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뜻밖의 복병 ‘담뱃갑 스티커’…“단속 근거 없어요”

입력 2017.04.18 (18:53) 수정 2017.04.18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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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사진 말고 여성 얼굴 그려진 걸로 주세요.”
“그건 지금 그림이 없어요.”

얼마 전부터 편의점마다 종업원과 손님 사이 낯선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다. 담배에 그려진 경고그림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23일부터 생산하는 모든 담배엔 흡연의 폐해를 알리는 경고 그림이 부착되고 있다. 담배의 폐해를 직접 눈으로 보여줘 흡연 의지를 꺾겠다는 의도다. 기존에 생산한 담배가 올해 초 대부분 소진되면서, 이제 담배 판매대를 온통 경고그림이 담긴 담배가 차지하고 있다.


병변 관련 (5종) : 폐암, 후두암, 구강암, 심장질환, 뇌졸중
비병변 관련 (5종) : 간접흡연, 임산부흡연, 성기능장애, 피부노화, 조기사망


담배 판매량 3개월 연속 감소...흡연 경고 그림 효과?

담배 판매량은 지난해 11월 이후 3개월 연속 줄었다. 올해 2월 담배 판매량은 2억 4천만 갑으로 1년 전보다 14.0% 감소했다. 다른 요인을 배제할 순 없지만, 경고 그림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는 평가다.

흡연자들의 반응도 확실하다. 경고 그림을 보고 담배 구매를 주저하거나 경고 그림이라도 바꿔 달라는 요구도 많다고 한 편의점 점장은 전했다. 수술 장면이 담긴 ‘폐암’과 ‘심장질환’을 특히 꺼리고, ‘피부 노화’와 ‘조기 사망’이 인기라고 한다.


뜻밖의 복병 '담뱃갑 스티커'

비가격 금연 정책인 경고 그림이 이제 막 효과를 발휘하는 시점에 걸림돌 하나가 등장했다. 이른바 ‘담뱃갑 스티커’다. 경고 그림을 가리기 위한 용도로, 붙이면 혐오 그림이 귀여운 그림이나 위로의 문구로 바뀐다.


일부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서 고객들을 끌기 위해 이 스티커를 담배를 산 고객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한 업체는 ‘담뱃갑 스티커’에 광고를 넣어 담배 소매상들에게 무료로 배포까지 하고 있다. 업체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는 ‘담뱃갑 스티커’를 신청하는 편의점이나 슈퍼마켓 점주들의 글이 하루에도 수십건 씩 올라 올 정도로 인기다.



"단속 근거가 없다"는 보건복지부

정부의 금연 정책을 무효로 만드는 스티커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정작 보건복지부는 단속조차 하지 않고 있다. 단속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게 그 이유다.

담배 판매 과정에서 경고성 그림을 스티커로 가리거나 안 보이게 진열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안은 이미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이 경우도 판매자가 직접 담배에 스티커를 붙여서 파는 행위만 처벌되지, 스티커만 무료로 제공하고 소비자가 직접 붙이는 경우는 처벌할 수 없다.


경고 그림은 2001년 캐나다에서 처음 도입한 이래, 전 세계 100개국 넘게 시행 중인 대표적인 비가격 금연정책이다. 우리나라는 담배회사의 반대 등을 이유로 13년 간의 입법 노력 끝에 2015년에서야 어렵게 도입이 확정됐다. 힘들게 시작한 금연 정책이 이대로 좌절되지 않도록 대안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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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뜻밖의 복병 ‘담뱃갑 스티커’…“단속 근거 없어요”
    • 입력 2017-04-18 18:53:21
    • 수정2017-04-18 18:55:09
    취재후·사건후
"수술 사진 말고 여성 얼굴 그려진 걸로 주세요.” “그건 지금 그림이 없어요.” 얼마 전부터 편의점마다 종업원과 손님 사이 낯선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다. 담배에 그려진 경고그림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23일부터 생산하는 모든 담배엔 흡연의 폐해를 알리는 경고 그림이 부착되고 있다. 담배의 폐해를 직접 눈으로 보여줘 흡연 의지를 꺾겠다는 의도다. 기존에 생산한 담배가 올해 초 대부분 소진되면서, 이제 담배 판매대를 온통 경고그림이 담긴 담배가 차지하고 있다. 병변 관련 (5종) : 폐암, 후두암, 구강암, 심장질환, 뇌졸중 비병변 관련 (5종) : 간접흡연, 임산부흡연, 성기능장애, 피부노화, 조기사망 담배 판매량 3개월 연속 감소...흡연 경고 그림 효과? 담배 판매량은 지난해 11월 이후 3개월 연속 줄었다. 올해 2월 담배 판매량은 2억 4천만 갑으로 1년 전보다 14.0% 감소했다. 다른 요인을 배제할 순 없지만, 경고 그림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는 평가다. 흡연자들의 반응도 확실하다. 경고 그림을 보고 담배 구매를 주저하거나 경고 그림이라도 바꿔 달라는 요구도 많다고 한 편의점 점장은 전했다. 수술 장면이 담긴 ‘폐암’과 ‘심장질환’을 특히 꺼리고, ‘피부 노화’와 ‘조기 사망’이 인기라고 한다. 뜻밖의 복병 '담뱃갑 스티커' 비가격 금연 정책인 경고 그림이 이제 막 효과를 발휘하는 시점에 걸림돌 하나가 등장했다. 이른바 ‘담뱃갑 스티커’다. 경고 그림을 가리기 위한 용도로, 붙이면 혐오 그림이 귀여운 그림이나 위로의 문구로 바뀐다. 일부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서 고객들을 끌기 위해 이 스티커를 담배를 산 고객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한 업체는 ‘담뱃갑 스티커’에 광고를 넣어 담배 소매상들에게 무료로 배포까지 하고 있다. 업체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는 ‘담뱃갑 스티커’를 신청하는 편의점이나 슈퍼마켓 점주들의 글이 하루에도 수십건 씩 올라 올 정도로 인기다. "단속 근거가 없다"는 보건복지부 정부의 금연 정책을 무효로 만드는 스티커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정작 보건복지부는 단속조차 하지 않고 있다. 단속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게 그 이유다. 담배 판매 과정에서 경고성 그림을 스티커로 가리거나 안 보이게 진열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안은 이미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이 경우도 판매자가 직접 담배에 스티커를 붙여서 파는 행위만 처벌되지, 스티커만 무료로 제공하고 소비자가 직접 붙이는 경우는 처벌할 수 없다. 경고 그림은 2001년 캐나다에서 처음 도입한 이래, 전 세계 100개국 넘게 시행 중인 대표적인 비가격 금연정책이다. 우리나라는 담배회사의 반대 등을 이유로 13년 간의 입법 노력 끝에 2015년에서야 어렵게 도입이 확정됐다. 힘들게 시작한 금연 정책이 이대로 좌절되지 않도록 대안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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