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합격해도 임용 안 될 수도”…취준생의 눈물

입력 2017.04.25 (08:42) 수정 2017.04.25 (08:59)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합격해도 실업자가 될 수도 있다?

"최종합격자로 결정된 경우에도 공사의 정원감축 등 경영환경 변화 시 임용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한 공기업의 올 상반기 채용 공고에 나와 있는 문구다. 취업준비생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오싹한' 한 줄이다. 게다가 공고에 명시돼 있기 때문에 실제로 임용이 안 돼도 합격자 입장에서는 할 말이 없는 셈이다. 채용 담당 부서 관계자에게 왜 이런 문구를 공고에 넣었는지 묻자 별일 아니라는 듯 '통상적인 문구'라고 설명했다. "갑자기 공사가 민영화될 수도 있고, 정원이 감축될 수도 있다. 그런 환경 변화를 말하는 것"이라며, 실제로 채용이 되지 않은 경우는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원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해당 공기업 지원자들은 "'회사의 사정에 따라서'라고 쓰여있으니까 저희가 할 말이 없잖아요. 진짜 운 안좋으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 싶죠.", "사람을 뽑는 건 저쪽이고 지원자 입장에서는 모든 걸 보여줘야 하니까 '을'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워낙 절박하다 보니까 일단은 지원하고 봐야죠."

A 공기업 채용 공고A 공기업 채용 공고


최종합격하면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알려준다고?

지난 2월 채용공고를 낸 한 공공기관은 채용 공고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지 않고 모집하며 최종합격시 고용 형태를 통보한다'고 명시했다가 비판이 일자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눠 모집하는 것으로 공고를 바꿨다.

한 해운회사는 공채로 신입 사원들을 뽑은 뒤에야 "사실 우리는 인턴을 뽑은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이 회사에 입사한 A씨는 "채용 공고에는 정규직 사원들을 뽑는다고 했으면서, 합격한 다음에 '사실은 인턴직'이라고 얘기하는 게 어디 있나"라고 비판했다.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이라는 요즘 취준생들을 서럽게 하는 이른바 '꼼수 채용'을 벌이는 회사는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느그 아버지 뭐 하시노?" 취준생 울리는 입사지원서

취준생을 서럽게 하는 건 입사지원서도 마찬가지다. KBS 취재진은 서류전형이 진행중인 50개 기업의 입사지원서를 조사했다. 그 결과 50개 기업 중 절반에 달하는 21개 기업이 부모님 직업과 출신학교 등을 물었다. 4곳 중 1곳은 체중과 키를 물었다.

한 유명 제약회사는 초등학교 전학년의 생활기록부를 요구했다. 집이 '자가'인지, '전·월세'인지를 묻는 황당한 회사도 있었다. 취준생들은 "쓰라고 하면 쓸 수밖에 없다. 쓰고 싶지 않아도 당장 내가 불이익을 받을까봐 어쩔 수 없이 쓴다."고 말한다. 이런 개인정보가 도대체 어디에 사용되는지, 일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기업의 이런 이해하기 힘든 정보 수집은 계속되고 있다.



10년째 있으나 마나한 '표준이력서'

고용노동부는 지난 2007년부터 '표준이력서'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이 표준이력서에는 사진 부착란도, 성별과 나이 기재란도 없다. 출신지역이나 가족사항, 신체조건을 기록하는 칸도 당연히 없다. 하지만 이 표준이력서를 사용하고 있는 기업은 거의 없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는 공공기관과 기업의 입사지원서에 포함된 인권 차별적 요소(나이, 학력, 출신학교, 신체조건 등)가 지원서 하나당 평균 4개 이상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경총 관계자는 "반드시 외모를 보고 뽑기 위해서 사진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사진을 봐야 지원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2, 3차 면접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을 기업이 채용 서류에 요구하는 건 지금 우리 사회에 맞지 않다"고 말한다.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에서는 입사지원서에 사진 등을 거의 요구하지 않고, 합격하고 나서 제출하게 한다.



갈 길 먼 '채용 절차 공정화'

3년 전 취업준비생들이 요구하면 기업이 제출 서류를 돌려주도록 한 '채용 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처음 제정됐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입사지원서에 사진과 출신지역, 가족사항, 신체조건 등 차별적인 요소를 기재하지 못하게 하고, 구직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하는 기업에게는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한 개정안도 발의됐지만 고용노동부와 재계의 반대로 국회에 계류중이다.

기업들이 취업준비생들을 배려해주길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한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아들과 딸인 취업준비생들, 가뜩이나 힘든 이들의 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힘들지 않게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노력은 해야하지 않을까? 채용 갑질'도 계속되고 있다.

