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TV 토론은 못해”…영국 총리에 비난 쇄도

입력 2017.04.2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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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사 메이 총리와 집권 보수당 때문에 영국 사회가 논쟁에 빠졌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협상을 목전에 두고 조기 총선을 추진하겠다고 깜짝 발표해 영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메이 총리가 이제는 총선 전까지 어떤 TV 토론에도 참석하지 않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선거일(6월 8일)은 5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유권자들은 누구를 왜 지지해야 할 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게다가 영국과의 브렉시트 협상을 벼르고 있는 유럽연합과 치열한 한 판 싸움도 벌여야 한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영국을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갈 지 각 당의 지도자들이 자웅을 겨뤄야 할 판에 집권 보수당 대표가 TV 심판대에 서지 않겠다니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테리사 메이 총리가 6월 8일에 조기 총선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4월 18일) 그동안 메이 총리는 수차례 ‘조기 총선은 없다’고 밝혀 왔던 만큼 한 영국 언론은 ‘메이 총리가 정치권에 폭탄을 터뜨렸다’고 평가했다. 테리사 메이 총리가 6월 8일에 조기 총선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4월 18일) 그동안 메이 총리는 수차례 ‘조기 총선은 없다’고 밝혀 왔던 만큼 한 영국 언론은 ‘메이 총리가 정치권에 폭탄을 터뜨렸다’고 평가했다.

메이 총리가 밝힌 TV 토론 불참 이유는 간단하다. "정치인은 거리로 나가야 한다. 총리로서 국회의원으로서 나는 내 지역구의 유권자를 거리에서 또는 집으로 찾아가 만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TV 토론보다는 유권자들을 직접 만나겠다는 거다. 집권 보수당도 메이 총리를 옹호했다.

"이번 선거는 테리사 메이와 보수당의 강력하고 안정된 지도자를 뽑을 것이냐 아니면 유약하고 불안정한 노동당 연립 정부를 뽑을 것이냐의 선택이다. 선택의 기준이 명확한 데 총리가 토론회에 나갈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말했다. 보수당이냐 노동당이냐 둘 중 하나의 선택인데 굳이 TV 토론에 나가 다른 당 지도자들과 말싸움을 벌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2015년 영국 총선에 앞서 열린 각당 대표들의 BBC토론회. 90분 정도 진행된 스탠딩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피곤한지 다리를 들고 있다.지난 2015년 영국 총선에 앞서 열린 각당 대표들의 BBC토론회. 90분 정도 진행된 스탠딩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피곤한지 다리를 들고 있다.

영국의 주요 언론들은 당연히 비판적이다. "유권자들은 정치 지도자가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 갈지 알고 싶어한다.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TV 토론인데 메이 총리는 그 기회를 스스로 버리려 한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 2015년 영국 총선에서 유권자의 38%가 TV 토론의 영향을 받았다"며 메이 총리를 설득하기도 했다.

야당들의 목소리는 더욱 격앙됐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TV 토론이 필요하다. 영국 국민은 TV 토론을 볼 권리가 있다"고 비판했다. 또 "총리는 무엇이 겁나서 토론회를 거부하냐"며 "정 안나오겠다면 메이 총리의 공간을 비워 놓고 우리끼리 토론하자. 우리는 해야 겠다"고 한 발 더 나아갔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캐머런 총리의 자리를 승계한 메이 총리는 화려한 패션 감각을 선보이며 언론에 자주 노출됐다. 그러나 TV 토론회는 불참을 선언했다.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캐머런 총리의 자리를 승계한 메이 총리는 화려한 패션 감각을 선보이며 언론에 자주 노출됐다. 그러나 TV 토론회는 불참을 선언했다.

