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 기간이 1년 3개월로?’…국방까지 퍼진 가짜뉴스 ‘毒’

입력 2017.03.28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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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7일) 저녁, 연락이 뜸하던 고등학교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다. 몇 마디 안부를 주고받을 틈도 없이, 그 친구는 다급하게 "요즘 국방부 출입 기자 한다고 들었다. 정말 군 복무가 내년부터 줄어드느냐?"라고 물었다. 온종일 국방부 기자실에 앉아있었지만, '군 복무 단축'의 기역 자도 들은 적이 없다는 답에 친구는 외려 면박을 줬다. "기자실에 앉아 있으면 뭐하냐. 지금 인터넷에 뉴스 다 떴어!"

  

친구가 카카오톡으로 공유한 링크에는 정말 '[국방부] 내년 2018년부터 군 복무 단축 결정! 1년에 30일씩 줄어든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어딘가 이상했다. 기사의 송고 날짜 부분이 조악하게 합성한 티가 났으며, 띄어쓰기나 맞춤법도 정확히 지켜지지 않았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의 이름도, 언론사도 없는 '가짜뉴스(fake news)'였다.

국방부 당국자들은 '비상'이었다. 하필이면 주요 대선 후보들이 군 복무 공약을 쏟아내는 민감한 시기에 국방부와 직접 관련된 가짜뉴스가 나돌자 서둘러 입장자료를 내놓았다. 내용은 이렇다.

  

  

국방부가 단순한 헛소문이나 해프닝으로 취급할 수 있는 일에 서둘러 대응한 것은, 중대한 안보 국면마다 '가짜 뉴스'로 인한 피해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경북 성주가 사드 배치 장소로 발표된 직후에는 '사드 전자파 때문에 성주 참외가 다 죽을 것'이라거나 '주민들이 암이나 백혈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섬뜩한 가짜뉴스가 SNS상에 퍼졌다.

지난 2015년 북한이 서부전선을 포격 도발한 뒤에는 '대한민국 국방부, 전쟁 임박. 만 21∼33세 전역 남성 소집'이라는 내용을 담은 문자메시지가 나돌았다.

그때마다 국방부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입장을 표명했지만, 이미 대중의 머릿속에 '사실'이라고 각인된 것을 고쳐 잡기까지는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여러 정치적 해석과 엮여, 국방부에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 분위기도 있었다.

  

더 큰 피해자는 '거짓'을 '사실'이라고 믿게 된 '가짜뉴스'의 독자들이다. 실제로 2015년 당시 대학가에선 '미필자는 어디로 입영을 해야 하는지', '전역자는 원소속 부대로 복귀해야 하는지' 일대 혼란이 일었다.

이번 가짜뉴스를 공유한 게시글 아래에는 '2023년에 맞춰 군대에 가야겠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나에게 전화를 건 친구 역시 가짜 뉴스를 보고,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입영일을 최대한 미뤄볼 계획을 짠 안타까운 피해자였다.

카와자 아시프 파키스탄 국방장관의 SNS 글카와자 아시프 파키스탄 국방장관의 SNS 글

어느 분야든 가짜 뉴스가 판치는 세상이라지만, 특히 '안보'에 있어 가짜 뉴스는 치명적이다.

파키스탄의 국방장관인 카와자 아시프는 지난해 12월 자신의 트위터에 이스라엘에 핵 보복을 강하게 암시하는 글을 올렸다.

"파키스탄이 시리아에서 이슬람 국가(IS)와 싸우는 것에 대해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이 '핵 위협'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파키스탄도 '핵보유국'이라는 걸 까먹은 모양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파키스탄에 핵 위협을 한 적이 없었다.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파키스탄을 핵 공격으로 파괴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가짜 뉴스에 속은 것이다.

만일 이스라엘 군 당국이 아시프 장관의 트워터 멘션을 핵전쟁 선전포고로 읽고 반응했다면 전쟁으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북한이 하루가 다르게 무력시위를 이어가는 우리의 사정은 파키스탄이나 이스라엘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수 발을 발사했다'거나 '평안북도 풍계리 일대에서 6차 핵실험을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 구체적인 수치와 엮어 가짜뉴스로 유통된다면 그 혼란은 이번과 비할 바가 안 될 것이다.

