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베트남 소녀의 죽음…악몽이 된 재팬드림

입력 2017.03.30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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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일 오전 7시쯤 일본 치바현 북서부 아비코 시의 배수로 옆 풀숲에서 10살 정도로 추정되는 소녀의 시신이 낚시꾼에 의해 발견됐다. 옷과 신발이 벗겨진 상태였고, 소지품은 보이지 않았다. 시신에서는 목이 졸린 듯한 흔적이 발견됐다. 강력범죄의 정황이 뚜렷했다.

시신으로 발견된 소녀는 베트남 국적의 9살 '레 티 냣토 린' 양으로 밝혀졌다. 인근 마쓰도 시의 초등학교 3학년 학생으로, 이틀 전인 24일 오전 8시쯤 600m가량 떨어진 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선 뒤 실종됐다. 등굣길에 나섰을 때는 분홍색 바지를 입고, 빨간 책가방을 메고, 노란색 어린이용 모자를 쓴 상태였다. 실종 신고를 받은 경찰이 이미 수색 작업을 벌이던 상황이었다.

사건 장소는 자택과 초등학교에서 북쪽으로 10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JR철도역이 2km가량 떨어져 있었고, 국도가 지나가고 있으며, 대학과 고등학교, 주거 지역이 산재에 있었다. 논밭으로 둘러싸여, 산보를 하거나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간간이 오가는 한적한 곳이었다. 범인은 현장 지형에 익숙했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일본을 좋아했던 베트남 소녀

  

평화로운 마을에서 발생한 엽기적 살인사건. 지역사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이웃 주민들은 린 양이 상냥한 아이였다고 말했다. 학교에 가지 않을 때는 집에서 3살짜리 동생을 자전거에 태우고 놀아줬다고 했다. 이웃집 아이들과 잘 어울리고 누구에게든 말을 걸어주는 상냥한 아이였다.

불과 며칠 전까지도 함께 공부하고 놀았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친구들이 기억하는 린 양은 밝고 건강한 아이였다. 중간에 전학 온 외국 친구였지만, 함께 잘 어울려 놀았다고 했다. 분홍색 소지품을 좋아했고,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는 밝은 소녀였다. 급식이나 체육, 음악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베트남 놀이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린 양은 일본을 좋아했다. 학교에서 일본어 지도를 받은 뒤 담임교사에게 편지 쓰는 것을 좋아했다. 일본어에 능숙했고 일본 노래도 잘 불렀다. 한자 쓰기 공부를 열심히 했으며 고양이를 좋아했다.

베트남 인터넷 기사에 따르면, 린 양이 3살 때 부모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온 것으로 알려졌다. 실종 이틀 전 어머니와 동생이 베트남에 귀국한 상태였다. 실종 직후, 린 양의 어머니는 딸이 무사히 돌아올 것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NHK는 어머니가 심리적으로 매우 힘든 상태라고 전했다.

어린이 통학로 안전 비상

초등학교 교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린 양이 건강하고 모든 일에 적극적이었다면서, 깊은 슬픔과 위로의 뜻을 밝혔다. 학교 측은 어린이 심리치료를 위한 상담교사를 배치하기로 했다. 봄방학 동안 어린이들이 등교하는 행사도 취소했다. 새 학기 등하교 안전 대책 강화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27일 밤, 학교에서 긴급 학부모 회의가 열렸다. 등하교 안전대책을 철저히 해달라는 요구가 잇따랐다. 당분간 아이들이 밖에서 놀지 않도록 하겠다는 말도 잇따랐다.

경찰은 처음부터 살인 및 시신 유기 사건으로 수사 방향을 잡았다. 100여 명이 수사에 투입됐다. 현장 부근에는 다툼의 흔적이 없었다. 두 손목이 강하게 눌린 흔적이 발견됐다. 범인이 다른 곳에서 린 양을 납치된 뒤 숨지게 하고, 이미 알고 있던 외진 곳에 시신을 유기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초등학생들의 등굣길을 지켰던 자원봉사자는 실종 당일 린 양이 보이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사망 시점은 실종 당일부터 이튿날까지로 추정됐다.

