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세상의 빛으로부터 차단된 소녀가 있다. 소녀 곁엔 때로는 엄한 스승으로, 때로는 맘 편한 벗이 되어 오랜 시간 '판소리'를 일깨워주는 사람이 있다.
제자는 스승의 소리를 통해 삶의 풍경을 그려가고 스승은 제자의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풍경을 넓혀나간다. 스승과 제자, 운명 같은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이제 소리 길 위에서 희로애락을 함께 교감하는 동행자가 된다.
점자책 ‘서편제’ 속 ‘송화’와의 교감
김지연(22) 씨는 7개월 만에 미숙아로 태어났다.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하던 중 무호흡 상태에서 그만 시력을 잃게 됐다. 1급 시각 장애인으로, 지연 씨는 태어나 단 한 번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던 지연 씨에게 6년 전 새로운 삶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우연히 점자책 '서편제'를 읽다가 여주인공 송화의 한과 기쁨을 자신의 것으로 느끼게 됐다. '어쩌면 송화가 걸어온 소리 길을 나도 걸을 수 있지 않을까?' 지연 씨는 막막하지만 설레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운명 같은 스승과 제자의 만남
간절함이 만남의 운명을 이어준 것일까. 지연 씨는 국립 서울맹학교에 다니던 중 시각 중복 장애인을 위한 설리번학습지원센터의 국악 담당 원진주(40)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지연 씨. 지연 씨의 부모님은 딸이 한 번도 접해본 적도 없는 판소리를 시작한다는 말에 걱정이 되어 반대를 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달랐다. 원 선생님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가르치면 가르친 만큼 잘 따라올 것이라고 믿었다. 스승은 제자가 판소리를 알아가며 너무나 행복해하는 모습에 덩달아 기뻤고, 제자도 스승과의 소리 공부가 눈을 뜬 것만큼 큰 행복이 되어갔다.
제자에게 얼굴을 내준 스승
스승은 빛조차 보지 못해 방향감각이 거의 없는 제자를 위해 얼굴을 기꺼이 내어준다. 자신의 얼굴을 제자가 손으로 더듬으며 혀의 위치, 입술 모양 등 다양한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를 감각으로 기억하게 했다.
그렇게 부채 하나를 들고 접고 펴기를 수백 번, 미세한 얼굴 방향, 어깨 올림까지도 수천 번 교정하며 연습해 왔다. 소리와 발림의 어려움을 스승과 제자가 함께 극복하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소리’보다 험난한 판소리 ‘발림’
시각장애인 지연 씨에겐 일반인도 힘든 판소리의 '창(소리)'과 '아니라(독백)'과정은 물론, 판소리의 동작인 '너름새' '발림'이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긴 이야기를 동작과 함께 풀어내야 하는 종합예술 판소리는 앞을 못 보는 지연 씨에겐 소리를 깨우치는 득음(得音)과정만큼 어려웠다. 그는 태어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양한 희로애락(喜努哀樂)을 표정과 몸짓으로 연기해야 하는 커다란 벽을 마주하게 된다.
서로에게 거울이 된 스승과 제자
함께 걸어온 6년 간 스승과 제자는 서로에게 큰 힘과 위안이 됐다. 명창대회에 나갔다 몇 번씩 낙방하며 좌절하던 스승은 지연 씨를 가르치며 힘을 얻고 또 다시 도전에 나섰다. 결국 4수 끝에 2013년 '임방울 국악제' 대통령상을 받으며 판소리 명창 반열에 올랐다.
제자 지연 씨 또한 주위의 우려와 달리 판소리를 공부한 지 2년 만에 수원대 국악과에 입학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대한민국 장애인 예술대회'에서 국악 부문 금상을 받는 등 소리꾼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고 있다.
지연 씨는 현재 학과 수업과 함께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된 '관현 맹인 연주단'에서 2년 간 활동하고 있다. 예비단원을 거쳐 연수단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지연 씨는 자신처럼 아프고 힘든 사람들에게 소리로 큰 위안을 전해주고 있다.
