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EC-121격추사건과 선제타격론

입력 2017.04.24 (18:08) 수정 2017.06.04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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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윌슨센터가 북한의 과거 군사도발과 관련된 두건의 소련 외교문서를 발굴해 최근 공개했다. 이 문서들을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밴 잭슨((Van Jackson) 아태안보연구센터 교수가 분석해 윌슨센터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소련 대사 수다리코브와 당시 북한 외무성 부상 허담, 외무상 박성철이 나눈 극비대화가 소개된다. 잭슨 교수는 '과거 사례지만 미국의 무력 대응에 대해 북한이 어떻게 대응했는 지를 잘 보여준다'며 미국 일각에서 제기되는 선제공격론 등 상호 무력 대결이 불러올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다음은 잭슨 교수의 기고문이다.


{ 1969년 4월 15일, 북한은 미군 정찰 항공기 EC-121을 공격해 해상에 추락시켰다. 이 사건은 북-미 관계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탑승한 승무원 전원이 사망한 이 사건은 6·25 전쟁 이후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감행한 가장 공격적인 행위였다. 기록이 잘 되어있는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요소들이 불확실하다. 의도적인 공격 이었는가, 아니면 실수였는가? 이례적인 일이었는가 아니면 북한의 도식화된 폭력행위의 일부였는가? 그리고 목적이 주로 전술적 이었는가(영공 방위) 아니면 전략적 이었는가 (미국 혹은 중국과 러시아의 정책 변동 강요)?

역사학자들은 지금까지 이러한 의문들을 한번씩은 사실로 상정했었다. 번드 쉐이퍼는 2004년에 “더욱 많은 증거를 발굴하지 않는 이상, 평양이 (EC-121 격추에 대해) 무슨 근거를 갖고 행동했는 지는 불명확하다”고 했다. 현재도 진전은 없다.

오늘날의 국가안보 아젠다로 북한의 “승전론”(theory of victory)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는 북한이 적을 저지하거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거나, 그리고 위기 상황 확대를 제어하는 데에 있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을 대략적으로 정의하는 용어다. 왜냐하면 북한이 그저 살아남기 만을 희망한다고 해도 지역안정과 전쟁방지를 위해서는 북한 지도자들이 ‘군사적 신호’(military signaling)과 ‘폭력 외교’(토마스 셸링의 말을 따오자면)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북한이 국소적, 수비적 목표들을(minimalist, defensive goals) 갖고있다 해도 - 이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 최고의 방어는 훌륭한 공격이라고 믿고 있을 수도 있다. 또한 북한이 외교적 대안을 선호한다고 해도, 미국의 실패한 베트남 폭격 때처럼 폭력이 외교적 전략을 동반했을 때 유용하다고 생각할 수 도 있다.

소련 관련 기록에서 새로 공개된 두개의 문서를 보면 EC-121 공격에 대해서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 북한의 '승전론'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두 문서 모두 EC-121 공격 다음날인 1969년 4월 16일 북한과 소련 사이의 면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첫번째 문서에는 허담 북한 외무성 부상(副相)과 수다리코브(Sudarikov) 북한주재 소련대사가 등장한다. 두번째에는 북한 내각 부수상 겸 외무상 박성철과 수다리코브 대사가 등장한다.

두 문서는 미국을 상대하는데에 있어 북한의 '승전론'을 직접적으로 다룬다. 허담은 김일성이 자주 반복했던 말인 북한은 “보복은 보복으로, 총력전은 총력전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EC-121 격추의 포괄적 목적은 푸에블로 호 납치사건과 비슷하다고 함축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그들은(미국은) 푸에블로 호 사건으로부터 교훈을 못 얻었다.” 푸에블로 호 납치는 근본적으로 정치적 목적을 가진 군사적 행위였다.

허담과의 만남후 박성철을 만났을 때 소련 대사는 더욱더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박성철 또한 푸에블로 호 사건과 비교하며 “미국이 그때 싸우기로 결정했다면 우리도 싸웠을 것이다”고 말했다. 더나아가 “우리는 38선에서 미국과 거의 매일 총격전을(firefights) 한다. 그들이 쏘면 우리도 쏜다… 하지만 이로인해 특별한 분쟁이 일어나진 않았다”고 말했다.

박성철은 미국에 대한 폭력 행위의 위험성을 북한이 인식하고 있는지 물어보자, “미국 전투기를 격추한 적이 있고 미래에도 비슷한 사건이 가능하다… 미국이 우리가 팔짱을 끼고 앉아만 있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고 대답했다.

