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호 터줏대감 수리부엉이 실종…범인은?

입력 2017.03.26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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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를 편 수리부엉이, 양 끝 길이가 2m에 이릅니다. 독특한 깃털 구조를 갖춰 날 때 소리가 거의 없습니다.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접근하는 '침묵의 사냥꾼'이죠. 야행성 맹금류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 밤에는 당할 자가 없는 최상위 포식자입니다. 그래서 '밤의 제왕'으로 불립니다.

수리부엉이 둥지 터인 시화호 간척지 암벽수리부엉이 둥지 터인 시화호 간척지 암벽

시화호 일대에는 수리부엉이가 많습니다. 둥지 터만 최소 15곳에 이르고 50여 마리의 수리부엉이가 서식한다고 최종인 시화호 지킴이는 말합니다. 시화호 간척지 곳곳에 있는 암벽은 수리부엉이가 좋아하는 둥지 터입니다. 위 사진 속 암벽도 해마다 수리부엉이가 알을 품고 번식했던 곳입니다. 3월, 지금쯤이면 한창 수리부엉이가 새끼를 키울 때입니다. 올해도 둥지를 틀었을까요?


바위 위에 수리부엉이가 토해낸 팰릿. 2016년 3월.바위 위에 수리부엉이가 토해낸 팰릿. 2016년 3월.

수리부엉이는 먹이를 통째로 삼킨 뒤 소화되지 않는 뼈나 털을 토해냅니다. 이것을 '팰릿'이라고 합니다. 수리부엉이 둥지 주변에는 이런 팰릿이 있기 마련입니다. 지난해 암벽 둥지터 앞에 있는 작은 바위에는 '팰릿'이 널려 있었습니다.

물닭 발과 팰릿. 수리부엉이가 남긴 먹이 흔적. 2016년 3월.물닭 발과 팰릿. 수리부엉이가 남긴 먹이 흔적. 2016년 3월.

수리부엉이 팰릿 속의 새 머리뼈. 2016년 3월.수리부엉이 팰릿 속의 새 머리뼈. 2016년 3월.

암벽 앞 바위는 수리부엉이의 식탁이었습니다. 팰릿뿐만 아니라 물새류의 발과 머리뼈도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만 보면 수리부엉이가 무엇을 먹었는지 알 수 있었지요. 하지만 올해는 그런 잔해가 전혀 없습니다. 암벽에도 둥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수리부엉이 암벽 둥지 터수리부엉이 암벽 둥지 터

수리부엉이는 해마다 번식했던 곳을 다시 이용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시화호 암벽 역시 지난 30년 동안 한해도 거르지 않고 둥지를 틀었다고 최종인 씨는 말합니다. 그만큼 새끼를 키우기에 좋은 곳이었던 거죠. 지난해 3월에도 여기서 수리부엉이는 새끼 두 마리를 키웠습니다. 그러던 수리부엉이가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요? 암벽 주변에 별다른 환경 변화도 없는데 말이죠.

수리부엉이 둥지에 조명을 터뜨리며 촬영하는 사진가수리부엉이 둥지에 조명을 터뜨리며 촬영하는 사진가

1년 전, 이 암벽 앞에서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사진가들이 밤중에 둥지를 향해 강한 조명을 터뜨리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수리부엉이가 새끼에게 먹이를 주러 올 때마다 불빛이 번쩍였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둥지 주변의 나뭇가지도 모두 잘라 둥지를 훤하게 노출시켰습니다. 사진가들이 수리부엉이를 가리는 나뭇가지와 덩굴들을 몽땅 제거한 겁니다.

[연관기사] ‘촬영’이 뭐기에…수리부엉이의 수난

둥지 훼손 전후 비교둥지 훼손 전후 비교

다른 환경 변화가 없는데도 수리부엉이가 사라진 것은 결국 1년 전 사진가들의 간섭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둥지를 은폐하던 나뭇가지가 사라진 데다가 야간 조명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수리부엉이가 둥지를 아예 옮겨버린 거죠.



1년 전 둥지를 틀었던 수리부엉이가 죽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랬다면 주변의 다른 수리부엉이가 금세 그 둥지 터를 다시 차지했을 겁니다. 수리부엉이의 경우 번식기를 앞둔 가을부터 세력권 다툼이 치열하기 때문에 빈자리가 생기면 곧바로 다른 수리부엉이가 차지한다는 것이 박진영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의 말입니다. 30년 동안 둥지를 틀었던 자리는 번식 성공률이 높은, 좋은 자리가 틀림없기 때문에 가만히 빈터로 둘 리가 없다는 겁니다. 더구나 50여 마리가 서식하는 시화호 일대는 좋은 둥지 터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둥지터를 확보하지 못해 번식을 못하고 있는 미번식 개체들도 주변에 많다는 겁니다.


암벽 둥지 터의 터줏대감이던 수리부엉이는 어디로 갔을까요? 주변 어디서도 흔적을 찾지 못했습니다. 살아 있다면 분명 암벽 일대를 포함한 자신의 세력권 어딘가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겠지요. 사진가들에게 들키지 않고, 야간 조명에도 시달리지 않는 곳일 겁니다. 하지만, 그 둥지는 기존 둥지 터에 비해 새끼를 키우기에 열악한 조건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만큼 번식 성공률도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둥지 터 위를 날아가는 수리부엉이. 2016년 3월.둥지 터 위를 날아가는 수리부엉이. 2016년 3월.

