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트럼프의 ‘당근’…중국은 맛있어 할까?

입력 2017.04.26 (10:0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중국이 달라졌다. 지난 25일, 북의 핵실험 도발 위협이 고조된 북의 창군 기념일에 중국은 북·중 접경지역에 최고 경계태세를 발령했다. 전비 태세 속에 20만 병력을 대기시켰다. 관영매체들을 총동원해 연일 북한에 '도발 자제'를 압박했다. 북의 도발 위협에 대응하는 중국의 태도가 확실히 달라졌다. 전례 없는 일이다.


변화의 기점은 지난 4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이다. "북한 문제와 무역을 '섞어서' 협상을 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이 열릴 플로리다로 가는 전용기 안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문제와 미-중 무역을 연계해서 시진핑 중국 주석과 협상을 했다고 공식 석상에서 여러 차례 밝혔다.
"중국이 북한의 위협을 없애거나, 이를 위해 뭔가를 한다면, 중국은 미국과 훨씬 좋은 무역 거래를 하게 될 것이라고 시진핑 주석에게 말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보게 될 것이다." 지난 20일, 이탈리아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내용이다.

트위터에는 "중국이 더 큰 문제인 북한 문제와 관련해 미국을 돕고 있는데, 중국과 무역전쟁을 시작해야 하는가?"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언론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북한 문제와 무역을 놓고 '빅딜'을 했다는 표현도 등장했다. 미중 정상회담 이후 20일간 벌어진 상황을 보면 '빅딜'이라는 말이 그다지 과장된 표현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중국에 무역과 관련한 당근을 제시했고, 중국은 예전과는 달리 북한 문제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럼,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줄 수 있는 '당근'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리고 중국은 그 '당근'을 얼마나 필요로 하고 또 맛있어할까?

지금까지 미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제시한 '당근'은 두 가지다. 환율조작국 지정 유보와 시장경제지위 검토다. 전자는 6개월을 시한으로 이미 '당근'을 준 것이고, 후자는 이런 '당근'도 있다고 살짝 보여준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 BIT(Bilateral Investment Treaty), 양자투자협정도 '당근'이 될 수 있다.

각각의 사안이 왜 중국에 '당근'이 되는지, 중국이 얼마나 맛있어할지, 자세히 살펴보자.


환율조작국 지정 유보

미 재무부는 한 해 두 차례 4월과 10월에 반기별로 '주요 무역상대국의 경제 및 환율정책에 관한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한다. 이 보고서에 환율조작국 평가 결과가 담긴다.
미 재무부는 미·중 정상회담 다음 주에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어떤 나라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기간 유세에서 여러 차례 대통령이 되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번엔 일단 이 공약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백악관에서 보수 매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은 것은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끔찍한 충돌 우려에 처한 우리를 도와줬는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라고 말했다. "내 임기가 시작된 이래 중국의 환율조작은 없었다. 실제 위안화 가치는 내려가지 않고 올라갔다. 중국은 환율조작국이 아니다. 그것은 협상의 기술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미 재무부는 다음 세 가지 요건을 기준으로 환율조작국 지정 여부를 가린다.
1. 미국에 대한 무역 흑자, 200억 달러 초과
2. 해당국의 경상수지 흑자, GDP의 3% 초과
3. 지속적인 일방향 외환시장 개입 (한 해 GDP 대비 2% 초과 달러 순매수, 12개월 중 8개월 이상 순매수)

이번엔 주요 교역상대국 가운데 이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나라는 없었다는 게 미 재무부의 평가 결과다. 다만, 두 가지를 충족시키는 다섯 개 나라, 중국, 한국, 일본, 독일, 타이완을 관찰대상국으로 분류했다. 환율의 움직임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겠다고 의회에 보고했다.

이 발표가 나오자 중국 외교부는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크게 반겼을 것임이 틀림없다. 중국은 제법 큰 당근을 받아들었다고 할 수 있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대미 수출이 위축되는 상황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1년 간은 양자 협의 등을 통해서 무역수지 흑자를 줄이는 정책을 펴도록 압력을 받게 되고, 1년 이후에도 별 개선이 되지 않았다고 미국이 판단하면 일종의 보복 조치를 당하게 된다.

