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급식 중단…“컵라면, 콜라가 주식”

입력 2017.04.19 (16:54) 수정 2017.04.20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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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기사] [뉴스7] 저녁급식 중단 한달…“컵라면·콜라로 때워요”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앞. 학교 수업이 끝나고 저녁 6시가 되자 학교에서 쏟아져 나온 학생들이 근처 편의점으로 향합니다.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아 컵라면과 탄산음료로 끼니를 때우는 학생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편의점에서 저녁을 해결하는 모습은 경기 지역에서는 이제 익숙해져 버린 풍경입니다. 누가 이 학생들을 편의점으로 향하게 한 걸까요?

편의점에서 만난 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은 "올해부터 저녁 급식이 없어지면서 저녁을 안 먹거나 컵라면, 닭강정 등을 주로 먹는다"며, "학교 주변에 편의점밖에 없어서 즉석식품만 먹는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고3 학생은 "일주일 동안 라면을 먹어본 적이 있는데, 속도 되게 안 좋았고 구역질을 할 때도 있었다"고 말합니다.

올해부터 경기 지역에서 저녁 급식 제공을 중단하는 고등학교가 늘면서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가 즉석식품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습니다. 왜냐면 외부 식당에 가는 것보다는 편의점을 이용하는 게 가격도 싸고 간편하기 때입니다.

문제는 자극적인 즉석식품을 매일 먹다 보니 위장병에 걸려 병원 치료를 받거나 얼굴에도 여드름이 생겨 고생하는 학생이 있다고 합니다. 혹은, 아예 굶거나 야간자율학습이 끝난 뒤 밤늦게 집에서 밥을 먹는 학생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저녁 한 끼를 해결하기가 어려워지다 보니 야간자율학습 속칭 '야자'를 포기하고 아예 독서실을 이용하거나,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도 늘었다고 합니다.


학부모들의 불만도 큽니다. 고3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새 학기 초반 2주 정도는 음식이 상할까 봐 도시락을 싸서 아이가 먹기 전에 학교에 가져다줬다"며, "지금은 아이가 자율학습을 포기하고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다"고 말합니다.

다른 학부모는 "학교에서 집이 멀어 아이가 저녁을 챙겨 먹기 어려워지면서 다음 달부터는 독서실을 끊어줘야 할지 고민"이라고 합니다. 맞벌이 가정은 도시락을 싸주거나 저녁을 챙겨주기도 어려워서 학생들이 알아서 저녁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발단은 올해부터 경기교육청이 하루에 두 차례 급식을 제공하는 고등학교를 위생관리 취약학교로 분류해 특별 관리를 하겠다는 지침을 내리면서부터입니다. 하루 두 차례 이상 급식을 제공하는 고등학교는 식중독 등 위생, 안전사고 비율이 더 높다는 이유에서인데요.

학교에서 저녁 급식을 제공하면 특별 관리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에 이르자, 상당수 학교가 저녁 급식 제공을 중단한 겁니다. 지난해 경기 지역 고등학교 470여 곳 가운데 406곳(86%)에서 운영하던 저녁 급식은 현재 174곳(36%)에서만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표면적인 이유입니다. 경기도의 저녁 급식 중단은 교육감이 주장하는 '야자 폐지'를 위한 하나의 절차라는 게 교육계의 의견인데요. '야자'를 폐지하고 학생들에게 진로 탐색 시간을 더 주자는 의견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분분하지만, 문제는 갑작스러운 저녁 급식 중단으로 인한 피해가 학생과 학부모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학생, 학부모들의 불만이 잇따르고 있지만, 경기교육청은 기존의 급식 운영 계획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경기교육청은 저녁급식을 강제로 금지한 적 없고, 학교에서 요건만 갖추면 자율적으로 저녁급식을 운영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경기교육청 관계자는 "학생들을 밤 10시까지 묶어 놓고 강제적으로 자율학습을 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교육감의 교육적 접근에서 학교 급식 운영 방향이 정해졌다"면서 "학교급식법 시행령에 따르면 학교급식은 수업 중 점심 제공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일과가 끝난 뒤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고 진로 탐색 등 여가 시간을 보내는 '저녁이 있는 삶'은 학생과 부모 모두가 원하는 삶일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치열한 입시경쟁으로 밤늦은 시간까지 공부해야 하는 학생들, 잦은 야근으로 자식 얼굴도 보기 어려운 맞벌이 가정이 대다수입니다.