“침입자가 우리들의 영역을 침범할 때 팔짱을 끼고 앉아 있으면 다음날 전투기 두대가 나타날 것이고 그다음엔 네대 , 다섯대, 등… 전쟁 위험을 증가시킬 것이다. 하지만 단호하게 대응을 하면 전쟁이 터지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미국이 맞선 상대를 약한 적으로 이해할 때 바로 전쟁을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상대를 강인한 적수로 볼 때는 전쟁의 시작이 지연될 것이다."

이러한 진술은 힘, 제지력, 그리고 도발성에 대한 북한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박성철은 보복의 실패는 미래 공격을 낳는다는 이유를 배경으로 공격 당했을 때는 반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신조를 보였다. 그가 EC-121 격추와 같은 작은 공격이 일반적으로 전쟁을 막는다고 말한 것은 소규모의 폭력 행위가 일반적으로 전쟁 억지력을 성립시킨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미국이 침범하지 않는 ‘진짜’ 이유라는 것이다. 그는, 허담과 마찬가지로, 전에 있었던 비슷한 공격들이 미국의 보복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것과 같이 EC-121 격추 또한 그러리라 믿었다. 박성철과 허담은 미국이 그전 해에 있었던 푸에블로 위기를 대처한 방법을 보고 보복을 꺼려한다는 추론을 끌어냈음을 문서들은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이 문서들은 작은 규모의 공격과 도발은 큰 성과가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또한, 북한이 공격당한다면 반사적으로 보복하여 갈등 나선형을 일으킬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북한이 대응하지 않더라도 전쟁이 발생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문서들로부터 추측해보면, 북한의 전승론은 공격적 행위를 높이 사며 편판을 중시한다. 또한, 북한은 미국의 과거행위를 보고 추론을 내리며 미국 역시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이 외교문서들은 사학자들이 오랜시간 토론해왔던 몇가지 점을 확인해준다. 첫째, 이 시기에 소련은 북한의 외교 정책에 대한 통제력이 거의 없었지만 몇번의 경우에는 전쟁 재발을 우려해 북한을 제지하려고 시도했다. 소련 대사 수다리코브의 전문에 따르면, 소련은 북한 공격 직후 미국 군사 자산이 동원되는 것을 보고 “보복 공격 개시 가능성”을 우려했고 “직접적인 군사 공격 또한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련의 간청은 무시 당했다. 허담과 박성철은 북한의 행동은 미국이 취하는 행동의 상호 작용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발언은 북한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북한의 강대국 후원자들 말고 북한 자체를 직접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것을 확인해줬다.

두번째, 나중에 공개된 증거와 달리, 북한은 EC-121를 격추한 이유가 북한 영공 침범이라고 주장했다. 위협에 대응해 억지력을 선사한 공격이라고 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공격 당시에 EC-121은 북한 해안에서 60 km 떨어져 있었다 (영공의 범위는 20 km 에 불과 하다). 하지만 이 외교문서들은 북한의 주장과 현실의 격차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북한의 영공에 대한 정의가 더욱 포괄적이었던 것일 수도 있다. 미국은 국제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북한은 취지나 의향을 근거로 해석한 법적 주장을 펼쳤을 수도 있다. 또는 수사적 기교일 수도 있다. 방어적 공격이라고 해야 외부 청중에게 더욱 정당화될 수 있다.

셋째, 이 문서들은 세이모어 허쉬가 예전에 크게 보도했던 이 사건이 단지 실수였다는 주장을(narrative) 깎아 내린다 (이 이론은 익명을 쓴 국가 안보국 공무원의 증명할 수 없는 주장에 근거한 것이다). 허담이나 박성철의 EC-121 공격에 대한 설명 중 그 사건을 고의적 행위 외에 다르게 나타낸 것은 없다.

그렇다고 이 사건이 확실한 전략적 목적이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량 장교나 불량 분대가 진짜 원인이라는 말을 믿지 못하게 한다. 허담은 직설적으로 말했다: “우리 정부는 우리의 주권을 감히 침해하는 자는 강력하게 멈춰 세울 것이라고 여러번 경고했다. 이건 공언이 아니다.” 김일성이 직접 지시한 공격인 지는 대답이 불분명한 별개의 문제이지만 북한 관리들은 사건 다음날 이 일이 의도적이며 사전의 지침와 일관성 있다고 표현했다.

