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日 음주 뺑소니에 ‘징역 22년’…정상 참작 없다

입력 2017.04.25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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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뺑소니 사고로 3명을 숨지게 한 30대 남성에게 징역 22년이 선고됐다. 우리나라가 아니라 일본의 대법원 판결이다. 1심 판결 내용이 3심까지 갔다. 이런저런 이유로 중간에 형량이 대폭 줄어들지도 집행유예로 풀려나지도 않았다. '심신미약'이나 '초범', '깊은 반성'과 '피해자와의 합의' 등등을 빙자한 '정상참작'도 없었다.

음주운전, 4명 사상, 그리고 뺑소니


2014년 7월 13일 오후 4시. 일본 홋카이도 서부 오타루 시의 '오타루 해수욕장' 인근 도로에서 뺑소니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레저용 차량(RV)이 30세 안팎의 여성 회사원 4명을 치고 그대로 도주했다. 회사원 하라노(29세) 씨 등 3명이 숨지고, 회사원 나카무라(30세) 씨는 경추 골절 등 중상을 입었다.

교도통신과 NHK 등 언론의 추적보도 등을 통해 재구성된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피해자들은 같은 고등학교 동창생들이었다. 모래사장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바닷가에서 놀다가 귀가하던 길이었다. 폭 5미터의 도로 옆을 걷고 있었다.


문제의 RV차량은 이들을 뒤쪽에서 덮쳤다. 정상적인 주행 차량이었다면 사고를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반적 '교통사고'라기 보다는 '사건'에 가까워 보였다. 경찰은 즉시 도주차량을 찾기 시작했다. '오타루 해수욕장'은 홋카이도에서 가장 긴 모래 해변으로 꼽힌다. 유명 관광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목격자가 없었다. 범인 추적에 난항이 예상됐다.

사건은 뜻밖에 빨리 풀렸다. 용의자가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왔다. 오후 5시쯤, 경찰은 현장 근처에서 용의자를 발견해 연행했다. 31살 가이즈 마사히데. 직업은 음식점 종업원이었다.


가이즈는 '술을 마시고 사람을 쳤다'고 시인했다. 아침부터 바닷가에서 술을 마신 뒤, 휴대전화를 만지며 운전했다고 실토했다. 가이즈는 '위험운전 치사상'과 '뺑소니'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가이즈는 당초 '과실운전 치사상'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피해자 유족을 포함해 7만 명 이상이 서명에 동참한 결과, 유죄 판결 시 형벌이 더욱 무거운 '위험운전 치사상' 혐의로 변경됐다.


재판 과정은 예상보다 길어졌다. 피고는 '술을 마시고 운전했지만, 사고 원인은 음주운전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사고는 (부주의한) 곁눈질 탓에 발생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죄는 형벌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과실운전치사상 혐의에 그친다는 논리였다.

법원의 판단은 일반적 상식에서 어긋나지 않았다. 1심 삿포로 지방법원과 2심 삿포로 고등법원은 위험운전 치사상죄를 적용한 검찰의 구형대로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피고의 주의력이 현저히 저하된 것은 술의 영향밖에 생각할 수 없다'면서 '무모하고 위험천만한 운전이었다'고 판시했다. 피고는 이에 불복해 상고했다.


지난 20일 최고재판소(대법원) 제1 소법정 재판장은 피고의 상고를 기각했다. 당초 판결대로 징역 22년 형이 확정됐다.

뺑소니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하라노(29살) 씨의 아버지는 NHK와의 인터뷰에서 '대법원의 결정에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솔직히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음주운전에 의한 사고가 조금이라도 줄어든다면 딸도 기뻐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딸과 함께 했던 생활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사고 직후보다 고통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탄식했다.

하라노 씨의 어머니는 '딸을 잃은 뒤 우리 미래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특히 '사고 직후 구급차를 부르지 않고 도움을 주지 않은 행위가 가장 용서할 수 없다'면서, '피고는 그 점을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음주 뺑소니'는 '불운한 교통사고'가 아니라 '중대한 범죄사건'이라는 점에서, 일본 법원의 판결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뺑소니 사건의 피고는 사건 초기부터 신원과 얼굴이 공개됐다. 22년의 형기를 마치고 나와도 사회의 평범한 구성원으로 복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와는 여러모로 비교되는 판결이자 사회적 관행이다.

