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역사적인 남북경기…윤덕여호 희망을 보다

입력 2017.04.10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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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한산하기만 했던 평양 시내에서 그렇게 많은 인파를 본 것은 이번 취재 일정 중 처음이었다. 김일성경기장 주변은 수없이 몰려드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방북 기자단에 대한 이동 통제도 이날 가장 엄격했다.

킥오프 30분 전에 경기장에 들어서 기자석으로 향했을 때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5만 석은 이미 관중들로 가득 찼고, 경기 직전부터 함성과 구호 소리 등 일사불란한 단체 응원으로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페널티킥 선방과 신경전이 분위기를 바꾸다

마침내 다같이 화이팅을 외치는 목소리와 함께 선수단이 나란히 입장했다. 태극기와 인공기가 나부끼는 가운데 평양 하늘에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관중들도 다 같이 일어났다.

대표팀의 공격수 이금민은 평양에서 애국가를 부르니 뭉클하고 찡한 느낌이 들었다며 그날따라 태극기가 더 크게 보였다고 말할 정도로 선수단에도 특별한 순간이었다. 이어 북한의 국가가 연주되자 5만 관중이 합창하며 기선 제압에 나서는 듯했다.

전반 초반은 뜨거운 응원에 힘을 얻은 북한이 주도권을 쥐었다. 북한의 슛이 골대를 맞고 나왔고, 전반 5분 만에는 페널티킥을 내줬다. 하지만 골키퍼 김정미가 극적으로 페널티킥을 막아냈고, 공을 다시 움켜쥐는 과정에서 북한 선수가 김정미의 얼굴을 차 신경전이 펼쳐졌다.


우리 팀의 수비수 임선주가 달려들면서 강하게 항의해 다 같이 몸싸움을 벌인 것이었다. 주눅이 들 수도 있었던 평양 원정에서 분위기를 바꾼 전환점이었다.

포기는 없다…끈끈한 조직력으로 값진 무승부

전반 추가 시간 승향심의 돌파에 뚫려 북한에 선제골을 내주자 경기장은 뜨거운 함성으로 가득 찼다.
마치 월드컵 우승이라도 한 듯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동점 골을 노렸고, 마침내 후반 30분 장슬기의 슛이 골망을 흔들었다.


갑자기 침묵에 빠진 김일성경기장. 그렇게 평양 원정으로 펼쳐진 남북 경기는 1대 1 무승부로 끝났고, 우리 선수들은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기뻐했다.

반면, 북한 관중들은 실망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떠나 대조를 이뤘다. 공동 취재 구역에서 만난 공격수 정설빈은 왼팔이 빠졌고, 골키퍼 김정미는 얼굴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최선을 다한 투혼으로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한 선수들의 모습은 진한 감동을 안겼다.

철저한 준비가 만든 성과…‘하나의 팀’

현재까지 2승 1무를 기록 중인 대표팀은 내일 우즈베키스탄전에서 두 골 차 승리만 거두면 조 1위를 확정 짓게 된다. 우즈베키스탄은 아무래도 우리와 전력 차이가 나다 보니 우리나라가 북한을 제치고 조 1위에 오를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 것이다.


사실 대회가 평양에서 열리는 데다 북한이 세계적인 강팀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어렵지 않나 예상했었다. 하지만 윤덕여호는 철저한 준비로 이를 극복했다. 북한의 열성적인 응원 소리를 녹음해 확성기로 크게 틀어놓고 훈련하는 등 북한전을 세심히 준비해왔다.

골키퍼 김정미와 주장 조소현, 에이스 지소연 등 베테랑들의 노련한 경험은 위기의 순간마다 빛났고, 장슬기와 이금민, 이소담 등 겁없는 신예의 패기도 조화를 이뤘다. 무엇보다도 2013년 윤덕여호 출범 이후 오랜 시간 손발을 맞춰온 선수들의 조직력이 돋보였다. 평양 순안 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경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늘 밝은 모습으로 서로를 격려했던 23명의 끈끈한 동료애가 일궈낸 값진 성과였다.

