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폭행으로 멍든 대학배구…학교 폭력 왜 근절 안되나?

입력 2017.03.30 (21:52) 수정 2017.03.30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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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기사] [뉴스9] ‘폭행’으로 얼룩진 대학 배구…학교는 감추기 급급

지난 29일, 경기도 내 배구팀 B선수의 멍든 얼굴 모습지난 29일, 경기도 내 배구팀 B선수의 멍든 얼굴 모습

# "악!" 배구장에 울려 퍼진 비명 소리

지난 25일 저녁 6시쯤, 국내 한 사립대학
교내 배구장. 이날 2017 대학배구리그 개막전에서 상대팀에 졌다는 이유와 평소 선수들의 생활 태도가 불손하다는 이유로 배구부 전원에 대한 집합 명령이 떨어졌다. 모 대학 배구부의 A코치가 선수 16명 전원을 소집한 것. A코치는 선수들에게 코트에 머리를 박고 손을 허리 뒤로 올리는 일명, '원산폭격'(군대용어)을 시켰다. 명백한 가혹행위였다.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던 순간, 4학년인 B선수는 A코치의 지시를 따르지 않겠다며 버텼다.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코트에 박은 B선수는 복부를 여러차례 걷어차이자 분에 못이겨 일어서서 A코치의 뺨을 때렸다. 이에 흥분한 A코치는 B선수의 얼굴을 가격했고, 선수는 곧바로 119를 불러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눈두덩이에)피가 계속나가지고 응급실 바로 가서 처방받았고요, 코치님 입장에선 제가 자꾸 대드니까 홧김에 그런 것 같습니다."

코치와 선수의 나이차가 2살 밖에 나지 않아 발생한 이 불미스러운 사건은 배구팀내 서열 문화가 불러온 참극이었다. 사건 이후 5일이 지난 뒤 취재진과 만난 피해 선수는 자신의 반항이 더 큰 화를 불러온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런 사실을 드러내기에 주저했다.

물론 자신이 잘못한 부분도 있지만, 가혹 행위를 쉬쉬하고 넘어가려는 이유는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 경우 문제아로 낙인 찍혀 프로팀 입단이 힘들까봐 그런 것이다. 또한, 의리(?)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당해도 속으로 삭혀야 한다는 암묵적인 운동부내 문화에 스스로 감염된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언제까지 운동부내 폭력의 악순환이 계속돼야 하나?

# 여전한 운동부 폭력, 왜 근절이 안되나?

지난 2015년 12월 31일 밤, 춘천의 한 호프집에서 역도 금메달 리스트였던 사재혁 선수가 한 후배를 무차별 폭행해 전치 6주의 상해를 입힌 사실이 드러나 큰 충격을 안겼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까지 땄던 사재혁은 1심 판결에서 천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데 이어, 2심인 항소심에서도 벌금 천 만 원을 받아 선수 생명이 끝났다.

[연관기사] '후배 폭행' 전 국가대표 사재혁, 항소심도 벌금 1천만 원

가까운 학교 운동부 폭행 사건으로는 지난달(2월) 25일 서울시 성북구의 모 고등학교 내에서 핸드볼 팀 코치가 한 선수를 폭행에 뇌사에 빠트리는 심각한 일도 있었다. 이런 무자비한 폭행한 이유는 사건 전날 샤워실에서 자신과 전 코치에 대해 선수가 험담을 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비단 학교 폭력이 사재혁 선수 건과 이번 대학배구 폭력 건 뿐만이 아니다. 학교 체육내의 폭력 사건은 마치 질긴 거머리처럼 우리 주위에 달라붙어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상명하복식의 운동부내 문화 때문이다. 코치라는 완장을 차면, 감독에 오르는 순간 제왕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운동 뿐만 아니라 생활면에서도 감독이나 코치의 말 한마디는 절대권한을 가진다. 선수들은 오로지 운동만 하느라 수업을 자주 빠지고, 좁은 울타리에서만 생활하다보니 끼리끼리 문화, 조직문화에 길들여져 자신들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르게 된다.

물론 요즘 어린 선수들이 당하고만 있지는 않기도 한다. 위 배구팀 사례처럼 코치의 뺨을 때리기도 하며 불손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가혹행위나 폭력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

# 꼬리자르기식 미봉책으론 재발 방지 불가

이 사건이 일어나고 해당 대학교의 배구부 감독은 철저하게 입단속에 나섰다. 일단 A코치가 B선수에게 사과를 하라고 지시하고, A코치의 사직서를 받는 선에서 사건을 무마하려고 했다. 해당 대학의 체육부 관리팀장 역시 뒤늦게 이 사건에 대한 정황을 파악하고도 쉬쉬하기에 급급했다.

KBS 취재진이 사건이 일어난 대학을 찾아갔을 때도 폭력 행위의 정도를 최소화하려고 선수들의 입단속을 단단히 시켜놨다. 아직 해당 팀 감독은 선수단 관리 실패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있고, 해당 대학 체육대학장 역시 사과문 발표도 하지 않고 있다. 그냥 우리끼리 일어난 내부의 일이니까 좋게 좋게 넘어가자는 안일한 태도다.

