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중 입시가 뭐길래…1년에 3천만 원?

입력 2017.04.25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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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부터는 하루 12시간씩 그림을 그립니다."

예술중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초등학교 6학년, 13살 어린이들의 일이다. 아침 9시에 미술학원에 가서 밤 10시까지, 밥 먹는 시간만 빼고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린다. 4시간을 한 타임으로 잡는데, 세 타임 미술 수업을 받는 셈이다.

2학기가 되어도 수업은 세 타임 기준으로 진행된다. 다시 말해, 학교 수업을 거의 듣지 않는다는 얘기다. 아예 학교에 가지 않는 학생도 있고, 등교는 하되 1교시나 2교시만 마치고 조퇴하는 학생도 있다. 이런 생활은 예중 실기시험이 치러지는 10월까지 계속된다. 초등학교 생활에서 두 달이 사라지는 것이다.

입시 미술학원 관계자는 "출결 기준은 학교마다 다르다. 보통 사립학교는 잘 빼줘서 학교에 아예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공립학교는 학교나 담임마다 상황이 다른데, 젊은 담임들은 출결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서 애를 먹는다"라고 말했다.


음악 분야도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하루 종일 연습실 안에서 피아노를 친다.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콩쿨에도 기회가 될 때마다 참여하는데, 6학년1학기 때도 콩쿨이 임박해 오면 학교 수업을 빠지고 연습을 하는 일이 다반사다.

학교 수업까지 빠지고 학원에서 입시 준비를 하는 상황, 최근에 생긴 일이 아니었다. 취재를 하며 만난 예중 졸업생들, 예중 출신 강사들은 '저도 그랬어요'라고 말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관행처럼 계속돼 왔던 문제였다.

한 예중 졸업생 부모는 "아이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실내에서 그림만 그리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경쟁자를 보면, 아이를 쉬게 할 수가 없었다. 예중 출신 피아노 강사는 초등학교 때 친구가 없다고 말했다. 하루 종일 피아노를 치느라 친구 사귈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두 달 빠져도 졸업 가능

초등학교는 수업일수가 1년에 190여 일이다. 이 가운데 3분의 2 이상, 그러니까 127일 정도만 출석일수를 채우면 졸업이나 진급하는데 법적 문제는 없다. 서울시교육청 김희영 장학사는 "학원 수강은 조퇴나 결석을 허용하는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학원 수강 때문에 결석을 하면 무단 결석으로 생활기록부에 한 줄 기재될 뿐, 다른 불이익은없다.

또 다른 원인은 예중 입시 전형에 있다. 예중 준비생들이 선호하는 '예원학교'의 경우, 2017학년도 입시 배점을 보면 실기평가 100점, 학과 면접이 6점, 출석 점수가 4점이다. '선화예중'은 실기 100점, 면점 6~10점, 출석 점수가 6~10점이다. 출석 점수에선 격차가 4점밖에 나지 않아, 학교를 가지 않고 배점이 큰 실기에 집중하는 게 입시 당락만 놓고 볼 때는 훨씬 유리한 전략이다.


예중 입시는 '돈'과의 싸움

예중 입시 역시 경제력이 '경쟁력'이다. 입시 전문 미술학원의 경우 보통 한 타임(4시간) 수강료가 5만 원 선이다. 6학년 1학기까지는 하루 6시간(오후 4시~10시) 수업을 하니까, 하루 수강료는 7만 5천 원이다. 월~금 주5일 학원에 가면 한 달 수강료는 150만 원에 이른다. 주말에 특강이 있으면 금액이 또 늘어난다.

여기에 재료비, 정물비, 식비가 추가된다. 학과 면접 준비도 해야 돼, 일요일에는 학원이나 과외 수업을 받는다. 여름방학부터는 수업 시간이 배 이상 늘어난다. 수강료도 두 배 이상이 된다. 원장 특강 명목으로 추가 금액이 붙기도 하는데, 이 경우 월 수강료는 400만 원을 넘어간다. 한 예중 준비생 학부모는 예중 입시로 1년에 3천만 원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피아노 전공은 보통 여러 '급'의 선생님에게 돌아가며 레슨을 받는다. 입시 전문 학원에서 한 번(6만 원), 대학 강사급에게 한 번(10만 원), 교수에게 한 번(최소 20만 원), 이런 식이다. 학생이 어려서 레슨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아 연습 선생님을 또 부르는데, 비용은 한 시간에 5만 원에서 8만 원 정도 된다. 대개 일주일 단위로 돌아가기 때문에, 한 달로 치면 레슨비만 보통 200만 원 정도가 든다. 여기에 연습실 비용이 추가된다. 일반 피아노 학원은 저녁 시간만 사용할 수 있는데 대여료는 월 20만 원 정도다. 하루 종일 쓸 수 있는 개인 연습실은 월 대여료가 80만 원에서 100만 원 정도다.

"이것밖에 안 해 봐서", "들인 돈 아까워"...

초등학생 시절 꿈은 자라면서 계속 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다양한 공부 대신 한 가지 영역만 집중적으로 파고든 경우, 커서 진로를 바꾸기가 쉽지 않다. 예중, 예고를 거쳐 음대를 졸업한 한 피아노 강사는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가서 적성에 맞지 않다"며 고민하는 친구들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분야로 진로를 바꾸기엔 기초 학력이 부족한 경우도 있고, 그동안 들인 '비용'이 아까워 중간에 그만 두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했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예술' 교육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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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중 입시가 뭐길래…1년에 3천만 원?
    • 입력 2017-04-25 11:44:58
    취재K
"여름방학부터는 하루 12시간씩 그림을 그립니다."

