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단 한줄로 ‘핵공감’…SNS로 시 쓰고 연애하고

입력 2017.04.07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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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클래식' .

조승우는 시골 삼촌 댁에 갔다가, 손예진을 만나 첫눈에 반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친구의 약혼녀. 연애편지가 어렵다는 친구의 부탁으로 손예진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대필하기 시작하죠.

자주 만날 수도 없고, 한 번에 많은 얘기를 해야 했던 그 시절, 편지 한 장에 마음을 모두 담기란 가슴 떨리면서도, 너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스마트폰이나 SNS로 연락해 언제든지 쉽게 만날 수 있는 요즘은 길고 장황하기보단, 얼마나 재치있게 마음을 전하는 지가 관건입니다. 너무 부담스럽거나 진지하지 않고, 그렇다고 가볍지만도 않게 표현하는 센스가 필요한 거죠. 단 한마디만으로도 예리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 SNS 연애시는 그렇게 2030세대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일상적 소재로 짧고 강렬하게!

25만 팔로워들의 격려에 힘입어 올 초, 책까지 출간한 작가 '시쓰세영'의 SNS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볼까요?

우선, 시 소재는 모두 일상 속에서 찾습니다.


'맛있던 그 고기/집에 와선 아니더라/사귀기 전엔 잘해주던 그 시절의 너처럼.'(시식코너)

'너한테 뭐 좋아하느냐고 물었을 때/삼겹살이라고 해서/나는 사실 설렜어/내 얘기 하는 줄 알았거든.'(삼겹살) 처럼 모든 일상의 상황이 소재가 된다고 합니다.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시상을 떠올린다고 하는데요, 그래야 콘텐츠의 회전 속도가 빠른 SNS 공간에서 공감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귀여운 언어적 유희로 재치있게 마음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미사여구가 많거나, 돌려 말하는 건 소위 '손가락이 오글거리기 때문에' 피하고, 직설적으로 강렬하게 전달하는 게 포인트입니다.

'벚꽃놀이 가는 커플/하나도 안 부럽다/하, 나도/'처럼 쉼표 하나로 외로움을 표현한다든가,


'당신은 봄 같은 사람이에요/정말/날 풀리게 하는 당신', '넌 나의 꽃사슴/내 맘을 녹용'처럼 짧고 직관적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시가 인기입니다.

형태적 실험도 파격적으로

SNS는 읽는다기보단, 보는 콘텐츠죠. 이렇다 보니 시에 형태적인 변화를 주는 시도도 다양해졌습니다. 개설 1년 만에 1,300명 넘는 구독자를 만든 페이스북 '시쓰는 오빠'는 글자를 층층이 쌓아 계단처럼 만든 연재시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난/지금/너만을/생각하며/숨쉬고있어'(5층), '또/맘이/자꾸만/간질거려/아마도네가/내마음에내려/활짝피었나봐'(7층)처럼 띄어쓰기를 생략하고, 축약된 단어를 사용해 내용보단 형태적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영상이나 웹툰과 만나 한눈에 시를 전달하려는 시도도 있습니다. 시에 음악을 입히고, 영상을 만들어 뮤직비디오처럼 만들고, 시를 귀여운 캐릭터가 등장하는 만화에 녹여냅니다. 단순히 '시'라기보단, 하나의 콘텐츠가 되는 셈입니다.




이런 재창조는 대부분 구독자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데요, 예를 들어, 디자인을 전공하는 구독자가 SNS 시에 공감해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주면서 작업을 시작하고요, 누군가가 시를 활용해 만든 영상을 선물하면서 종합 콘텐츠가 탄생하는 겁니다.


이렇게 호응이 폭발적인 SNS 시들은 책으로까지 출판됩니다. 책 내용을 메모하거나 사진을 찍어서 SNS로 올려 공유하던 과거와 순서가 뒤바뀐 셈입니다. '시인 등단', 이젠 공모전 입상이 아니라 SNS 독자들의 호응으로 이뤄집니다.

봄이 되자, 각 대학 익명 페이스북 홈페이지인 '대나무 숲'에선 다양한 연애 이야기를 다룬 시가 올라옵니다. 학창시절 땐 귀찮은 과제처럼 여겼던 백일장을 스스로 열고 있는 거죠.

독자들은 SNS시의 매력을 '내 얘기 같아서'라고 설명합니다.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고, 쉽게 공유할 수 있는 SNS시. 복잡한 건 딱 질색! 하지만 통쾌한 '사이다'와 공감이 필요한 2030세대에게 SNS 시는 새로운 문학 장르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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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단 한줄로 ‘핵공감’…SNS로 시 쓰고 연애하고
    • 입력 2017-04-07 16:58:42
    취재후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클래식' .

