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빠진 생존수영 수업…“수영장 없는데 어디서 수영해요?”

입력 2017.04.14 (19:54) 수정 2017.04.14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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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산초등학교 학생들경기 양산초등학교 학생들

◇"물이 무섭다는 아이들 이제 없어졌어요"
경기도 오산시 오산스포츠센터 수영장. 초등학교 3학년생들이 꺄르륵 소리를 내며 물에 빠져들었다. 이 곳 수영장에서는 수영 폼이 중요하지 않다. 구조대가 오기까지 물에 오래 떠 있는 법이 가장 중요한 수영 수업이다.

초등학교 3학년 5명이 물 속에서 서로의 손을 맞잡는다. 커다란 오각형 형태를 만들더니, 오각형의 중심으로 발을 뻗어 5명이 한꺼번에 물 위에 떴다. 5명의 부력을 한 곳에 모아 더 안정적으로 물에 떠 있는 방법이다. 또, 구조대에 쉽게 발견되도록 하는 생존법이다. 이 방법을 학생들은 반복적으로 배웠다.

생존수영 수업에 참여한 초등학생은 "어려울 줄 알았는데, 힘을 쭉 빼고 하늘을 보니까 몸이 스스로 물에 떴다"면서 신기해 했다.

장애 등으로 몸이 불편해 특수교육을 받는 학생들도 수영장 한 켠에서 따로 생존수영을 배웠다. 이 학생들은 수상에서 위급한 경우가 생기면, 일반 학생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될 아이들이다.

선우양숙 경기 양산초등학교 교감은 "처음엔 물이 무섭다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물을 친구로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몸이 기억하도록 수영 연습을 시켰더니 아이들도 좋아하고, 학부모들도 만족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산초등학교 생존수영 수업양산초등학교 생존수영 수업


◇생존수영 정책 있어도...지자체 예산 없이는 수업 못해
교육부는 지난 2015년 생존수영을 학교 현장에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초등학교 3학년에게만 이뤄지던 수영 실기 교육을 확대하겠다는 정책도 연이어 나왔다. 교육부는 "수영 교육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2018학년도에는 전체 초등학교 3~6학년생(약 178만명)이 생존 수영을 배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수영 실기 교육을 받은 학생은 3816개교 35만 2801명에 그쳤다. 3~4학년 중 40% 수준이다. 올해는 50만명을 목표로 생존수영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시설이 부족한 탓에 생존수영 교육을 모든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이다.

전국에 수영장을 갖춘 초등학교는 2015년 기준 76곳, 1% 수준이다. 대부분의 학교가 지역 인접 수영장을 이용해 수영 수업을 해야 한다. 지방 학교에는 수영 시설이 더욱 부족하다. 경상북도에는 수영장을 갖춘 학교가 한 곳도 없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수영실기 수업을 위한 비용은 교육부에서 절반, 지자체에서 절반을 부담한다. 하지만, 모든 지자체가 생존수영에 예산을 배정하지 않는 게 문제다. 지자체에서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면, 해당 지역 학생들은 생존 수영을 배울 수가 없다.

한 시도교육청 관계자는 "지자체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지자체에서 생존수영 비용 절반을 부담했는데도, 교육부에서 예산 부족을 이유로 해당 지역이 생존수영 수업을 못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수영장 하나에 30억…민간투자 대안될까
현재 모든 학교가 수영장을 갖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수영장을 하나 짓는데는 최소 30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정부 예산으로만 수영장 시설을 확충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전문가들은 '민간투자'와 '간이 수영장'을 새 모델로 제시한다. 민간투자는 학교에서 부지를 제공하고, 건립비용을 민간에서 제공해 수영장을 건립하는 방식이다. 수영장은 지역 주민들에게도 일정 시간 개방해, 건립비용을 환수하도록 하는 식이다.

또 다른 방안은 간이수영장이다. 간이 수영장은 큰 규모로 설치하더라도 수천만 원대에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형 수영장은 아니지만, 학생들이 생존수영 방식을 배우는 데는 충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안성환 한국체대 교수는 "민간투자나 간이수영장 등으로 수영장 확충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살리는 기술을 가르친다는 생각으로 생존수영 교육이 늘어야 한다"고 밝혔다.

1955년 일본 시운마루호 침몰사고1955년 일본 시운마루호 침몰사고

◇'시운마루호 침몰' 겪은 日…'세월호 침몰' 겪은 韓
일본은 1955년 5월 11일 수학여행을 떠난 초등학생, 중학생들을 태운 배가 침몰하는 시운마루(紫雲丸)호 침몰사고를 겪었다. 화물선과 충돌해 168명이 사망한 최악의 해양사고다. 무리한 운항이 사고의 원인으로 꼽히지만, 사고 당시 수영을 하지 못해 사망한 학생들이 많았다. 이 사고는 일본 수영교육 강화의 계기가 됐다.

