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사태와 일본의 드라마 ‘감사법인’

입력 2017.03.2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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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대우조선에 신규자금 2조 9천억 원을 포함한 5조 8천억 원을 추가 지원해 대우조선을 살리기로 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문득 일본 드라마 '감사법인'이 떠올랐다. 일본 드라마 속의 감사법인인 JP회계법인은 기업의 분식회계를 적발해 내 주주와 채권자에게 올바른 경영 정보를 전달한다.

대우조선사태에서는 외부감사인이었던 회계법인이 대우조선의 분식회계를 방조하거나 묵인한 것이 확인돼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으며, 금융감독당국의 징계를 앞두고 있다. 기업의 분식회계를 '감사인(회계법인)'이 눈감아 주면서 대우조선해양의 분식 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졌고 결국 그만큼 국민들의 혈세가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분식회계는 금융권-기업-회계법인이 결탁한 '부패의 삼각고리'

2008년 일본 NHK가 방송한 토요드라마 '감사법인'은 6부작으로 1980년대 호황기에 만들어진 자산 버블이 1990년대에 꺼지면서, 호황기의 과잉투자가 고스란히 빚으로 남은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기업들에게 돈을 빌려준 은행들의 대출은 부실채권이 됐다. 은행들은 기업들에 대한 대출금 회수에 나섰고 신규 대출을 기피했다. 기업들은 자산이나 이익은 부풀리고 손실은 줄이는 방식으로 기업실적을 과장한뒤 금융권에 뇌물을 주고 대출금 회수를 막거나 신규 대출을 받고 있었고, 이런 분식회계를 눈감아 주는 감사인(회계법인)이라는 이른바 금융권-기업-회계법인이 결탁한 '부패의 삼각 연결고리'를 드라마는 고발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JP회계법인(감사인)이 서프라이즈마트의 재무제표가 5년간 실적보고를 허위로했다는 것을 발견하고 결산을 승인하지 않으면서 시작된다. 이로 인해 서프라이즈 마트는 주가가 급락하며 상장폐지되고 결국 도산한다. 대우조선사태와 관련해 국민의 혈세가 다시 투입되는 만큼 먼저 분식회계 의혹을 받고 있었던 대우조선에 대한 자금 지원 경위에 대한규명은 제대로 한 것인지, 부패의 삼각고리를 청산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은 이뤄진 것인지 먼저 묻고 싶다.

외부감사인 '자유 수임제'가 분식회계 양산

검찰은 현재 수조 원 대의 분식회계 의혹을 받고 있는 대우조선에 대해 2015년 10월 청와대 서별관 회의에서 4조 2천억 원의 지원을 결정한 과정과 외부감사인이었던 회계법인의 방조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검찰의 수사도 수사지만 부패의 삼각고리를 청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외부 감사인(회계법인)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외부 감사인 관련 제도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현실적으로 일본 드라마에 나오는 JP회계법인과 같은 감사인(회계법인)이 존재할 수 없다. 경영자(기업)가 감사인(회계법인)을 마음대로 정하다보니(자유수임제) 회계법인들은 일감 수주를 위해 경영자(기업)의 분식회계를 방조하고 묵인하는 '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외부감사인(회계법인)이 대우조선의 분식회계를 묵인하거나 방조한 대우조선 사태의 근본 원인이다.

외부감사인 정부가 지정해야

분식회계를 막으려면 외부감사인을 기업이 아니라 정부가 지정하도록 '외부 감사에 관한 법률'(이하 외감법)을 고쳐야 한다. 하지만 국회 정무위는 이번주에도 법안심사소위에서 법 개정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발의된 외감법 개정안은 모두 15건인데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이하 증선위)에서 상장기업의 외부감사인을 지정하도록 하고, 기업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회계처리기준을 위반해 재무제표를 작성한 경우 잘못 작성된 금액의 10% 범위안에서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분식회계를 종식시킬 수 있는 강력한 법안들이다.

지난 1월 정부는 대형사 또는 분식회계 우려가 높은 상장사에 대해서는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6년에 1회씩 외부감사법인을 교체하는 선택지정제를 도입하는 회계 투명성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민주당 박찬대의원은 정부가 상장기업에 대해서는 외부감사인을 모두 지정하는 전면 지정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외감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금융위 김용범 사무처장은 정부 방안대로 하면 대주주지분이 과도하거나 금융회사 등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기업들, 그리고 분식회계 우려가 높은 상장사는 증선위가 외부감사인을 지정하기 때문에 전체 상장기업 가운데 50% 정도는 외부감사인을 회사의 경영진이 아니라 정부가 지정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서는 상장기업에 대해서는 순차적으로라도 전면 지정제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

기업들 '외부감사인 지정제' 반대해서는 안돼

기업들은 미국의 경우도 외부감사인을 이사회에서 지정한다며 정부가 외부감사인을 지정하려는 것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는 상장기업들의 주식 분산이 잘 돼 있어 지배주주가 있는 기업도 드물다. 이사회가 기업주나 경영진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고 잘 분산된 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때문에 이사회는 분식회계에 대한 적발 능력이 뛰어난 회계법인을 외부감사인으로 선정한다.

