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하나의 유니폼을 꿈꾼다…여자축구 평양 원정기

입력 2017.04.22 (08:21) 수정 2017.04.22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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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얼마 전 우리 여자축구 대표팀이 평양에서 경기를 펼쳐 좋은 성적을 거뒀죠?

네. 아시안컵 본선 진출권을 따낸 것도 정말 대단하지만, 27년만에 우리 축구 국가대표팀이 평양을 방문해 경기를 가진 것이라 더욱 의미가 컸습니다.

경기 결과만 간단히 전해들은 시청자들께서는 당시 현장 분위기는 어땠고 선수들은 무엇을 느꼈나 많이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

네. 그래서 <남북의창>이 우리 감독과 선수들을 직접 만나, 그 날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홍은지 리포터입니다.

<리포트>

이른 아침 인천의 한 종합운동장.

버스 한 대가 들어옵니다.

여자 프로축구 WK리그 현대제철 축구단 선수들인데요.

몸을 풀고 열심히 훈련하는 선수들.

그런데 올해 WK리그는 예년보다 늦은 지난 14일에야 개막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김은숙(현대제철 여자축구단 코치) : “평양에서 있었던 2018년 아시안컵 예선전으로 인해서 각 팀의 많은 선수들이 거기에 참여하는 관계로 예전보다는 한 달 늦게 하게 된 거로...”

특히 이 팀엔 주장 조소현을 비롯해 국가대표 선수가 아홉 명이나 속해 있는데요.

네 경기를 치르고 온 평양 원정의 여독이 채 풀리지 않았지만 선수들의 얼굴은 힘든 기색 하나 없이 밝기만 합니다.

얼마 전 평양에서 열린 2018 아시안컵 예선!

우리 여자축구팀이강호 북한을 제치고 본선 출전권을 따냈죠?

27년만에 평양에서 펼친 축구 남북대결.

그 주인공들을 함께 만나볼까요?

북한의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전망에 위기감이 고조되기 시작하더니 평양에 머무를 무렵엔 긴장이 극에 달했는데요.

이번 평양 대회에서 큰 활약을 했던 주장 조소현, 골키퍼 김정미, 미드필더 장슬기 선수.

당시 심정은 어땠을까요?

<인터뷰> 장슬기(여자축구 국가대표팀 미드필더) : “저희는 운동이나 경기에만 신경 써가지고 정치적이거나 그런 거에는 별로 크게 문제가 없었던 거 같아요.”

<인터뷰> 조소현(여자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 “솔직히 조금 무섭거나 그런 거는 살짝 있긴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까 뭐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우리 선수들, 정말 당찬 모습이죠.

선수들이 묵은 곳은 평양의 양각도 호텔.

의외로 친절했던 그곳 사람들의 모습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김정미(여자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 “기억에 남는 것은 그 호텔에 있는 북한 분들이 다 순수하시고 다들 되게 친절 하시고, 여기서 뭐 염려하고 우려했던 그런 거 전혀 없이 너무 다들 친절하시고 진짜 순수한 그런 거를 되게 느꼈고...”

하지만 경기장에 들어선 순간, 분단이라는 냉정한 현실과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북한과의 경기가 있던 지난 7일은 선수들 모두에게 잊지 못할 경험이었는데요.

5만 명에 가까운 북한 관중들이 가득 채운 경기장 한 가운데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굳은 얼굴로 지켜보던 사람들.

경기가 시작되자 이번에는 일방적인 응원전이 펼쳐졌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공을 잡기만 하면 야유가 쏟아졌습니다.

<인터뷰> 박선우(평양 동행 KBS 스포츠취재부 기자) : “제가 선수라면 정말 아, 다리가 움직이지 않을 것 같고... 발이 정말 후들후들 거리고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하지만 우리 선수들, 동요하지 않고 열심히 뛰었는데요.

경기 시작 5분 만에 그라운드에 긴장감이 감돕니다.

골키퍼 김정미 선수가 북한 선수의 페널티킥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부상을 당하자 우리 선수들이 강하게 항의하며 몸싸움이 벌어진 건데요.

