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근로시간 단축’…한국은 못하고 일본은 하고

입력 2017.03.31 (07:42) 수정 2017.03.3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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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나라에서는 '근로시간 단축'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쟁점이 되고 있다.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자는 안이었지만, 결국 국회에서 의견 합의를 이뤄내지 못했고, 대선 이후로 논의는 넘어가는 모양새다.

하지만 일본은 근로시간 단축에 사회구성원들이 합의를 이뤄내 2019년 실시를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재계와 근로자, 또 정치권의 생각이 제각각일 수밖에 없는 근로시간 단축. 일본은 어떤 과정을 거쳐 합의에 이르렀을까? 그리고 이를 성사시킨 일본의 절박함은 무엇일까 살펴보고자 한다.

‘과로사’ 사회 일본…노동시간 단축의 '싹'이 트다

지난해 일본을 관통했던 단어 중에 하나가 '과로사'다. 글자 그대로 격무로 점철되는 근무 환경을 견디지 못해 숨지거나, 자살하는 사건들을 말하는데, 그 실태가 드러나면서 사회적으로 충격을 안겼다.

일본 1위의 광고회사, 일본 젊은이들이 취업하고 싶은 회사 1위로 꼽히는 '덴츠'에서 도쿄대를 졸업한 여직원이 과로를 이기지 못해 자살해 지난해 과로사로 인정받는 사건이 있었다. 덴츠는 사장이 물러나고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전후 일본 사회의 미덕으로 여겨지던 기업에 헌신, 복종하는 인재상이 흔들리게 되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었다.

사회적 공분과 문제의식이 그대로 끝났다면 바뀌는 게 없었을 것, 하지만 이후 제도적인 접근이 이뤄지면서 단순한 사회적 반성 분위기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합의가 담긴 개선안을 내놓게 됐다. 그 중심적 역할을 한 것이 아베 총리가 출범시킨 '일하는 방법 개혁위'였다.


노동 시간 안 줄이면 ‘경제 활력’이 죽는다

지난해 일본 정부 주도로 출범한 '일하는 방법 개혁위'.

그 출범 배경에는 지금까지의 일본식 성장 모델, 노동 모델로는 더는 경제 활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과도한 노동 시간에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는 제한될 수밖에 없고, 일에 지쳐 육아에 참여하지 않는 남성상으로는 이미 심각한 지경인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방향성을 찾을 수 없었다.

최근 10년간 생산가능인구만 천만 명이 줄어든 일본으로서는 근본적인 방향성 제고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결국, 주목한 것이 '일과 출산율' 그리고 경제적 활력의 제고 사이의 상관성이다.

일하면서도 가정일을 할 수 있고, 육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그로 인해 가정의 여성들을 경제 현장으로 이끌어 내고, 또 그러면서도 출산율도 높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어찌 보면 두 마리 토끼를 잡자는 시도다.

그리고 거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노동 시간 단축이었다.

지난 28일 노동시간 단축에 합의한 '일하는 개혁위' 안의 가장 큰 특징은 '처벌 조항'의 삽입이다. 원칙적으로 월 45시간, 연간 360시간을 상한으로 두고 개별 기업에서 노사가 합의하면 연간 720시간까지는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회사가 바쁜 시기 100시간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만 초과근로가 가능토록 할 방침이다. 이를 어기면 처벌을 받게 된다.

정규직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대신 비정규직을 늘리는 기업들의 꼼수를 막기 위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강력히 적용하기로 한 것도 큰 특징이다.

재계도 앞장서는 ‘일하는 시간 줄이기’

'일하는 방법 개혁위'에는 일본 재계의 집합체인 '게이단렌'도 참여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강력한 드라이브 속에 수 개월간 토의가 계속됐고, 결국 노사정은 합의에 이르게 됐다.

2016년 일본에서 구직자 1인당 일자리 수는 1.36개다. 심각한 노동인구부족상황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1인당 근로시간을 줄이면 일할 사람을 더 모집해야 하고, 기업 환경이 더 어려운 지경에 빠질지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 재계는 일의 효율성, 노동 시간의 유연화에서 그 답을 찾고 있는 모습이다.


