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조합장에 뇌물 줬다”…돈 준 사람이 신고 이유는?

입력 2017.04.06 (16:21) 수정 2017.04.06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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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조합장 뇌물수수 혐의 수사…돈 준 사람이 신고?

사업비가 2조 원이 넘는 강남권 최대 재건축 단지인 개포주공 1단지가 술렁이고 있다. 재건축 사업 과정에서 조합장이 업체 대표에게 수천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것이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업체 대표에게 뒷돈 9천 5백만 원을 받은 혐의로 개포주공 1단지 재건축 조합장 김 모(52)씨를 수사하고 있다. 김 씨는 조합 대의원이었던 2011년 11월부터 2012년 3월 사이에 재건축정비업체 대표 장 모 씨로부터 4차례에 걸쳐 9천 5백만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씨는 돈을 받은 다음 해인 2013년, 조합장 선거에 당선돼 현재까지 조합장이다.

수사는 장 씨가 조합장 김 씨에게 뇌물을 줬다고 스스로 경찰에 신고하면서 시작됐다. 뇌물죄는 돈을 받은 사람뿐 아니라 준 사람도 처벌 받는다. 장 씨도 뇌물공여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두 사람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기에 처벌을 감수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벌어진 걸까?


형·동생 하던 사이였지만…이권 갈등에 ‘원수’ 돼

조합 관계자들과 장 씨 말에 따르면, 두 사람은 본래 서로 형·동생 하는 사이였다고 한다. 장 씨는 김 씨가 2013년 조합장에 당선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한다. 조합 내부에 지지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핵심 대의원들을 김 씨에게 소개해줬다. 나아가 자금도 지원했다고 한다.

장 씨는 2011년부터 조합장 선거를 한 해 앞둔 2012년까지 총 9천5백만 원을 김 씨에게 줬다고 주장한다. 김 씨와 김 씨 부하 직원의 계좌로 돈을 송금하거나, 사무실에서 직접 현찰을 건네는 식이었다. 장 씨는 증거 자료로 2천5백여만 원을 송금한 계좌 내역을 경찰에 제출하기도 했다.

“조합장 뜻대로 업체 선정할 수 있다”…어디까지 진실일까?

장 씨는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돈을 건넨 건 당연히 조합에서 용역 발주하는 것을 받고자 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재건축 조합장은 각종 공사 업체를 선정하는 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개포주공 1단지 재건축 조합의 정관에는 용역 업체를 선정하는 데 총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돼 있다. 문제는 총회 참석율이 10~15%로 안 된다는 것이다. 장 씨는 "총회 참석을 못 하는 조합원들에게는 '서면 결의서'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조합장이 OS요원(홍보요원)들을 동원해 조합원들에게 안건을 찬성하는 쪽으로 결의서를 받아오라고 한다"고 말했다. 총회가 형식적으로 이뤄질 뿐 조합장 뜻대로 업체를 선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장 씨가 돈을 줬을 때 기대했던 것과 달리, 장 씨에게 주어진 공사 계약은 없었다고 한다. 애초 장 씨는 자신의 업체가 재건축전문정비업체로 선정되길 바랐다. 하지만 조합에선 관련 업무에 대해 용역을 주지 않고 자체적으로 처리했다.

철거나 조경 등 다른 공사 계약에서도 역시 장 씨의 몫은 없었다. 계약 문제로 다툰 이후 두 사람은 멀어졌다. 장 씨는 지난해 10월 김 씨에게 돈을 준 증빙 자료를 모아 경찰에 신고했다.


조합장 김 씨, 8천만 원 돌려주며…“같이 살자”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조합장 김 씨가 돈을 돌려주며 사건을 무마하려 한 정황도 포착됐다. 조합장 김 씨는 지난 1월 8천만 원을 장 씨 명의의 계좌로 입금했다. 김 씨와 장 씨가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함께 식사를 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식사 자리에서 녹취된 음성 파일을 들어보면 조합장 김 씨는 장 씨에게 "같이 사는 게 답 아니겠냐? 같이 사는 게"라며, "내가 여기 이 자리 나온 거는 너하고 친했던 옛날 관계를, 그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서 나온 거지"라고 말한다.