예술중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초등학교 6학년, 13살 어린이들의 일이다. 아침 9시에 미술학원에 가서 밤 10시까지, 밥 먹는 시간만 빼고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린다. 4시간을 한 타임으로 잡는데, 세 타임 미술 수업을 받는 셈이다.

2학기가 되어도 수업은 세 타임 기준으로 진행된다. 다시 말해, 학교 수업을 거의 듣지 않는다는 얘기다. 아예 학교에 가지 않는 학생도 있고, 등교는 하되 1교시나 2교시만 마치고 조퇴하는 학생도 있다. 이런 생활은 예중 실기시험이 치러지는 10월까지 계속된다. 초등학교 생활에서 두 달이 사라지는 것이다.

입시 미술학원 관계자는 "출결 기준은 학교마다 다르다. 보통 사립학교는 잘 빼줘서 학교에 아예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공립학교는 학교나 담임마다 상황이 다른데, 젊은 담임들은 출결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서 애를 먹는다"라고 말했다.


음악 분야도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하루 종일 연습실 안에서 피아노를 친다.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콩쿨에도 기회가 될 때마다 참여하는데, 6학년1학기 때도 콩쿨이 임박해 오면 학교 수업을 빠지고 연습을 하는 일이 다반사다.

학교 수업까지 빠지고 학원에서 입시 준비를 하는 상황, 최근에 생긴 일이 아니었다. 취재를 하며 만난 예중 졸업생들, 예중 출신 강사들은 '저도 그랬어요'라고 말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관행처럼 계속돼 왔던 문제였다.

한 예중 졸업생 부모는 "아이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실내에서 그림만 그리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경쟁자를 보면, 아이를 쉬게 할 수가 없었다. 예중 출신 피아노 강사는 초등학교 때 친구가 없다고 말했다. 하루 종일 피아노를 치느라 친구 사귈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두 달 빠져도 졸업 가능

초등학교는 수업일수가 1년에 190여 일이다. 이 가운데 3분의 2 이상, 그러니까 127일 정도만 출석일수를 채우면 졸업이나 진급하는데 법적 문제는 없다. 서울시교육청 김희영 장학사는 "학원 수강은 조퇴나 결석을 허용하는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학원 수강 때문에 결석을 하면 무단 결석으로 생활기록부에 한 줄 기재될 뿐, 다른 불이익은없다.

또 다른 원인은 예중 입시 전형에 있다. 예중 준비생들이 선호하는 '예원학교'의 경우, 2017학년도 입시 배점을 보면 실기평가 100점, 학과 면접이 6점, 출석 점수가 4점이다. '선화예중'은 실기 100점, 면점 6~10점, 출석 점수가 6~10점이다. 출석 점수에선 격차가 4점밖에 나지 않아, 학교를 가지 않고 배점이 큰 실기에 집중하는 게 입시 당락만 놓고 볼 때는 훨씬 유리한 전략이다.


예중 입시는 '돈'과의 싸움

예중 입시 역시 경제력이 '경쟁력'이다. 입시 전문 미술학원의 경우 보통 한 타임(4시간) 수강료가 5만 원 선이다. 6학년 1학기까지는 하루 6시간(오후 4시~10시) 수업을 하니까, 하루 수강료는 7만 5천 원이다. 월~금 주5일 학원에 가면 한 달 수강료는 150만 원에 이른다. 주말에 특강이 있으면 금액이 또 늘어난다.

여기에 재료비, 정물비, 식비가 추가된다. 학과 면접 준비도 해야 돼, 일요일에는 학원이나 과외 수업을 받는다. 여름방학부터는 수업 시간이 배 이상 늘어난다. 수강료도 두 배 이상이 된다. 원장 특강 명목으로 추가 금액이 붙기도 하는데, 이 경우 월 수강료는 400만 원을 넘어간다. 한 예중 준비생 학부모는 예중 입시로 1년에 3천만 원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피아노 전공은 보통 여러 '급'의 선생님에게 돌아가며 레슨을 받는다. 입시 전문 학원에서 한 번(6만 원), 대학 강사급에게 한 번(10만 원), 교수에게 한 번(최소 20만 원), 이런 식이다. 학생이 어려서 레슨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아 연습 선생님을 또 부르는데, 비용은 한 시간에 5만 원에서 8만 원 정도 된다. 대개 일주일 단위로 돌아가기 때문에, 한 달로 치면 레슨비만 보통 200만 원 정도가 든다. 여기에 연습실 비용이 추가된다. 일반 피아노 학원은 저녁 시간만 사용할 수 있는데 대여료는 월 20만 원 정도다. 하루 종일 쓸 수 있는 개인 연습실은 월 대여료가 80만 원에서 100만 원 정도다.

"이것밖에 안 해 봐서", "들인 돈 아까워"...

초등학생 시절 꿈은 자라면서 계속 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다양한 공부 대신 한 가지 영역만 집중적으로 파고든 경우, 커서 진로를 바꾸기가 쉽지 않다. 예중, 예고를 거쳐 음대를 졸업한 한 피아노 강사는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가서 적성에 맞지 않다"며 고민하는 친구들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분야로 진로를 바꾸기엔 기초 학력이 부족한 경우도 있고, 그동안 들인 '비용'이 아까워 중간에 그만 두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했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예술' 교육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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