이상진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안보 이슈와 관련된 가짜뉴스는 파급력이 상대적으로 크다"며 "국가 기관으로부터도 독립된, 중립적인 '가짜뉴스 판별기관'을 만들어 빠른 시간 안에 해당 내용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별한 후 국민들에게 알려, 사회적 혼란을 줄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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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 복무 기간이 1년 3개월로?’…국방까지 퍼진 가짜뉴스 ‘毒’
    • 입력 2017-03-28 16:51:59
    사회
어제(27일) 저녁, 연락이 뜸하던 고등학교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다. 몇 마디 안부를 주고받을 틈도 없이, 그 친구는 다급하게 "요즘 국방부 출입 기자 한다고 들었다. 정말 군 복무가 내년부터 줄어드느냐?"라고 물었다. 온종일 국방부 기자실에 앉아있었지만, '군 복무 단축'의 기역 자도 들은 적이 없다는 답에 친구는 외려 면박을 줬다. "기자실에 앉아 있으면 뭐하냐. 지금 인터넷에 뉴스 다 떴어!"

 
친구가 카카오톡으로 공유한 링크에는 정말 '[국방부] 내년 2018년부터 군 복무 단축 결정! 1년에 30일씩 줄어든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어딘가 이상했다. 기사의 송고 날짜 부분이 조악하게 합성한 티가 났으며, 띄어쓰기나 맞춤법도 정확히 지켜지지 않았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의 이름도, 언론사도 없는 '가짜뉴스(fake news)'였다.

국방부 당국자들은 '비상'이었다. 하필이면 주요 대선 후보들이 군 복무 공약을 쏟아내는 민감한 시기에 국방부와 직접 관련된 가짜뉴스가 나돌자 서둘러 입장자료를 내놓았다. 내용은 이렇다.

 
 
국방부가 단순한 헛소문이나 해프닝으로 취급할 수 있는 일에 서둘러 대응한 것은, 중대한 안보 국면마다 '가짜 뉴스'로 인한 피해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경북 성주가 사드 배치 장소로 발표된 직후에는 '사드 전자파 때문에 성주 참외가 다 죽을 것'이라거나 '주민들이 암이나 백혈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섬뜩한 가짜뉴스가 SNS상에 퍼졌다.

지난 2015년 북한이 서부전선을 포격 도발한 뒤에는 '대한민국 국방부, 전쟁 임박. 만 21∼33세 전역 남성 소집'이라는 내용을 담은 문자메시지가 나돌았다.

그때마다 국방부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입장을 표명했지만, 이미 대중의 머릿속에 '사실'이라고 각인된 것을 고쳐 잡기까지는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여러 정치적 해석과 엮여, 국방부에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 분위기도 있었다.

 
더 큰 피해자는 '거짓'을 '사실'이라고 믿게 된 '가짜뉴스'의 독자들이다. 실제로 2015년 당시 대학가에선 '미필자는 어디로 입영을 해야 하는지', '전역자는 원소속 부대로 복귀해야 하는지' 일대 혼란이 일었다.

이번 가짜뉴스를 공유한 게시글 아래에는 '2023년에 맞춰 군대에 가야겠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나에게 전화를 건 친구 역시 가짜 뉴스를 보고,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입영일을 최대한 미뤄볼 계획을 짠 안타까운 피해자였다.

카와자 아시프 파키스탄 국방장관의 SNS 글
어느 분야든 가짜 뉴스가 판치는 세상이라지만, 특히 '안보'에 있어 가짜 뉴스는 치명적이다.

파키스탄의 국방장관인 카와자 아시프는 지난해 12월 자신의 트위터에 이스라엘에 핵 보복을 강하게 암시하는 글을 올렸다.

"파키스탄이 시리아에서 이슬람 국가(IS)와 싸우는 것에 대해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이 '핵 위협'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파키스탄도 '핵보유국'이라는 걸 까먹은 모양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은 파키스탄에 핵 위협을 한 적이 없었다.

"이스라엘 국방장관이 '파키스탄을 핵 공격으로 파괴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가짜 뉴스에 속은 것이다.

만일 이스라엘 군 당국이 아시프 장관의 트워터 멘션을 핵전쟁 선전포고로 읽고 반응했다면 전쟁으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북한이 하루가 다르게 무력시위를 이어가는 우리의 사정은 파키스탄이나 이스라엘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수 발을 발사했다'거나 '평안북도 풍계리 일대에서 6차 핵실험을 감행한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 구체적인 수치와 엮어 가짜뉴스로 유통된다면 그 혼란은 이번과 비할 바가 안 될 것이다.

이상진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안보 이슈와 관련된 가짜뉴스는 파급력이 상대적으로 크다"며 "국가 기관으로부터도 독립된, 중립적인 '가짜뉴스 판별기관'을 만들어 빠른 시간 안에 해당 내용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별한 후 국민들에게 알려, 사회적 혼란을 줄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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