<인터뷰> 김정미(여자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 “넘어져 있어 가지고 애들이 그랬는지 몰랐는데 (저를) 다치게 해서 애들끼리 신경전 벌였다고 하더라고요. 경기 끝나고 들었는데 뭔가 끝나고 나니까 더 힘이 막 나고 막 고맙고 그랬어요.”

더 힘을 내 뛰었지만, 전반 추가시간에 북한 승향심 선수에게 선제골을 내 주고 말았는데요.

하지만 우리 선수들 주눅 들지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일방적 응원에도 경기에 집중하며 차분히 공격을 계속한 끝에 후반 30분, 장슬기 선수가 오른쪽 측면을 돌파해 드디어 동점골을 뽑아냅니다!

환호하는 선수들.

하지만 그 순간 경기장은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습니다.

<인터뷰> 장슬기(여자축구 국가대표팀 미드필더) : “5만 관중이 응원을 하다가 골 넣는 소리에 갑자기 싸해지는 느낌을 받으니까 되게 좀 소름 끼쳤던 것 같아요. 이게 뭐지 싶었어요.”

결과는 1대1, 무승부.

이후 우리 대표팀이 골득실에서 북한을 앞서 본선 진출권을 따냈습니다.

<인터뷰> 조소현(여자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 “많이 잘 뛰고 피지컬(체력)도 너무 좋고 멘탈적(정신적)으로도 좋기 때문에 ‘아, 이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한 번 더 뛰면 이기고 싶기도 해요.”

여자축구 대표팀을 이끌고 평양에서 좋은 경기를 펼치고 돌아온 윤덕여 감독.

27년 전에 선수로서도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요.

그의 두 번째 평양 방문은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윤 감독이 처음 평양을 찾은 건 1990년.

남북 통일축구대회 경기를 위해서였습니다.

당시에는 선수단이 공항에 내리자마자 수천 명의 환영 인파가 맞아 주었었는데요.

이번엔 북한 측 연락관 2명만이 선수단을 맞은 썰렁한 분위기.

그럴수록 더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인터뷰> 윤덕여(여자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제가 선수 시절에 1990년도에 그때 당시에는 상당히 그 화해 모드가 조성돼 있을 그런 무렵이었었어요. 27년 만에 다시 이제 평양을 방문하게 됐었는데 저희들은 어차피 이제 경기를 하러 갔기 때문에,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우리의 경기에 집중하고...”

대표팀과 동행했던 취재 기자 역시 시종 경직된 분위기에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박선우(KBS 스포츠취재부 기자) :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가서 좀 인터뷰도 하고 싶었는데 역시 북한 측의 거절로 이루어지진 않았고요. 대중들이랑 굉장히 접촉을 최소화하려는 그런 움직임이 좀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북한 쪽에서...”

27년 만에 평양에서 열린 역사적인 남북 대결.

그 때와는 많은 부분이 달랐지만, 우리 선수들은 값진 성과와 함께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가지고 돌아왔는데요.

<인터뷰> 조소현(여자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 “같은 말을 쓸 수 있고 유일하게 (언어가) 통할 수 있는 나라니까 얘기하기도 너무 편하고... 라은심 선수라고 저희 88년생 친구인데 되게 많이 보고 싶었는데, 오기 전에 은퇴했다는 소식을 듣고 좀 너무 아쉬웠어요.”

<인터뷰> 장슬기(여자축구 국가대표팀 미드필더) : “되게 가까우면서도 먼 듯한 느낌인 나라에 가서 경기를 한다는 자체가 좀 느낌이 색달랐고... 승향심 선수라고 센터포워드 선수였는데 되게 어린데 빠르고 영리하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 한번 같이 뛰어보고 싶어요.”

남과 북이 축구로 하나 된 우정을 나눌 그 날.

