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학부모회장이 여아 살해용의자…체포 즉시 얼굴 공개

입력 2017.04.17 (10:08) 수정 2017.04.17 (14:4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달 일본 사회를 충격에 몰아넣었던 베트남 여자 어린이 피살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체포됐다. 용의자는 피살된 어린이가 다녔던 초등학교의 학부모회장이었다. 경찰은 구체적 물증과 과학적 증거를 토대로 용의자를 특정했다. 용의자의 신원이 밝혀지자, 일본 사회는 또 한 번 발칵 뒤집혔다.

베트남 소녀 피살...용의자는 일본 학부모회장


지난 3월 24일 치바 현 마쓰도 시의 초등학교 3학년 '레 티 냣토 린' 양(9살)이 등교길에 나선 뒤 실종됐다. 이틀 뒤, 린 양은 집에서 10km 떨어진 배수로 옆 수풀에서 참혹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전형적인 소아성애 살인사건으로 추정됐다. 범인의 단서는 없어 보였다. 지역 사회는 공포에 떨었다.


대대적인 수색작업이 벌어졌다. 현장에서 1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피해자의 가방과 옷가지 등이 발견됐다. 집과 학교, 사건 현장과 소지품 발견 장소가 모두 멀리 떨어져 있었다. 목격자도 없었다. 경찰은 지역 CCTV의 모든 영상을 샅샅이 뒤지는 한편, 사건 현장에 남겨진 아주 작은 단서라도 찾기 위해 정밀 감식 작업을 벌였다.

NHK가 보도한 용의자 시부야 야스마사 체포 당시 모습NHK가 보도한 용의자 시부야 야스마사 체포 당시 모습
 
사건 발생 약 3주 뒤인 지난 4월 14일 아침, 경찰이 유력한 용의를 체포했다. 구체적 신원은 물론 얼굴까지 공개했다. 이름은 시부야 야스마사. 46살 남자. 직업은 부동산 임대업. 피해자의 초등학교 학부모회 회장이었다.

피해자의 집과는 약 300미터 떨어진 곳에 살았다. 자녀 2명도 같은 학교에 다녔다. 등하교 자원봉사 활동을 해왔고, 유족을 위한 모금 운동까지 했던 인물이다. 지역 방범 활동에도 적극적이었고, 학교 행사에 내빈으로 참석해 인사까지 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이 사건 현장에서 채취한 DNA가 용의자의 것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용의자의 차량이 사고 당일 현장 부근을 운행했다는 단서도 확보했다. 일단 시신유기 혐의로 체포했는데, 용의자는 체포 직후부터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에 머물던 린 양의 부모는 용의자 체포 소식을 듣고 서둘러 귀국했다. 자식을 잃은 부모가 모두 그러하듯, 사건의 진실을 알고 싶어했다. 범인이 일본 법률에 따라 엄하게 처벌받기를 원했다.

온화한 자원봉사자 가면을 쓴 '살인마'였나?

경찰에 따르면, 린 양은 실종 당일 납치된 것으로 보인다. 저항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미뤄 범인은 안면이 있는 사람이 분명했다. 평소 통학로 안내 자원봉사를 했던 용의자는 일부 학생은 물론 지역주민들과도 안면이 있었다.

등굣길 아이들에게 친절하게 말을 건네는 모습을 주민들이 기억하고 있었다.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아이들을 꾸짖기도 하고, 격려하기도 했다. 자원봉사를 마치고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우며 쉬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그런 용의자를 아이들은 '이웃 아저씨'쯤으로 알고 있었다. 특히 일반적인 통학로가 아니라 교통량이 적은 소도로를 이용하는 린 양 등과 낯을 익혔던 것으로 보인다.

캠핑에 쓰지 않는 캠핑카..범행과의 연관성은?


용의자는 사건 당일 바쁘다면서 통학로 안내 봉사활동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자녀를 통학시킬 때는 걸어 다녔지만, 사건 당일 아침엔 차량을 몰고 나갔다. 소유 차량 2대 중 1대인 경승용차가 사건 당일 자택 주차장에서 보이지 않았다는 목격자 진술도 나왔다. 시신과 유류품이 발견된 장소 인근의 차량 감시카메라에 문제의 경승용차 모습이 포착됐다. 또, 사건 현장 인근에서 용의자의 차량이 주유한 사실도 드러났다.


용의자의 또 다른 차량은 캠핑카였는데, 정작 캠핑에는 거의 이용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집에서 150m 가량 떨어진 주차장에 세워둔 채, 종종 캠핑카에서 혼자 지내기도 했다. 경찰은 캠핑카와 범행의 관련성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용의자가 피해 어린이를 문제의 캠핑카로 끌고 갔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15일 새벽, 경찰이 용의자의 자택을 압수 수색을 했다. 수색은 5시간 이상 지속했다. 종이상자 10개 분량의 압수품이 나왔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피해자의 모자와 신발 등이 사건의 진실과 연관돼 있을 것으로 보고, 소지품을 찾는데도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16일, 해당 초등학교에서 긴급 학부모 설명회가 열렸다. 긴말이 오가지는 않았지만, 다들 배신당한 기분이라고 했다. 통학로 안전을 위한 자원봉사 활동은 계속하겠지만, 당분간 학부모회장은 두지 않기로 했다. 학부모들은 '아는 사람이 말을 걸어와도 따라가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당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통학 중 어린이를 노리는 살인범들

일본에서 등하교 어린이들을 노리는 엽기 잔혹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2001년 10월, 나가사키 현 이사하야 시에서 초등학교 1학년(7살) 여학생이 하교 중에 차로 끌려가 살해됐다. 체포된 용의자는 23살 남자였다.

