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오페라, ‘동성애코드’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입력 2017.04.18 (10:00)
수정 2017.04.1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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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발적인 포즈의 한 커플,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이번 시즌 새 버전으로 만들어 개봉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Der Rosenkavalier)' 홍보 사진이다. 17살 미소년과 30대 왕녀의, 열렬하지만 이른바 ‘부적절한’ 관계, 그 느낌이 느껴지는가?
그러나 너무나 매력적인 모습을 한 저 미소년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스타 메조소프라노 엘리나 가랑차다. 여자란 얘기다.
메트로폴리탄(이후 ‘메트’) 오페라가 2016-2017시즌에 새 버전으로 만들어 올린 오페라는, 전체 26개 작품 중 6개다. 그 6개 중 맨 마지막에 개봉한 오페라가 이 ‘장미의 기사’다.
이 장미의 기사는 특히 링컨센터 50주년 기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갈라쇼에 한 달 앞서 개봉되면서, 독립적인 갈라 이벤트가 함께 기획했다.
13일 오프닝 공연에서 진행된 갈라 이벤트는 칵테일 파티, 디너와 공연티켓을 묶어서 패키지로 기획됐는데, 500달러가량의 2층(이들은 여기를 2층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공연장에서 오케스트라라고 불리는 공연장 1층 바로 위 층을 편의상 2층이라고 부르자) 박스석 관람이 포함된, 10인용 테이블 패키지 가격이 5만 달러, 우리 돈 6천만 원에 육박했다. 갈라 디너에 참석하고 공연을 볼 수 있는 1인용 갈라 패키지 최저 가격이 1,875달러, 우리 돈 2백만 원이 넘는다.
물론 5월 7일 링컨센터 50주년 기념 공연 갈라 이벤트의 경우 가장 비싼 8인용 테이블 패키지가 25만 달러, 우리 돈 3억 원에 육박하니, 뭐 이 공연의 갈라 가격이 놀랄 정도는 아니지만, 매트가 시즌 오픈 갈라나 신년 갈라 등 기념일 이벤트 외에, 새 작품 오픈에 갈라 이벤트를 같이 진행하는 일은 드무니, 메트가 이 작품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만큼은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민간에서 운영하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가장 큰 수입원은 티켓 판매가 아닌, 기부금이다. 거의 수입의 절반가량이 기부금일 정도로 기부금이 많다. 뉴욕의 전통적 부자들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회원이 되어, 정기적으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후원하는 것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하는 한 방도쯤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이와 같은 갈라 이벤트는, 주로 그들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부자들의 기부금으로, 정상가의 10%가량인 25달러짜리 러시티켓(공연 당일 낮에 잠깐 파는, 수량이 정해져있지 않은 이벤트식 최저가 티켓)이나 20~30달러 짜리 스탠딩 티켓(1층 맨 뒤쪽에서 서서 보는 티켓)도 가능하다니 너무 부자들만의 메트라고 비난하지는 말자. 메트로폴리탄 측은 기부금 덕택에 이런 최저가 티켓을 그들이 팔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너무나 매력적인 바지역 ‘옥타비안’의 가랑차
어쨌든 이번 시즌 메트의 마지막 새 작품 ‘장미의 기사’에는 화젯거리가 많았다. 가장 큰 화제는, 이제 58살이 된 메트의 스타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이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이 장미의 기사의 왕녀역, 즉 마르샬린 역에서 은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많은 화제 속에서 내 눈을 확 잡아끈 건, 저 포스터였다. 메트의 많은 공연 포스터를 보았지만, 저 포스터처럼 도발적인 포즈의 매력적인 커플은 드물었다. 특히 저 남자의 눈빛! 누구지? 지난 2015년 분명히 엘리나 가랑차의 ‘카르멘’을 보았음에도 나는 처음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정말로 순간 남자인 줄 착각했다. 가랑차는 머리까지 숏커트로 잘라 금발로 염색하고, 완벽하게 17살의 미소년 옥타비안으로 변신해있었다.
메트의 ‘장미의 기사’ 2017년 버전은, 시대적 배경을 원래 작품이 의도한 18세기에서 장미의 기사가 초연된 1911년의 빈으로 옮겼다. 세트는 더욱 현대적이고 감각적이 됐다. 하지만 이 새 버전의 가장 독특한 점은 ‘코믹함’을 극대화했다는 것이다.
남자역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힘 있는 목소리에, 연기력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그량챠는 그 코믹함을 살리려는 제작자의 의도에 한껏 부응했다. 30대의 나이 많은 연인에게 매달리고 투덜대고 칭얼대다 들이대고 장난치고, 새로운 열정을 불태우게 한 16살의 새 연인을 위해 주저하다가도 기꺼이 나서고 흥분해 결투도 마다치 않는, 이제 어엿한 청년이 되어가기 시작한 17살의 사춘기 소년. 이른바 오페라의 ‘바지역(trouser role)'을 완벽하게 해낸 것이다.
카스트라토를 이어받은 오페라의 바지역
중세. 바로크시대 교회가 지배하던 시절에는 주로 음악이 교회음악이었고, 교회든 어디든 공연장에는 여자가 설 수 없었다. 가장 높은 음역대가 테너로 제한되니 음악적 표현 역시 제한됐고, 더 높은 음역을 낼 수 있는 성악가들이 필요했는데 그게 영화 ‘파리넬리’로 잘 알려진, 여성의 음역을 내는 거세된 남자 성악가 ‘카스트라토’다.
하지만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이후 시대가 바뀐다. 거세가 금지되었다. 이제 카스트라토는 없는 거다. 그렇다면 카스트라토를 위해 작곡된 그 높은 영역은 누가 불러야 할까? 변성기를 거치는 남자들은 그렇게 높은 음을 낼 수 없다.
그래서 탄생한 게 여성이 하는 오페라의 남자 역할 바지역(trouser role)이다. 주로 메조소프라노들이 이처럼 카스트라토에서 내려온 바지역을 맡았고, 오페라에선 여성이 남성의 역할을 맡는 바지역이 어색하지 않은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그렇게 원래 남자인 역을 여자가 맡게 되면서, 오페라에는 이런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다. 즉 소프라노인 여성과 바지역, 그 상대 남자역을 맡은 또 다른 여성 메조소프라노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다.
