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제2의 정유라 막자”…운동만 잘 하면 안돼

입력 2017.04.10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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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정유라 막아라"

교육부가 체육특기자 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요지는 '공부하는 학생 선수'를 키우고, 입시 전형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번 개선안은 '정유라 사태'의 재발 방지책으로 마련된 것이기도 하다.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가 이화여대 체육특기자 전형에 합격한 것, 수업을 거의 듣지 않고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학점을 버젓이 따낼 수 있었던 것은 체육특기자 제도의 허점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그동안 체육특기자 제도가 운영돼 온 실태를 보면, 정유라 사태도 예견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정유라 사태 이후 교육부가 대학 체육특기자 학사관리 실태조사를 벌였다.

학사경고를 3회 이상 받고도 제적되지 않은 경우가 394명, 프로에 입단해 수업을 들을 수 없었는데도 출석처리하고 성적을 준 경우가 427명(교수 370명, 학생 57명), 시험 대리 응시와 과제물 대리 제출이 5개 대학 13명(교수 5명, 학생 8명) 등이다. 입시는 소수의 감독이나 교수만 관여하다 보니, 비리가 심심찮게 터졌다.

지난 2013년에는 한 대학 축구감독이 고교 감독으로부터 1억 2천만 원, 학부모로부터 6900만 원을 받고 학생을 입학시킨 혐의로 기소됐다.

"운동만 잘 하면 대학 진학"

체육특기자 제도는 엘리트 선수를 키우기 위해 1972년 처음 도입됐다. 운동만 잘 하면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진학이 가능하게 설계됐다. 대회 입상 실적이 중요했다. 대회나 훈련 참가가 1순위였고, 학업은 자연스레 뒤로 밀렸다.

이렇게 육성된 엘리트 선수들은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을 비롯해 각종 국제 대회에서 훌륭한 성적을거둬 국위 선양에 큰 공을 세웠다. 어려웠던 시절 국민들은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의 활약을 보며 삶의 활력을 얻기도 했다. 그 반대 급부로, 대부분의 선수들은 '공부할 기회'를 포기했고 학력 미달인 상태로 졸업했다.

프로 진출 '소수'...'다수'의 진로는?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 1만 2563개 초중고교 가운데, 학교운동부를 운영하는 곳은 4476개교(38.7%)였다. 초등학교에서 2662명, 중학교 2697명, 고등학교 1984명이 학교운동부 선수로 뛰었다. 2009년 통계를 보면, 초중고 축구 선수나 야구 선수 가운데, 프로로 진출하는 학생은 3~4% 수준에 불과하다.

대학에 진학하면 상황이 나아질까? 2011년도 대한체육회 통계를 보면, 대학을 졸업한 야구선수의 프로 진출 비율은 13.6%에 불과했다. 80% 이상은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다른 진로를 선택해야 했다. 선수 은퇴 후 진로 현황(대한체육회, 2013년)을 조사했더니, 스포츠 관련 업종에 17%, 사무직이나 판매직, 자영업에 30%가 진출했다. 43%는 무직이었다.


'공부하는' 학생 선수

교육부 개선안은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방향으로 초점이 맞춰졌다. 초중고 학생 선수는 정규 수업을 모두 마친 뒤에 훈련에 참가해야 한다. 훈련 장소가 학교에서 멀어서 정규 수업을 들을 수 없는 경우나 대회 참가로 수업에 빠지는 경우엔 학교가 보충학습을 제공해야 한다. 학기말 고사 이후 최저학력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을 위해서 학교 측은 기초학력보장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최저학력제 기준은 초등학교는 과목 학년 평균의 50%, 중학교는 40%, 고등학교는 30%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과목에, 고등학교는 국어 영어 사회 과목에 적용된다.

최저학력을 넘지 못하면, 부족한 학업을 보충하기 위해 전국대회 출전이 제한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과목별로 수행평가를 통해 받을 수 있는 점수가 있어서 수업에만 충실히 참여한다면 최저학력 기준을 넘기는 게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대학은 수업 대체인정 기준 상한선이 마련된다. 대회 출전이나 훈련 참가를 수업 대체로 인정하는데, 수업시간 대비 2분의 1까지만 허용된다. 교육부 대책과 별개로,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는 학생들의 성적 기준선을 정했다.