사회의 안정을 위협하는 범죄에 대해서 일본 사회는 냉정하리만큼 철저하게 '응징'하고 있는 셈이다. 피해자 가족이 평생 짊어질 고통을 생각하면, 피고의 인권을 배려하는 것에 '아직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사회적 합의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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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日 음주 뺑소니에 ‘징역 22년’…정상 참작 없다
    • 입력 2017-04-25 09:58:17
    특파원 리포트
음주 뺑소니 사고로 3명을 숨지게 한 30대 남성에게 징역 22년이 선고됐다. 우리나라가 아니라 일본의 대법원 판결이다. 1심 판결 내용이 3심까지 갔다. 이런저런 이유로 중간에 형량이 대폭 줄어들지도 집행유예로 풀려나지도 않았다. '심신미약'이나 '초범', '깊은 반성'과 '피해자와의 합의' 등등을 빙자한 '정상참작'도 없었다.

음주운전, 4명 사상, 그리고 뺑소니


2014년 7월 13일 오후 4시. 일본 홋카이도 서부 오타루 시의 '오타루 해수욕장' 인근 도로에서 뺑소니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레저용 차량(RV)이 30세 안팎의 여성 회사원 4명을 치고 그대로 도주했다. 회사원 하라노(29세) 씨 등 3명이 숨지고, 회사원 나카무라(30세) 씨는 경추 골절 등 중상을 입었다.

교도통신과 NHK 등 언론의 추적보도 등을 통해 재구성된 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피해자들은 같은 고등학교 동창생들이었다. 모래사장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바닷가에서 놀다가 귀가하던 길이었다. 폭 5미터의 도로 옆을 걷고 있었다.


문제의 RV차량은 이들을 뒤쪽에서 덮쳤다. 정상적인 주행 차량이었다면 사고를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반적 '교통사고'라기 보다는 '사건'에 가까워 보였다. 경찰은 즉시 도주차량을 찾기 시작했다. '오타루 해수욕장'은 홋카이도에서 가장 긴 모래 해변으로 꼽힌다. 유명 관광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목격자가 없었다. 범인 추적에 난항이 예상됐다.

사건은 뜻밖에 빨리 풀렸다. 용의자가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왔다. 오후 5시쯤, 경찰은 현장 근처에서 용의자를 발견해 연행했다. 31살 가이즈 마사히데. 직업은 음식점 종업원이었다.


가이즈는 '술을 마시고 사람을 쳤다'고 시인했다. 아침부터 바닷가에서 술을 마신 뒤, 휴대전화를 만지며 운전했다고 실토했다. 가이즈는 '위험운전 치사상'과 '뺑소니'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가이즈는 당초 '과실운전 치사상'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피해자 유족을 포함해 7만 명 이상이 서명에 동참한 결과, 유죄 판결 시 형벌이 더욱 무거운 '위험운전 치사상' 혐의로 변경됐다.


재판 과정은 예상보다 길어졌다. 피고는 '술을 마시고 운전했지만, 사고 원인은 음주운전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사고는 (부주의한) 곁눈질 탓에 발생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죄는 형벌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과실운전치사상 혐의에 그친다는 논리였다.

법원의 판단은 일반적 상식에서 어긋나지 않았다. 1심 삿포로 지방법원과 2심 삿포로 고등법원은 위험운전 치사상죄를 적용한 검찰의 구형대로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피고의 주의력이 현저히 저하된 것은 술의 영향밖에 생각할 수 없다'면서 '무모하고 위험천만한 운전이었다'고 판시했다. 피고는 이에 불복해 상고했다.


지난 20일 최고재판소(대법원) 제1 소법정 재판장은 피고의 상고를 기각했다. 당초 판결대로 징역 22년 형이 확정됐다.

뺑소니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하라노(29살) 씨의 아버지는 NHK와의 인터뷰에서 '대법원의 결정에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솔직히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음주운전에 의한 사고가 조금이라도 줄어든다면 딸도 기뻐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딸과 함께 했던 생활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사고 직후보다 고통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탄식했다.

하라노 씨의 어머니는 '딸을 잃은 뒤 우리 미래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특히 '사고 직후 구급차를 부르지 않고 도움을 주지 않은 행위가 가장 용서할 수 없다'면서, '피고는 그 점을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음주 뺑소니'는 '불운한 교통사고'가 아니라 '중대한 범죄사건'이라는 점에서, 일본 법원의 판결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뺑소니 사건의 피고는 사건 초기부터 신원과 얼굴이 공개됐다. 22년의 형기를 마치고 나와도 사회의 평범한 구성원으로 복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와는 여러모로 비교되는 판결이자 사회적 관행이다.

사회의 안정을 위협하는 범죄에 대해서 일본 사회는 냉정하리만큼 철저하게 '응징'하고 있는 셈이다. 피해자 가족이 평생 짊어질 고통을 생각하면, 피고의 인권을 배려하는 것에 '아직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사회적 합의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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