취지가 어떻든 간에 입시 제도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당장 학교 저녁 급식부터 제한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의문이 갑니다. 학생들은 지금 저녁이 있는 삶 전에 '저녁밥이 있는 삶'을 원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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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녁 급식 중단…“컵라면, 콜라가 주식”
    • 입력 2017-04-19 16:54:06
    • 수정2017-04-20 09:32:07
    사회

[연관기사] [뉴스7] 저녁급식 중단 한달…“컵라면·콜라로 때워요”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앞. 학교 수업이 끝나고 저녁 6시가 되자 학교에서 쏟아져 나온 학생들이 근처 편의점으로 향합니다.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아 컵라면과 탄산음료로 끼니를 때우는 학생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편의점에서 저녁을 해결하는 모습은 경기 지역에서는 이제 익숙해져 버린 풍경입니다. 누가 이 학생들을 편의점으로 향하게 한 걸까요?

편의점에서 만난 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은 "올해부터 저녁 급식이 없어지면서 저녁을 안 먹거나 컵라면, 닭강정 등을 주로 먹는다"며, "학교 주변에 편의점밖에 없어서 즉석식품만 먹는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고3 학생은 "일주일 동안 라면을 먹어본 적이 있는데, 속도 되게 안 좋았고 구역질을 할 때도 있었다"고 말합니다.

올해부터 경기 지역에서 저녁 급식 제공을 중단하는 고등학교가 늘면서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가 즉석식품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습니다. 왜냐면 외부 식당에 가는 것보다는 편의점을 이용하는 게 가격도 싸고 간편하기 때입니다.

문제는 자극적인 즉석식품을 매일 먹다 보니 위장병에 걸려 병원 치료를 받거나 얼굴에도 여드름이 생겨 고생하는 학생이 있다고 합니다. 혹은, 아예 굶거나 야간자율학습이 끝난 뒤 밤늦게 집에서 밥을 먹는 학생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저녁 한 끼를 해결하기가 어려워지다 보니 야간자율학습 속칭 '야자'를 포기하고 아예 독서실을 이용하거나,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도 늘었다고 합니다.


학부모들의 불만도 큽니다. 고3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새 학기 초반 2주 정도는 음식이 상할까 봐 도시락을 싸서 아이가 먹기 전에 학교에 가져다줬다"며, "지금은 아이가 자율학습을 포기하고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다"고 말합니다.

다른 학부모는 "학교에서 집이 멀어 아이가 저녁을 챙겨 먹기 어려워지면서 다음 달부터는 독서실을 끊어줘야 할지 고민"이라고 합니다. 맞벌이 가정은 도시락을 싸주거나 저녁을 챙겨주기도 어려워서 학생들이 알아서 저녁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발단은 올해부터 경기교육청이 하루에 두 차례 급식을 제공하는 고등학교를 위생관리 취약학교로 분류해 특별 관리를 하겠다는 지침을 내리면서부터입니다. 하루 두 차례 이상 급식을 제공하는 고등학교는 식중독 등 위생, 안전사고 비율이 더 높다는 이유에서인데요.

학교에서 저녁 급식을 제공하면 특별 관리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에 이르자, 상당수 학교가 저녁 급식 제공을 중단한 겁니다. 지난해 경기 지역 고등학교 470여 곳 가운데 406곳(86%)에서 운영하던 저녁 급식은 현재 174곳(36%)에서만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표면적인 이유입니다. 경기도의 저녁 급식 중단은 교육감이 주장하는 '야자 폐지'를 위한 하나의 절차라는 게 교육계의 의견인데요. '야자'를 폐지하고 학생들에게 진로 탐색 시간을 더 주자는 의견 대해서는 찬반양론이 분분하지만, 문제는 갑작스러운 저녁 급식 중단으로 인한 피해가 학생과 학부모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학생, 학부모들의 불만이 잇따르고 있지만, 경기교육청은 기존의 급식 운영 계획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경기교육청은 저녁급식을 강제로 금지한 적 없고, 학교에서 요건만 갖추면 자율적으로 저녁급식을 운영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경기교육청 관계자는 "학생들을 밤 10시까지 묶어 놓고 강제적으로 자율학습을 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한 교육감의 교육적 접근에서 학교 급식 운영 방향이 정해졌다"면서 "학교급식법 시행령에 따르면 학교급식은 수업 중 점심 제공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일과가 끝난 뒤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고 진로 탐색 등 여가 시간을 보내는 '저녁이 있는 삶'은 학생과 부모 모두가 원하는 삶일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치열한 입시경쟁으로 밤늦은 시간까지 공부해야 하는 학생들, 잦은 야근으로 자식 얼굴도 보기 어려운 맞벌이 가정이 대다수입니다.

취지가 어떻든 간에 입시 제도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당장 학교 저녁 급식부터 제한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의문이 갑니다. 학생들은 지금 저녁이 있는 삶 전에 '저녁밥이 있는 삶'을 원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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