물론 바지역이 꼭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남자 역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명한 바지역인, 구노의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의 시종 역할일 스테파노는, 연애 따위에는 절대 연루되지 않지만, 소프라노를 위한 남자역으로 작곡되어 있다. 즉, 오페라에서의 음악적 필요성을 위해, 많은 작곡가가 카스트라토 시대 이후에도, 오페라에 바지역을 집어넣었단 얘기다. 특히 굵직한 성인 남성의 목소리로는 표현이 어려운, 10대 소년들의 역할을 여성들이 부르는 바지역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2016-2017시즌 메트 오페라에는 모두 5개의 바지역이 나온다. 장미의 기사의 옥타비안 역, 이도메네오의 이다만테 역, 로미오와 줄리엣의 스테파노 역, 윌리엄 텔의 제미 역,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순례자 역 등이다. 대부분 10대 미소년들이다. 이 가운데, 소프라노와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두 역할이 장미의 기사의 옥타비안과 이도메네오의 이다만테 역이다.
바지역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소프라노와 소프라노가 연애의 감정에 얽히는 작품이 또 있다.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인 피델리오도 이번 시즌에 공연됐는데, 남편을 구하기 위해 남장을 하고 남편이 갇힌 감옥의 간수장 보조로 들어간 레오노라와 그를 남자인 줄 알고 사랑하는 간수장의 딸 마르셀린의 관계도 있었다.
과감한 애정 표현, 동성애 코드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오페라에서의 바지역이 어제오늘 일이 아닌, 수백 년의 전통을 지닌 일인데, 왜 이번 시즌 ‘장미의 기사’의 옥타비안 역은 유독 눈에 띄는가?
2017년 버전의 장미의 기사에서의 옥타비안 역은 정말 남자 같았기 때문이다. 옥타비안과 왕녀 마르샬린의 침대 장면은 적나라했다. 옥타비안과 그의 새로운 연인 소피의 애정 표현 역시 과감했다. 옥타비안과 소피가 사랑을 확인하는 마지막 장면은 이제껏 많은 ‘장미의 기사’버전에서 그냥 여관의 응접실 같은 공간으로 처리했지만, 메트 2017년 버전은 여관의 침대로 처리한다.
첫 장면보다 더 과감한 애정 표현이 나온단 얘기다. 키스하고 얼굴을 그러안고 몸을 더듬고 침대에서 함께 뒹구는, 이 두 소프라노와 메조 소프라노의 사랑은 정말 연인의 사랑 그대로였다. 여성과 여성의 매우 노골적인 사랑 표현, 그러나 어색하지 않았다.
과거 소프라노의 사랑의 상대역인 바지역의 애정 표현은 그토록 과감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왜냐하면 동성애 코드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페라의 나이 지긋한 관객들은, 결국은 여성과 여성이 사랑을 노래하며 애정 표현을 할 때, 바로 그 동성애 코드 때문에 불편해하기도 했다.
이번 시즌에도 공연된 모차르트의 오페라 ‘이도메네오’에서 이도메네오의 아들 이다만테와 일리아의 사랑 표현은 다분히 절제적이다. 서로 부둥켜안고 애타게 서로의 불행한 운명적 사랑을 한탄하는 장면에서도 키스 한 번을 하지 않는다. 1982년, 즉 35년 전에 만들어졌던 버전의 소프라노-메조소프라노의 애정 표현은 이처럼 절제돼 있었다. 물론 이도메네오가 고대의 전설을 모태로 한 오페라 세리아로 워낙 고상하다고는 해도 말이다.
그런데 이번 시즌 공연된 1982년 판 이도메네오의 일리아-이다멘테와 2017년 판 장미의 기사의 마르샬린/소피-옥타비안이라는 두 소프라노-메조 소프라노 커플의 사랑 표현은, 절제된 전자보다 적나라한 후자가 훨씬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단지 가랑차의 완벽한 남장과 연기 때문만이었을까? 세트와 분위기, 제작 의도 그 모든 게 그 과감한 애정 표현을 자연스럽게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글쎄 내가 보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지난 13일 ‘장미의 기사’ 오픈 공연 때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의 3천8백 석을 꽉 채운 관객들, 값비싼 갈라이벤트도 있었기에 어느 때보다 중장년층이 많았던 그 관객들 가운데, 끊임없이 계속되는 소프라노-메조소프라노 애정 표현 장면에 ‘억’소리를 내거나 얼굴을 찌푸리는 관객은 거의 없었다.
성소수자에 관대한 뉴욕이라서?
뉴욕주의 성소수자 인구는 지난 2012년 통계에서 57만여 명으로 조사됐다. 그 가운데 절반 가량인 약 30만 명이 뉴욕시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뉴욕주의 성소수자 인구 비율은 4%대다. 인구에서 성소수자의 비율 자체는 시대를 통해 대체로 비슷하고, 다만 커밍아웃하는 정도에 따라 보고되는 비율이 변화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뉴욕주의 성소수자 인구 비율도 통계적으로 폭발적 증가세에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성소수자의 권리 자체는 그 어느 곳에서보다 이 곳 뉴욕에서 높아지고 있다. 만약 당신이 직장에서 또는 식당에서 그 어떤 공공장소에서라도 “나는 성소수자가 싫어”라고 공공연히 말한다면, 이 곳 뉴욕에서는 성소수자 차별 행위로 바로 소송을 당하고 말 것이다. 어쨌든 다양성을 존중하고, 모든 소수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이 특별한 도시에서 성소수자는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나는 성소수자를 분명 월스트리트보다는 패션스트리트에서 더 많이 보게 된다. 센트럴파크보다는 뮤지컬이나 오페라 등 공연장에서 더 많이 본다. 밤이면 시끌벅적한 술집보다 조용히 와인잔을 기울이는 다운타운의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그들을 더 많이 마주친다.
내가 성소수자에 대해 그다지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이성애자들보다 성소수자들이(특히 남성의 경우) 문화적 예술적 감수성이 훨씬 예민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공식적 통계는 없지만, 뉴욕의 패션미용업계, 미술계, 공연예술계 종사자들 가운데선, 때때로 성소수자가 더 다수가 아니냐 할 정도로 성소수자가 많다. 뿐만이 아니다. 이성애자들에 비해, 결혼과 출산, 육아로부터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한 그들은, 뉴욕의 다양한 공연계에 가장 성장 잠재력이 큰 고객군 중의 하나다.