우선 미국의 조달시장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 미국 정부가 그 나라의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지 않는다. 또 미국의 입김이 센 IMF,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거시경제와 환율 관련 정책을 '감시'당하게 되고 환율 조작과 관련된 공식 협의를 하자는 요청도 받게 된다. 자연스레 통화가치를 상승시키는 압력이 생긴다.

또 미국과 양자든 다자든 무역협정을 하려 한다면 이때에도 저평가된 통화가치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여기에 반덤핑관세, 상계관세 등 보복 관세 심사에서도 불리한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다.
중국은 이런 심히 불편한 상황을 모면하게 된 것이다. 일단 오는 10월까지는.

중국의 '시장경제지위' 검토

미·중 정상회담이 열리기 사흘 전인 지난 3일, 미국 연방정부 관보에 중국이 아주 반색을 할만한 공지가 떴다. 미 상무부가 '비시장경제국인 중국의 지위'에 대해 조사를 시작한다는 공지다. 중국의 '시장경제지위'를 인정할지 검토를 시작했다는 얘기다.

'시장경제지위'란 어떤 나라의 제품 가격이 정부의 계획과 간섭이 아니라 시장원리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뜻한다. 좀 더 설명하자면, 그 나라가 수출하는 제품의 원가, 즉 부품값이나 임금, 환율 등이 정부의 개입 없이 시장에서 결정된 것이 맞다고 교역 상대국이 인정을 해주는 지위다.

주지하듯 중국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하는 나라였기 때문에 지난 2001년 중국이 WTO,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할 때 15년 동안은 시장경제지위를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고 WTO 가입 의정서에 규정됐다. 그런데 그 15년이 이제 다 지났다. 우리나라는 이미 지난 2005년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국의 시장경제지위를 인정했고, 지금까지 모두 81개국이 중국을 시장경제국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중국의 주요 수출시장인 미국과 일본, EU는 중국을 아직 시장경제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럼, 시장경제지위를 인정받는 것이 왜 중요할까? 시장경제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면 덤핑 여부를 따지는 통상분쟁에서 매우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중국산 제품이 미국에서 현저히 싼 값에 팔려서 미국의 국내 시장이 교란됐다고 판단되면 미국은 덤핑 여부를 심사해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게 된다. 이때 중국이 싸게 덤핑으로 판 게 아니라는 걸 입증하려면 원가를 공개하고 그 원가구조에 따라 중국 내에서도 비슷한 값에 판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중국은 아직 시장경제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말해 그 제품의 원가와 가격이 시장원리에 따라 결정된 것이라고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국내 가격은 비교 대상조차 될 수 없다. 대신, 시장경제국인 제3국, 예를 들면 중국보다 물가수준이 훨씬 높은 일본이나 독일의 (높은) 국내 가격과, 미국에서 팔리는 중국산 제품의 (낮은) 가격을 비교당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덤핑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도 아주 고율의 반덤핑 관세를 물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중국은 WTO에 제소해가면서까지 미국도 중국을 시장경제국으로 인정해달라고 촉구해왔지만, 미국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랬던 미국이 중국의 시장경제지위 검토를 시작한다고 관보에 공식적으로 밝혔으니, 중국이 반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중국이 아주 맛있어할 당근을 빼 든 것이다.

미-중 양자투자협정(BIT)

양자투자협정은 내외국인 차별이 거의 없이 투자에 관해 동등한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자는 두 나라 사이의 협정이다. 즉 두 나라 사이에 투자 활동과 관련한 규제를 없애자는 협정이다.

미국과 중국 두 나라는 지난 2008년 첫 논의를 한 뒤에 2013년부터 협상을 벌여왔다. 지난해 6월에 열린 제8차 미·중 전략경제 대화 때도 핵심 현안으로 논의됐다. 당시 시진핑 주석은 개회사를 통해 두 나라의 양자투자협정을 조속히 체결하자고 촉구했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가 결론을 내지 못했고 미국의 정권이 바뀌면서 그 논의가 수면 아래로 내려간 상황이다.

양자투자협정은 네거티브 방식으로 투자에 관한 규제를 없앤다. 다시 말해 규제 완화 대상에서 제외되는 목록을 정해놓고 다른 건 모두 규제를 하지 않는 방식이다. 자본이 넘쳐나도 안보 등의 이유로 미국 내 투자에 제한을 받아온 중국 입장에서는 양자투자협정 역시 맛있는 '당근'이 될 수 있다.