이번 학기부터 협의회와 관련된 농구ㆍ배구ㆍ축구ㆍ핸드볼 대회에서 직전 2학기 평균 성적이 C학점 이하인 학생들은 출전을 금지했다. 그 결과 회원 대학 93개교에서 선수 102명이 대회에 출전할 수 없게 됐다.

입시에는 성적 반영이 의무화된다. 고입 체육특기자 전형에서 내신 성적이나 최저학력 도달 여부를 의무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현재 초등학교 6학년이 고입을 치르는 2021학년도부터 적용된다. 대입 전형에서는 2020학년도부터 학생부 내신성적과 출석을 반영해야 한다.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는 수능 점수를 기준으로 최저학력 기준을 설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운동 기량 떨어질 것 vs 교육 기회 보장해야

찬반 양론이 분분하다. 당장 학생 선수들의 경기력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운동에 쏟던 시간과 에너지를 공부와 운동, 두 가지로 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날 고강도 훈련을 받거나 대회에 참가한 경우, 다음날 수업에 들어가더라도 수업에 집중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한 고교 학생 선수 학부모는 "아이들만 두 배로 힘들어질 것"이라는 말도 한다.

그럼에도, 학생 선수들이 최소한의 학업은 이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민주 시민으로서 기본 소양 교육은 물론이고, 선수 은퇴 뒤 제 2의 인생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학업은 필수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제도들이 실효성이 있을 것인지 여부다. 지금껏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한 학칙이나 제도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엘리트 체육 시스템 아래에서 눈 앞의 대회 실적이 진학이나 프로 진출과 직결되는데, 공부로 무게 중심을 분산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번 개선책도 여론의 관심이 쏠려 있는 지금 이 순간만 반짝 효과를 내다 관심이 줄어들면 유명무실해 질 가능성도 있다. 교육 당국의 정책, 학습 환경 조성을 위한 학교의 노력, 학생 선수들의 의지라는 세 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진정한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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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제2의 정유라 막자”…운동만 잘 하면 안돼
    • 입력 2017-04-10 16:39:42
    취재후·사건후
"제 2 정유라 막아라"

교육부가 체육특기자 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요지는 '공부하는 학생 선수'를 키우고, 입시 전형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번 개선안은 '정유라 사태'의 재발 방지책으로 마련된 것이기도 하다.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가 이화여대 체육특기자 전형에 합격한 것, 수업을 거의 듣지 않고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학점을 버젓이 따낼 수 있었던 것은 체육특기자 제도의 허점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그동안 체육특기자 제도가 운영돼 온 실태를 보면, 정유라 사태도 예견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정유라 사태 이후 교육부가 대학 체육특기자 학사관리 실태조사를 벌였다.

학사경고를 3회 이상 받고도 제적되지 않은 경우가 394명, 프로에 입단해 수업을 들을 수 없었는데도 출석처리하고 성적을 준 경우가 427명(교수 370명, 학생 57명), 시험 대리 응시와 과제물 대리 제출이 5개 대학 13명(교수 5명, 학생 8명) 등이다. 입시는 소수의 감독이나 교수만 관여하다 보니, 비리가 심심찮게 터졌다.

지난 2013년에는 한 대학 축구감독이 고교 감독으로부터 1억 2천만 원, 학부모로부터 6900만 원을 받고 학생을 입학시킨 혐의로 기소됐다.

"운동만 잘 하면 대학 진학"

체육특기자 제도는 엘리트 선수를 키우기 위해 1972년 처음 도입됐다. 운동만 잘 하면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진학이 가능하게 설계됐다. 대회 입상 실적이 중요했다. 대회나 훈련 참가가 1순위였고, 학업은 자연스레 뒤로 밀렸다.

이렇게 육성된 엘리트 선수들은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을 비롯해 각종 국제 대회에서 훌륭한 성적을거둬 국위 선양에 큰 공을 세웠다. 어려웠던 시절 국민들은 태극마크를 단 선수들의 활약을 보며 삶의 활력을 얻기도 했다. 그 반대 급부로, 대부분의 선수들은 '공부할 기회'를 포기했고 학력 미달인 상태로 졸업했다.