소리를 향한 연습 또 연습
스승과 제자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기적의 봄날'을 함께 누렸다. 올 봄, 두 사람은 지금보다 더 큰 봄을 맞으려 한다. 이제 장애인 대회가 아닌 쟁쟁한 실력을 갖춘 전국 판소리 꾼들과 당당히 실력을 겨뤄보자는 결심이다.
지연 씨는 고음과 가성 부분의 약점을 딛고 훌륭한 소리꾼으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까.
소리 너머 더 큰 세상을 걷다
지연 씨는 '시각 장애인'이 아닌 '소리꾼 김지연'으로 거듭나기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기교의 소리가 아닌 진정한 울림의 '명창 원진주'로 세상을 향해 동행하는 제자와 스승의 봄길.
장애를 넘어 마음의 소리를 빚어내는 두 사람의 눈부신 '소리 길'이 꿈길처럼 우리 곁에 펼쳐진다.
소리라는 길 위에서 스승과 제자가 함께 교감하고 동행하는 '다큐 공감-소리의 벗, 봄길을 걷다'는 4월 8일(토) 저녁 7시 10분 KBS 1TV에서 방송된다.
[프로덕션2] 문경림 kbs.petitlim@kbs.co.kr
제자는 스승의 소리를 통해 삶의 풍경을 그려가고 스승은 제자의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풍경을 넓혀나간다. 스승과 제자, 운명 같은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이제 소리 길 위에서 희로애락을 함께 교감하는 동행자가 된다.
점자책 ‘서편제’ 속 ‘송화’와의 교감
김지연(22) 씨는 7개월 만에 미숙아로 태어났다.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하던 중 무호흡 상태에서 그만 시력을 잃게 됐다. 1급 시각 장애인으로, 지연 씨는 태어나 단 한 번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던 지연 씨에게 6년 전 새로운 삶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우연히 점자책 '서편제'를 읽다가 여주인공 송화의 한과 기쁨을 자신의 것으로 느끼게 됐다. '어쩌면 송화가 걸어온 소리 길을 나도 걸을 수 있지 않을까?' 지연 씨는 막막하지만 설레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운명 같은 스승과 제자의 만남
간절함이 만남의 운명을 이어준 것일까. 지연 씨는 국립 서울맹학교에 다니던 중 시각 중복 장애인을 위한 설리번학습지원센터의 국악 담당 원진주(40)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지연 씨. 지연 씨의 부모님은 딸이 한 번도 접해본 적도 없는 판소리를 시작한다는 말에 걱정이 되어 반대를 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달랐다. 원 선생님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가르치면 가르친 만큼 잘 따라올 것이라고 믿었다. 스승은 제자가 판소리를 알아가며 너무나 행복해하는 모습에 덩달아 기뻤고, 제자도 스승과의 소리 공부가 눈을 뜬 것만큼 큰 행복이 되어갔다.
제자에게 얼굴을 내준 스승
스승은 빛조차 보지 못해 방향감각이 거의 없는 제자를 위해 얼굴을 기꺼이 내어준다. 자신의 얼굴을 제자가 손으로 더듬으며 혀의 위치, 입술 모양 등 다양한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를 감각으로 기억하게 했다.
그렇게 부채 하나를 들고 접고 펴기를 수백 번, 미세한 얼굴 방향, 어깨 올림까지도 수천 번 교정하며 연습해 왔다. 소리와 발림의 어려움을 스승과 제자가 함께 극복하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소리’보다 험난한 판소리 ‘발림’
시각장애인 지연 씨에겐 일반인도 힘든 판소리의 '창(소리)'과 '아니라(독백)'과정은 물론, 판소리의 동작인 '너름새' '발림'이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긴 이야기를 동작과 함께 풀어내야 하는 종합예술 판소리는 앞을 못 보는 지연 씨에겐 소리를 깨우치는 득음(得音)과정만큼 어려웠다. 그는 태어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양한 희로애락(喜努哀樂)을 표정과 몸짓으로 연기해야 하는 커다란 벽을 마주하게 된다.
서로에게 거울이 된 스승과 제자
함께 걸어온 6년 간 스승과 제자는 서로에게 큰 힘과 위안이 됐다. 명창대회에 나갔다 몇 번씩 낙방하며 좌절하던 스승은 지연 씨를 가르치며 힘을 얻고 또 다시 도전에 나섰다. 결국 4수 끝에 2013년 '임방울 국악제' 대통령상을 받으며 판소리 명창 반열에 올랐다.