정말 '당근'을 줄까?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대로라면, 물론, 북한 문제가 어떻게 풀려가는지에,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중국이 북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는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무역 문제는 당근이 될 수도 있지만 뒤집으면 바로 채찍이 될 수도 있다. 환율조작국 지정은 짧게는 불과 6개월 유예된 것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중국이, 미국이 원하는 만큼 북한 문제 해결에 역할을 하지 못하면, 미 재무부가 10월 보고서에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중국의 시장경제지위를 인정하는 건, 여간해서는, 다시 말해 중국이 북한 문제를 정말 만족스럽게 풀어내지 못해서는, 혹은 풀어낸다 해도,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게 미국 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트럼프 정부는 무역 불균형을 바로잡겠다고 반덤핑 조사를 확대하고 있다. 업계의 피해 신고가 없어도 직권으로 반덤핑 조사를 시작할 태세까지 보이고 있다. 중국에 시장경제지위를 부여하면 반덤핑 관세로 미국 시장을 보호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반면, 양자투자협정은 의외로 진전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미국도 분명히 얻는 게 있기 때문이다.

또 여기서 논의한 '당근'외에 중국이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게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긴장을 풀 수 없는 일이다. 곧 윤곽을 드러낼 트럼프 정부의 세제 개혁이다. 국경조정세 도입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효과와 부작용을 놓고 논란이 크고 의회 통과 여부도 현재로써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국경조정세가 실제로 도입된다면, 중국의 대미 수출엔 큰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어쩔 수 없이 장기적인 성장률 하락 추세를 경험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체제와 정권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급격한 대미 수출 감소를 감내하기가 쉽지 않다. 중국이, 무역이라는 당근을 내민 미국의 대북 문제 협조 요청을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이유다.

북한 문제와 미-중 무역을 연계한 트럼프의 전략이 '신의 한 수'가 되기를 기대한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특파원리포트] 트럼프의 ‘당근’…중국은 맛있어 할까?
    • 입력 2017-04-26 10:02:27
    특파원 리포트
중국이 달라졌다. 지난 25일, 북의 핵실험 도발 위협이 고조된 북의 창군 기념일에 중국은 북·중 접경지역에 최고 경계태세를 발령했다. 전비 태세 속에 20만 병력을 대기시켰다. 관영매체들을 총동원해 연일 북한에 '도발 자제'를 압박했다. 북의 도발 위협에 대응하는 중국의 태도가 확실히 달라졌다. 전례 없는 일이다.


변화의 기점은 지난 4일 열린 미·중 정상회담이다. "북한 문제와 무역을 '섞어서' 협상을 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이 열릴 플로리다로 가는 전용기 안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문제와 미-중 무역을 연계해서 시진핑 중국 주석과 협상을 했다고 공식 석상에서 여러 차례 밝혔다.
"중국이 북한의 위협을 없애거나, 이를 위해 뭔가를 한다면, 중국은 미국과 훨씬 좋은 무역 거래를 하게 될 것이라고 시진핑 주석에게 말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보게 될 것이다." 지난 20일, 이탈리아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내용이다.

트위터에는 "중국이 더 큰 문제인 북한 문제와 관련해 미국을 돕고 있는데, 중국과 무역전쟁을 시작해야 하는가?"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언론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북한 문제와 무역을 놓고 '빅딜'을 했다는 표현도 등장했다. 미중 정상회담 이후 20일간 벌어진 상황을 보면 '빅딜'이라는 말이 그다지 과장된 표현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중국에 무역과 관련한 당근을 제시했고, 중국은 예전과는 달리 북한 문제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럼,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줄 수 있는 '당근'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리고 중국은 그 '당근'을 얼마나 필요로 하고 또 맛있어할까?

지금까지 미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제시한 '당근'은 두 가지다. 환율조작국 지정 유보와 시장경제지위 검토다. 전자는 6개월을 시한으로 이미 '당근'을 준 것이고, 후자는 이런 '당근'도 있다고 살짝 보여준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 BIT(Bilateral Investment Treaty), 양자투자협정도 '당근'이 될 수 있다.