장슬기는 1994년생 동갑내기 친구 이금민의 생일에 골을 넣어서 기쁨이 더했고 털어놓았다. '하나의 팀'으로 똘똘 뭉친 윤덕여호는 어렵게만 보였던 목표 달성에 마지막 한 경기만을 남겨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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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역사적인 남북경기…윤덕여호 희망을 보다
    • 입력 2017-04-10 18:39:44
    취재후·사건후
늘 한산하기만 했던 평양 시내에서 그렇게 많은 인파를 본 것은 이번 취재 일정 중 처음이었다. 김일성경기장 주변은 수없이 몰려드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방북 기자단에 대한 이동 통제도 이날 가장 엄격했다.

킥오프 30분 전에 경기장에 들어서 기자석으로 향했을 때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5만 석은 이미 관중들로 가득 찼고, 경기 직전부터 함성과 구호 소리 등 일사불란한 단체 응원으로 긴장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페널티킥 선방과 신경전이 분위기를 바꾸다

마침내 다같이 화이팅을 외치는 목소리와 함께 선수단이 나란히 입장했다. 태극기와 인공기가 나부끼는 가운데 평양 하늘에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관중들도 다 같이 일어났다.

대표팀의 공격수 이금민은 평양에서 애국가를 부르니 뭉클하고 찡한 느낌이 들었다며 그날따라 태극기가 더 크게 보였다고 말할 정도로 선수단에도 특별한 순간이었다. 이어 북한의 국가가 연주되자 5만 관중이 합창하며 기선 제압에 나서는 듯했다.

전반 초반은 뜨거운 응원에 힘을 얻은 북한이 주도권을 쥐었다. 북한의 슛이 골대를 맞고 나왔고, 전반 5분 만에는 페널티킥을 내줬다. 하지만 골키퍼 김정미가 극적으로 페널티킥을 막아냈고, 공을 다시 움켜쥐는 과정에서 북한 선수가 김정미의 얼굴을 차 신경전이 펼쳐졌다.


우리 팀의 수비수 임선주가 달려들면서 강하게 항의해 다 같이 몸싸움을 벌인 것이었다. 주눅이 들 수도 있었던 평양 원정에서 분위기를 바꾼 전환점이었다.

포기는 없다…끈끈한 조직력으로 값진 무승부

전반 추가 시간 승향심의 돌파에 뚫려 북한에 선제골을 내주자 경기장은 뜨거운 함성으로 가득 찼다.
마치 월드컵 우승이라도 한 듯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동점 골을 노렸고, 마침내 후반 30분 장슬기의 슛이 골망을 흔들었다.


갑자기 침묵에 빠진 김일성경기장. 그렇게 평양 원정으로 펼쳐진 남북 경기는 1대 1 무승부로 끝났고, 우리 선수들은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기뻐했다.

반면, 북한 관중들은 실망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떠나 대조를 이뤘다. 공동 취재 구역에서 만난 공격수 정설빈은 왼팔이 빠졌고, 골키퍼 김정미는 얼굴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최선을 다한 투혼으로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한 선수들의 모습은 진한 감동을 안겼다.

철저한 준비가 만든 성과…‘하나의 팀’

현재까지 2승 1무를 기록 중인 대표팀은 내일 우즈베키스탄전에서 두 골 차 승리만 거두면 조 1위를 확정 짓게 된다. 우즈베키스탄은 아무래도 우리와 전력 차이가 나다 보니 우리나라가 북한을 제치고 조 1위에 오를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 것이다.


사실 대회가 평양에서 열리는 데다 북한이 세계적인 강팀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어렵지 않나 예상했었다. 하지만 윤덕여호는 철저한 준비로 이를 극복했다. 북한의 열성적인 응원 소리를 녹음해 확성기로 크게 틀어놓고 훈련하는 등 북한전을 세심히 준비해왔다.

골키퍼 김정미와 주장 조소현, 에이스 지소연 등 베테랑들의 노련한 경험은 위기의 순간마다 빛났고, 장슬기와 이금민, 이소담 등 겁없는 신예의 패기도 조화를 이뤘다. 무엇보다도 2013년 윤덕여호 출범 이후 오랜 시간 손발을 맞춰온 선수들의 조직력이 돋보였다. 평양 순안 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경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늘 밝은 모습으로 서로를 격려했던 23명의 끈끈한 동료애가 일궈낸 값진 성과였다.

장슬기는 1994년생 동갑내기 친구 이금민의 생일에 골을 넣어서 기쁨이 더했고 털어놓았다. '하나의 팀'으로 똘똘 뭉친 윤덕여호는 어렵게만 보였던 목표 달성에 마지막 한 경기만을 남겨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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