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백여 년 전 나라 지킨 ‘불랑기’ 발굴

입력 2017.04.25 (13:48)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330여 년 전 국토의 최전선을 지켰던 화포 ‘불랑기’(佛狼機)가 강화도 건평돈대(乾平墩臺)에서 발굴됐다. 이는 화포의 실전 사용처에서 처음으로 출토된 것으로 강화 돈대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앞두고 거둔 개가로 평가된다.

건평돈대(乾平墩臺) 내부건평돈대(乾平墩臺) 내부

돈대(墩臺)는 유사시 왕실의 안전을 책임지는 강화도의 방비를 위해 해안가에 쌓은 조선후기 대표적 군사 시설을 말한다. 1679년(숙종 5년) 강화도 해안 요충지에 48개를 쌓았고 이후 6개를 추가로 건설했다.

건평돈대는 당시 건설된 돈대 가운데 하나다. 돈대에는 적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2~4개의 포좌를 설치하고 불랑기를 배치한 것으로 기록에 전하는데 이번에 그 실체가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출토된 ‘불랑기’(佛狼機)출토된 ‘불랑기’(佛狼機)

‘불랑기’(佛狼機)는 16세기 유럽에서 전해진 서양식 화포로, ‘프랑크’의 한자식 표현이다.

그 어원은 이렇다. 중국 남부 지역에 상륙한 포르투갈 사람들은 동남아 회교도들을 앞세우고 왔는데 중국 관원이 “저기 코가 크고 머리가 누런 자들을 뭐라고 부르느냐”고 회교도들에게 묻자 회교도들은 자신들이 유럽 사람을 통틀어 지칭하던 ‘프랑크’라고 대답했다. 그리하여 중국에서는 유럽인을 ‘불랑기’라 통칭하고 그 후 그들이 전해준 화포도 같은 말로 지칭하게 되었다.

무너진 포좌에서 출토된 불랑기 모습무너진 포좌에서 출토된 불랑기 모습

‘불랑기’는 포문으로 포탄과 화약을 장전하는 전통 화포와 달리, 현대식 화포처럼 포 뒤에서 장전을 하는 후장식 화포이다. 포신인 모포(母砲)와 포탄과 화약을 장전하는 자포(子砲)로 분리되어 있는데, 모포 뒷부분에 자포를 삽입한 뒤 불씨를 붙여 발사한다. 보통 1개의 모포에 5개의 자포가 세트를 이루면서 빠른 속도로 연사가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지금까지 ‘불랑기’는 모포와 자포를 포함해 약 12문 가량이 확인되었으나 대부분 출토지가 분명치 않았다.


‘불랑기’ 자포는 지난 2009년 조선시대 군기시(병기 제조 관청) 터인 서울시 신청사 부지에서 1점 (보물 제861호)이 출토된 바 있으나 모포는 출토지가 확실한 예가 없다. 하지만 이번에 발굴된 건평돈대 불랑기는 출토지가 분명할 뿐만 아니라 실전 배치 장소인 돈대 포좌에서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학술적·역사적으로 의미가 깊다.

더구나 포신 하단에는 ‘불랑기’의 제작 기관과 감독 관리, 장인의 이름까지 상세하게 기록돼 있어 조선시대 무기사와 국방 체계를 연구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현재 인천시에서 추진 중인 강화 돈대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사업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3백여 년 전 나라 지킨 ‘불랑기’ 발굴
    • 입력 2017-04-25 13:48:46
    취재K
330여 년 전 국토의 최전선을 지켰던 화포 ‘불랑기’(佛狼機)가 강화도 건평돈대(乾平墩臺)에서 발굴됐다. 이는 화포의 실전 사용처에서 처음으로 출토된 것으로 강화 돈대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앞두고 거둔 개가로 평가된다.

건평돈대(乾平墩臺) 내부
돈대(墩臺)는 유사시 왕실의 안전을 책임지는 강화도의 방비를 위해 해안가에 쌓은 조선후기 대표적 군사 시설을 말한다. 1679년(숙종 5년) 강화도 해안 요충지에 48개를 쌓았고 이후 6개를 추가로 건설했다.

건평돈대는 당시 건설된 돈대 가운데 하나다. 돈대에는 적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2~4개의 포좌를 설치하고 불랑기를 배치한 것으로 기록에 전하는데 이번에 그 실체가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출토된 ‘불랑기’(佛狼機)
‘불랑기’(佛狼機)는 16세기 유럽에서 전해진 서양식 화포로, ‘프랑크’의 한자식 표현이다.

그 어원은 이렇다. 중국 남부 지역에 상륙한 포르투갈 사람들은 동남아 회교도들을 앞세우고 왔는데 중국 관원이 “저기 코가 크고 머리가 누런 자들을 뭐라고 부르느냐”고 회교도들에게 묻자 회교도들은 자신들이 유럽 사람을 통틀어 지칭하던 ‘프랑크’라고 대답했다. 그리하여 중국에서는 유럽인을 ‘불랑기’라 통칭하고 그 후 그들이 전해준 화포도 같은 말로 지칭하게 되었다.

무너진 포좌에서 출토된 불랑기 모습
‘불랑기’는 포문으로 포탄과 화약을 장전하는 전통 화포와 달리, 현대식 화포처럼 포 뒤에서 장전을 하는 후장식 화포이다. 포신인 모포(母砲)와 포탄과 화약을 장전하는 자포(子砲)로 분리되어 있는데, 모포 뒷부분에 자포를 삽입한 뒤 불씨를 붙여 발사한다. 보통 1개의 모포에 5개의 자포가 세트를 이루면서 빠른 속도로 연사가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지금까지 ‘불랑기’는 모포와 자포를 포함해 약 12문 가량이 확인되었으나 대부분 출토지가 분명치 않았다.


‘불랑기’ 자포는 지난 2009년 조선시대 군기시(병기 제조 관청) 터인 서울시 신청사 부지에서 1점 (보물 제861호)이 출토된 바 있으나 모포는 출토지가 확실한 예가 없다. 하지만 이번에 발굴된 건평돈대 불랑기는 출토지가 분명할 뿐만 아니라 실전 배치 장소인 돈대 포좌에서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학술적·역사적으로 의미가 깊다.

더구나 포신 하단에는 ‘불랑기’의 제작 기관과 감독 관리, 장인의 이름까지 상세하게 기록돼 있어 조선시대 무기사와 국방 체계를 연구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현재 인천시에서 추진 중인 강화 돈대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사업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