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예약한 숙소가 사라졌다…‘초저가 여행’의 함정

입력 2017.03.29 (11:31) 수정 2017.03.2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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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해외여행을 앞세워 사세를 넓혀온 일본의 중견여행사가 파산절차에 들어갔다. 이미 대금을 지불한 계약 고객과 해외 체류 중인 여행객들의 피해와 불편이 불가피해졌다.

값싼 여행상품 판매 뒤 돌연 휴업

문제가 된 곳은 도쿄 시부야에 본사를 둔 중견 여행사 '텔미클럽'이다. 20년 가까운 역사를 갖고있고, 인터넷을 통해 저렴한 해외여행 상품을 판매하며 유명해진 곳이다. 민간조사회사 '도쿄 상공 리서치'에 따르면, 텔미클럽은 1998년 창업됐으며, 오사카와 나고야 등에도 사업소가 있다. 2016년 3분기 기준 연간 매출은 195억 엔(약 1,950억 원)이다.

여행사가 고객들에게 보낸 '여행을 가지 말라'는 문자여행사가 고객들에게 보낸 '여행을 가지 말라'는 문자

지난 3월 24일부터 항공권 발권을 할 수 없게 됐다는 고객들의 항의와 문의가 관광청에 잇따랐다. 일부 여행객은 '항공권 발권에 문제가 있으므로 여행을 가지 말라'는 연락을 여행사 측으로부터 받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25일 여행사 본사 입구에는 임시 휴업을 알리는 벽보가 붙었다. 여행 상품을 신청했던 고객들 일부가 찾아왔지만, 사측으로부터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고객들은 해외여행을 위해 수십만 엔(수백만 원) 씩을 입금했는데 여행사에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홈페이지에도 '3월 25일 토요일은 임시휴업'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휴업 이유는 없었다. 당장 이튿날 출발하는 해외여행 상품을 예약했던 사람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출국 직전에 전화가 걸려와 항공권을 구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기도 했다.

민원이 잇따르자 여행업법에 따라 관광청이 실태조사에 나섰다.

예고없는 ‘파산’ 신청…고객 혼란

3월 27일 텔미클럽이 도교 지방법원으로부터 파산절차 개시결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자금융통이 막혀 영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고객이 여행대금 등으로 이미 지불한 돈 99억 엔(약 천억 원) 가운데 얼마나 반환이 가능할지는 알 수 없는 상태이다.

NHK에 따르면, 전직 직원들은 회사가 만성적인 자금난에 시달렸다고 증언했다. 광고비 등의 부담이 늘면서 자금 사정이 악화됐고, 지난 23일부터는 이미 항공권 발권에 필요한 비용을 지불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고객들에게 사과를 하는 텔미클럽 사장고객들에게 사과를 하는 텔미클럽 사장

텔미클럽 사장이 국토교통성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고객에게 막대한 폐를 끼쳐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해외의 현지 여행사 등에 돈을 지급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어렵게 항공권을 구해 출국한다고 해도 현지 호텔을 이용할 수 없게 될 가능성 높다고 했다. 계약자들에게 여행 자제를 호소했다.

피해고객 최대 9만 명, 피해금액 천억 원 육박 우려

그러나 해외에서는 이미 여행객들이 당초 계약했던 서비스를 받지 못 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여행사에 지불한 금액과는 별도로 거액의 숙박비를 낼 수밖에 없었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호텔 측이 여행사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중간에 거액의 숙박비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여행사 '텔미클럽' 사무실 표지판여행사 '텔미클럽' 사무실 표지판

회사 측 설명에 따르면, 이번 사태로 영향을 받는 계약 건수는 3만 6천여 건에 이른다. 8, 9만 명이 지불한 돈은 99억 엔(약 천억 원)으로 추정된다. 일본 여행업협회의 보증금 제도에 따른 보증금은 1억 2천만 엔(약 12억 원)가량에 불과하다.

