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들쑥날쑥’ 과적 저울…화물기사들 “못 믿겠네”

입력 2017.04.26 (18:2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남천안 나들목을 지나던 순간,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과적 단속에 걸린 것이다. 3년째 화물 기사로 일하면서 처음이었다. 김 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화물차에 물건을 싣고 도로에 나섰기에,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진정하고 다시 검측에 나섰다. 세 차례에 걸친 재검측, 결과는 모두 44톤 이상이었다. 사이렌 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다.

천안나들목(왼쪽)과 남천안나들목(오른쪽)에서 각각 측정된 무게천안나들목(왼쪽)과 남천안나들목(오른쪽)에서 각각 측정된 무게

"4톤이나 차이가 난다"

김 씨는 억울했다. 그대로 차를 몰고 천안 나들목으로 갔다. 결과는? '40톤 870그램'. 허용 수치였다. 남천안 나들목과 약 4톤 차이다. 항의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도로공사 관계자는 강경했다. 저울은 잘못됐을 리 없고, 설사 차이가 난다 하더라도 나들목에서 측정한 값이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는 것이었다. 김 씨는 과태료 50만 원 처분을 받았다.


차량의 운행제한 규정은 과적 기준을 총중량 40톤, 축하중 10톤으로 정하고 있다. 이 중 하나를 초과하는 차량은 단속에 적발된다. 하지만 기기 오차와 환경 오차 등을 생각해 10%의 오차는 허용한다. 즉 44톤까지는 단속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도로에 나가봤다. 6축 차량에 28톤 5백 그램을 실었다.

[결과] A 나들목-? / B 나들목-28톤 1백 그램/ C 나들목-?

A 나들목에서는 무게를 알 수 없었다. 전날 밤 한 화물차가 저울을 치고 지나가 고장이 났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15시간 넘게 A 나들목의 저울은 고장이었다.

B 나들목에서는 28톤 1백 그램으로 기기 오차 범위 안이었다. 그런데 C 나들목에서는 또다시 무게를 확인할 수 없었다. 측정이 가능한 축 중량 기준이 7톤인데, 너무 적게 실었다는 것이다.


취재진이 탄 차량은 한 축당 5톤도 싣지 않았기 때문에 측정이 안 된다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B 나들목에서는 수치를 확인했는데? C 나들목 관계자는 나들목마다 기준이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국토교통부는 전국의 나들목이 7톤으로 같다고 말했다. 설명이 다른 거다.


영업소마다 매달 영점 조정..1년에 한 번 검교정도

도로법상 '도로'는 고속국도(고속도로), 일반국도, 지방도로 등으로 나뉜다. 민자 도로도 있다. 도로 종류마다 관리 주체도 다르다. 고속도로는 한국도로공사에서, 일반국도는 지방국토관리사무소에서, 지방도로는 각 지자체가 관리한다.

고속도로와 일반국도에 설치된 고정 저울은 371개. 한국도로공사와 지방국토관리사무소는 5개의 공인된 외주업체에 저울 영점 조정을 맡긴다. 업체들은 매달 한 번씩 영점을 조정한다. 국토교통부도 영점 조정을 포함한 영업소의 관리 실태를 매년 점검하고 있다.

깐깐하게 검사하고 있지만, 저울값에 차이가 크게 나는 경우가 있어 화물 기사들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관리 주체와 영점 조정 시기가 달라 차이가 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과적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화물기사들이 억울해 하는 이유는 또 있다. 톤당 운임제가 핵심이다. 더 실으면 돈을 더 준다.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더 싣는다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선의의 과적'이 문제다. 가끔은 화주나 운송사가 과적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럴 때 싫다고 당당히 얘기할 수 있는 기사가 많지 않다. '보복 배차'가 두렵기 때문이다. 운전할 사람 많은데, 그러냐고, 양심 있게 적게 실으라고 권하는 화주나 운송사가 많지 않다.

더 심하면 속이기도 한다. 이럴 때를 대비해 화주 고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민사 소송을 거쳐 화주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하지만 과정이 지난하다.