물론 철없는 26살 코치와 24살 4학년 생 사이에 일어난 단순한 폭행 사건 정도로 축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운동부내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에서 사안은 더 심각하고 복잡하며 파장도 크다. 엘리트 체육의 폐혜는 생각보다 뿌리깊고 일상화돼 있다는 교훈을 안겨준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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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30 21:52:09
    • 수정2017-03-30 22:22:49
    취재K

[연관기사] [뉴스9] ‘폭행’으로 얼룩진 대학 배구…학교는 감추기 급급

지난 29일, 경기도 내 배구팀 B선수의 멍든 얼굴 모습
# "악!" 배구장에 울려 퍼진 비명 소리

지난 25일 저녁 6시쯤, 국내 한 사립대학
교내 배구장. 이날 2017 대학배구리그 개막전에서 상대팀에 졌다는 이유와 평소 선수들의 생활 태도가 불손하다는 이유로 배구부 전원에 대한 집합 명령이 떨어졌다. 모 대학 배구부의 A코치가 선수 16명 전원을 소집한 것. A코치는 선수들에게 코트에 머리를 박고 손을 허리 뒤로 올리는 일명, '원산폭격'(군대용어)을 시켰다. 명백한 가혹행위였다.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던 순간, 4학년인 B선수는 A코치의 지시를 따르지 않겠다며 버텼다.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코트에 박은 B선수는 복부를 여러차례 걷어차이자 분에 못이겨 일어서서 A코치의 뺨을 때렸다. 이에 흥분한 A코치는 B선수의 얼굴을 가격했고, 선수는 곧바로 119를 불러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눈두덩이에)피가 계속나가지고 응급실 바로 가서 처방받았고요, 코치님 입장에선 제가 자꾸 대드니까 홧김에 그런 것 같습니다."

코치와 선수의 나이차가 2살 밖에 나지 않아 발생한 이 불미스러운 사건은 배구팀내 서열 문화가 불러온 참극이었다. 사건 이후 5일이 지난 뒤 취재진과 만난 피해 선수는 자신의 반항이 더 큰 화를 불러온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런 사실을 드러내기에 주저했다.

물론 자신이 잘못한 부분도 있지만, 가혹 행위를 쉬쉬하고 넘어가려는 이유는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 경우 문제아로 낙인 찍혀 프로팀 입단이 힘들까봐 그런 것이다. 또한, 의리(?)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당해도 속으로 삭혀야 한다는 암묵적인 운동부내 문화에 스스로 감염된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언제까지 운동부내 폭력의 악순환이 계속돼야 하나?

# 여전한 운동부 폭력, 왜 근절이 안되나?

지난 2015년 12월 31일 밤, 춘천의 한 호프집에서 역도 금메달 리스트였던 사재혁 선수가 한 후배를 무차별 폭행해 전치 6주의 상해를 입힌 사실이 드러나 큰 충격을 안겼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까지 땄던 사재혁은 1심 판결에서 천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데 이어, 2심인 항소심에서도 벌금 천 만 원을 받아 선수 생명이 끝났다.

[연관기사] '후배 폭행' 전 국가대표 사재혁, 항소심도 벌금 1천만 원

가까운 학교 운동부 폭행 사건으로는 지난달(2월) 25일 서울시 성북구의 모 고등학교 내에서 핸드볼 팀 코치가 한 선수를 폭행에 뇌사에 빠트리는 심각한 일도 있었다. 이런 무자비한 폭행한 이유는 사건 전날 샤워실에서 자신과 전 코치에 대해 선수가 험담을 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비단 학교 폭력이 사재혁 선수 건과 이번 대학배구 폭력 건 뿐만이 아니다. 학교 체육내의 폭력 사건은 마치 질긴 거머리처럼 우리 주위에 달라붙어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상명하복식의 운동부내 문화 때문이다. 코치라는 완장을 차면, 감독에 오르는 순간 제왕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운동 뿐만 아니라 생활면에서도 감독이나 코치의 말 한마디는 절대권한을 가진다. 선수들은 오로지 운동만 하느라 수업을 자주 빠지고, 좁은 울타리에서만 생활하다보니 끼리끼리 문화, 조직문화에 길들여져 자신들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르게 된다.

물론 요즘 어린 선수들이 당하고만 있지는 않기도 한다. 위 배구팀 사례처럼 코치의 뺨을 때리기도 하며 불손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가혹행위나 폭력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

# 꼬리자르기식 미봉책으론 재발 방지 불가

이 사건이 일어나고 해당 대학교의 배구부 감독은 철저하게 입단속에 나섰다. 일단 A코치가 B선수에게 사과를 하라고 지시하고, A코치의 사직서를 받는 선에서 사건을 무마하려고 했다. 해당 대학의 체육부 관리팀장 역시 뒤늦게 이 사건에 대한 정황을 파악하고도 쉬쉬하기에 급급했다.

KBS 취재진이 사건이 일어난 대학을 찾아갔을 때도 폭력 행위의 정도를 최소화하려고 선수들의 입단속을 단단히 시켜놨다. 아직 해당 팀 감독은 선수단 관리 실패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있고, 해당 대학 체육대학장 역시 사과문 발표도 하지 않고 있다. 그냥 우리끼리 일어난 내부의 일이니까 좋게 좋게 넘어가자는 안일한 태도다.

물론 철없는 26살 코치와 24살 4학년 생 사이에 일어난 단순한 폭행 사건 정도로 축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운동부내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에서 사안은 더 심각하고 복잡하며 파장도 크다. 엘리트 체육의 폐혜는 생각보다 뿌리깊고 일상화돼 있다는 교훈을 안겨준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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