지난해 암벽 앞에서 조명을 터뜨려가며 사진을 찍던 사람들은 벌금형 처벌을 받았습니다. 이 때문인지 올해는 시화호 주변 어디에서도 조명을 터뜨리며 수리부엉이를 촬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암벽을 지키던 수리부엉이는 사라졌습니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연관기사] 사진 좀 찍겠다며 수리부엉이 괴롭히다가…사상 첫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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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화호 터줏대감 수리부엉이 실종…범인은?
    • 입력 2017-03-26 07:07:25
    취재K
날개를 편 수리부엉이, 양 끝 길이가 2m에 이릅니다. 독특한 깃털 구조를 갖춰 날 때 소리가 거의 없습니다.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접근하는 '침묵의 사냥꾼'이죠. 야행성 맹금류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 밤에는 당할 자가 없는 최상위 포식자입니다. 그래서 '밤의 제왕'으로 불립니다.

수리부엉이 둥지 터인 시화호 간척지 암벽
시화호 일대에는 수리부엉이가 많습니다. 둥지 터만 최소 15곳에 이르고 50여 마리의 수리부엉이가 서식한다고 최종인 시화호 지킴이는 말합니다. 시화호 간척지 곳곳에 있는 암벽은 수리부엉이가 좋아하는 둥지 터입니다. 위 사진 속 암벽도 해마다 수리부엉이가 알을 품고 번식했던 곳입니다. 3월, 지금쯤이면 한창 수리부엉이가 새끼를 키울 때입니다. 올해도 둥지를 틀었을까요?


바위 위에 수리부엉이가 토해낸 팰릿. 2016년 3월.
수리부엉이는 먹이를 통째로 삼킨 뒤 소화되지 않는 뼈나 털을 토해냅니다. 이것을 '팰릿'이라고 합니다. 수리부엉이 둥지 주변에는 이런 팰릿이 있기 마련입니다. 지난해 암벽 둥지터 앞에 있는 작은 바위에는 '팰릿'이 널려 있었습니다.

물닭 발과 팰릿. 수리부엉이가 남긴 먹이 흔적. 2016년 3월.
수리부엉이 팰릿 속의 새 머리뼈. 2016년 3월.
암벽 앞 바위는 수리부엉이의 식탁이었습니다. 팰릿뿐만 아니라 물새류의 발과 머리뼈도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만 보면 수리부엉이가 무엇을 먹었는지 알 수 있었지요. 하지만 올해는 그런 잔해가 전혀 없습니다. 암벽에도 둥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수리부엉이 암벽 둥지 터
수리부엉이는 해마다 번식했던 곳을 다시 이용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시화호 암벽 역시 지난 30년 동안 한해도 거르지 않고 둥지를 틀었다고 최종인 씨는 말합니다. 그만큼 새끼를 키우기에 좋은 곳이었던 거죠. 지난해 3월에도 여기서 수리부엉이는 새끼 두 마리를 키웠습니다. 그러던 수리부엉이가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요? 암벽 주변에 별다른 환경 변화도 없는데 말이죠.

수리부엉이 둥지에 조명을 터뜨리며 촬영하는 사진가
1년 전, 이 암벽 앞에서는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사진가들이 밤중에 둥지를 향해 강한 조명을 터뜨리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수리부엉이가 새끼에게 먹이를 주러 올 때마다 불빛이 번쩍였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둥지 주변의 나뭇가지도 모두 잘라 둥지를 훤하게 노출시켰습니다. 사진가들이 수리부엉이를 가리는 나뭇가지와 덩굴들을 몽땅 제거한 겁니다.

[연관기사] ‘촬영’이 뭐기에…수리부엉이의 수난

둥지 훼손 전후 비교
다른 환경 변화가 없는데도 수리부엉이가 사라진 것은 결국 1년 전 사진가들의 간섭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둥지를 은폐하던 나뭇가지가 사라진 데다가 야간 조명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수리부엉이가 둥지를 아예 옮겨버린 거죠.



1년 전 둥지를 틀었던 수리부엉이가 죽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랬다면 주변의 다른 수리부엉이가 금세 그 둥지 터를 다시 차지했을 겁니다. 수리부엉이의 경우 번식기를 앞둔 가을부터 세력권 다툼이 치열하기 때문에 빈자리가 생기면 곧바로 다른 수리부엉이가 차지한다는 것이 박진영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의 말입니다. 30년 동안 둥지를 틀었던 자리는 번식 성공률이 높은, 좋은 자리가 틀림없기 때문에 가만히 빈터로 둘 리가 없다는 겁니다. 더구나 50여 마리가 서식하는 시화호 일대는 좋은 둥지 터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둥지터를 확보하지 못해 번식을 못하고 있는 미번식 개체들도 주변에 많다는 겁니다.


암벽 둥지 터의 터줏대감이던 수리부엉이는 어디로 갔을까요? 주변 어디서도 흔적을 찾지 못했습니다. 살아 있다면 분명 암벽 일대를 포함한 자신의 세력권 어딘가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겠지요. 사진가들에게 들키지 않고, 야간 조명에도 시달리지 않는 곳일 겁니다. 하지만, 그 둥지는 기존 둥지 터에 비해 새끼를 키우기에 열악한 조건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만큼 번식 성공률도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둥지 터 위를 날아가는 수리부엉이. 2016년 3월.
지난해 암벽 앞에서 조명을 터뜨려가며 사진을 찍던 사람들은 벌금형 처벌을 받았습니다. 이 때문인지 올해는 시화호 주변 어디에서도 조명을 터뜨리며 수리부엉이를 촬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암벽을 지키던 수리부엉이는 사라졌습니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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