아무리 단속을 해도 과적이 줄지 않는다며, 올해부터는 연 2회 이상 과적 시 화물 기사들에게 벌점도 부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사들은 정부가 과태료만 올리고 벌점을 부과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기사들이 과적할 수밖에 없는, 또 과적을 마음대로 시킬 수 있는 구조를 바꿔 달라는 게 화물 기사들의 주장이다. 고정 저울을 향한 숨은, 진짜 분노는 따로 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취재후] ‘들쑥날쑥’ 과적 저울…화물기사들 “못 믿겠네”
    • 입력 2017-04-26 18:23:41
    취재후·사건후
남천안 나들목을 지나던 순간,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과적 단속에 걸린 것이다. 3년째 화물 기사로 일하면서 처음이었다. 김 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화물차에 물건을 싣고 도로에 나섰기에,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진정하고 다시 검측에 나섰다. 세 차례에 걸친 재검측, 결과는 모두 44톤 이상이었다. 사이렌 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다.

천안나들목(왼쪽)과 남천안나들목(오른쪽)에서 각각 측정된 무게
"4톤이나 차이가 난다"

김 씨는 억울했다. 그대로 차를 몰고 천안 나들목으로 갔다. 결과는? '40톤 870그램'. 허용 수치였다. 남천안 나들목과 약 4톤 차이다. 항의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도로공사 관계자는 강경했다. 저울은 잘못됐을 리 없고, 설사 차이가 난다 하더라도 나들목에서 측정한 값이 절대적인 기준이 된다는 것이었다. 김 씨는 과태료 50만 원 처분을 받았다.


차량의 운행제한 규정은 과적 기준을 총중량 40톤, 축하중 10톤으로 정하고 있다. 이 중 하나를 초과하는 차량은 단속에 적발된다. 하지만 기기 오차와 환경 오차 등을 생각해 10%의 오차는 허용한다. 즉 44톤까지는 단속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도로에 나가봤다. 6축 차량에 28톤 5백 그램을 실었다.

[결과] A 나들목-? / B 나들목-28톤 1백 그램/ C 나들목-?

A 나들목에서는 무게를 알 수 없었다. 전날 밤 한 화물차가 저울을 치고 지나가 고장이 났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15시간 넘게 A 나들목의 저울은 고장이었다.

B 나들목에서는 28톤 1백 그램으로 기기 오차 범위 안이었다. 그런데 C 나들목에서는 또다시 무게를 확인할 수 없었다. 측정이 가능한 축 중량 기준이 7톤인데, 너무 적게 실었다는 것이다.


취재진이 탄 차량은 한 축당 5톤도 싣지 않았기 때문에 측정이 안 된다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B 나들목에서는 수치를 확인했는데? C 나들목 관계자는 나들목마다 기준이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지만, 국토교통부는 전국의 나들목이 7톤으로 같다고 말했다. 설명이 다른 거다.


영업소마다 매달 영점 조정..1년에 한 번 검교정도

도로법상 '도로'는 고속국도(고속도로), 일반국도, 지방도로 등으로 나뉜다. 민자 도로도 있다. 도로 종류마다 관리 주체도 다르다. 고속도로는 한국도로공사에서, 일반국도는 지방국토관리사무소에서, 지방도로는 각 지자체가 관리한다.

고속도로와 일반국도에 설치된 고정 저울은 371개. 한국도로공사와 지방국토관리사무소는 5개의 공인된 외주업체에 저울 영점 조정을 맡긴다. 업체들은 매달 한 번씩 영점을 조정한다. 국토교통부도 영점 조정을 포함한 영업소의 관리 실태를 매년 점검하고 있다.

깐깐하게 검사하고 있지만, 저울값에 차이가 크게 나는 경우가 있어 화물 기사들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관리 주체와 영점 조정 시기가 달라 차이가 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과적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화물기사들이 억울해 하는 이유는 또 있다. 톤당 운임제가 핵심이다. 더 실으면 돈을 더 준다.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더 싣는다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선의의 과적'이 문제다. 가끔은 화주나 운송사가 과적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럴 때 싫다고 당당히 얘기할 수 있는 기사가 많지 않다. '보복 배차'가 두렵기 때문이다. 운전할 사람 많은데, 그러냐고, 양심 있게 적게 실으라고 권하는 화주나 운송사가 많지 않다.

더 심하면 속이기도 한다. 이럴 때를 대비해 화주 고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민사 소송을 거쳐 화주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 하지만 과정이 지난하다.

아무리 단속을 해도 과적이 줄지 않는다며, 올해부터는 연 2회 이상 과적 시 화물 기사들에게 벌점도 부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사들은 정부가 과태료만 올리고 벌점을 부과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기사들이 과적할 수밖에 없는, 또 과적을 마음대로 시킬 수 있는 구조를 바꿔 달라는 게 화물 기사들의 주장이다. 고정 저울을 향한 숨은, 진짜 분노는 따로 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