2004년 3월, 군마 현 다카사키 시에서 초등학교 1학년 여학생이 귀가 중에 같은 층 남자에게 끌려가 살해됐다. 용의자는 26살 남자였다.

2005년 12월, 도치기 현 닛코 시에서 초등학교 1학년 여학생이 하굣길에 실종됐다가 피살된 채 발견됐다. 용의자는 32살 남자였다.

2006년 3월, 가나가와 현 가와사키 시에서 초등학교 3학년(9살) 남학생이 살해됐다. 용의자는 41살 남성이었다.

치안 안전 사회라던 일본에서 어린이들이 끝없이 희생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학부모와 교사들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은 충격을 받는다.

체포 단계부터 용의자 얼굴 공개하다

이번 사건의 수사와 보도과정을 되짚어 보면, 강력 사건을 다루는 일본 경찰과 언론의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검거 실적을 내는 데 급급해 범인을 섣불리 유추하지 않는다. 범인을 빨리 잡지 않는다며 경찰을 몰아세우지도 않는다. 처음엔 더딘 것 같던 수사가 결국은 목표를 향해 묵묵히 꾸준히 나아간다.

용의자의 사진이 실린 아사히 신문(왼쪽)과 산케이 신문(오른쪽)용의자의 사진이 실린 아사히 신문(왼쪽)과 산케이 신문(오른쪽)

현행범이 아니라도, 범행을 자백하거나 기소되기 이전에라도, 구체적 물증과 확신이 있다면, 체포 단계부터 유력 용의자의 구체적 신원이 공개된다. 언론은 용의자의 얼굴을 '당연한 듯' 공개한다. 공영방송 NHK는 물론 신문들도 용의자의 신원과 얼굴 사진을 공개한다. 익명의 그늘에 숨은 용의자의 얼굴을 좀처럼 확인할 수 없는 한국과는 확연히 다른 관행이다.


일본의 관행이 정답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국민의 알권리'와 '피해자(가족)의 고통'이 '피의자의 인권'보다 뒤로 밀리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특파원리포트] 학부모회장이 여아 살해용의자…체포 즉시 얼굴 공개
    • 입력 2017-04-17 10:08:58
    • 수정2017-04-17 14:45:22
    특파원 리포트
지난달 일본 사회를 충격에 몰아넣었던 베트남 여자 어린이 피살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체포됐다. 용의자는 피살된 어린이가 다녔던 초등학교의 학부모회장이었다. 경찰은 구체적 물증과 과학적 증거를 토대로 용의자를 특정했다. 용의자의 신원이 밝혀지자, 일본 사회는 또 한 번 발칵 뒤집혔다.

베트남 소녀 피살...용의자는 일본 학부모회장


지난 3월 24일 치바 현 마쓰도 시의 초등학교 3학년 '레 티 냣토 린' 양(9살)이 등교길에 나선 뒤 실종됐다. 이틀 뒤, 린 양은 집에서 10km 떨어진 배수로 옆 수풀에서 참혹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전형적인 소아성애 살인사건으로 추정됐다. 범인의 단서는 없어 보였다. 지역 사회는 공포에 떨었다.


대대적인 수색작업이 벌어졌다. 현장에서 1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피해자의 가방과 옷가지 등이 발견됐다. 집과 학교, 사건 현장과 소지품 발견 장소가 모두 멀리 떨어져 있었다. 목격자도 없었다. 경찰은 지역 CCTV의 모든 영상을 샅샅이 뒤지는 한편, 사건 현장에 남겨진 아주 작은 단서라도 찾기 위해 정밀 감식 작업을 벌였다.

NHK가 보도한 용의자 시부야 야스마사 체포 당시 모습 
사건 발생 약 3주 뒤인 지난 4월 14일 아침, 경찰이 유력한 용의를 체포했다. 구체적 신원은 물론 얼굴까지 공개했다. 이름은 시부야 야스마사. 46살 남자. 직업은 부동산 임대업. 피해자의 초등학교 학부모회 회장이었다.

피해자의 집과는 약 300미터 떨어진 곳에 살았다. 자녀 2명도 같은 학교에 다녔다. 등하교 자원봉사 활동을 해왔고, 유족을 위한 모금 운동까지 했던 인물이다. 지역 방범 활동에도 적극적이었고, 학교 행사에 내빈으로 참석해 인사까지 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이 사건 현장에서 채취한 DNA가 용의자의 것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용의자의 차량이 사고 당일 현장 부근을 운행했다는 단서도 확보했다. 일단 시신유기 혐의로 체포했는데, 용의자는 체포 직후부터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에 머물던 린 양의 부모는 용의자 체포 소식을 듣고 서둘러 귀국했다. 자식을 잃은 부모가 모두 그러하듯, 사건의 진실을 알고 싶어했다. 범인이 일본 법률에 따라 엄하게 처벌받기를 원했다.