메트가 이번 시즌에 바지역이 포함된 오페라나 바지역을, 그것 때문에 늘렸다고 하면, 무리한 해석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지역의 애정 표현이 그토록 과감해진 것은 분명 그런 사회적 현상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성소수자에 관대한 도시 뉴욕에서, 이제 여성과 여성이 나누는 애정 표현은 길거리에서든 메트 오페라의 무대 위에서든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그러나 너무나 매력적인 모습을 한 저 미소년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스타 메조소프라노 엘리나 가랑차다. 여자란 얘기다.
메트로폴리탄(이후 ‘메트’) 오페라가 2016-2017시즌에 새 버전으로 만들어 올린 오페라는, 전체 26개 작품 중 6개다. 그 6개 중 맨 마지막에 개봉한 오페라가 이 ‘장미의 기사’다.
이 장미의 기사는 특히 링컨센터 50주년 기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갈라쇼에 한 달 앞서 개봉되면서, 독립적인 갈라 이벤트가 함께 기획했다.
13일 오프닝 공연에서 진행된 갈라 이벤트는 칵테일 파티, 디너와 공연티켓을 묶어서 패키지로 기획됐는데, 500달러가량의 2층(이들은 여기를 2층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공연장에서 오케스트라라고 불리는 공연장 1층 바로 위 층을 편의상 2층이라고 부르자) 박스석 관람이 포함된, 10인용 테이블 패키지 가격이 5만 달러, 우리 돈 6천만 원에 육박했다. 갈라 디너에 참석하고 공연을 볼 수 있는 1인용 갈라 패키지 최저 가격이 1,875달러, 우리 돈 2백만 원이 넘는다.
물론 5월 7일 링컨센터 50주년 기념 공연 갈라 이벤트의 경우 가장 비싼 8인용 테이블 패키지가 25만 달러, 우리 돈 3억 원에 육박하니, 뭐 이 공연의 갈라 가격이 놀랄 정도는 아니지만, 매트가 시즌 오픈 갈라나 신년 갈라 등 기념일 이벤트 외에, 새 작품 오픈에 갈라 이벤트를 같이 진행하는 일은 드무니, 메트가 이 작품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만큼은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민간에서 운영하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가장 큰 수입원은 티켓 판매가 아닌, 기부금이다. 거의 수입의 절반가량이 기부금일 정도로 기부금이 많다. 뉴욕의 전통적 부자들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회원이 되어, 정기적으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후원하는 것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하는 한 방도쯤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이와 같은 갈라 이벤트는, 주로 그들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부자들의 기부금으로, 정상가의 10%가량인 25달러짜리 러시티켓(공연 당일 낮에 잠깐 파는, 수량이 정해져있지 않은 이벤트식 최저가 티켓)이나 20~30달러 짜리 스탠딩 티켓(1층 맨 뒤쪽에서 서서 보는 티켓)도 가능하다니 너무 부자들만의 메트라고 비난하지는 말자. 메트로폴리탄 측은 기부금 덕택에 이런 최저가 티켓을 그들이 팔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너무나 매력적인 바지역 ‘옥타비안’의 가랑차
어쨌든 이번 시즌 메트의 마지막 새 작품 ‘장미의 기사’에는 화젯거리가 많았다. 가장 큰 화제는, 이제 58살이 된 메트의 스타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이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이 장미의 기사의 왕녀역, 즉 마르샬린 역에서 은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많은 화제 속에서 내 눈을 확 잡아끈 건, 저 포스터였다. 메트의 많은 공연 포스터를 보았지만, 저 포스터처럼 도발적인 포즈의 매력적인 커플은 드물었다. 특히 저 남자의 눈빛! 누구지? 지난 2015년 분명히 엘리나 가랑차의 ‘카르멘’을 보았음에도 나는 처음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정말로 순간 남자인 줄 착각했다. 가랑차는 머리까지 숏커트로 잘라 금발로 염색하고, 완벽하게 17살의 미소년 옥타비안으로 변신해있었다.
메트의 ‘장미의 기사’ 2017년 버전은, 시대적 배경을 원래 작품이 의도한 18세기에서 장미의 기사가 초연된 1911년의 빈으로 옮겼다. 세트는 더욱 현대적이고 감각적이 됐다. 하지만 이 새 버전의 가장 독특한 점은 ‘코믹함’을 극대화했다는 것이다.
남자역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힘 있는 목소리에, 연기력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그량챠는 그 코믹함을 살리려는 제작자의 의도에 한껏 부응했다. 30대의 나이 많은 연인에게 매달리고 투덜대고 칭얼대다 들이대고 장난치고, 새로운 열정을 불태우게 한 16살의 새 연인을 위해 주저하다가도 기꺼이 나서고 흥분해 결투도 마다치 않는, 이제 어엿한 청년이 되어가기 시작한 17살의 사춘기 소년. 이른바 오페라의 ‘바지역(trouser role)'을 완벽하게 해낸 것이다.
카스트라토를 이어받은 오페라의 바지역
중세. 바로크시대 교회가 지배하던 시절에는 주로 음악이 교회음악이었고, 교회든 어디든 공연장에는 여자가 설 수 없었다. 가장 높은 음역대가 테너로 제한되니 음악적 표현 역시 제한됐고, 더 높은 음역을 낼 수 있는 성악가들이 필요했는데 그게 영화 ‘파리넬리’로 잘 알려진, 여성의 음역을 내는 거세된 남자 성악가 ‘카스트라토’다.
하지만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이후 시대가 바뀐다. 거세가 금지되었다. 이제 카스트라토는 없는 거다. 그렇다면 카스트라토를 위해 작곡된 그 높은 영역은 누가 불러야 할까? 변성기를 거치는 남자들은 그렇게 높은 음을 낼 수 없다.
그래서 탄생한 게 여성이 하는 오페라의 남자 역할 바지역(trouser role)이다. 주로 메조소프라노들이 이처럼 카스트라토에서 내려온 바지역을 맡았고, 오페라에선 여성이 남성의 역할을 맡는 바지역이 어색하지 않은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그렇게 원래 남자인 역을 여자가 맡게 되면서, 오페라에는 이런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다. 즉 소프라노인 여성과 바지역, 그 상대 남자역을 맡은 또 다른 여성 메조소프라노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다.