같은 유니폼을 입고 관중들의 환호 속에서 운동장을 누빌 그 날을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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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하나의 유니폼을 꿈꾼다…여자축구 평양 원정기
    • 입력 2017-04-22 08:23:53
    • 수정2017-04-22 08: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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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얼마 전 우리 여자축구 대표팀이 평양에서 경기를 펼쳐 좋은 성적을 거뒀죠?

네. 아시안컵 본선 진출권을 따낸 것도 정말 대단하지만, 27년만에 우리 축구 국가대표팀이 평양을 방문해 경기를 가진 것이라 더욱 의미가 컸습니다.

경기 결과만 간단히 전해들은 시청자들께서는 당시 현장 분위기는 어땠고 선수들은 무엇을 느꼈나 많이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

네. 그래서 <남북의창>이 우리 감독과 선수들을 직접 만나, 그 날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홍은지 리포터입니다.

<리포트>

이른 아침 인천의 한 종합운동장.

버스 한 대가 들어옵니다.

여자 프로축구 WK리그 현대제철 축구단 선수들인데요.

몸을 풀고 열심히 훈련하는 선수들.

그런데 올해 WK리그는 예년보다 늦은 지난 14일에야 개막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김은숙(현대제철 여자축구단 코치) : “평양에서 있었던 2018년 아시안컵 예선전으로 인해서 각 팀의 많은 선수들이 거기에 참여하는 관계로 예전보다는 한 달 늦게 하게 된 거로...”

특히 이 팀엔 주장 조소현을 비롯해 국가대표 선수가 아홉 명이나 속해 있는데요.

네 경기를 치르고 온 평양 원정의 여독이 채 풀리지 않았지만 선수들의 얼굴은 힘든 기색 하나 없이 밝기만 합니다.

얼마 전 평양에서 열린 2018 아시안컵 예선!

우리 여자축구팀이강호 북한을 제치고 본선 출전권을 따냈죠?

27년만에 평양에서 펼친 축구 남북대결.

그 주인공들을 함께 만나볼까요?

북한의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전망에 위기감이 고조되기 시작하더니 평양에 머무를 무렵엔 긴장이 극에 달했는데요.

이번 평양 대회에서 큰 활약을 했던 주장 조소현, 골키퍼 김정미, 미드필더 장슬기 선수.

당시 심정은 어땠을까요?

<인터뷰> 장슬기(여자축구 국가대표팀 미드필더) : “저희는 운동이나 경기에만 신경 써가지고 정치적이거나 그런 거에는 별로 크게 문제가 없었던 거 같아요.”

<인터뷰> 조소현(여자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 “솔직히 조금 무섭거나 그런 거는 살짝 있긴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까 뭐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우리 선수들, 정말 당찬 모습이죠.

선수들이 묵은 곳은 평양의 양각도 호텔.

의외로 친절했던 그곳 사람들의 모습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김정미(여자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 “기억에 남는 것은 그 호텔에 있는 북한 분들이 다 순수하시고 다들 되게 친절 하시고, 여기서 뭐 염려하고 우려했던 그런 거 전혀 없이 너무 다들 친절하시고 진짜 순수한 그런 거를 되게 느꼈고...”

하지만 경기장에 들어선 순간, 분단이라는 냉정한 현실과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북한과의 경기가 있던 지난 7일은 선수들 모두에게 잊지 못할 경험이었는데요.

5만 명에 가까운 북한 관중들이 가득 채운 경기장 한 가운데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굳은 얼굴로 지켜보던 사람들.

경기가 시작되자 이번에는 일방적인 응원전이 펼쳐졌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공을 잡기만 하면 야유가 쏟아졌습니다.

<인터뷰> 박선우(평양 동행 KBS 스포츠취재부 기자) : “제가 선수라면 정말 아, 다리가 움직이지 않을 것 같고... 발이 정말 후들후들 거리고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하지만 우리 선수들, 동요하지 않고 열심히 뛰었는데요.

경기 시작 5분 만에 그라운드에 긴장감이 감돕니다.

골키퍼 김정미 선수가 북한 선수의 페널티킥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부상을 당하자 우리 선수들이 강하게 항의하며 몸싸움이 벌어진 건데요.