온화한 자원봉사자 가면을 쓴 '살인마'였나?

경찰에 따르면, 린 양은 실종 당일 납치된 것으로 보인다. 저항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미뤄 범인은 안면이 있는 사람이 분명했다. 평소 통학로 안내 자원봉사를 했던 용의자는 일부 학생은 물론 지역주민들과도 안면이 있었다.

등굣길 아이들에게 친절하게 말을 건네는 모습을 주민들이 기억하고 있었다.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아이들을 꾸짖기도 하고, 격려하기도 했다. 자원봉사를 마치고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우며 쉬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그런 용의자를 아이들은 '이웃 아저씨'쯤으로 알고 있었다. 특히 일반적인 통학로가 아니라 교통량이 적은 소도로를 이용하는 린 양 등과 낯을 익혔던 것으로 보인다.

캠핑에 쓰지 않는 캠핑카..범행과의 연관성은?


용의자는 사건 당일 바쁘다면서 통학로 안내 봉사활동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자녀를 통학시킬 때는 걸어 다녔지만, 사건 당일 아침엔 차량을 몰고 나갔다. 소유 차량 2대 중 1대인 경승용차가 사건 당일 자택 주차장에서 보이지 않았다는 목격자 진술도 나왔다. 시신과 유류품이 발견된 장소 인근의 차량 감시카메라에 문제의 경승용차 모습이 포착됐다. 또, 사건 현장 인근에서 용의자의 차량이 주유한 사실도 드러났다.


용의자의 또 다른 차량은 캠핑카였는데, 정작 캠핑에는 거의 이용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집에서 150m 가량 떨어진 주차장에 세워둔 채, 종종 캠핑카에서 혼자 지내기도 했다. 경찰은 캠핑카와 범행의 관련성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용의자가 피해 어린이를 문제의 캠핑카로 끌고 갔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15일 새벽, 경찰이 용의자의 자택을 압수 수색을 했다. 수색은 5시간 이상 지속했다. 종이상자 10개 분량의 압수품이 나왔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피해자의 모자와 신발 등이 사건의 진실과 연관돼 있을 것으로 보고, 소지품을 찾는데도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16일, 해당 초등학교에서 긴급 학부모 설명회가 열렸다. 긴말이 오가지는 않았지만, 다들 배신당한 기분이라고 했다. 통학로 안전을 위한 자원봉사 활동은 계속하겠지만, 당분간 학부모회장은 두지 않기로 했다. 학부모들은 '아는 사람이 말을 걸어와도 따라가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당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통학 중 어린이를 노리는 살인범들

일본에서 등하교 어린이들을 노리는 엽기 잔혹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2001년 10월, 나가사키 현 이사하야 시에서 초등학교 1학년(7살) 여학생이 하교 중에 차로 끌려가 살해됐다. 체포된 용의자는 23살 남자였다.

2004년 3월, 군마 현 다카사키 시에서 초등학교 1학년 여학생이 귀가 중에 같은 층 남자에게 끌려가 살해됐다. 용의자는 26살 남자였다.

2005년 12월, 도치기 현 닛코 시에서 초등학교 1학년 여학생이 하굣길에 실종됐다가 피살된 채 발견됐다. 용의자는 32살 남자였다.

2006년 3월, 가나가와 현 가와사키 시에서 초등학교 3학년(9살) 남학생이 살해됐다. 용의자는 41살 남성이었다.

치안 안전 사회라던 일본에서 어린이들이 끝없이 희생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학부모와 교사들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은 충격을 받는다.

체포 단계부터 용의자 얼굴 공개하다

이번 사건의 수사와 보도과정을 되짚어 보면, 강력 사건을 다루는 일본 경찰과 언론의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검거 실적을 내는 데 급급해 범인을 섣불리 유추하지 않는다. 범인을 빨리 잡지 않는다며 경찰을 몰아세우지도 않는다. 처음엔 더딘 것 같던 수사가 결국은 목표를 향해 묵묵히 꾸준히 나아간다.

용의자의 사진이 실린 아사히 신문(왼쪽)과 산케이 신문(오른쪽)
현행범이 아니라도, 범행을 자백하거나 기소되기 이전에라도, 구체적 물증과 확신이 있다면, 체포 단계부터 유력 용의자의 구체적 신원이 공개된다. 언론은 용의자의 얼굴을 '당연한 듯' 공개한다. 공영방송 NHK는 물론 신문들도 용의자의 신원과 얼굴 사진을 공개한다. 익명의 그늘에 숨은 용의자의 얼굴을 좀처럼 확인할 수 없는 한국과는 확연히 다른 관행이다.


일본의 관행이 정답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국민의 알권리'와 '피해자(가족)의 고통'이 '피의자의 인권'보다 뒤로 밀리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