조승우는 시골 삼촌 댁에 갔다가, 손예진을 만나 첫눈에 반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친구의 약혼녀. 연애편지가 어렵다는 친구의 부탁으로 손예진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대필하기 시작하죠.

자주 만날 수도 없고, 한 번에 많은 얘기를 해야 했던 그 시절, 편지 한 장에 마음을 모두 담기란 가슴 떨리면서도, 너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스마트폰이나 SNS로 연락해 언제든지 쉽게 만날 수 있는 요즘은 길고 장황하기보단, 얼마나 재치있게 마음을 전하는 지가 관건입니다. 너무 부담스럽거나 진지하지 않고, 그렇다고 가볍지만도 않게 표현하는 센스가 필요한 거죠. 단 한마디만으로도 예리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 SNS 연애시는 그렇게 2030세대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일상적 소재로 짧고 강렬하게!

25만 팔로워들의 격려에 힘입어 올 초, 책까지 출간한 작가 '시쓰세영'의 SNS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볼까요?

우선, 시 소재는 모두 일상 속에서 찾습니다.


'맛있던 그 고기/집에 와선 아니더라/사귀기 전엔 잘해주던 그 시절의 너처럼.'(시식코너)

'너한테 뭐 좋아하느냐고 물었을 때/삼겹살이라고 해서/나는 사실 설렜어/내 얘기 하는 줄 알았거든.'(삼겹살) 처럼 모든 일상의 상황이 소재가 된다고 합니다.

길을 걷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시상을 떠올린다고 하는데요, 그래야 콘텐츠의 회전 속도가 빠른 SNS 공간에서 공감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귀여운 언어적 유희로 재치있게 마음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미사여구가 많거나, 돌려 말하는 건 소위 '손가락이 오글거리기 때문에' 피하고, 직설적으로 강렬하게 전달하는 게 포인트입니다.

'벚꽃놀이 가는 커플/하나도 안 부럽다/하, 나도/'처럼 쉼표 하나로 외로움을 표현한다든가,


'당신은 봄 같은 사람이에요/정말/날 풀리게 하는 당신', '넌 나의 꽃사슴/내 맘을 녹용'처럼 짧고 직관적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시가 인기입니다.

형태적 실험도 파격적으로

SNS는 읽는다기보단, 보는 콘텐츠죠. 이렇다 보니 시에 형태적인 변화를 주는 시도도 다양해졌습니다. 개설 1년 만에 1,300명 넘는 구독자를 만든 페이스북 '시쓰는 오빠'는 글자를 층층이 쌓아 계단처럼 만든 연재시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난/지금/너만을/생각하며/숨쉬고있어'(5층), '또/맘이/자꾸만/간질거려/아마도네가/내마음에내려/활짝피었나봐'(7층)처럼 띄어쓰기를 생략하고, 축약된 단어를 사용해 내용보단 형태적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영상이나 웹툰과 만나 한눈에 시를 전달하려는 시도도 있습니다. 시에 음악을 입히고, 영상을 만들어 뮤직비디오처럼 만들고, 시를 귀여운 캐릭터가 등장하는 만화에 녹여냅니다. 단순히 '시'라기보단, 하나의 콘텐츠가 되는 셈입니다.




이런 재창조는 대부분 구독자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데요, 예를 들어, 디자인을 전공하는 구독자가 SNS 시에 공감해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주면서 작업을 시작하고요, 누군가가 시를 활용해 만든 영상을 선물하면서 종합 콘텐츠가 탄생하는 겁니다.


이렇게 호응이 폭발적인 SNS 시들은 책으로까지 출판됩니다. 책 내용을 메모하거나 사진을 찍어서 SNS로 올려 공유하던 과거와 순서가 뒤바뀐 셈입니다. '시인 등단', 이젠 공모전 입상이 아니라 SNS 독자들의 호응으로 이뤄집니다.

봄이 되자, 각 대학 익명 페이스북 홈페이지인 '대나무 숲'에선 다양한 연애 이야기를 다룬 시가 올라옵니다. 학창시절 땐 귀찮은 과제처럼 여겼던 백일장을 스스로 열고 있는 거죠.

독자들은 SNS시의 매력을 '내 얘기 같아서'라고 설명합니다.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고, 쉽게 공유할 수 있는 SNS시. 복잡한 건 딱 질색! 하지만 통쾌한 '사이다'와 공감이 필요한 2030세대에게 SNS 시는 새로운 문학 장르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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