방송사들이 총리 자리를 비워 놓은 토론회를 준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총리실 측이 움직였다. "총리가 방송에 출연할 수 있다. 다만 사회자와의 질의응답 형식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야당 지도자들과의 토론은 거부했다. 총리실 측은 "1대 1 토론이든 뭐든 야당 대표와의 토론은 하지 않겠다는 총리의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왼쪽이 밀리밴드 전노동당 대표, 오른쪽이 캐머런 전 보수당 대표. 노동당은 2015년 총선을 앞두고 1대 1 맞짱 토론을 제안했지만 보수당이 거부해 무산됐다.왼쪽이 밀리밴드 전노동당 대표, 오른쪽이 캐머런 전 보수당 대표. 노동당은 2015년 총선을 앞두고 1대 1 맞짱 토론을 제안했지만 보수당이 거부해 무산됐다.

보수당 대표이자 총리가 선거나 국민투표를 앞두고 상대 지도자와 맞짱 토론을 하지 않으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두고 잔류 측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탈퇴 측의 마이클 고브 전 법무장관의 1대1 맞짱 토론 얘기가 나왔지만 무산됐다.

양측은 다른 시간대의 방송 프로그램에 각각 따로 출연해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간접 토론을 벌였다. 2015년 총선에서도 1대1 맞짱 토론은 무산됐다. 다만 당시 캐머런 총리는 7명의 당 대표 토론회에는 참석했다. 당시 야당의 에드 밀리밴드 노동당 대표가 1대1 토론을 강력히 주장했지만 총리 측의 거부로 무산됐다.

보수당 대표인 메이 총리가 토론회를 거부한 것은 굳이 골치 아픈 토론회를 하지 않아도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실제 현지 여론조사 기관이 4월 20일 공개한 조사 결과를 보면 보수당 지지도와 노동당 지지도는 2배의 격차를 보이고 있다.

TV 토론을 거부했지만, 보수당의 지지도는 올라가고 있고 노동당의 지지도는 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TV 토론에 힘들게 출연해 야당들의 집중 공격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한 언론사의 인터넷 조사 결과 총리가 TV 토론을 해야 한다는 의견과 TV 토론을 거부해도 된다는 의견이 대략 반 반으로 갈렸다. 정작 유권자들은 원하지 않는데 야당과 언론사들만 TV 토론을 요구하는 모양새가 되고 있는 셈이다.

선거가 치러지기 전까지 TV 토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조기 총선은 없다"라고 수차례 얘기했던 메이 총리가 갑자기 마음을 180도 바꿔 "조기 총선을 해야한다"고 했듯이 TV 토론도 해야겠다고 말할지 모른다. 또는 보수당 절대 우위의 여론조사가 갑자기 뒤집어지거나 메이 총리가 여론조사에 대해 의심이 커졌을 경우 영국 시청자들은 각 당 대표의 열띤 TV 토론회를 볼 행운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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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21 10:44:47
    특파원 리포트
테리사 메이 총리와 집권 보수당 때문에 영국 사회가 논쟁에 빠졌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협상을 목전에 두고 조기 총선을 추진하겠다고 깜짝 발표해 영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메이 총리가 이제는 총선 전까지 어떤 TV 토론에도 참석하지 않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선거일(6월 8일)은 5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유권자들은 누구를 왜 지지해야 할 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게다가 영국과의 브렉시트 협상을 벼르고 있는 유럽연합과 치열한 한 판 싸움도 벌여야 한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영국을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갈 지 각 당의 지도자들이 자웅을 겨뤄야 할 판에 집권 보수당 대표가 TV 심판대에 서지 않겠다니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테리사 메이 총리가 6월 8일에 조기 총선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4월 18일) 그동안 메이 총리는 수차례 ‘조기 총선은 없다’고 밝혀 왔던 만큼 한 영국 언론은 ‘메이 총리가 정치권에 폭탄을 터뜨렸다’고 평가했다.
메이 총리가 밝힌 TV 토론 불참 이유는 간단하다. "정치인은 거리로 나가야 한다. 총리로서 국회의원으로서 나는 내 지역구의 유권자를 거리에서 또는 집으로 찾아가 만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TV 토론보다는 유권자들을 직접 만나겠다는 거다. 집권 보수당도 메이 총리를 옹호했다.