우리는 어떤가? 한국 기업에서의 이사회는 대부분 기업주나 경영진의 거수기에 불과한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미국처럼 이사회에 외부감사인 지정을 맡길 경우 경영진이 외부감사인을 지정하는 현재와 다를 것이 없다. 상장회사의 경우 정부가 지정하는 회계법인이 외부감사인이 되면 기업의 분식회계를 제대로 적발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의 경우는 2001년 12월 미국 최대 에너지기업이었던 엔론의 분식회계 사건이 터지자 7개월 만에 독립된 회계감독기구를 설립하고 분식회계를 하는 기업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사베인스-옥슬리법(상장사 회계개혁과 투자자보호법)`을 제정해 공포했다. 2002년 도입 당시 기업들은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며 `시대의 악법`이라며 저항했지만 이법은 미국 사회에서 분식회계라는 단어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미국은 7개월만에 분식회계방지법 제정, 우리 국회는 2년째 허송세월

엔론 분식회계 뒤 미국 의회는 7개월 만에 분식회계를 없애는 법률을 만들었는데, 우리 국회는 대우조선의 분식회계가 드러난지 2년이 다 되도록 관련법 개정안 조차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을 갉아 먹는 대표적인 것이 회계의 불투명성이다. 세계경제포럼 WEF는 우리나라의 회계·감사 분야 순위를 140개국 가운데 72위로 평가했고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 IMD는 우리나라의 회계투명성을 61개국 가운데 61위, 즉 꼴지로 평가했다.

옛 대우그룹과 SK글로벌, 현대건설, 최근에는 대우조선해양까지. 우리나라는 잊을만하면 터지는 분식회계로 홍역을 앓고 있다. 거짓으로 잘 포장된 실적만 믿었던 투자자들과 채권단은 막대한 피해를 떠안는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우리 기업을 언제든 분식회계할 수 있는 집단으로 바라본다. 대규모 회계부정이 터질 때마다 국회는 외부감사인 선임제도 개선과 내부 감사기구의 독립성 강화방안을 논의했지만 법 개정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분식회계는 되풀이 되고 있다.

이제는 국회가 나서서 분식회계를 종식시키기 위한 의지를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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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5 11:12:37
    경제
정부가 대우조선에 신규자금 2조 9천억 원을 포함한 5조 8천억 원을 추가 지원해 대우조선을 살리기로 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문득 일본 드라마 '감사법인'이 떠올랐다. 일본 드라마 속의 감사법인인 JP회계법인은 기업의 분식회계를 적발해 내 주주와 채권자에게 올바른 경영 정보를 전달한다.

대우조선사태에서는 외부감사인이었던 회계법인이 대우조선의 분식회계를 방조하거나 묵인한 것이 확인돼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으며, 금융감독당국의 징계를 앞두고 있다. 기업의 분식회계를 '감사인(회계법인)'이 눈감아 주면서 대우조선해양의 분식 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졌고 결국 그만큼 국민들의 혈세가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분식회계는 금융권-기업-회계법인이 결탁한 '부패의 삼각고리'

2008년 일본 NHK가 방송한 토요드라마 '감사법인'은 6부작으로 1980년대 호황기에 만들어진 자산 버블이 1990년대에 꺼지면서, 호황기의 과잉투자가 고스란히 빚으로 남은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기업들에게 돈을 빌려준 은행들의 대출은 부실채권이 됐다. 은행들은 기업들에 대한 대출금 회수에 나섰고 신규 대출을 기피했다. 기업들은 자산이나 이익은 부풀리고 손실은 줄이는 방식으로 기업실적을 과장한뒤 금융권에 뇌물을 주고 대출금 회수를 막거나 신규 대출을 받고 있었고, 이런 분식회계를 눈감아 주는 감사인(회계법인)이라는 이른바 금융권-기업-회계법인이 결탁한 '부패의 삼각 연결고리'를 드라마는 고발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JP회계법인(감사인)이 서프라이즈마트의 재무제표가 5년간 실적보고를 허위로했다는 것을 발견하고 결산을 승인하지 않으면서 시작된다. 이로 인해 서프라이즈 마트는 주가가 급락하며 상장폐지되고 결국 도산한다. 대우조선사태와 관련해 국민의 혈세가 다시 투입되는 만큼 먼저 분식회계 의혹을 받고 있었던 대우조선에 대한 자금 지원 경위에 대한규명은 제대로 한 것인지, 부패의 삼각고리를 청산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은 이뤄진 것인지 먼저 묻고 싶다.