이 소련시대 문서들은 결정적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북-미 관계의 중요한 사건에 대한 보다 선명한 그림을 제공한다. 이 문서들은 말한다. 북한은 군사력이 정치적 가치를 갖고 있으며, 위기고조(escalation)이 위기진정(de-escalation)을 위한 수단이며 그리고 도발이 미국의 침략을 억제시킬 수 있고, 공격당했을 때는 보복하는 것이 신뢰성 있는 억지전략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정책 입안자들이 이런 매우 공격적이고 평판을 중시하는 북한의‘승전론’에 주의하지 않으면 우발 전쟁을 야기할 수 있다. }

디지털뉴스 외신 번역 so2457@columbi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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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의 EC-121격추사건과 선제타격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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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7-06-04 22:01:29
    국제
미국 윌슨센터가 북한의 과거 군사도발과 관련된 두건의 소련 외교문서를 발굴해 최근 공개했다. 이 문서들을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밴 잭슨((Van Jackson) 아태안보연구센터 교수가 분석해 윌슨센터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소련 대사 수다리코브와 당시 북한 외무성 부상 허담, 외무상 박성철이 나눈 극비대화가 소개된다. 잭슨 교수는 '과거 사례지만 미국의 무력 대응에 대해 북한이 어떻게 대응했는 지를 잘 보여준다'며 미국 일각에서 제기되는 선제공격론 등 상호 무력 대결이 불러올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다음은 잭슨 교수의 기고문이다.


{ 1969년 4월 15일, 북한은 미군 정찰 항공기 EC-121을 공격해 해상에 추락시켰다. 이 사건은 북-미 관계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탑승한 승무원 전원이 사망한 이 사건은 6·25 전쟁 이후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감행한 가장 공격적인 행위였다. 기록이 잘 되어있는 사건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요소들이 불확실하다. 의도적인 공격 이었는가, 아니면 실수였는가? 이례적인 일이었는가 아니면 북한의 도식화된 폭력행위의 일부였는가? 그리고 목적이 주로 전술적 이었는가(영공 방위) 아니면 전략적 이었는가 (미국 혹은 중국과 러시아의 정책 변동 강요)?

역사학자들은 지금까지 이러한 의문들을 한번씩은 사실로 상정했었다. 번드 쉐이퍼는 2004년에 “더욱 많은 증거를 발굴하지 않는 이상, 평양이 (EC-121 격추에 대해) 무슨 근거를 갖고 행동했는 지는 불명확하다”고 했다. 현재도 진전은 없다.

오늘날의 국가안보 아젠다로 북한의 “승전론”(theory of victory)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는 북한이 적을 저지하거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거나, 그리고 위기 상황 확대를 제어하는 데에 있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을 대략적으로 정의하는 용어다. 왜냐하면 북한이 그저 살아남기 만을 희망한다고 해도 지역안정과 전쟁방지를 위해서는 북한 지도자들이 ‘군사적 신호’(military signaling)과 ‘폭력 외교’(토마스 셸링의 말을 따오자면)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북한이 국소적, 수비적 목표들을(minimalist, defensive goals) 갖고있다 해도 - 이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 최고의 방어는 훌륭한 공격이라고 믿고 있을 수도 있다. 또한 북한이 외교적 대안을 선호한다고 해도, 미국의 실패한 베트남 폭격 때처럼 폭력이 외교적 전략을 동반했을 때 유용하다고 생각할 수 도 있다.

소련 관련 기록에서 새로 공개된 두개의 문서를 보면 EC-121 공격에 대해서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 북한의 '승전론'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두 문서 모두 EC-121 공격 다음날인 1969년 4월 16일 북한과 소련 사이의 면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첫번째 문서에는 허담 북한 외무성 부상(副相)과 수다리코브(Sudarikov) 북한주재 소련대사가 등장한다. 두번째에는 북한 내각 부수상 겸 외무상 박성철과 수다리코브 대사가 등장한다.

두 문서는 미국을 상대하는데에 있어 북한의 '승전론'을 직접적으로 다룬다. 허담은 김일성이 자주 반복했던 말인 북한은 “보복은 보복으로, 총력전은 총력전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EC-121 격추의 포괄적 목적은 푸에블로 호 납치사건과 비슷하다고 함축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그들은(미국은) 푸에블로 호 사건으로부터 교훈을 못 얻었다.” 푸에블로 호 납치는 근본적으로 정치적 목적을 가진 군사적 행위였다.

허담과의 만남후 박성철을 만났을 때 소련 대사는 더욱더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박성철 또한 푸에블로 호 사건과 비교하며 “미국이 그때 싸우기로 결정했다면 우리도 싸웠을 것이다”고 말했다. 더나아가 “우리는 38선에서 미국과 거의 매일 총격전을(firefights) 한다. 그들이 쏘면 우리도 쏜다… 하지만 이로인해 특별한 분쟁이 일어나진 않았다”고 말했다.

박성철은 미국에 대한 폭력 행위의 위험성을 북한이 인식하고 있는지 물어보자, “미국 전투기를 격추한 적이 있고 미래에도 비슷한 사건이 가능하다… 미국이 우리가 팔짱을 끼고 앉아만 있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고 대답했다.