프로 진출 '소수'...'다수'의 진로는?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 1만 2563개 초중고교 가운데, 학교운동부를 운영하는 곳은 4476개교(38.7%)였다. 초등학교에서 2662명, 중학교 2697명, 고등학교 1984명이 학교운동부 선수로 뛰었다. 2009년 통계를 보면, 초중고 축구 선수나 야구 선수 가운데, 프로로 진출하는 학생은 3~4% 수준에 불과하다.

대학에 진학하면 상황이 나아질까? 2011년도 대한체육회 통계를 보면, 대학을 졸업한 야구선수의 프로 진출 비율은 13.6%에 불과했다. 80% 이상은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다른 진로를 선택해야 했다. 선수 은퇴 후 진로 현황(대한체육회, 2013년)을 조사했더니, 스포츠 관련 업종에 17%, 사무직이나 판매직, 자영업에 30%가 진출했다. 43%는 무직이었다.


'공부하는' 학생 선수

교육부 개선안은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방향으로 초점이 맞춰졌다. 초중고 학생 선수는 정규 수업을 모두 마친 뒤에 훈련에 참가해야 한다. 훈련 장소가 학교에서 멀어서 정규 수업을 들을 수 없는 경우나 대회 참가로 수업에 빠지는 경우엔 학교가 보충학습을 제공해야 한다. 학기말 고사 이후 최저학력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을 위해서 학교 측은 기초학력보장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최저학력제 기준은 초등학교는 과목 학년 평균의 50%, 중학교는 40%, 고등학교는 30%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과목에, 고등학교는 국어 영어 사회 과목에 적용된다.

최저학력을 넘지 못하면, 부족한 학업을 보충하기 위해 전국대회 출전이 제한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과목별로 수행평가를 통해 받을 수 있는 점수가 있어서 수업에만 충실히 참여한다면 최저학력 기준을 넘기는 게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대학은 수업 대체인정 기준 상한선이 마련된다. 대회 출전이나 훈련 참가를 수업 대체로 인정하는데, 수업시간 대비 2분의 1까지만 허용된다. 교육부 대책과 별개로,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는 학생들의 성적 기준선을 정했다.

이번 학기부터 협의회와 관련된 농구ㆍ배구ㆍ축구ㆍ핸드볼 대회에서 직전 2학기 평균 성적이 C학점 이하인 학생들은 출전을 금지했다. 그 결과 회원 대학 93개교에서 선수 102명이 대회에 출전할 수 없게 됐다.

입시에는 성적 반영이 의무화된다. 고입 체육특기자 전형에서 내신 성적이나 최저학력 도달 여부를 의무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현재 초등학교 6학년이 고입을 치르는 2021학년도부터 적용된다. 대입 전형에서는 2020학년도부터 학생부 내신성적과 출석을 반영해야 한다.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는 수능 점수를 기준으로 최저학력 기준을 설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운동 기량 떨어질 것 vs 교육 기회 보장해야

찬반 양론이 분분하다. 당장 학생 선수들의 경기력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운동에 쏟던 시간과 에너지를 공부와 운동, 두 가지로 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날 고강도 훈련을 받거나 대회에 참가한 경우, 다음날 수업에 들어가더라도 수업에 집중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한 고교 학생 선수 학부모는 "아이들만 두 배로 힘들어질 것"이라는 말도 한다.

그럼에도, 학생 선수들이 최소한의 학업은 이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민주 시민으로서 기본 소양 교육은 물론이고, 선수 은퇴 뒤 제 2의 인생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학업은 필수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제도들이 실효성이 있을 것인지 여부다. 지금껏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한 학칙이나 제도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엘리트 체육 시스템 아래에서 눈 앞의 대회 실적이 진학이나 프로 진출과 직결되는데, 공부로 무게 중심을 분산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번 개선책도 여론의 관심이 쏠려 있는 지금 이 순간만 반짝 효과를 내다 관심이 줄어들면 유명무실해 질 가능성도 있다. 교육 당국의 정책, 학습 환경 조성을 위한 학교의 노력, 학생 선수들의 의지라는 세 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진정한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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