각각의 사안이 왜 중국에 '당근'이 되는지, 중국이 얼마나 맛있어할지, 자세히 살펴보자.


환율조작국 지정 유보

미 재무부는 한 해 두 차례 4월과 10월에 반기별로 '주요 무역상대국의 경제 및 환율정책에 관한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한다. 이 보고서에 환율조작국 평가 결과가 담긴다.
미 재무부는 미·중 정상회담 다음 주에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어떤 나라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기간 유세에서 여러 차례 대통령이 되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번엔 일단 이 공약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백악관에서 보수 매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은 것은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끔찍한 충돌 우려에 처한 우리를 도와줬는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라고 말했다. "내 임기가 시작된 이래 중국의 환율조작은 없었다. 실제 위안화 가치는 내려가지 않고 올라갔다. 중국은 환율조작국이 아니다. 그것은 협상의 기술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미 재무부는 다음 세 가지 요건을 기준으로 환율조작국 지정 여부를 가린다.
1. 미국에 대한 무역 흑자, 200억 달러 초과
2. 해당국의 경상수지 흑자, GDP의 3% 초과
3. 지속적인 일방향 외환시장 개입 (한 해 GDP 대비 2% 초과 달러 순매수, 12개월 중 8개월 이상 순매수)

이번엔 주요 교역상대국 가운데 이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나라는 없었다는 게 미 재무부의 평가 결과다. 다만, 두 가지를 충족시키는 다섯 개 나라, 중국, 한국, 일본, 독일, 타이완을 관찰대상국으로 분류했다. 환율의 움직임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겠다고 의회에 보고했다.

이 발표가 나오자 중국 외교부는 당연한 결과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크게 반겼을 것임이 틀림없다. 중국은 제법 큰 당근을 받아들었다고 할 수 있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대미 수출이 위축되는 상황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1년 간은 양자 협의 등을 통해서 무역수지 흑자를 줄이는 정책을 펴도록 압력을 받게 되고, 1년 이후에도 별 개선이 되지 않았다고 미국이 판단하면 일종의 보복 조치를 당하게 된다.

우선 미국의 조달시장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 미국 정부가 그 나라의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지 않는다. 또 미국의 입김이 센 IMF,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거시경제와 환율 관련 정책을 '감시'당하게 되고 환율 조작과 관련된 공식 협의를 하자는 요청도 받게 된다. 자연스레 통화가치를 상승시키는 압력이 생긴다.

또 미국과 양자든 다자든 무역협정을 하려 한다면 이때에도 저평가된 통화가치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여기에 반덤핑관세, 상계관세 등 보복 관세 심사에서도 불리한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다.
중국은 이런 심히 불편한 상황을 모면하게 된 것이다. 일단 오는 10월까지는.

중국의 '시장경제지위' 검토

미·중 정상회담이 열리기 사흘 전인 지난 3일, 미국 연방정부 관보에 중국이 아주 반색을 할만한 공지가 떴다. 미 상무부가 '비시장경제국인 중국의 지위'에 대해 조사를 시작한다는 공지다. 중국의 '시장경제지위'를 인정할지 검토를 시작했다는 얘기다.

'시장경제지위'란 어떤 나라의 제품 가격이 정부의 계획과 간섭이 아니라 시장원리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뜻한다. 좀 더 설명하자면, 그 나라가 수출하는 제품의 원가, 즉 부품값이나 임금, 환율 등이 정부의 개입 없이 시장에서 결정된 것이 맞다고 교역 상대국이 인정을 해주는 지위다.