물론 바지역이 꼭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남자 역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명한 바지역인, 구노의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의 시종 역할일 스테파노는, 연애 따위에는 절대 연루되지 않지만, 소프라노를 위한 남자역으로 작곡되어 있다. 즉, 오페라에서의 음악적 필요성을 위해, 많은 작곡가가 카스트라토 시대 이후에도, 오페라에 바지역을 집어넣었단 얘기다. 특히 굵직한 성인 남성의 목소리로는 표현이 어려운, 10대 소년들의 역할을 여성들이 부르는 바지역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2016-2017시즌 메트 오페라에는 모두 5개의 바지역이 나온다. 장미의 기사의 옥타비안 역, 이도메네오의 이다만테 역, 로미오와 줄리엣의 스테파노 역, 윌리엄 텔의 제미 역,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순례자 역 등이다. 대부분 10대 미소년들이다. 이 가운데, 소프라노와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두 역할이 장미의 기사의 옥타비안과 이도메네오의 이다만테 역이다.
바지역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소프라노와 소프라노가 연애의 감정에 얽히는 작품이 또 있다.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인 피델리오도 이번 시즌에 공연됐는데, 남편을 구하기 위해 남장을 하고 남편이 갇힌 감옥의 간수장 보조로 들어간 레오노라와 그를 남자인 줄 알고 사랑하는 간수장의 딸 마르셀린의 관계도 있었다.
과감한 애정 표현, 동성애 코드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오페라에서의 바지역이 어제오늘 일이 아닌, 수백 년의 전통을 지닌 일인데, 왜 이번 시즌 ‘장미의 기사’의 옥타비안 역은 유독 눈에 띄는가?
2017년 버전의 장미의 기사에서의 옥타비안 역은 정말 남자 같았기 때문이다. 옥타비안과 왕녀 마르샬린의 침대 장면은 적나라했다. 옥타비안과 그의 새로운 연인 소피의 애정 표현 역시 과감했다. 옥타비안과 소피가 사랑을 확인하는 마지막 장면은 이제껏 많은 ‘장미의 기사’버전에서 그냥 여관의 응접실 같은 공간으로 처리했지만, 메트 2017년 버전은 여관의 침대로 처리한다.
첫 장면보다 더 과감한 애정 표현이 나온단 얘기다. 키스하고 얼굴을 그러안고 몸을 더듬고 침대에서 함께 뒹구는, 이 두 소프라노와 메조 소프라노의 사랑은 정말 연인의 사랑 그대로였다. 여성과 여성의 매우 노골적인 사랑 표현, 그러나 어색하지 않았다.
과거 소프라노의 사랑의 상대역인 바지역의 애정 표현은 그토록 과감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왜냐하면 동성애 코드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페라의 나이 지긋한 관객들은, 결국은 여성과 여성이 사랑을 노래하며 애정 표현을 할 때, 바로 그 동성애 코드 때문에 불편해하기도 했다.
이번 시즌에도 공연된 모차르트의 오페라 ‘이도메네오’에서 이도메네오의 아들 이다만테와 일리아의 사랑 표현은 다분히 절제적이다. 서로 부둥켜안고 애타게 서로의 불행한 운명적 사랑을 한탄하는 장면에서도 키스 한 번을 하지 않는다. 1982년, 즉 35년 전에 만들어졌던 버전의 소프라노-메조소프라노의 애정 표현은 이처럼 절제돼 있었다. 물론 이도메네오가 고대의 전설을 모태로 한 오페라 세리아로 워낙 고상하다고는 해도 말이다.
그런데 이번 시즌 공연된 1982년 판 이도메네오의 일리아-이다멘테와 2017년 판 장미의 기사의 마르샬린/소피-옥타비안이라는 두 소프라노-메조 소프라노 커플의 사랑 표현은, 절제된 전자보다 적나라한 후자가 훨씬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단지 가랑차의 완벽한 남장과 연기 때문만이었을까? 세트와 분위기, 제작 의도 그 모든 게 그 과감한 애정 표현을 자연스럽게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글쎄 내가 보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지난 13일 ‘장미의 기사’ 오픈 공연 때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의 3천8백 석을 꽉 채운 관객들, 값비싼 갈라이벤트도 있었기에 어느 때보다 중장년층이 많았던 그 관객들 가운데, 끊임없이 계속되는 소프라노-메조소프라노 애정 표현 장면에 ‘억’소리를 내거나 얼굴을 찌푸리는 관객은 거의 없었다.
성소수자에 관대한 뉴욕이라서?
뉴욕주의 성소수자 인구는 지난 2012년 통계에서 57만여 명으로 조사됐다. 그 가운데 절반 가량인 약 30만 명이 뉴욕시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뉴욕주의 성소수자 인구 비율은 4%대다. 인구에서 성소수자의 비율 자체는 시대를 통해 대체로 비슷하고, 다만 커밍아웃하는 정도에 따라 보고되는 비율이 변화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뉴욕주의 성소수자 인구 비율도 통계적으로 폭발적 증가세에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성소수자의 권리 자체는 그 어느 곳에서보다 이 곳 뉴욕에서 높아지고 있다. 만약 당신이 직장에서 또는 식당에서 그 어떤 공공장소에서라도 “나는 성소수자가 싫어”라고 공공연히 말한다면, 이 곳 뉴욕에서는 성소수자 차별 행위로 바로 소송을 당하고 말 것이다. 어쨌든 다양성을 존중하고, 모든 소수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이 특별한 도시에서 성소수자는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나는 성소수자를 분명 월스트리트보다는 패션스트리트에서 더 많이 보게 된다. 센트럴파크보다는 뮤지컬이나 오페라 등 공연장에서 더 많이 본다. 밤이면 시끌벅적한 술집보다 조용히 와인잔을 기울이는 다운타운의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그들을 더 많이 마주친다.
내가 성소수자에 대해 그다지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이성애자들보다 성소수자들이(특히 남성의 경우) 문화적 예술적 감수성이 훨씬 예민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공식적 통계는 없지만, 뉴욕의 패션미용업계, 미술계, 공연예술계 종사자들 가운데선, 때때로 성소수자가 더 다수가 아니냐 할 정도로 성소수자가 많다. 뿐만이 아니다. 이성애자들에 비해, 결혼과 출산, 육아로부터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한 그들은, 뉴욕의 다양한 공연계에 가장 성장 잠재력이 큰 고객군 중의 하나다.
메트가 이번 시즌에 바지역이 포함된 오페라나 바지역을, 그것 때문에 늘렸다고 하면, 무리한 해석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지역의 애정 표현이 그토록 과감해진 것은 분명 그런 사회적 현상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성소수자에 관대한 도시 뉴욕에서, 이제 여성과 여성이 나누는 애정 표현은 길거리에서든 메트 오페라의 무대 위에서든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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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파원 리포트] 오페라, ‘동성애코드’ 더 이상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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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7-04-18 10:00:38
- 수정2017-04-18 10:37:10
이 도발적인 포즈의 한 커플,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이번 시즌 새 버전으로 만들어 개봉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Der Rosenkavalier)' 홍보 사진이다. 17살 미소년과 30대 왕녀의, 열렬하지만 이른바 ‘부적절한’ 관계, 그 느낌이 느껴지는가?