28일 이시이 국토교통상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우선 문제의 여행사 상품을 통해 해외여행 중인 고객들이 원할하게 귀국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해외 체류 중인 고객은 26일 기준으로 2,500명에 이른다. 이시이 교통상은 '항공권이 발권된 이후에는, 항공사가 운송 의무를 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또 여행대금이 반환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소비자 보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파문은 커지고 있다. 텔미클럽 그룹의 다른 여행사도 영업을 중단한 것으로 드러났다. 도쿄 시부야에 본사를 둔 여행사 '자유자재'도 27일 법원의 파산절차 개시 결정을 받았다. 회사 홈페이지는 항공권과 숙박권을 이용할 수 없게 됐다는 메시지가 떴다. 영업도 중단됐다.

자유자재는 2006년 1월 여행업 등록을 한 곳이다. 한국과 미국 등의 해외여행 상품을 취급한 곳이다. 관광청은 이용객 피해 현황 파악에 나섰다. 여행업협회가 반환할 수 있는 보증금 규모는 7천만 엔(약 7억 원)수준으로 알려졌다.

파산 직전까지 여행상품을 판 것은 문제가 아닌가 하는 지적이 잇따랐다. 여행사 측은 상황이 이렇게 악화할 줄은 몰랐다고 주장했다.

여행업계 생존 경쟁…초저가 여행상품의 위험

초저가 항공권을 앞세운 여행사들은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급속히 성장했다. 항공기 좌석을 대량으로 싸게 사들여 개인에게 파는 것이 비결이었다. 항공사로서는 어차피 남아도는 좌석을 팔아 탑승률을 높일 수 있었다. 소비자들은 스스로 여행 일정을 취소할 경우의 기회비용을 감수하고 항공권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숙박업계도 마찬가지이다. 객실을 놀리게 될 상황이라면 할인가격으로 숙박권을 파는 것이 남는 장사였다.

초저가 전문 여행사의 호황을 이끌어온 인터넷이 이제는 초저가 여행사의 위기를 불러왔다. 인터넷 모바일 기술의 발전으로 누구나 온라인 전문 여행사 운영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각종 가격 비교 사이트가 널리 보급되면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졌다.

게다가 항공사들이 고객 수요에 맞춰 항공기 규모를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등 공석률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면서, 저가 항공권 확보에도 한계가 왔다.

텔미클럽의 몰락은 여행사 한 곳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치열한 생존경쟁 중인 여행업계의 구조 재편과 맞물려 있다. 초저가 전략에만 몰입한다면,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는 한국 여행업계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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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9 11:31:23
    • 수정2017-03-29 13:4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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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해외여행을 앞세워 사세를 넓혀온 일본의 중견여행사가 파산절차에 들어갔다. 이미 대금을 지불한 계약 고객과 해외 체류 중인 여행객들의 피해와 불편이 불가피해졌다.

값싼 여행상품 판매 뒤 돌연 휴업

문제가 된 곳은 도쿄 시부야에 본사를 둔 중견 여행사 '텔미클럽'이다. 20년 가까운 역사를 갖고있고, 인터넷을 통해 저렴한 해외여행 상품을 판매하며 유명해진 곳이다. 민간조사회사 '도쿄 상공 리서치'에 따르면, 텔미클럽은 1998년 창업됐으며, 오사카와 나고야 등에도 사업소가 있다. 2016년 3분기 기준 연간 매출은 195억 엔(약 1,950억 원)이다.

여행사가 고객들에게 보낸 '여행을 가지 말라'는 문자
지난 3월 24일부터 항공권 발권을 할 수 없게 됐다는 고객들의 항의와 문의가 관광청에 잇따랐다. 일부 여행객은 '항공권 발권에 문제가 있으므로 여행을 가지 말라'는 연락을 여행사 측으로부터 받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25일 여행사 본사 입구에는 임시 휴업을 알리는 벽보가 붙었다. 여행 상품을 신청했던 고객들 일부가 찾아왔지만, 사측으로부터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고객들은 해외여행을 위해 수십만 엔(수백만 원) 씩을 입금했는데 여행사에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불만을 쏟아냈다.

홈페이지에도 '3월 25일 토요일은 임시휴업'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휴업 이유는 없었다. 당장 이튿날 출발하는 해외여행 상품을 예약했던 사람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출국 직전에 전화가 걸려와 항공권을 구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기도 했다.

민원이 잇따르자 여행업법에 따라 관광청이 실태조사에 나섰다.