일본 문부성은 사고 발생 이후 학생들의 익사를 막기 위해 각급 학교에 수영장을 설치했다. 일본에서 수영은 체육 교육의 하나로 필수적으로 치러진다. 공립 초등학교에서 수영장을 보유한 곳이 90%가 넘는다. 도쿄 도의 경우 초등학교의 98%가 수영장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시운마루호 사고만큼이나 처참한 사고를 2014년 4월에 겪었다. 이후 올해로 세월호 사고는 3주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수영 교육은 선진국에 비해 물장구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자체들의 관심이 보태진다면, 우리나라도 빠르게 일본의 수영교육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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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14 19:54:25
    • 수정2017-04-14 19:55:12
    사회
경기 양산초등학교 학생들
◇"물이 무섭다는 아이들 이제 없어졌어요"
경기도 오산시 오산스포츠센터 수영장. 초등학교 3학년생들이 꺄르륵 소리를 내며 물에 빠져들었다. 이 곳 수영장에서는 수영 폼이 중요하지 않다. 구조대가 오기까지 물에 오래 떠 있는 법이 가장 중요한 수영 수업이다.

초등학교 3학년 5명이 물 속에서 서로의 손을 맞잡는다. 커다란 오각형 형태를 만들더니, 오각형의 중심으로 발을 뻗어 5명이 한꺼번에 물 위에 떴다. 5명의 부력을 한 곳에 모아 더 안정적으로 물에 떠 있는 방법이다. 또, 구조대에 쉽게 발견되도록 하는 생존법이다. 이 방법을 학생들은 반복적으로 배웠다.

생존수영 수업에 참여한 초등학생은 "어려울 줄 알았는데, 힘을 쭉 빼고 하늘을 보니까 몸이 스스로 물에 떴다"면서 신기해 했다.

장애 등으로 몸이 불편해 특수교육을 받는 학생들도 수영장 한 켠에서 따로 생존수영을 배웠다. 이 학생들은 수상에서 위급한 경우가 생기면, 일반 학생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될 아이들이다.

선우양숙 경기 양산초등학교 교감은 "처음엔 물이 무섭다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물을 친구로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몸이 기억하도록 수영 연습을 시켰더니 아이들도 좋아하고, 학부모들도 만족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산초등학교 생존수영 수업

◇생존수영 정책 있어도...지자체 예산 없이는 수업 못해
교육부는 지난 2015년 생존수영을 학교 현장에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초등학교 3학년에게만 이뤄지던 수영 실기 교육을 확대하겠다는 정책도 연이어 나왔다. 교육부는 "수영 교육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2018학년도에는 전체 초등학교 3~6학년생(약 178만명)이 생존 수영을 배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수영 실기 교육을 받은 학생은 3816개교 35만 2801명에 그쳤다. 3~4학년 중 40% 수준이다. 올해는 50만명을 목표로 생존수영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시설이 부족한 탓에 생존수영 교육을 모든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이다.

전국에 수영장을 갖춘 초등학교는 2015년 기준 76곳, 1% 수준이다. 대부분의 학교가 지역 인접 수영장을 이용해 수영 수업을 해야 한다. 지방 학교에는 수영 시설이 더욱 부족하다. 경상북도에는 수영장을 갖춘 학교가 한 곳도 없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수영실기 수업을 위한 비용은 교육부에서 절반, 지자체에서 절반을 부담한다. 하지만, 모든 지자체가 생존수영에 예산을 배정하지 않는 게 문제다. 지자체에서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면, 해당 지역 학생들은 생존 수영을 배울 수가 없다.

한 시도교육청 관계자는 "지자체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지자체에서 생존수영 비용 절반을 부담했는데도, 교육부에서 예산 부족을 이유로 해당 지역이 생존수영 수업을 못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수영장 하나에 30억…민간투자 대안될까
현재 모든 학교가 수영장을 갖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수영장을 하나 짓는데는 최소 30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정부 예산으로만 수영장 시설을 확충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전문가들은 '민간투자'와 '간이 수영장'을 새 모델로 제시한다. 민간투자는 학교에서 부지를 제공하고, 건립비용을 민간에서 제공해 수영장을 건립하는 방식이다. 수영장은 지역 주민들에게도 일정 시간 개방해, 건립비용을 환수하도록 하는 식이다.

또 다른 방안은 간이수영장이다. 간이 수영장은 큰 규모로 설치하더라도 수천만 원대에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형 수영장은 아니지만, 학생들이 생존수영 방식을 배우는 데는 충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안성환 한국체대 교수는 "민간투자나 간이수영장 등으로 수영장 확충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살리는 기술을 가르친다는 생각으로 생존수영 교육이 늘어야 한다"고 밝혔다.

1955년 일본 시운마루호 침몰사고
◇'시운마루호 침몰' 겪은 日…'세월호 침몰' 겪은 韓
일본은 1955년 5월 11일 수학여행을 떠난 초등학생, 중학생들을 태운 배가 침몰하는 시운마루(紫雲丸)호 침몰사고를 겪었다. 화물선과 충돌해 168명이 사망한 최악의 해양사고다. 무리한 운항이 사고의 원인으로 꼽히지만, 사고 당시 수영을 하지 못해 사망한 학생들이 많았다. 이 사고는 일본 수영교육 강화의 계기가 됐다.

일본 문부성은 사고 발생 이후 학생들의 익사를 막기 위해 각급 학교에 수영장을 설치했다. 일본에서 수영은 체육 교육의 하나로 필수적으로 치러진다. 공립 초등학교에서 수영장을 보유한 곳이 90%가 넘는다. 도쿄 도의 경우 초등학교의 98%가 수영장을 가지고 있다.

한국은 시운마루호 사고만큼이나 처참한 사고를 2014년 4월에 겪었다. 이후 올해로 세월호 사고는 3주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수영 교육은 선진국에 비해 물장구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자체들의 관심이 보태진다면, 우리나라도 빠르게 일본의 수영교육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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