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의 부평 토굴…누가, 왜 팠나?

입력 2017.04.22 (09:01) 수정 2017.04.22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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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 함봉산 일대에는 의문의 토굴들이 있습니다. 산을 뚫고 들어간 굴입니다. 짧게는 3~4m에서 길게는 150m에 이릅니다. 아래나 위로 파지 않고 수평으로 반듯하게 팠습니다. 폭이 4~6m로 어른 서너 명이 여유 있게 다닐 수 있습니다. 높이도 3m를 넘습니다. 누가 왜 이런 굴을 팠을까요?

종유관종유관


굴속에 들어가 보면 과거의 단서가 있습니다. 굴 천장 곳곳에 빨대 모양의 돌이 매달려 있습니다. 끝 부분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지요. 광물질을 품은 물이 천장 틈으로 흘러내리다 굳은 종유관입니다. 긴 것은 70mm에 이릅니다. 종유관은 보통 1년에 1~2㎜씩 자랍니다. 굴이 만들어진 뒤 적어도 40년 이상 지난 겁니다.

화약을 터뜨리기 위해 착암기로 판 흔적화약을 터뜨리기 위해 착암기로 판 흔적


굴 벽면에는 동그랗게 뚫린 구멍이 많습니다. 착암기로 판 흔적입니다. 구멍을 판 뒤 화약을 넣고 터뜨렸던 겁니다. 굴 끝 부분에 깨진 돌들이 그대로 쌓인 곳도 있습니다. 파다가 중간에 그만둔 흔적입니다. 일부 굴은 중간에 옆으로 가지를 뻗듯이 파고들어 갔습니다.

토굴 입구토굴 입구

토굴 입구토굴 입구

마을 주민들 사이에는 토굴에 대한 이야기가 대를 이어 전해져 내려옵니다. "경술국치(1910년 한일합방) 몇 년 뒤 일본군이 조선인을 데리고 토굴을 파기 시작했다는 말을 동네 어른들에게서 들었다"고 증언하는 주민이 있습니다. 굴 형태나 착암기를 사용한 흔적 그리고 주민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일제가 만든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일제는 왜 여기에 굴을 팠을까요?


부평은 지리적으로 인천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입니다. 인천항도 가깝습니다. 군사적으로 요충지인 셈입니다. 일제는 인천과 부평 일대에 군대를 주둔시켰습니다. 부평에 조병창을 비롯해 각종 군수공장을 세웠습니다.

부평 조병창 터는 지금도 미군 기지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토굴들은 바로 이 조병창과 인접한 산에 뚫려 있습니다. 조병창에서 만든 무기를 저장하거나 굴속에 무기 공장을 만들려 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1947년 미군 캠프그란트 촬영 사진.     출처:부평구청1947년 미군 캠프그란트 촬영 사진. 출처:부평구청

일제는 한반도 일대에 많은 굴을 팠습니다. 방공호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하지만 전국 각지의 방공호 중에서 부평 토굴과 같은 형태의 굴은 없습니다. 비슷한 토굴은 일본 오사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오사카에는 일본 육군 조병창이 있었습니다. 토굴의 형태나 규모가 부평과 유사합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은 본토 공습에 대비해서 중요 군수 시설을 지하화하는 방안을 추진했습니다. 산기슭에 횡혈식 토굴을 팠던 겁니다. 오사카 조병창과 마찬가지로 부평 조병창 옆 굴도 그런 용도로 팠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그런 용도를 입증할 만한 문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새우젓을 저장하던 토굴새우젓을 저장하던 토굴

토사로 묻혀가는 토굴토사로 묻혀가는 토굴

일부 토굴은 40년 전부터 새우젓을 숙성, 저장하는 창고로 이용됐습니다. 일 년 내내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굴은 새우젓 숙성에 적격이었던 겁니다. 버섯을 재배하거나 개인용 창고로 이용된 곳도 있습니다. 주민들의 여름철 피서지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일부 토굴들은 방치되거나 각종 개발로 사라져 갔습니다. 한때 토굴이 있었다는 증언이나 사진이 남아 있을 뿐, 흔적을 찾기 어려운 곳도 여럿입니다. 지난해 처음으로 부평문화원이 토굴에 대한 일제 조사를 실시해 24개의 굴을 찾아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굴이 발견될 수도 있습니다.