외부감사인 '자유 수임제'가 분식회계 양산

검찰은 현재 수조 원 대의 분식회계 의혹을 받고 있는 대우조선에 대해 2015년 10월 청와대 서별관 회의에서 4조 2천억 원의 지원을 결정한 과정과 외부감사인이었던 회계법인의 방조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검찰의 수사도 수사지만 부패의 삼각고리를 청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외부 감사인(회계법인)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외부 감사인 관련 제도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현실적으로 일본 드라마에 나오는 JP회계법인과 같은 감사인(회계법인)이 존재할 수 없다. 경영자(기업)가 감사인(회계법인)을 마음대로 정하다보니(자유수임제) 회계법인들은 일감 수주를 위해 경영자(기업)의 분식회계를 방조하고 묵인하는 '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외부감사인(회계법인)이 대우조선의 분식회계를 묵인하거나 방조한 대우조선 사태의 근본 원인이다.

외부감사인 정부가 지정해야

분식회계를 막으려면 외부감사인을 기업이 아니라 정부가 지정하도록 '외부 감사에 관한 법률'(이하 외감법)을 고쳐야 한다. 하지만 국회 정무위는 이번주에도 법안심사소위에서 법 개정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발의된 외감법 개정안은 모두 15건인데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이하 증선위)에서 상장기업의 외부감사인을 지정하도록 하고, 기업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회계처리기준을 위반해 재무제표를 작성한 경우 잘못 작성된 금액의 10% 범위안에서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분식회계를 종식시킬 수 있는 강력한 법안들이다.

지난 1월 정부는 대형사 또는 분식회계 우려가 높은 상장사에 대해서는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6년에 1회씩 외부감사법인을 교체하는 선택지정제를 도입하는 회계 투명성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민주당 박찬대의원은 정부가 상장기업에 대해서는 외부감사인을 모두 지정하는 전면 지정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외감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금융위 김용범 사무처장은 정부 방안대로 하면 대주주지분이 과도하거나 금융회사 등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기업들, 그리고 분식회계 우려가 높은 상장사는 증선위가 외부감사인을 지정하기 때문에 전체 상장기업 가운데 50% 정도는 외부감사인을 회사의 경영진이 아니라 정부가 지정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서는 상장기업에 대해서는 순차적으로라도 전면 지정제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

기업들 '외부감사인 지정제' 반대해서는 안돼

기업들은 미국의 경우도 외부감사인을 이사회에서 지정한다며 정부가 외부감사인을 지정하려는 것에 대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는 상장기업들의 주식 분산이 잘 돼 있어 지배주주가 있는 기업도 드물다. 이사회가 기업주나 경영진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고 잘 분산된 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때문에 이사회는 분식회계에 대한 적발 능력이 뛰어난 회계법인을 외부감사인으로 선정한다.

우리는 어떤가? 한국 기업에서의 이사회는 대부분 기업주나 경영진의 거수기에 불과한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미국처럼 이사회에 외부감사인 지정을 맡길 경우 경영진이 외부감사인을 지정하는 현재와 다를 것이 없다. 상장회사의 경우 정부가 지정하는 회계법인이 외부감사인이 되면 기업의 분식회계를 제대로 적발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의 경우는 2001년 12월 미국 최대 에너지기업이었던 엔론의 분식회계 사건이 터지자 7개월 만에 독립된 회계감독기구를 설립하고 분식회계를 하는 기업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사베인스-옥슬리법(상장사 회계개혁과 투자자보호법)`을 제정해 공포했다. 2002년 도입 당시 기업들은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며 `시대의 악법`이라며 저항했지만 이법은 미국 사회에서 분식회계라는 단어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미국은 7개월만에 분식회계방지법 제정, 우리 국회는 2년째 허송세월

엔론 분식회계 뒤 미국 의회는 7개월 만에 분식회계를 없애는 법률을 만들었는데, 우리 국회는 대우조선의 분식회계가 드러난지 2년이 다 되도록 관련법 개정안 조차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을 갉아 먹는 대표적인 것이 회계의 불투명성이다. 세계경제포럼 WEF는 우리나라의 회계·감사 분야 순위를 140개국 가운데 72위로 평가했고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 IMD는 우리나라의 회계투명성을 61개국 가운데 61위, 즉 꼴지로 평가했다.

옛 대우그룹과 SK글로벌, 현대건설, 최근에는 대우조선해양까지. 우리나라는 잊을만하면 터지는 분식회계로 홍역을 앓고 있다. 거짓으로 잘 포장된 실적만 믿었던 투자자들과 채권단은 막대한 피해를 떠안는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우리 기업을 언제든 분식회계할 수 있는 집단으로 바라본다. 대규모 회계부정이 터질 때마다 국회는 외부감사인 선임제도 개선과 내부 감사기구의 독립성 강화방안을 논의했지만 법 개정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분식회계는 되풀이 되고 있다.

이제는 국회가 나서서 분식회계를 종식시키기 위한 의지를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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