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으로 본 ‘초인종 의인’ 故 안치범 씨

입력 2017.03.2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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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안치범 씨가 불이 난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CCTV 화면故 안치범 씨가 불이 난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CCTV 화면

지난해 9월 9일. '초인종 의인'으로 알려진 故 안치범 씨가 불을 피해 건물 바깥으로 대피했다가 주민들을 깨우기 위해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 불을 낸 사람은 중국 국적의 김 모(26) 씨. 여자친구가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고 자신을 만나주지 않자 이날 새벽 3시쯤 여자친구가 살던 서울 마포구의 한 빌라에 불을 지른 혐의를 받았다. 이 불로 안 씨가 숨졌고 건물 4층에 살던 심 모(30) 씨가 밖으로 뛰어내려 전치 4주 골절상을 당했다. 김 씨는 현주건조물방화치사·치상 혐의로 기소됐다.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김양섭 부장판사)는 김 씨에게 징역 10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김 씨는 재판에서 당시 술에 취해 방 안에서 담배를 피워 과실로 불이 난 것이며 고의로 저지른 방화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故 안치범 씨의 행적이 담긴 CCTV 등을 근거로 들며 김 씨의 "방화행위 및 그 고의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CCTV에서 김 씨는 새벽 4시쯤 건물에서 나왔고, 안 씨는 건물 밖으로 대피했다가 4시 20분쯤 다시 건물로 들어가면서 위층을 올려다봤다. 당시 외부에서도 김 씨가 머물렀던 3층집에서 화재가 났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는 거다.

안 씨가 집집마다 초인종을 눌러 이웃 주민들을 깨울 때, 김 씨는 주차장에 세워두었던 자신의 차량을 건물 밖 주차장으로 옮겼거나 옮긴 다음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가 엘리베이터로 3층에 갔다가 곧바로 자신이 주차해 둔 차량으로 돌아간 것으로 법원은 판단했다.

이후에는 이미 연기가 퍼지고 소방차, 구급차 등이 출동하여 시끄러운 상황이었는데 김 씨가 화재 상황을 몰랐다고 말하는 것은 당시의 정황과 배치된다는 설명이다.

불이 난 빌라 바깥으로 나왔던 김 씨와 안 씨의 행동이 극명하게 달랐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불이 났던 빌라 (화면제공: 서울 마포소방서)당시 불이 났던 빌라 (화면제공: 서울 마포소방서)

김 씨는 또, 안 씨가 건물에서 빠져나왔다가 다시 들어가 숨졌기 때문에 자신의 범행이 안 씨 죽음과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에 대해 새벽 시간에 화재가 발생했기 때문에 안 씨가 잠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내부로 들어가 화재 사실을 알리리라는 점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그러면서 김 씨가 "2명의 사상자를 냈을 뿐만 아니라 1억 원 이상 재산 피해가 났음에도 피해 변상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고,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합리성 없는 변명으로 일관하는 등 잘못을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옥상으로 향하는 5층 계단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안 씨의 손에는 현관문을 두드리다가 생긴 것으로 보이는 새까만 화상 자국이 남아 있었다. 안 씨의 행동은 판결문에서 나오듯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누구나 선뜻 나서지는 못하는 일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0월 안 씨를 의사자로 지정한 데 이어 법원도 김 씨에게 중형을 내리며 안 씨의 희생은 더욱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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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결문으로 본 ‘초인종 의인’ 故 안치범 씨
    • 입력 2017-03-28 16:16:33
    사회
故 안치범 씨가 불이 난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CCTV 화면
지난해 9월 9일. '초인종 의인'으로 알려진 故 안치범 씨가 불을 피해 건물 바깥으로 대피했다가 주민들을 깨우기 위해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 불을 낸 사람은 중국 국적의 김 모(26) 씨. 여자친구가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고 자신을 만나주지 않자 이날 새벽 3시쯤 여자친구가 살던 서울 마포구의 한 빌라에 불을 지른 혐의를 받았다. 이 불로 안 씨가 숨졌고 건물 4층에 살던 심 모(30) 씨가 밖으로 뛰어내려 전치 4주 골절상을 당했다. 김 씨는 현주건조물방화치사·치상 혐의로 기소됐다.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합의11부(김양섭 부장판사)는 김 씨에게 징역 10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김 씨는 재판에서 당시 술에 취해 방 안에서 담배를 피워 과실로 불이 난 것이며 고의로 저지른 방화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故 안치범 씨의 행적이 담긴 CCTV 등을 근거로 들며 김 씨의 "방화행위 및 그 고의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CCTV에서 김 씨는 새벽 4시쯤 건물에서 나왔고, 안 씨는 건물 밖으로 대피했다가 4시 20분쯤 다시 건물로 들어가면서 위층을 올려다봤다. 당시 외부에서도 김 씨가 머물렀던 3층집에서 화재가 났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는 거다.

안 씨가 집집마다 초인종을 눌러 이웃 주민들을 깨울 때, 김 씨는 주차장에 세워두었던 자신의 차량을 건물 밖 주차장으로 옮겼거나 옮긴 다음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가 엘리베이터로 3층에 갔다가 곧바로 자신이 주차해 둔 차량으로 돌아간 것으로 법원은 판단했다.

이후에는 이미 연기가 퍼지고 소방차, 구급차 등이 출동하여 시끄러운 상황이었는데 김 씨가 화재 상황을 몰랐다고 말하는 것은 당시의 정황과 배치된다는 설명이다.

불이 난 빌라 바깥으로 나왔던 김 씨와 안 씨의 행동이 극명하게 달랐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불이 났던 빌라 (화면제공: 서울 마포소방서)
김 씨는 또, 안 씨가 건물에서 빠져나왔다가 다시 들어가 숨졌기 때문에 자신의 범행이 안 씨 죽음과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에 대해 새벽 시간에 화재가 발생했기 때문에 안 씨가 잠든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내부로 들어가 화재 사실을 알리리라는 점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그러면서 김 씨가 "2명의 사상자를 냈을 뿐만 아니라 1억 원 이상 재산 피해가 났음에도 피해 변상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고,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합리성 없는 변명으로 일관하는 등 잘못을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옥상으로 향하는 5층 계단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안 씨의 손에는 현관문을 두드리다가 생긴 것으로 보이는 새까만 화상 자국이 남아 있었다. 안 씨의 행동은 판결문에서 나오듯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누구나 선뜻 나서지는 못하는 일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0월 안 씨를 의사자로 지정한 데 이어 법원도 김 씨에게 중형을 내리며 안 씨의 희생은 더욱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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