제자 지연 씨 또한 주위의 우려와 달리 판소리를 공부한 지 2년 만에 수원대 국악과에 입학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대한민국 장애인 예술대회'에서 국악 부문 금상을 받는 등 소리꾼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고 있다.
지연 씨는 현재 학과 수업과 함께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된 '관현 맹인 연주단'에서 2년 간 활동하고 있다. 예비단원을 거쳐 연수단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지연 씨는 자신처럼 아프고 힘든 사람들에게 소리로 큰 위안을 전해주고 있다.
소리를 향한 연습 또 연습
스승과 제자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기적의 봄날'을 함께 누렸다. 올 봄, 두 사람은 지금보다 더 큰 봄을 맞으려 한다. 이제 장애인 대회가 아닌 쟁쟁한 실력을 갖춘 전국 판소리 꾼들과 당당히 실력을 겨뤄보자는 결심이다.
지연 씨는 고음과 가성 부분의 약점을 딛고 훌륭한 소리꾼으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까.
소리 너머 더 큰 세상을 걷다
지연 씨는 '시각 장애인'이 아닌 '소리꾼 김지연'으로 거듭나기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기교의 소리가 아닌 진정한 울림의 '명창 원진주'로 세상을 향해 동행하는 제자와 스승의 봄길.
장애를 넘어 마음의 소리를 빚어내는 두 사람의 눈부신 '소리 길'이 꿈길처럼 우리 곁에 펼쳐진다.
소리라는 길 위에서 스승과 제자가 함께 교감하고 동행하는 '다큐 공감-소리의 벗, 봄길을 걷다'는 4월 8일(토) 저녁 7시 10분 KBS 1TV에서 방송된다.
[프로덕션2] 문경림 kbs.petitl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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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는 내 세상의 빛”…한 소녀의 ‘눈부신’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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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7-04-07 17:00:50
태어날 때부터 세상의 빛으로부터 차단된 소녀가 있다. 소녀 곁엔 때로는 엄한 스승으로, 때로는 맘 편한 벗이 되어 오랜 시간 '판소리'를 일깨워주는 사람이 있다.
제자는 스승의 소리를 통해 삶의 풍경을 그려가고 스승은 제자의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풍경을 넓혀나간다. 스승과 제자, 운명 같은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이제 소리 길 위에서 희로애락을 함께 교감하는 동행자가 된다.
점자책 ‘서편제’ 속 ‘송화’와의 교감
김지연(22) 씨는 7개월 만에 미숙아로 태어났다.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하던 중 무호흡 상태에서 그만 시력을 잃게 됐다. 1급 시각 장애인으로, 지연 씨는 태어나 단 한 번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던 지연 씨에게 6년 전 새로운 삶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우연히 점자책 '서편제'를 읽다가 여주인공 송화의 한과 기쁨을 자신의 것으로 느끼게 됐다. '어쩌면 송화가 걸어온 소리 길을 나도 걸을 수 있지 않을까?' 지연 씨는 막막하지만 설레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운명 같은 스승과 제자의 만남
간절함이 만남의 운명을 이어준 것일까. 지연 씨는 국립 서울맹학교에 다니던 중 시각 중복 장애인을 위한 설리번학습지원센터의 국악 담당 원진주(40)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지연 씨. 지연 씨의 부모님은 딸이 한 번도 접해본 적도 없는 판소리를 시작한다는 말에 걱정이 되어 반대를 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달랐다. 원 선생님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가르치면 가르친 만큼 잘 따라올 것이라고 믿었다. 스승은 제자가 판소리를 알아가며 너무나 행복해하는 모습에 덩달아 기뻤고, 제자도 스승과의 소리 공부가 눈을 뜬 것만큼 큰 행복이 되어갔다.
제자에게 얼굴을 내준 스승
스승은 빛조차 보지 못해 방향감각이 거의 없는 제자를 위해 얼굴을 기꺼이 내어준다. 자신의 얼굴을 제자가 손으로 더듬으며 혀의 위치, 입술 모양 등 다양한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를 감각으로 기억하게 했다.