부평문화원은 토굴을 역사문화 탐방 장소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학생과 주민 등을 상대로 현장 답사와 함께 토굴과 조병창 등의 내력을 알리는 과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아픔을 돌아보고 미래를 생각하는 역사 체험의 장으로 만든다는 겁니다. 방치된 채 잊혀 갔던 부평 토굴, 어두운 역사의 흔적도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자료 제공: 부평 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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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문의 부평 토굴…누가, 왜 팠나?
    • 입력 2017-04-22 09:01:45
    • 수정2017-04-22 12:21:42
    취재K
부평 함봉산 일대에는 의문의 토굴들이 있습니다. 산을 뚫고 들어간 굴입니다. 짧게는 3~4m에서 길게는 150m에 이릅니다. 아래나 위로 파지 않고 수평으로 반듯하게 팠습니다. 폭이 4~6m로 어른 서너 명이 여유 있게 다닐 수 있습니다. 높이도 3m를 넘습니다. 누가 왜 이런 굴을 팠을까요? 종유관 굴속에 들어가 보면 과거의 단서가 있습니다. 굴 천장 곳곳에 빨대 모양의 돌이 매달려 있습니다. 끝 부분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지요. 광물질을 품은 물이 천장 틈으로 흘러내리다 굳은 종유관입니다. 긴 것은 70mm에 이릅니다. 종유관은 보통 1년에 1~2㎜씩 자랍니다. 굴이 만들어진 뒤 적어도 40년 이상 지난 겁니다. 화약을 터뜨리기 위해 착암기로 판 흔적 굴 벽면에는 동그랗게 뚫린 구멍이 많습니다. 착암기로 판 흔적입니다. 구멍을 판 뒤 화약을 넣고 터뜨렸던 겁니다. 굴 끝 부분에 깨진 돌들이 그대로 쌓인 곳도 있습니다. 파다가 중간에 그만둔 흔적입니다. 일부 굴은 중간에 옆으로 가지를 뻗듯이 파고들어 갔습니다. 토굴 입구 토굴 입구 마을 주민들 사이에는 토굴에 대한 이야기가 대를 이어 전해져 내려옵니다. "경술국치(1910년 한일합방) 몇 년 뒤 일본군이 조선인을 데리고 토굴을 파기 시작했다는 말을 동네 어른들에게서 들었다"고 증언하는 주민이 있습니다. 굴 형태나 착암기를 사용한 흔적 그리고 주민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일제가 만든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일제는 왜 여기에 굴을 팠을까요? 부평은 지리적으로 인천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입니다. 인천항도 가깝습니다. 군사적으로 요충지인 셈입니다. 일제는 인천과 부평 일대에 군대를 주둔시켰습니다. 부평에 조병창을 비롯해 각종 군수공장을 세웠습니다. 부평 조병창 터는 지금도 미군 기지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토굴들은 바로 이 조병창과 인접한 산에 뚫려 있습니다. 조병창에서 만든 무기를 저장하거나 굴속에 무기 공장을 만들려 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1947년 미군 캠프그란트 촬영 사진.     출처:부평구청 일제는 한반도 일대에 많은 굴을 팠습니다. 방공호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하지만 전국 각지의 방공호 중에서 부평 토굴과 같은 형태의 굴은 없습니다. 비슷한 토굴은 일본 오사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오사카에는 일본 육군 조병창이 있었습니다. 토굴의 형태나 규모가 부평과 유사합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은 본토 공습에 대비해서 중요 군수 시설을 지하화하는 방안을 추진했습니다. 산기슭에 횡혈식 토굴을 팠던 겁니다. 오사카 조병창과 마찬가지로 부평 조병창 옆 굴도 그런 용도로 팠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그런 용도를 입증할 만한 문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새우젓을 저장하던 토굴 토사로 묻혀가는 토굴 일부 토굴은 40년 전부터 새우젓을 숙성, 저장하는 창고로 이용됐습니다. 일 년 내내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굴은 새우젓 숙성에 적격이었던 겁니다. 버섯을 재배하거나 개인용 창고로 이용된 곳도 있습니다. 주민들의 여름철 피서지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일부 토굴들은 방치되거나 각종 개발로 사라져 갔습니다. 한때 토굴이 있었다는 증언이나 사진이 남아 있을 뿐, 흔적을 찾기 어려운 곳도 여럿입니다. 지난해 처음으로 부평문화원이 토굴에 대한 일제 조사를 실시해 24개의 굴을 찾아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굴이 발견될 수도 있습니다. 부평문화원은 토굴을 역사문화 탐방 장소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학생과 주민 등을 상대로 현장 답사와 함께 토굴과 조병창 등의 내력을 알리는 과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아픔을 돌아보고 미래를 생각하는 역사 체험의 장으로 만든다는 겁니다. 방치된 채 잊혀 갔던 부평 토굴, 어두운 역사의 흔적도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자료 제공: 부평 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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