그러나 너무나 매력적인 모습을 한 저 미소년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스타 메조소프라노 엘리나 가랑차다. 여자란 얘기다.
메트로폴리탄(이후 ‘메트’) 오페라가 2016-2017시즌에 새 버전으로 만들어 올린 오페라는, 전체 26개 작품 중 6개다. 그 6개 중 맨 마지막에 개봉한 오페라가 이 ‘장미의 기사’다.
이 장미의 기사는 특히 링컨센터 50주년 기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갈라쇼에 한 달 앞서 개봉되면서, 독립적인 갈라 이벤트가 함께 기획했다.
13일 오프닝 공연에서 진행된 갈라 이벤트는 칵테일 파티, 디너와 공연티켓을 묶어서 패키지로 기획됐는데, 500달러가량의 2층(이들은 여기를 2층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공연장에서 오케스트라라고 불리는 공연장 1층 바로 위 층을 편의상 2층이라고 부르자) 박스석 관람이 포함된, 10인용 테이블 패키지 가격이 5만 달러, 우리 돈 6천만 원에 육박했다. 갈라 디너에 참석하고 공연을 볼 수 있는 1인용 갈라 패키지 최저 가격이 1,875달러, 우리 돈 2백만 원이 넘는다.
물론 5월 7일 링컨센터 50주년 기념 공연 갈라 이벤트의 경우 가장 비싼 8인용 테이블 패키지가 25만 달러, 우리 돈 3억 원에 육박하니, 뭐 이 공연의 갈라 가격이 놀랄 정도는 아니지만, 매트가 시즌 오픈 갈라나 신년 갈라 등 기념일 이벤트 외에, 새 작품 오픈에 갈라 이벤트를 같이 진행하는 일은 드무니, 메트가 이 작품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만큼은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민간에서 운영하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가장 큰 수입원은 티켓 판매가 아닌, 기부금이다. 거의 수입의 절반가량이 기부금일 정도로 기부금이 많다. 뉴욕의 전통적 부자들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회원이 되어, 정기적으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후원하는 것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하는 한 방도쯤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이와 같은 갈라 이벤트는, 주로 그들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부자들의 기부금으로, 정상가의 10%가량인 25달러짜리 러시티켓(공연 당일 낮에 잠깐 파는, 수량이 정해져있지 않은 이벤트식 최저가 티켓)이나 20~30달러 짜리 스탠딩 티켓(1층 맨 뒤쪽에서 서서 보는 티켓)도 가능하다니 너무 부자들만의 메트라고 비난하지는 말자. 메트로폴리탄 측은 기부금 덕택에 이런 최저가 티켓을 그들이 팔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너무나 매력적인 바지역 ‘옥타비안’의 가랑차
어쨌든 이번 시즌 메트의 마지막 새 작품 ‘장미의 기사’에는 화젯거리가 많았다. 가장 큰 화제는, 이제 58살이 된 메트의 스타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이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이 장미의 기사의 왕녀역, 즉 마르샬린 역에서 은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많은 화제 속에서 내 눈을 확 잡아끈 건, 저 포스터였다. 메트의 많은 공연 포스터를 보았지만, 저 포스터처럼 도발적인 포즈의 매력적인 커플은 드물었다. 특히 저 남자의 눈빛! 누구지? 지난 2015년 분명히 엘리나 가랑차의 ‘카르멘’을 보았음에도 나는 처음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정말로 순간 남자인 줄 착각했다. 가랑차는 머리까지 숏커트로 잘라 금발로 염색하고, 완벽하게 17살의 미소년 옥타비안으로 변신해있었다.
메트의 ‘장미의 기사’ 2017년 버전은, 시대적 배경을 원래 작품이 의도한 18세기에서 장미의 기사가 초연된 1911년의 빈으로 옮겼다. 세트는 더욱 현대적이고 감각적이 됐다. 하지만 이 새 버전의 가장 독특한 점은 ‘코믹함’을 극대화했다는 것이다.
남자역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힘 있는 목소리에, 연기력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그량챠는 그 코믹함을 살리려는 제작자의 의도에 한껏 부응했다. 30대의 나이 많은 연인에게 매달리고 투덜대고 칭얼대다 들이대고 장난치고, 새로운 열정을 불태우게 한 16살의 새 연인을 위해 주저하다가도 기꺼이 나서고 흥분해 결투도 마다치 않는, 이제 어엿한 청년이 되어가기 시작한 17살의 사춘기 소년. 이른바 오페라의 ‘바지역(trouser role)'을 완벽하게 해낸 것이다.
카스트라토를 이어받은 오페라의 바지역
중세. 바로크시대 교회가 지배하던 시절에는 주로 음악이 교회음악이었고, 교회든 어디든 공연장에는 여자가 설 수 없었다. 가장 높은 음역대가 테너로 제한되니 음악적 표현 역시 제한됐고, 더 높은 음역을 낼 수 있는 성악가들이 필요했는데 그게 영화 ‘파리넬리’로 잘 알려진, 여성의 음역을 내는 거세된 남자 성악가 ‘카스트라토’다.
하지만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이후 시대가 바뀐다. 거세가 금지되었다. 이제 카스트라토는 없는 거다. 그렇다면 카스트라토를 위해 작곡된 그 높은 영역은 누가 불러야 할까? 변성기를 거치는 남자들은 그렇게 높은 음을 낼 수 없다.
그래서 탄생한 게 여성이 하는 오페라의 남자 역할 바지역(trouser role)이다. 주로 메조소프라노들이 이처럼 카스트라토에서 내려온 바지역을 맡았고, 오페라에선 여성이 남성의 역할을 맡는 바지역이 어색하지 않은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그렇게 원래 남자인 역을 여자가 맡게 되면서, 오페라에는 이런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다. 즉 소프라노인 여성과 바지역, 그 상대 남자역을 맡은 또 다른 여성 메조소프라노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다.