취재진은 조합장 김 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김 씨는 응하지 않았다. 경찰은 두 사람을 불러 대질 조사까지 마친 상태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장 씨에게 과거 돈을 빌렸다가 갚은 것일 뿐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합 비리,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최근 송파구 가락시영 아파트 재건축 사업 과정에서도 조합장이 업체에서 억대 금품을 받아 실형을 선고 받았다. 조합장 뇌물 수수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조합 내부의 중요한 의사 결정이 '서면결의서'로 대체되는 탓이 크다.

재건축 전문가들에 따르면 재건축 조합 총회는 참석율이 과반에 못 미칠 때가 많다. 따라서 의사결정이 서면결의서에 의해 좌우되는데, 조합장이 OS요원(홍보요원)을 동원하면 원하는 방향으로 찬반 결의서를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조합장과 시공사 간의 이면계약도 문제다. 대표적인 게 철거 공사다. 현행 도시정비법상 철거업체는 시공사가 선정하게 돼 있지만, 조합장이 특정 업체를 부탁하면 시공사도 무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대단지의 경우 조합장이 비리 의혹에 휩싸여도 교체가 쉽지 않다. 일반 조합원들이 조합장 교체를 위해 총회를 소집하려면 모든 조합원들에게 우편물을 보내 소집 이유 등을 설명해야 한다.

한 조합원은 "조합원이 5천 명이 넘을 경우 한 번 우편물을 보내는 데만 5백만 원이 든다"고 말했다. 또 조합장이 교체되면 사업 시행이 늦어질 것을 우려해 비리를 눈감아 주는 분위기도 있는 게 현실이다.

[연관기사] [단독] “재건축 조합장에 뒷돈 건넸다” 신고…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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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06 16:21:44
    • 수정2017-04-06 16:22:06
    취재후·사건후
재건축 조합장 뇌물수수 혐의 수사…돈 준 사람이 신고?

사업비가 2조 원이 넘는 강남권 최대 재건축 단지인 개포주공 1단지가 술렁이고 있다. 재건축 사업 과정에서 조합장이 업체 대표에게 수천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것이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업체 대표에게 뒷돈 9천 5백만 원을 받은 혐의로 개포주공 1단지 재건축 조합장 김 모(52)씨를 수사하고 있다. 김 씨는 조합 대의원이었던 2011년 11월부터 2012년 3월 사이에 재건축정비업체 대표 장 모 씨로부터 4차례에 걸쳐 9천 5백만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씨는 돈을 받은 다음 해인 2013년, 조합장 선거에 당선돼 현재까지 조합장이다.

수사는 장 씨가 조합장 김 씨에게 뇌물을 줬다고 스스로 경찰에 신고하면서 시작됐다. 뇌물죄는 돈을 받은 사람뿐 아니라 준 사람도 처벌 받는다. 장 씨도 뇌물공여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두 사람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기에 처벌을 감수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벌어진 걸까?


형·동생 하던 사이였지만…이권 갈등에 ‘원수’ 돼

조합 관계자들과 장 씨 말에 따르면, 두 사람은 본래 서로 형·동생 하는 사이였다고 한다. 장 씨는 김 씨가 2013년 조합장에 당선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한다. 조합 내부에 지지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핵심 대의원들을 김 씨에게 소개해줬다. 나아가 자금도 지원했다고 한다.

장 씨는 2011년부터 조합장 선거를 한 해 앞둔 2012년까지 총 9천5백만 원을 김 씨에게 줬다고 주장한다. 김 씨와 김 씨 부하 직원의 계좌로 돈을 송금하거나, 사무실에서 직접 현찰을 건네는 식이었다. 장 씨는 증거 자료로 2천5백여만 원을 송금한 계좌 내역을 경찰에 제출하기도 했다.