주지하듯 중국은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하는 나라였기 때문에 지난 2001년 중국이 WTO,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할 때 15년 동안은 시장경제지위를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고 WTO 가입 의정서에 규정됐다. 그런데 그 15년이 이제 다 지났다. 우리나라는 이미 지난 2005년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국의 시장경제지위를 인정했고, 지금까지 모두 81개국이 중국을 시장경제국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중국의 주요 수출시장인 미국과 일본, EU는 중국을 아직 시장경제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럼, 시장경제지위를 인정받는 것이 왜 중요할까? 시장경제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면 덤핑 여부를 따지는 통상분쟁에서 매우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중국산 제품이 미국에서 현저히 싼 값에 팔려서 미국의 국내 시장이 교란됐다고 판단되면 미국은 덤핑 여부를 심사해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게 된다. 이때 중국이 싸게 덤핑으로 판 게 아니라는 걸 입증하려면 원가를 공개하고 그 원가구조에 따라 중국 내에서도 비슷한 값에 판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중국은 아직 시장경제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말해 그 제품의 원가와 가격이 시장원리에 따라 결정된 것이라고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국내 가격은 비교 대상조차 될 수 없다. 대신, 시장경제국인 제3국, 예를 들면 중국보다 물가수준이 훨씬 높은 일본이나 독일의 (높은) 국내 가격과, 미국에서 팔리는 중국산 제품의 (낮은) 가격을 비교당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덤핑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도 아주 고율의 반덤핑 관세를 물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중국은 WTO에 제소해가면서까지 미국도 중국을 시장경제국으로 인정해달라고 촉구해왔지만, 미국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랬던 미국이 중국의 시장경제지위 검토를 시작한다고 관보에 공식적으로 밝혔으니, 중국이 반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중국이 아주 맛있어할 당근을 빼 든 것이다.

미-중 양자투자협정(BIT)

양자투자협정은 내외국인 차별이 거의 없이 투자에 관해 동등한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자는 두 나라 사이의 협정이다. 즉 두 나라 사이에 투자 활동과 관련한 규제를 없애자는 협정이다.

미국과 중국 두 나라는 지난 2008년 첫 논의를 한 뒤에 2013년부터 협상을 벌여왔다. 지난해 6월에 열린 제8차 미·중 전략경제 대화 때도 핵심 현안으로 논의됐다. 당시 시진핑 주석은 개회사를 통해 두 나라의 양자투자협정을 조속히 체결하자고 촉구했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가 결론을 내지 못했고 미국의 정권이 바뀌면서 그 논의가 수면 아래로 내려간 상황이다.

양자투자협정은 네거티브 방식으로 투자에 관한 규제를 없앤다. 다시 말해 규제 완화 대상에서 제외되는 목록을 정해놓고 다른 건 모두 규제를 하지 않는 방식이다. 자본이 넘쳐나도 안보 등의 이유로 미국 내 투자에 제한을 받아온 중국 입장에서는 양자투자협정 역시 맛있는 '당근'이 될 수 있다.


정말 '당근'을 줄까?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대로라면, 물론, 북한 문제가 어떻게 풀려가는지에,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중국이 북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는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무역 문제는 당근이 될 수도 있지만 뒤집으면 바로 채찍이 될 수도 있다. 환율조작국 지정은 짧게는 불과 6개월 유예된 것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중국이, 미국이 원하는 만큼 북한 문제 해결에 역할을 하지 못하면, 미 재무부가 10월 보고서에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중국의 시장경제지위를 인정하는 건, 여간해서는, 다시 말해 중국이 북한 문제를 정말 만족스럽게 풀어내지 못해서는, 혹은 풀어낸다 해도,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게 미국 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트럼프 정부는 무역 불균형을 바로잡겠다고 반덤핑 조사를 확대하고 있다. 업계의 피해 신고가 없어도 직권으로 반덤핑 조사를 시작할 태세까지 보이고 있다. 중국에 시장경제지위를 부여하면 반덤핑 관세로 미국 시장을 보호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반면, 양자투자협정은 의외로 진전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미국도 분명히 얻는 게 있기 때문이다.

또 여기서 논의한 '당근'외에 중국이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게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긴장을 풀 수 없는 일이다. 곧 윤곽을 드러낼 트럼프 정부의 세제 개혁이다. 국경조정세 도입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효과와 부작용을 놓고 논란이 크고 의회 통과 여부도 현재로써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국경조정세가 실제로 도입된다면, 중국의 대미 수출엔 큰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어쩔 수 없이 장기적인 성장률 하락 추세를 경험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체제와 정권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급격한 대미 수출 감소를 감내하기가 쉽지 않다. 중국이, 무역이라는 당근을 내민 미국의 대북 문제 협조 요청을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이유다.

북한 문제와 미-중 무역을 연계한 트럼프의 전략이 '신의 한 수'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