"이번 선거는 테리사 메이와 보수당의 강력하고 안정된 지도자를 뽑을 것이냐 아니면 유약하고 불안정한 노동당 연립 정부를 뽑을 것이냐의 선택이다. 선택의 기준이 명확한 데 총리가 토론회에 나갈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말했다. 보수당이냐 노동당이냐 둘 중 하나의 선택인데 굳이 TV 토론에 나가 다른 당 지도자들과 말싸움을 벌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2015년 영국 총선에 앞서 열린 각당 대표들의 BBC토론회. 90분 정도 진행된 스탠딩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피곤한지 다리를 들고 있다.
영국의 주요 언론들은 당연히 비판적이다. "유권자들은 정치 지도자가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 갈지 알고 싶어한다.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TV 토론인데 메이 총리는 그 기회를 스스로 버리려 한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 2015년 영국 총선에서 유권자의 38%가 TV 토론의 영향을 받았다"며 메이 총리를 설득하기도 했다.

야당들의 목소리는 더욱 격앙됐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TV 토론이 필요하다. 영국 국민은 TV 토론을 볼 권리가 있다"고 비판했다. 또 "총리는 무엇이 겁나서 토론회를 거부하냐"며 "정 안나오겠다면 메이 총리의 공간을 비워 놓고 우리끼리 토론하자. 우리는 해야 겠다"고 한 발 더 나아갔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캐머런 총리의 자리를 승계한 메이 총리는 화려한 패션 감각을 선보이며 언론에 자주 노출됐다. 그러나 TV 토론회는 불참을 선언했다.
방송사들이 총리 자리를 비워 놓은 토론회를 준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총리실 측이 움직였다. "총리가 방송에 출연할 수 있다. 다만 사회자와의 질의응답 형식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야당 지도자들과의 토론은 거부했다. 총리실 측은 "1대 1 토론이든 뭐든 야당 대표와의 토론은 하지 않겠다는 총리의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왼쪽이 밀리밴드 전노동당 대표, 오른쪽이 캐머런 전 보수당 대표. 노동당은 2015년 총선을 앞두고 1대 1 맞짱 토론을 제안했지만 보수당이 거부해 무산됐다.
보수당 대표이자 총리가 선거나 국민투표를 앞두고 상대 지도자와 맞짱 토론을 하지 않으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두고 잔류 측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탈퇴 측의 마이클 고브 전 법무장관의 1대1 맞짱 토론 얘기가 나왔지만 무산됐다.

양측은 다른 시간대의 방송 프로그램에 각각 따로 출연해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간접 토론을 벌였다. 2015년 총선에서도 1대1 맞짱 토론은 무산됐다. 다만 당시 캐머런 총리는 7명의 당 대표 토론회에는 참석했다. 당시 야당의 에드 밀리밴드 노동당 대표가 1대1 토론을 강력히 주장했지만 총리 측의 거부로 무산됐다.

보수당 대표인 메이 총리가 토론회를 거부한 것은 굳이 골치 아픈 토론회를 하지 않아도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실제 현지 여론조사 기관이 4월 20일 공개한 조사 결과를 보면 보수당 지지도와 노동당 지지도는 2배의 격차를 보이고 있다.

TV 토론을 거부했지만, 보수당의 지지도는 올라가고 있고 노동당의 지지도는 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TV 토론에 힘들게 출연해 야당들의 집중 공격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한 언론사의 인터넷 조사 결과 총리가 TV 토론을 해야 한다는 의견과 TV 토론을 거부해도 된다는 의견이 대략 반 반으로 갈렸다. 정작 유권자들은 원하지 않는데 야당과 언론사들만 TV 토론을 요구하는 모양새가 되고 있는 셈이다.

선거가 치러지기 전까지 TV 토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조기 총선은 없다"라고 수차례 얘기했던 메이 총리가 갑자기 마음을 180도 바꿔 "조기 총선을 해야한다"고 했듯이 TV 토론도 해야겠다고 말할지 모른다. 또는 보수당 절대 우위의 여론조사가 갑자기 뒤집어지거나 메이 총리가 여론조사에 대해 의심이 커졌을 경우 영국 시청자들은 각 당 대표의 열띤 TV 토론회를 볼 행운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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