그렇게 부채 하나를 들고 접고 펴기를 수백 번, 미세한 얼굴 방향, 어깨 올림까지도 수천 번 교정하며 연습해 왔다. 소리와 발림의 어려움을 스승과 제자가 함께 극복하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소리’보다 험난한 판소리 ‘발림’
시각장애인 지연 씨에겐 일반인도 힘든 판소리의 '창(소리)'과 '아니라(독백)'과정은 물론, 판소리의 동작인 '너름새' '발림'이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긴 이야기를 동작과 함께 풀어내야 하는 종합예술 판소리는 앞을 못 보는 지연 씨에겐 소리를 깨우치는 득음(得音)과정만큼 어려웠다. 그는 태어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양한 희로애락(喜努哀樂)을 표정과 몸짓으로 연기해야 하는 커다란 벽을 마주하게 된다.
서로에게 거울이 된 스승과 제자
함께 걸어온 6년 간 스승과 제자는 서로에게 큰 힘과 위안이 됐다. 명창대회에 나갔다 몇 번씩 낙방하며 좌절하던 스승은 지연 씨를 가르치며 힘을 얻고 또 다시 도전에 나섰다. 결국 4수 끝에 2013년 '임방울 국악제' 대통령상을 받으며 판소리 명창 반열에 올랐다.
제자 지연 씨 또한 주위의 우려와 달리 판소리를 공부한 지 2년 만에 수원대 국악과에 입학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대한민국 장애인 예술대회'에서 국악 부문 금상을 받는 등 소리꾼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고 있다.
지연 씨는 현재 학과 수업과 함께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된 '관현 맹인 연주단'에서 2년 간 활동하고 있다. 예비단원을 거쳐 연수단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지연 씨는 자신처럼 아프고 힘든 사람들에게 소리로 큰 위안을 전해주고 있다.
소리를 향한 연습 또 연습
스승과 제자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기적의 봄날'을 함께 누렸다. 올 봄, 두 사람은 지금보다 더 큰 봄을 맞으려 한다. 이제 장애인 대회가 아닌 쟁쟁한 실력을 갖춘 전국 판소리 꾼들과 당당히 실력을 겨뤄보자는 결심이다.
지연 씨는 고음과 가성 부분의 약점을 딛고 훌륭한 소리꾼으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까.
소리 너머 더 큰 세상을 걷다
지연 씨는 '시각 장애인'이 아닌 '소리꾼 김지연'으로 거듭나기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기교의 소리가 아닌 진정한 울림의 '명창 원진주'로 세상을 향해 동행하는 제자와 스승의 봄길.
장애를 넘어 마음의 소리를 빚어내는 두 사람의 눈부신 '소리 길'이 꿈길처럼 우리 곁에 펼쳐진다.
소리라는 길 위에서 스승과 제자가 함께 교감하고 동행하는 '다큐 공감-소리의 벗, 봄길을 걷다'는 4월 8일(토) 저녁 7시 10분 KBS 1TV에서 방송된다.
[프로덕션2] 문경림 kbs.petitlim@kbs.co.kr
제자는 스승의 소리를 통해 삶의 풍경을 그려가고 스승은 제자의 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풍경을 넓혀나간다. 스승과 제자, 운명 같은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이제 소리 길 위에서 희로애락을 함께 교감하는 동행자가 된다.