미궁에 빠진 수사...단서는?

  

베트남 대사관 측은 수사본부가 차려진 경찰서와 피해자 자택을 방문한 뒤, 기자들과 만나 '매우 슬픈 사건'이라면서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에 살고 있는 베트남인들은 '남의 일 같지 않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일부 베트남인들은 애도와 위로의 뜻을 담은 꽃다발을 들고 찾아왔다.

수사 결과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 2월, 린 양이 친구에게 "지난달(1월), 통학로에 수상한 사람이 있어서 무서웠다"면서 "무서운 곳을 달려서 지나왔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린 양은 2학년 때까지 함께 등교하던 친구가 이사가면서, 3학년 때부터는 혼자 등교하는 일이 잦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건 당시 수상한 사람이나 수상한 차량을 봤다는 목격자는 나오지 않았다.

  

대대적인 수색 작업이 이어졌다. 약 25km 떨어진 하천 부근에서 책가방과 옷가지 일부가 발견됐다. 집과 사건 현장, 책가방 등이 발견된 곳은 각각 10km 이상 떨어진 곳이다. 차량으로 30분 이상 소요된다. 범인은 차량을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경찰은 CCTV 녹화 영상 등을 샅샅이 살펴보면서 범인의 단서를 뒤쫓고 있다.

29일 오후, 아비코 시의 교장회의가 소집됐다. 지역 교육위원회와 초중학교 교장 6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통학로 안전 강화방안을 논의했다. 봄 방학 동안 위험한 장소를 미리 점검하고 통학로를 변경하거나 안전순찰을 강화하기로 했다.

2016년 일본에서 13세 미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살인·살인미수 범죄는 74건, 약취·유인은 106건, 체포 감금 사건은 21건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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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베트남 소녀의 죽음…악몽이 된 재팬드림
    • 입력 2017-03-30 15:26:39
    특파원 리포트
3월 26일 오전 7시쯤 일본 치바현 북서부 아비코 시의 배수로 옆 풀숲에서 10살 정도로 추정되는 소녀의 시신이 낚시꾼에 의해 발견됐다. 옷과 신발이 벗겨진 상태였고, 소지품은 보이지 않았다. 시신에서는 목이 졸린 듯한 흔적이 발견됐다. 강력범죄의 정황이 뚜렷했다.

시신으로 발견된 소녀는 베트남 국적의 9살 '레 티 냣토 린' 양으로 밝혀졌다. 인근 마쓰도 시의 초등학교 3학년 학생으로, 이틀 전인 24일 오전 8시쯤 600m가량 떨어진 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선 뒤 실종됐다. 등굣길에 나섰을 때는 분홍색 바지를 입고, 빨간 책가방을 메고, 노란색 어린이용 모자를 쓴 상태였다. 실종 신고를 받은 경찰이 이미 수색 작업을 벌이던 상황이었다.

사건 장소는 자택과 초등학교에서 북쪽으로 10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JR철도역이 2km가량 떨어져 있었고, 국도가 지나가고 있으며, 대학과 고등학교, 주거 지역이 산재에 있었다. 논밭으로 둘러싸여, 산보를 하거나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간간이 오가는 한적한 곳이었다. 범인은 현장 지형에 익숙했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일본을 좋아했던 베트남 소녀

 
평화로운 마을에서 발생한 엽기적 살인사건. 지역사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이웃 주민들은 린 양이 상냥한 아이였다고 말했다. 학교에 가지 않을 때는 집에서 3살짜리 동생을 자전거에 태우고 놀아줬다고 했다. 이웃집 아이들과 잘 어울리고 누구에게든 말을 걸어주는 상냥한 아이였다.

