했다.

려명거리는 향후 김정은 체제가 대내외에 과시할 대표 상징물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그 실상은 일반 주민들의 민생과는 거리가 먼 북한식 속도전의 상징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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