<인터뷰> 김정미(여자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 “넘어져 있어 가지고 애들이 그랬는지 몰랐는데 (저를) 다치게 해서 애들끼리 신경전 벌였다고 하더라고요. 경기 끝나고 들었는데 뭔가 끝나고 나니까 더 힘이 막 나고 막 고맙고 그랬어요.”

더 힘을 내 뛰었지만, 전반 추가시간에 북한 승향심 선수에게 선제골을 내 주고 말았는데요.

하지만 우리 선수들 주눅 들지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일방적 응원에도 경기에 집중하며 차분히 공격을 계속한 끝에 후반 30분, 장슬기 선수가 오른쪽 측면을 돌파해 드디어 동점골을 뽑아냅니다!

환호하는 선수들.

하지만 그 순간 경기장은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습니다.

<인터뷰> 장슬기(여자축구 국가대표팀 미드필더) : “5만 관중이 응원을 하다가 골 넣는 소리에 갑자기 싸해지는 느낌을 받으니까 되게 좀 소름 끼쳤던 것 같아요. 이게 뭐지 싶었어요.”

결과는 1대1, 무승부.

이후 우리 대표팀이 골득실에서 북한을 앞서 본선 진출권을 따냈습니다.

<인터뷰> 조소현(여자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 “많이 잘 뛰고 피지컬(체력)도 너무 좋고 멘탈적(정신적)으로도 좋기 때문에 ‘아, 이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한 번 더 뛰면 이기고 싶기도 해요.”

여자축구 대표팀을 이끌고 평양에서 좋은 경기를 펼치고 돌아온 윤덕여 감독.

27년 전에 선수로서도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요.

그의 두 번째 평양 방문은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윤 감독이 처음 평양을 찾은 건 1990년.

남북 통일축구대회 경기를 위해서였습니다.

당시에는 선수단이 공항에 내리자마자 수천 명의 환영 인파가 맞아 주었었는데요.

이번엔 북한 측 연락관 2명만이 선수단을 맞은 썰렁한 분위기.

그럴수록 더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인터뷰> 윤덕여(여자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제가 선수 시절에 1990년도에 그때 당시에는 상당히 그 화해 모드가 조성돼 있을 그런 무렵이었었어요. 27년 만에 다시 이제 평양을 방문하게 됐었는데 저희들은 어차피 이제 경기를 하러 갔기 때문에,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우리의 경기에 집중하고...”

대표팀과 동행했던 취재 기자 역시 시종 경직된 분위기에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고 합니다.

<인터뷰> 박선우(KBS 스포츠취재부 기자) :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으로 가서 좀 인터뷰도 하고 싶었는데 역시 북한 측의 거절로 이루어지진 않았고요. 대중들이랑 굉장히 접촉을 최소화하려는 그런 움직임이 좀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북한 쪽에서...”

27년 만에 평양에서 열린 역사적인 남북 대결.

그 때와는 많은 부분이 달랐지만, 우리 선수들은 값진 성과와 함께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가지고 돌아왔는데요.

<인터뷰> 조소현(여자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 “같은 말을 쓸 수 있고 유일하게 (언어가) 통할 수 있는 나라니까 얘기하기도 너무 편하고... 라은심 선수라고 저희 88년생 친구인데 되게 많이 보고 싶었는데, 오기 전에 은퇴했다는 소식을 듣고 좀 너무 아쉬웠어요.”

<인터뷰> 장슬기(여자축구 국가대표팀 미드필더) : “되게 가까우면서도 먼 듯한 느낌인 나라에 가서 경기를 한다는 자체가 좀 느낌이 색달랐고... 승향심 선수라고 센터포워드 선수였는데 되게 어린데 빠르고 영리하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 한번 같이 뛰어보고 싶어요.”

남과 북이 축구로 하나 된 우정을 나눌 그 날.

같은 유니폼을 입고 관중들의 환호 속에서 운동장을 누빌 그 날을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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