불과 며칠 전까지도 함께 공부하고 놀았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친구들이 기억하는 린 양은 밝고 건강한 아이였다. 중간에 전학 온 외국 친구였지만, 함께 잘 어울려 놀았다고 했다. 분홍색 소지품을 좋아했고,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는 밝은 소녀였다. 급식이나 체육, 음악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베트남 놀이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린 양은 일본을 좋아했다. 학교에서 일본어 지도를 받은 뒤 담임교사에게 편지 쓰는 것을 좋아했다. 일본어에 능숙했고 일본 노래도 잘 불렀다. 한자 쓰기 공부를 열심히 했으며 고양이를 좋아했다.

베트남 인터넷 기사에 따르면, 린 양이 3살 때 부모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온 것으로 알려졌다. 실종 이틀 전 어머니와 동생이 베트남에 귀국한 상태였다. 실종 직후, 린 양의 어머니는 딸이 무사히 돌아올 것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NHK는 어머니가 심리적으로 매우 힘든 상태라고 전했다.

어린이 통학로 안전 비상

초등학교 교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린 양이 건강하고 모든 일에 적극적이었다면서, 깊은 슬픔과 위로의 뜻을 밝혔다. 학교 측은 어린이 심리치료를 위한 상담교사를 배치하기로 했다. 봄방학 동안 어린이들이 등교하는 행사도 취소했다. 새 학기 등하교 안전 대책 강화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27일 밤, 학교에서 긴급 학부모 회의가 열렸다. 등하교 안전대책을 철저히 해달라는 요구가 잇따랐다. 당분간 아이들이 밖에서 놀지 않도록 하겠다는 말도 잇따랐다.

경찰은 처음부터 살인 및 시신 유기 사건으로 수사 방향을 잡았다. 100여 명이 수사에 투입됐다. 현장 부근에는 다툼의 흔적이 없었다. 두 손목이 강하게 눌린 흔적이 발견됐다. 범인이 다른 곳에서 린 양을 납치된 뒤 숨지게 하고, 이미 알고 있던 외진 곳에 시신을 유기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초등학생들의 등굣길을 지켰던 자원봉사자는 실종 당일 린 양이 보이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사망 시점은 실종 당일부터 이튿날까지로 추정됐다.

미궁에 빠진 수사...단서는?

 
베트남 대사관 측은 수사본부가 차려진 경찰서와 피해자 자택을 방문한 뒤, 기자들과 만나 '매우 슬픈 사건'이라면서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에 살고 있는 베트남인들은 '남의 일 같지 않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일부 베트남인들은 애도와 위로의 뜻을 담은 꽃다발을 들고 찾아왔다.

수사 결과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 2월, 린 양이 친구에게 "지난달(1월), 통학로에 수상한 사람이 있어서 무서웠다"면서 "무서운 곳을 달려서 지나왔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린 양은 2학년 때까지 함께 등교하던 친구가 이사가면서, 3학년 때부터는 혼자 등교하는 일이 잦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건 당시 수상한 사람이나 수상한 차량을 봤다는 목격자는 나오지 않았다.

 
대대적인 수색 작업이 이어졌다. 약 25km 떨어진 하천 부근에서 책가방과 옷가지 일부가 발견됐다. 집과 사건 현장, 책가방 등이 발견된 곳은 각각 10km 이상 떨어진 곳이다. 차량으로 30분 이상 소요된다. 범인은 차량을 이용해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경찰은 CCTV 녹화 영상 등을 샅샅이 살펴보면서 범인의 단서를 뒤쫓고 있다.

29일 오후, 아비코 시의 교장회의가 소집됐다. 지역 교육위원회와 초중학교 교장 6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통학로 안전 강화방안을 논의했다. 봄 방학 동안 위험한 장소를 미리 점검하고 통학로를 변경하거나 안전순찰을 강화하기로 했다.

2016년 일본에서 13세 미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살인·살인미수 범죄는 74건, 약취·유인은 106건, 체포 감금 사건은 21건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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