“침입자가 우리들의 영역을 침범할 때 팔짱을 끼고 앉아 있으면 다음날 전투기 두대가 나타날 것이고 그다음엔 네대 , 다섯대, 등… 전쟁 위험을 증가시킬 것이다. 하지만 단호하게 대응을 하면 전쟁이 터지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미국이 맞선 상대를 약한 적으로 이해할 때 바로 전쟁을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상대를 강인한 적수로 볼 때는 전쟁의 시작이 지연될 것이다."

이러한 진술은 힘, 제지력, 그리고 도발성에 대한 북한의 생각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박성철은 보복의 실패는 미래 공격을 낳는다는 이유를 배경으로 공격 당했을 때는 반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신조를 보였다. 그가 EC-121 격추와 같은 작은 공격이 일반적으로 전쟁을 막는다고 말한 것은 소규모의 폭력 행위가 일반적으로 전쟁 억지력을 성립시킨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미국이 침범하지 않는 ‘진짜’ 이유라는 것이다. 그는, 허담과 마찬가지로, 전에 있었던 비슷한 공격들이 미국의 보복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것과 같이 EC-121 격추 또한 그러리라 믿었다. 박성철과 허담은 미국이 그전 해에 있었던 푸에블로 위기를 대처한 방법을 보고 보복을 꺼려한다는 추론을 끌어냈음을 문서들은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이 문서들은 작은 규모의 공격과 도발은 큰 성과가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또한, 북한이 공격당한다면 반사적으로 보복하여 갈등 나선형을 일으킬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북한이 대응하지 않더라도 전쟁이 발생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문서들로부터 추측해보면, 북한의 전승론은 공격적 행위를 높이 사며 편판을 중시한다. 또한, 북한은 미국의 과거행위를 보고 추론을 내리며 미국 역시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이 외교문서들은 사학자들이 오랜시간 토론해왔던 몇가지 점을 확인해준다. 첫째, 이 시기에 소련은 북한의 외교 정책에 대한 통제력이 거의 없었지만 몇번의 경우에는 전쟁 재발을 우려해 북한을 제지하려고 시도했다. 소련 대사 수다리코브의 전문에 따르면, 소련은 북한 공격 직후 미국 군사 자산이 동원되는 것을 보고 “보복 공격 개시 가능성”을 우려했고 “직접적인 군사 공격 또한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련의 간청은 무시 당했다. 허담과 박성철은 북한의 행동은 미국이 취하는 행동의 상호 작용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발언은 북한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북한의 강대국 후원자들 말고 북한 자체를 직접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것을 확인해줬다.

두번째, 나중에 공개된 증거와 달리, 북한은 EC-121를 격추한 이유가 북한 영공 침범이라고 주장했다. 위협에 대응해 억지력을 선사한 공격이라고 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공격 당시에 EC-121은 북한 해안에서 60 km 떨어져 있었다 (영공의 범위는 20 km 에 불과 하다). 하지만 이 외교문서들은 북한의 주장과 현실의 격차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북한의 영공에 대한 정의가 더욱 포괄적이었던 것일 수도 있다. 미국은 국제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북한은 취지나 의향을 근거로 해석한 법적 주장을 펼쳤을 수도 있다. 또는 수사적 기교일 수도 있다. 방어적 공격이라고 해야 외부 청중에게 더욱 정당화될 수 있다.

셋째, 이 문서들은 세이모어 허쉬가 예전에 크게 보도했던 이 사건이 단지 실수였다는 주장을(narrative) 깎아 내린다 (이 이론은 익명을 쓴 국가 안보국 공무원의 증명할 수 없는 주장에 근거한 것이다). 허담이나 박성철의 EC-121 공격에 대한 설명 중 그 사건을 고의적 행위 외에 다르게 나타낸 것은 없다.

그렇다고 이 사건이 확실한 전략적 목적이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량 장교나 불량 분대가 진짜 원인이라는 말을 믿지 못하게 한다. 허담은 직설적으로 말했다: “우리 정부는 우리의 주권을 감히 침해하는 자는 강력하게 멈춰 세울 것이라고 여러번 경고했다. 이건 공언이 아니다.” 김일성이 직접 지시한 공격인 지는 대답이 불분명한 별개의 문제이지만 북한 관리들은 사건 다음날 이 일이 의도적이며 사전의 지침와 일관성 있다고 표현했다.

이 소련시대 문서들은 결정적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북-미 관계의 중요한 사건에 대한 보다 선명한 그림을 제공한다. 이 문서들은 말한다. 북한은 군사력이 정치적 가치를 갖고 있으며, 위기고조(escalation)이 위기진정(de-escalation)을 위한 수단이며 그리고 도발이 미국의 침략을 억제시킬 수 있고, 공격당했을 때는 보복하는 것이 신뢰성 있는 억지전략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정책 입안자들이 이런 매우 공격적이고 평판을 중시하는 북한의‘승전론’에 주의하지 않으면 우발 전쟁을 야기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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