점자책 ‘서편제’ 속 ‘송화’와의 교감
김지연(22) 씨는 7개월 만에 미숙아로 태어났다. 산소 호흡기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하던 중 무호흡 상태에서 그만 시력을 잃게 됐다. 1급 시각 장애인으로, 지연 씨는 태어나 단 한 번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던 지연 씨에게 6년 전 새로운 삶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우연히 점자책 '서편제'를 읽다가 여주인공 송화의 한과 기쁨을 자신의 것으로 느끼게 됐다. '어쩌면 송화가 걸어온 소리 길을 나도 걸을 수 있지 않을까?' 지연 씨는 막막하지만 설레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운명 같은 스승과 제자의 만남
간절함이 만남의 운명을 이어준 것일까. 지연 씨는 국립 서울맹학교에 다니던 중 시각 중복 장애인을 위한 설리번학습지원센터의 국악 담당 원진주(40)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지연 씨. 지연 씨의 부모님은 딸이 한 번도 접해본 적도 없는 판소리를 시작한다는 말에 걱정이 되어 반대를 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달랐다. 원 선생님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가르치면 가르친 만큼 잘 따라올 것이라고 믿었다. 스승은 제자가 판소리를 알아가며 너무나 행복해하는 모습에 덩달아 기뻤고, 제자도 스승과의 소리 공부가 눈을 뜬 것만큼 큰 행복이 되어갔다.
제자에게 얼굴을 내준 스승
스승은 빛조차 보지 못해 방향감각이 거의 없는 제자를 위해 얼굴을 기꺼이 내어준다. 자신의 얼굴을 제자가 손으로 더듬으며 혀의 위치, 입술 모양 등 다양한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를 감각으로 기억하게 했다.
그렇게 부채 하나를 들고 접고 펴기를 수백 번, 미세한 얼굴 방향, 어깨 올림까지도 수천 번 교정하며 연습해 왔다. 소리와 발림의 어려움을 스승과 제자가 함께 극복하기 위한 여정이 시작된다.
‘소리’보다 험난한 판소리 ‘발림’
시각장애인 지연 씨에겐 일반인도 힘든 판소리의 '창(소리)'과 '아니라(독백)'과정은 물론, 판소리의 동작인 '너름새' '발림'이 큰 고통으로 다가왔다.
긴 이야기를 동작과 함께 풀어내야 하는 종합예술 판소리는 앞을 못 보는 지연 씨에겐 소리를 깨우치는 득음(得音)과정만큼 어려웠다. 그는 태어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양한 희로애락(喜努哀樂)을 표정과 몸짓으로 연기해야 하는 커다란 벽을 마주하게 된다.
서로에게 거울이 된 스승과 제자
함께 걸어온 6년 간 스승과 제자는 서로에게 큰 힘과 위안이 됐다. 명창대회에 나갔다 몇 번씩 낙방하며 좌절하던 스승은 지연 씨를 가르치며 힘을 얻고 또 다시 도전에 나섰다. 결국 4수 끝에 2013년 '임방울 국악제' 대통령상을 받으며 판소리 명창 반열에 올랐다.
제자 지연 씨 또한 주위의 우려와 달리 판소리를 공부한 지 2년 만에 수원대 국악과에 입학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대한민국 장애인 예술대회'에서 국악 부문 금상을 받는 등 소리꾼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고 있다.
지연 씨는 현재 학과 수업과 함께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된 '관현 맹인 연주단'에서 2년 간 활동하고 있다. 예비단원을 거쳐 연수단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지연 씨는 자신처럼 아프고 힘든 사람들에게 소리로 큰 위안을 전해주고 있다.
소리를 향한 연습 또 연습
스승과 제자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기적의 봄날'을 함께 누렸다. 올 봄, 두 사람은 지금보다 더 큰 봄을 맞으려 한다. 이제 장애인 대회가 아닌 쟁쟁한 실력을 갖춘 전국 판소리 꾼들과 당당히 실력을 겨뤄보자는 결심이다.
지연 씨는 고음과 가성 부분의 약점을 딛고 훌륭한 소리꾼으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까.
소리 너머 더 큰 세상을 걷다
지연 씨는 '시각 장애인'이 아닌 '소리꾼 김지연'으로 거듭나기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기교의 소리가 아닌 진정한 울림의 '명창 원진주'로 세상을 향해 동행하는 제자와 스승의 봄길.
장애를 넘어 마음의 소리를 빚어내는 두 사람의 눈부신 '소리 길'이 꿈길처럼 우리 곁에 펼쳐진다.
소리라는 길 위에서 스승과 제자가 함께 교감하고 동행하는 '다큐 공감-소리의 벗, 봄길을 걷다'는 4월 8일(토) 저녁 7시 10분 KBS 1TV에서 방송된다.
[프로덕션2] 문경림 kbs.petitl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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