[연관 기사] 합격했는데 임용 취소?…‘취준생’ 설움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합격해도 임용 안 될 수도”…취준생의 눈물
    • 입력 2017-04-25 08:42:51
    • 수정2017-04-25 08:59:26
    취재후·사건후


합격해도 실업자가 될 수도 있다?

"최종합격자로 결정된 경우에도 공사의 정원감축 등 경영환경 변화 시 임용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한 공기업의 올 상반기 채용 공고에 나와 있는 문구다. 취업준비생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오싹한' 한 줄이다. 게다가 공고에 명시돼 있기 때문에 실제로 임용이 안 돼도 합격자 입장에서는 할 말이 없는 셈이다. 채용 담당 부서 관계자에게 왜 이런 문구를 공고에 넣었는지 묻자 별일 아니라는 듯 '통상적인 문구'라고 설명했다. "갑자기 공사가 민영화될 수도 있고, 정원이 감축될 수도 있다. 그런 환경 변화를 말하는 것"이라며, 실제로 채용이 되지 않은 경우는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원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해당 공기업 지원자들은 "'회사의 사정에 따라서'라고 쓰여있으니까 저희가 할 말이 없잖아요. 진짜 운 안좋으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 싶죠.", "사람을 뽑는 건 저쪽이고 지원자 입장에서는 모든 걸 보여줘야 하니까 '을'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워낙 절박하다 보니까 일단은 지원하고 봐야죠."

A 공기업 채용 공고

최종합격하면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알려준다고?

지난 2월 채용공고를 낸 한 공공기관은 채용 공고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지 않고 모집하며 최종합격시 고용 형태를 통보한다'고 명시했다가 비판이 일자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눠 모집하는 것으로 공고를 바꿨다.

한 해운회사는 공채로 신입 사원들을 뽑은 뒤에야 "사실 우리는 인턴을 뽑은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이 회사에 입사한 A씨는 "채용 공고에는 정규직 사원들을 뽑는다고 했으면서, 합격한 다음에 '사실은 인턴직'이라고 얘기하는 게 어디 있나"라고 비판했다.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이라는 요즘 취준생들을 서럽게 하는 이른바 '꼼수 채용'을 벌이는 회사는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느그 아버지 뭐 하시노?" 취준생 울리는 입사지원서

취준생을 서럽게 하는 건 입사지원서도 마찬가지다. KBS 취재진은 서류전형이 진행중인 50개 기업의 입사지원서를 조사했다. 그 결과 50개 기업 중 절반에 달하는 21개 기업이 부모님 직업과 출신학교 등을 물었다. 4곳 중 1곳은 체중과 키를 물었다.

한 유명 제약회사는 초등학교 전학년의 생활기록부를 요구했다. 집이 '자가'인지, '전·월세'인지를 묻는 황당한 회사도 있었다. 취준생들은 "쓰라고 하면 쓸 수밖에 없다. 쓰고 싶지 않아도 당장 내가 불이익을 받을까봐 어쩔 수 없이 쓴다."고 말한다. 이런 개인정보가 도대체 어디에 사용되는지, 일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기업의 이런 이해하기 힘든 정보 수집은 계속되고 있다.



10년째 있으나 마나한 '표준이력서'

고용노동부는 지난 2007년부터 '표준이력서'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이 표준이력서에는 사진 부착란도, 성별과 나이 기재란도 없다. 출신지역이나 가족사항, 신체조건을 기록하는 칸도 당연히 없다. 하지만 이 표준이력서를 사용하고 있는 기업은 거의 없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는 공공기관과 기업의 입사지원서에 포함된 인권 차별적 요소(나이, 학력, 출신학교, 신체조건 등)가 지원서 하나당 평균 4개 이상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경총 관계자는 "반드시 외모를 보고 뽑기 위해서 사진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사진을 봐야 지원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2, 3차 면접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을 기업이 채용 서류에 요구하는 건 지금 우리 사회에 맞지 않다"고 말한다.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에서는 입사지원서에 사진 등을 거의 요구하지 않고, 합격하고 나서 제출하게 한다.



갈 길 먼 '채용 절차 공정화'

3년 전 취업준비생들이 요구하면 기업이 제출 서류를 돌려주도록 한 '채용 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처음 제정됐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입사지원서에 사진과 출신지역, 가족사항, 신체조건 등 차별적인 요소를 기재하지 못하게 하고, 구직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하는 기업에게는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한 개정안도 발의됐지만 고용노동부와 재계의 반대로 국회에 계류중이다.

기업들이 취업준비생들을 배려해주길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한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아들과 딸인 취업준비생들, 가뜩이나 힘든 이들의 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힘들지 않게 바꿀 수 있는 것이라면 노력은 해야하지 않을까? 채용 갑질'도 계속되고 있다.

[연관 기사] 합격했는데 임용 취소?…‘취준생’ 설움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