예고없는 ‘파산’ 신청…고객 혼란

3월 27일 텔미클럽이 도교 지방법원으로부터 파산절차 개시결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자금융통이 막혀 영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고객이 여행대금 등으로 이미 지불한 돈 99억 엔(약 천억 원) 가운데 얼마나 반환이 가능할지는 알 수 없는 상태이다.

NHK에 따르면, 전직 직원들은 회사가 만성적인 자금난에 시달렸다고 증언했다. 광고비 등의 부담이 늘면서 자금 사정이 악화됐고, 지난 23일부터는 이미 항공권 발권에 필요한 비용을 지불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고객들에게 사과를 하는 텔미클럽 사장
텔미클럽 사장이 국토교통성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고객에게 막대한 폐를 끼쳐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해외의 현지 여행사 등에 돈을 지급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어렵게 항공권을 구해 출국한다고 해도 현지 호텔을 이용할 수 없게 될 가능성 높다고 했다. 계약자들에게 여행 자제를 호소했다.

피해고객 최대 9만 명, 피해금액 천억 원 육박 우려

그러나 해외에서는 이미 여행객들이 당초 계약했던 서비스를 받지 못 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여행사에 지불한 금액과는 별도로 거액의 숙박비를 낼 수밖에 없었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호텔 측이 여행사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중간에 거액의 숙박비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여행사 '텔미클럽' 사무실 표지판
회사 측 설명에 따르면, 이번 사태로 영향을 받는 계약 건수는 3만 6천여 건에 이른다. 8, 9만 명이 지불한 돈은 99억 엔(약 천억 원)으로 추정된다. 일본 여행업협회의 보증금 제도에 따른 보증금은 1억 2천만 엔(약 12억 원)가량에 불과하다.

28일 이시이 국토교통상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우선 문제의 여행사 상품을 통해 해외여행 중인 고객들이 원할하게 귀국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해외 체류 중인 고객은 26일 기준으로 2,500명에 이른다. 이시이 교통상은 '항공권이 발권된 이후에는, 항공사가 운송 의무를 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또 여행대금이 반환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소비자 보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파문은 커지고 있다. 텔미클럽 그룹의 다른 여행사도 영업을 중단한 것으로 드러났다. 도쿄 시부야에 본사를 둔 여행사 '자유자재'도 27일 법원의 파산절차 개시 결정을 받았다. 회사 홈페이지는 항공권과 숙박권을 이용할 수 없게 됐다는 메시지가 떴다. 영업도 중단됐다.

자유자재는 2006년 1월 여행업 등록을 한 곳이다. 한국과 미국 등의 해외여행 상품을 취급한 곳이다. 관광청은 이용객 피해 현황 파악에 나섰다. 여행업협회가 반환할 수 있는 보증금 규모는 7천만 엔(약 7억 원)수준으로 알려졌다.

파산 직전까지 여행상품을 판 것은 문제가 아닌가 하는 지적이 잇따랐다. 여행사 측은 상황이 이렇게 악화할 줄은 몰랐다고 주장했다.

여행업계 생존 경쟁…초저가 여행상품의 위험

초저가 항공권을 앞세운 여행사들은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급속히 성장했다. 항공기 좌석을 대량으로 싸게 사들여 개인에게 파는 것이 비결이었다. 항공사로서는 어차피 남아도는 좌석을 팔아 탑승률을 높일 수 있었다. 소비자들은 스스로 여행 일정을 취소할 경우의 기회비용을 감수하고 항공권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숙박업계도 마찬가지이다. 객실을 놀리게 될 상황이라면 할인가격으로 숙박권을 파는 것이 남는 장사였다.

초저가 전문 여행사의 호황을 이끌어온 인터넷이 이제는 초저가 여행사의 위기를 불러왔다. 인터넷 모바일 기술의 발전으로 누구나 온라인 전문 여행사 운영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각종 가격 비교 사이트가 널리 보급되면서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졌다.

게다가 항공사들이 고객 수요에 맞춰 항공기 규모를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등 공석률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면서, 저가 항공권 확보에도 한계가 왔다.

텔미클럽의 몰락은 여행사 한 곳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치열한 생존경쟁 중인 여행업계의 구조 재편과 맞물려 있다. 초저가 전략에만 몰입한다면,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는 한국 여행업계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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