편의점 업체인 훼미리마트가 이르면 올가을‘주 3일 휴무, 4일 근무제'를 도입하고, 도요타 등 주요 대기업이 재택근무를 적극 도입하기 시작한 것도 결국 지금까지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던 회사에 붙잡아 두기, 밤늦게까지 일하기가 기업 경쟁력 제고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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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7-03-31 08:31:39
    특파원 리포트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근로시간 단축'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쟁점이 되고 있다.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자는 안이었지만, 결국 국회에서 의견 합의를 이뤄내지 못했고, 대선 이후로 논의는 넘어가는 모양새다.

하지만 일본은 근로시간 단축에 사회구성원들이 합의를 이뤄내 2019년 실시를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재계와 근로자, 또 정치권의 생각이 제각각일 수밖에 없는 근로시간 단축. 일본은 어떤 과정을 거쳐 합의에 이르렀을까? 그리고 이를 성사시킨 일본의 절박함은 무엇일까 살펴보고자 한다.

‘과로사’ 사회 일본…노동시간 단축의 '싹'이 트다

지난해 일본을 관통했던 단어 중에 하나가 '과로사'다. 글자 그대로 격무로 점철되는 근무 환경을 견디지 못해 숨지거나, 자살하는 사건들을 말하는데, 그 실태가 드러나면서 사회적으로 충격을 안겼다.

일본 1위의 광고회사, 일본 젊은이들이 취업하고 싶은 회사 1위로 꼽히는 '덴츠'에서 도쿄대를 졸업한 여직원이 과로를 이기지 못해 자살해 지난해 과로사로 인정받는 사건이 있었다. 덴츠는 사장이 물러나고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전후 일본 사회의 미덕으로 여겨지던 기업에 헌신, 복종하는 인재상이 흔들리게 되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었다.

사회적 공분과 문제의식이 그대로 끝났다면 바뀌는 게 없었을 것, 하지만 이후 제도적인 접근이 이뤄지면서 단순한 사회적 반성 분위기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합의가 담긴 개선안을 내놓게 됐다. 그 중심적 역할을 한 것이 아베 총리가 출범시킨 '일하는 방법 개혁위'였다.


노동 시간 안 줄이면 ‘경제 활력’이 죽는다

지난해 일본 정부 주도로 출범한 '일하는 방법 개혁위'.

그 출범 배경에는 지금까지의 일본식 성장 모델, 노동 모델로는 더는 경제 활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과도한 노동 시간에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는 제한될 수밖에 없고, 일에 지쳐 육아에 참여하지 않는 남성상으로는 이미 심각한 지경인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방향성을 찾을 수 없었다.

최근 10년간 생산가능인구만 천만 명이 줄어든 일본으로서는 근본적인 방향성 제고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결국, 주목한 것이 '일과 출산율' 그리고 경제적 활력의 제고 사이의 상관성이다.

일하면서도 가정일을 할 수 있고, 육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그로 인해 가정의 여성들을 경제 현장으로 이끌어 내고, 또 그러면서도 출산율도 높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어찌 보면 두 마리 토끼를 잡자는 시도다.

그리고 거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노동 시간 단축이었다.

지난 28일 노동시간 단축에 합의한 '일하는 개혁위' 안의 가장 큰 특징은 '처벌 조항'의 삽입이다. 원칙적으로 월 45시간, 연간 360시간을 상한으로 두고 개별 기업에서 노사가 합의하면 연간 720시간까지는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회사가 바쁜 시기 100시간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만 초과근로가 가능토록 할 방침이다. 이를 어기면 처벌을 받게 된다.

정규직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대신 비정규직을 늘리는 기업들의 꼼수를 막기 위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강력히 적용하기로 한 것도 큰 특징이다.

재계도 앞장서는 ‘일하는 시간 줄이기’

'일하는 방법 개혁위'에는 일본 재계의 집합체인 '게이단렌'도 참여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강력한 드라이브 속에 수 개월간 토의가 계속됐고, 결국 노사정은 합의에 이르게 됐다.

2016년 일본에서 구직자 1인당 일자리 수는 1.36개다. 심각한 노동인구부족상황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 1인당 근로시간을 줄이면 일할 사람을 더 모집해야 하고, 기업 환경이 더 어려운 지경에 빠질지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 재계는 일의 효율성, 노동 시간의 유연화에서 그 답을 찾고 있는 모습이다.


편의점 업체인 훼미리마트가 이르면 올가을‘주 3일 휴무, 4일 근무제'를 도입하고, 도요타 등 주요 대기업이 재택근무를 적극 도입하기 시작한 것도 결국 지금까지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던 회사에 붙잡아 두기, 밤늦게까지 일하기가 기업 경쟁력 제고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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