물론 바지역이 꼭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남자 역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명한 바지역인, 구노의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의 시종 역할일 스테파노는, 연애 따위에는 절대 연루되지 않지만, 소프라노를 위한 남자역으로 작곡되어 있다. 즉, 오페라에서의 음악적 필요성을 위해, 많은 작곡가가 카스트라토 시대 이후에도, 오페라에 바지역을 집어넣었단 얘기다. 특히 굵직한 성인 남성의 목소리로는 표현이 어려운, 10대 소년들의 역할을 여성들이 부르는 바지역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2016-2017시즌 메트 오페라에는 모두 5개의 바지역이 나온다. 장미의 기사의 옥타비안 역, 이도메네오의 이다만테 역, 로미오와 줄리엣의 스테파노 역, 윌리엄 텔의 제미 역,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순례자 역 등이다. 대부분 10대 미소년들이다. 이 가운데, 소프라노와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두 역할이 장미의 기사의 옥타비안과 이도메네오의 이다만테 역이다.
바지역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소프라노와 소프라노가 연애의 감정에 얽히는 작품이 또 있다.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인 피델리오도 이번 시즌에 공연됐는데, 남편을 구하기 위해 남장을 하고 남편이 갇힌 감옥의 간수장 보조로 들어간 레오노라와 그를 남자인 줄 알고 사랑하는 간수장의 딸 마르셀린의 관계도 있었다.
과감한 애정 표현, 동성애 코드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오페라에서의 바지역이 어제오늘 일이 아닌, 수백 년의 전통을 지닌 일인데, 왜 이번 시즌 ‘장미의 기사’의 옥타비안 역은 유독 눈에 띄는가?
2017년 버전의 장미의 기사에서의 옥타비안 역은 정말 남자 같았기 때문이다. 옥타비안과 왕녀 마르샬린의 침대 장면은 적나라했다. 옥타비안과 그의 새로운 연인 소피의 애정 표현 역시 과감했다. 옥타비안과 소피가 사랑을 확인하는 마지막 장면은 이제껏 많은 ‘장미의 기사’버전에서 그냥 여관의 응접실 같은 공간으로 처리했지만, 메트 2017년 버전은 여관의 침대로 처리한다.
첫 장면보다 더 과감한 애정 표현이 나온단 얘기다. 키스하고 얼굴을 그러안고 몸을 더듬고 침대에서 함께 뒹구는, 이 두 소프라노와 메조 소프라노의 사랑은 정말 연인의 사랑 그대로였다. 여성과 여성의 매우 노골적인 사랑 표현, 그러나 어색하지 않았다.
과거 소프라노의 사랑의 상대역인 바지역의 애정 표현은 그토록 과감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왜냐하면 동성애 코드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페라의 나이 지긋한 관객들은, 결국은 여성과 여성이 사랑을 노래하며 애정 표현을 할 때, 바로 그 동성애 코드 때문에 불편해하기도 했다.
이번 시즌에도 공연된 모차르트의 오페라 ‘이도메네오’에서 이도메네오의 아들 이다만테와 일리아의 사랑 표현은 다분히 절제적이다. 서로 부둥켜안고 애타게 서로의 불행한 운명적 사랑을 한탄하는 장면에서도 키스 한 번을 하지 않는다. 1982년, 즉 35년 전에 만들어졌던 버전의 소프라노-메조소프라노의 애정 표현은 이처럼 절제돼 있었다. 물론 이도메네오가 고대의 전설을 모태로 한 오페라 세리아로 워낙 고상하다고는 해도 말이다.
그런데 이번 시즌 공연된 1982년 판 이도메네오의 일리아-이다멘테와 2017년 판 장미의 기사의 마르샬린/소피-옥타비안이라는 두 소프라노-메조 소프라노 커플의 사랑 표현은, 절제된 전자보다 적나라한 후자가 훨씬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단지 가랑차의 완벽한 남장과 연기 때문만이었을까? 세트와 분위기, 제작 의도 그 모든 게 그 과감한 애정 표현을 자연스럽게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글쎄 내가 보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지난 13일 ‘장미의 기사’ 오픈 공연 때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의 3천8백 석을 꽉 채운 관객들, 값비싼 갈라이벤트도 있었기에 어느 때보다 중장년층이 많았던 그 관객들 가운데, 끊임없이 계속되는 소프라노-메조소프라노 애정 표현 장면에 ‘억’소리를 내거나 얼굴을 찌푸리는 관객은 거의 없었다.
성소수자에 관대한 뉴욕이라서?
뉴욕주의 성소수자 인구는 지난 2012년 통계에서 57만여 명으로 조사됐다. 그 가운데 절반 가량인 약 30만 명이 뉴욕시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뉴욕주의 성소수자 인구 비율은 4%대다. 인구에서 성소수자의 비율 자체는 시대를 통해 대체로 비슷하고, 다만 커밍아웃하는 정도에 따라 보고되는 비율이 변화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뉴욕주의 성소수자 인구 비율도 통계적으로 폭발적 증가세에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성소수자의 권리 자체는 그 어느 곳에서보다 이 곳 뉴욕에서 높아지고 있다. 만약 당신이 직장에서 또는 식당에서 그 어떤 공공장소에서라도 “나는 성소수자가 싫어”라고 공공연히 말한다면, 이 곳 뉴욕에서는 성소수자 차별 행위로 바로 소송을 당하고 말 것이다. 어쨌든 다양성을 존중하고, 모든 소수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이 특별한 도시에서 성소수자는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나는 성소수자를 분명 월스트리트보다는 패션스트리트에서 더 많이 보게 된다. 센트럴파크보다는 뮤지컬이나 오페라 등 공연장에서 더 많이 본다. 밤이면 시끌벅적한 술집보다 조용히 와인잔을 기울이는 다운타운의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그들을 더 많이 마주친다.
내가 성소수자에 대해 그다지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이성애자들보다 성소수자들이(특히 남성의 경우) 문화적 예술적 감수성이 훨씬 예민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공식적 통계는 없지만, 뉴욕의 패션미용업계, 미술계, 공연예술계 종사자들 가운데선, 때때로 성소수자가 더 다수가 아니냐 할 정도로 성소수자가 많다. 뿐만이 아니다. 이성애자들에 비해, 결혼과 출산, 육아로부터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한 그들은, 뉴욕의 다양한 공연계에 가장 성장 잠재력이 큰 고객군 중의 하나다.