“조합장 뜻대로 업체 선정할 수 있다”…어디까지 진실일까?

장 씨는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돈을 건넨 건 당연히 조합에서 용역 발주하는 것을 받고자 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재건축 조합장은 각종 공사 업체를 선정하는 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개포주공 1단지 재건축 조합의 정관에는 용역 업체를 선정하는 데 총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돼 있다. 문제는 총회 참석율이 10~15%로 안 된다는 것이다. 장 씨는 "총회 참석을 못 하는 조합원들에게는 '서면 결의서'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조합장이 OS요원(홍보요원)들을 동원해 조합원들에게 안건을 찬성하는 쪽으로 결의서를 받아오라고 한다"고 말했다. 총회가 형식적으로 이뤄질 뿐 조합장 뜻대로 업체를 선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장 씨가 돈을 줬을 때 기대했던 것과 달리, 장 씨에게 주어진 공사 계약은 없었다고 한다. 애초 장 씨는 자신의 업체가 재건축전문정비업체로 선정되길 바랐다. 하지만 조합에선 관련 업무에 대해 용역을 주지 않고 자체적으로 처리했다.

철거나 조경 등 다른 공사 계약에서도 역시 장 씨의 몫은 없었다. 계약 문제로 다툰 이후 두 사람은 멀어졌다. 장 씨는 지난해 10월 김 씨에게 돈을 준 증빙 자료를 모아 경찰에 신고했다.


조합장 김 씨, 8천만 원 돌려주며…“같이 살자”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조합장 김 씨가 돈을 돌려주며 사건을 무마하려 한 정황도 포착됐다. 조합장 김 씨는 지난 1월 8천만 원을 장 씨 명의의 계좌로 입금했다. 김 씨와 장 씨가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 함께 식사를 한 바로 다음 날이었다.

식사 자리에서 녹취된 음성 파일을 들어보면 조합장 김 씨는 장 씨에게 "같이 사는 게 답 아니겠냐? 같이 사는 게"라며, "내가 여기 이 자리 나온 거는 너하고 친했던 옛날 관계를, 그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서 나온 거지"라고 말한다.

취재진은 조합장 김 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김 씨는 응하지 않았다. 경찰은 두 사람을 불러 대질 조사까지 마친 상태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장 씨에게 과거 돈을 빌렸다가 갚은 것일 뿐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합 비리,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최근 송파구 가락시영 아파트 재건축 사업 과정에서도 조합장이 업체에서 억대 금품을 받아 실형을 선고 받았다. 조합장 뇌물 수수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조합 내부의 중요한 의사 결정이 '서면결의서'로 대체되는 탓이 크다.

재건축 전문가들에 따르면 재건축 조합 총회는 참석율이 과반에 못 미칠 때가 많다. 따라서 의사결정이 서면결의서에 의해 좌우되는데, 조합장이 OS요원(홍보요원)을 동원하면 원하는 방향으로 찬반 결의서를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조합장과 시공사 간의 이면계약도 문제다. 대표적인 게 철거 공사다. 현행 도시정비법상 철거업체는 시공사가 선정하게 돼 있지만, 조합장이 특정 업체를 부탁하면 시공사도 무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대단지의 경우 조합장이 비리 의혹에 휩싸여도 교체가 쉽지 않다. 일반 조합원들이 조합장 교체를 위해 총회를 소집하려면 모든 조합원들에게 우편물을 보내 소집 이유 등을 설명해야 한다.

한 조합원은 "조합원이 5천 명이 넘을 경우 한 번 우편물을 보내는 데만 5백만 원이 든다"고 말했다. 또 조합장이 교체되면 사업 시행이 늦어질 것을 우려해 비리를 눈감아 주는 분위기도 있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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