메트가 이번 시즌에 바지역이 포함된 오페라나 바지역을, 그것 때문에 늘렸다고 하면, 무리한 해석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지역의 애정 표현이 그토록 과감해진 것은 분명 그런 사회적 현상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성소수자에 관대한 도시 뉴욕에서, 이제 여성과 여성이 나누는 애정 표현은 길거리에서든 메트 오페라의 무대 위에서든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그러나 너무나 매력적인 모습을 한 저 미소년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스타 메조소프라노 엘리나 가랑차다. 여자란 얘기다.
메트로폴리탄(이후 ‘메트’) 오페라가 2016-2017시즌에 새 버전으로 만들어 올린 오페라는, 전체 26개 작품 중 6개다. 그 6개 중 맨 마지막에 개봉한 오페라가 이 ‘장미의 기사’다.
이 장미의 기사는 특히 링컨센터 50주년 기념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갈라쇼에 한 달 앞서 개봉되면서, 독립적인 갈라 이벤트가 함께 기획했다.
13일 오프닝 공연에서 진행된 갈라 이벤트는 칵테일 파티, 디너와 공연티켓을 묶어서 패키지로 기획됐는데, 500달러가량의 2층(이들은 여기를 2층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공연장에서 오케스트라라고 불리는 공연장 1층 바로 위 층을 편의상 2층이라고 부르자) 박스석 관람이 포함된, 10인용 테이블 패키지 가격이 5만 달러, 우리 돈 6천만 원에 육박했다. 갈라 디너에 참석하고 공연을 볼 수 있는 1인용 갈라 패키지 최저 가격이 1,875달러, 우리 돈 2백만 원이 넘는다.
물론 5월 7일 링컨센터 50주년 기념 공연 갈라 이벤트의 경우 가장 비싼 8인용 테이블 패키지가 25만 달러, 우리 돈 3억 원에 육박하니, 뭐 이 공연의 갈라 가격이 놀랄 정도는 아니지만, 매트가 시즌 오픈 갈라나 신년 갈라 등 기념일 이벤트 외에, 새 작품 오픈에 갈라 이벤트를 같이 진행하는 일은 드무니, 메트가 이 작품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만큼은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민간에서 운영하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가장 큰 수입원은 티켓 판매가 아닌, 기부금이다. 거의 수입의 절반가량이 기부금일 정도로 기부금이 많다. 뉴욕의 전통적 부자들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회원이 되어, 정기적으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후원하는 것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하는 한 방도쯤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이와 같은 갈라 이벤트는, 주로 그들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부자들의 기부금으로, 정상가의 10%가량인 25달러짜리 러시티켓(공연 당일 낮에 잠깐 파는, 수량이 정해져있지 않은 이벤트식 최저가 티켓)이나 20~30달러 짜리 스탠딩 티켓(1층 맨 뒤쪽에서 서서 보는 티켓)도 가능하다니 너무 부자들만의 메트라고 비난하지는 말자. 메트로폴리탄 측은 기부금 덕택에 이런 최저가 티켓을 그들이 팔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너무나 매력적인 바지역 ‘옥타비안’의 가랑차
어쨌든 이번 시즌 메트의 마지막 새 작품 ‘장미의 기사’에는 화젯거리가 많았다. 가장 큰 화제는, 이제 58살이 된 메트의 스타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이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이 장미의 기사의 왕녀역, 즉 마르샬린 역에서 은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많은 화제 속에서 내 눈을 확 잡아끈 건, 저 포스터였다. 메트의 많은 공연 포스터를 보았지만, 저 포스터처럼 도발적인 포즈의 매력적인 커플은 드물었다. 특히 저 남자의 눈빛! 누구지? 지난 2015년 분명히 엘리나 가랑차의 ‘카르멘’을 보았음에도 나는 처음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정말로 순간 남자인 줄 착각했다. 가랑차는 머리까지 숏커트로 잘라 금발로 염색하고, 완벽하게 17살의 미소년 옥타비안으로 변신해있었다.
메트의 ‘장미의 기사’ 2017년 버전은, 시대적 배경을 원래 작품이 의도한 18세기에서 장미의 기사가 초연된 1911년의 빈으로 옮겼다. 세트는 더욱 현대적이고 감각적이 됐다. 하지만 이 새 버전의 가장 독특한 점은 ‘코믹함’을 극대화했다는 것이다.
남자역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힘 있는 목소리에, 연기력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그량챠는 그 코믹함을 살리려는 제작자의 의도에 한껏 부응했다. 30대의 나이 많은 연인에게 매달리고 투덜대고 칭얼대다 들이대고 장난치고, 새로운 열정을 불태우게 한 16살의 새 연인을 위해 주저하다가도 기꺼이 나서고 흥분해 결투도 마다치 않는, 이제 어엿한 청년이 되어가기 시작한 17살의 사춘기 소년. 이른바 오페라의 ‘바지역(trouser role)'을 완벽하게 해낸 것이다.
카스트라토를 이어받은 오페라의 바지역
중세. 바로크시대 교회가 지배하던 시절에는 주로 음악이 교회음악이었고, 교회든 어디든 공연장에는 여자가 설 수 없었다. 가장 높은 음역대가 테너로 제한되니 음악적 표현 역시 제한됐고, 더 높은 음역을 낼 수 있는 성악가들이 필요했는데 그게 영화 ‘파리넬리’로 잘 알려진, 여성의 음역을 내는 거세된 남자 성악가 ‘카스트라토’다.
하지만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이후 시대가 바뀐다. 거세가 금지되었다. 이제 카스트라토는 없는 거다. 그렇다면 카스트라토를 위해 작곡된 그 높은 영역은 누가 불러야 할까? 변성기를 거치는 남자들은 그렇게 높은 음을 낼 수 없다.
그래서 탄생한 게 여성이 하는 오페라의 남자 역할 바지역(trouser role)이다. 주로 메조소프라노들이 이처럼 카스트라토에서 내려온 바지역을 맡았고, 오페라에선 여성이 남성의 역할을 맡는 바지역이 어색하지 않은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그렇게 원래 남자인 역을 여자가 맡게 되면서, 오페라에는 이런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소프라노와 메조소프라노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다. 즉 소프라노인 여성과 바지역, 그 상대 남자역을 맡은 또 다른 여성 메조소프라노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다.
물론 바지역이 꼭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남자 역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명한 바지역인, 구노의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의 시종 역할일 스테파노는, 연애 따위에는 절대 연루되지 않지만, 소프라노를 위한 남자역으로 작곡되어 있다. 즉, 오페라에서의 음악적 필요성을 위해, 많은 작곡가가 카스트라토 시대 이후에도, 오페라에 바지역을 집어넣었단 얘기다. 특히 굵직한 성인 남성의 목소리로는 표현이 어려운, 10대 소년들의 역할을 여성들이 부르는 바지역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2016-2017시즌 메트 오페라에는 모두 5개의 바지역이 나온다. 장미의 기사의 옥타비안 역, 이도메네오의 이다만테 역, 로미오와 줄리엣의 스테파노 역, 윌리엄 텔의 제미 역,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순례자 역 등이다. 대부분 10대 미소년들이다. 이 가운데, 소프라노와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두 역할이 장미의 기사의 옥타비안과 이도메네오의 이다만테 역이다.
바지역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소프라노와 소프라노가 연애의 감정에 얽히는 작품이 또 있다.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인 피델리오도 이번 시즌에 공연됐는데, 남편을 구하기 위해 남장을 하고 남편이 갇힌 감옥의 간수장 보조로 들어간 레오노라와 그를 남자인 줄 알고 사랑하는 간수장의 딸 마르셀린의 관계도 있었다.
과감한 애정 표현, 동성애 코드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오페라에서의 바지역이 어제오늘 일이 아닌, 수백 년의 전통을 지닌 일인데, 왜 이번 시즌 ‘장미의 기사’의 옥타비안 역은 유독 눈에 띄는가?
2017년 버전의 장미의 기사에서의 옥타비안 역은 정말 남자 같았기 때문이다. 옥타비안과 왕녀 마르샬린의 침대 장면은 적나라했다. 옥타비안과 그의 새로운 연인 소피의 애정 표현 역시 과감했다. 옥타비안과 소피가 사랑을 확인하는 마지막 장면은 이제껏 많은 ‘장미의 기사’버전에서 그냥 여관의 응접실 같은 공간으로 처리했지만, 메트 2017년 버전은 여관의 침대로 처리한다.
첫 장면보다 더 과감한 애정 표현이 나온단 얘기다. 키스하고 얼굴을 그러안고 몸을 더듬고 침대에서 함께 뒹구는, 이 두 소프라노와 메조 소프라노의 사랑은 정말 연인의 사랑 그대로였다. 여성과 여성의 매우 노골적인 사랑 표현, 그러나 어색하지 않았다.
과거 소프라노의 사랑의 상대역인 바지역의 애정 표현은 그토록 과감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왜냐하면 동성애 코드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페라의 나이 지긋한 관객들은, 결국은 여성과 여성이 사랑을 노래하며 애정 표현을 할 때, 바로 그 동성애 코드 때문에 불편해하기도 했다.
이번 시즌에도 공연된 모차르트의 오페라 ‘이도메네오’에서 이도메네오의 아들 이다만테와 일리아의 사랑 표현은 다분히 절제적이다. 서로 부둥켜안고 애타게 서로의 불행한 운명적 사랑을 한탄하는 장면에서도 키스 한 번을 하지 않는다. 1982년, 즉 35년 전에 만들어졌던 버전의 소프라노-메조소프라노의 애정 표현은 이처럼 절제돼 있었다. 물론 이도메네오가 고대의 전설을 모태로 한 오페라 세리아로 워낙 고상하다고는 해도 말이다.
그런데 이번 시즌 공연된 1982년 판 이도메네오의 일리아-이다멘테와 2017년 판 장미의 기사의 마르샬린/소피-옥타비안이라는 두 소프라노-메조 소프라노 커플의 사랑 표현은, 절제된 전자보다 적나라한 후자가 훨씬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단지 가랑차의 완벽한 남장과 연기 때문만이었을까? 세트와 분위기, 제작 의도 그 모든 게 그 과감한 애정 표현을 자연스럽게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글쎄 내가 보지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지난 13일 ‘장미의 기사’ 오픈 공연 때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의 3천8백 석을 꽉 채운 관객들, 값비싼 갈라이벤트도 있었기에 어느 때보다 중장년층이 많았던 그 관객들 가운데, 끊임없이 계속되는 소프라노-메조소프라노 애정 표현 장면에 ‘억’소리를 내거나 얼굴을 찌푸리는 관객은 거의 없었다.
성소수자에 관대한 뉴욕이라서?
뉴욕주의 성소수자 인구는 지난 2012년 통계에서 57만여 명으로 조사됐다. 그 가운데 절반 가량인 약 30만 명이 뉴욕시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뉴욕주의 성소수자 인구 비율은 4%대다. 인구에서 성소수자의 비율 자체는 시대를 통해 대체로 비슷하고, 다만 커밍아웃하는 정도에 따라 보고되는 비율이 변화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뉴욕주의 성소수자 인구 비율도 통계적으로 폭발적 증가세에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성소수자의 권리 자체는 그 어느 곳에서보다 이 곳 뉴욕에서 높아지고 있다. 만약 당신이 직장에서 또는 식당에서 그 어떤 공공장소에서라도 “나는 성소수자가 싫어”라고 공공연히 말한다면, 이 곳 뉴욕에서는 성소수자 차별 행위로 바로 소송을 당하고 말 것이다. 어쨌든 다양성을 존중하고, 모든 소수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이 특별한 도시에서 성소수자는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나는 성소수자를 분명 월스트리트보다는 패션스트리트에서 더 많이 보게 된다. 센트럴파크보다는 뮤지컬이나 오페라 등 공연장에서 더 많이 본다. 밤이면 시끌벅적한 술집보다 조용히 와인잔을 기울이는 다운타운의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그들을 더 많이 마주친다.
내가 성소수자에 대해 그다지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이성애자들보다 성소수자들이(특히 남성의 경우) 문화적 예술적 감수성이 훨씬 예민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공식적 통계는 없지만, 뉴욕의 패션미용업계, 미술계, 공연예술계 종사자들 가운데선, 때때로 성소수자가 더 다수가 아니냐 할 정도로 성소수자가 많다. 뿐만이 아니다. 이성애자들에 비해, 결혼과 출산, 육아로부터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한 그들은, 뉴욕의 다양한 공연계에 가장 성장 잠재력이 큰 고객군 중의 하나다.
메트가 이번 시즌에 바지역이 포함된 오페라나 바지역을, 그것 때문에 늘렸다고 하면, 무리한 해석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지역의 애정 표현이 그토록 과감해진 것은 분명 그런 사회적 현상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성소수자에 관대한 도시 뉴욕에서, 이제 여성과 여성이 나누는 애정 표현은 길거리에서든 메트 오페라의 무대 위에서든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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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에스더 기자 stella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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