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표 움직이는 ‘TV 토론회’…표심 잡으려면 어떻게?

입력 2017.04.27 (16:24) 수정 2017.04.2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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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가 좀 더 일찍 발명됐다면 위대한 정치가인 링컨과 처칠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미국 16대 대통령인 링컨은 못 생긴 얼굴을 가리려고 수염을 기른 것으로 유명하다. 또 영국의 수상을 지낸 처칠은 말솜씨가 뛰어나 라디오 연설에서는 큰 인기를 얻었지만 역시 못생긴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영국의 한 연구팀이 '못생긴 사람일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라는 심리학 실험을 하면서 그 예로 처칠을 들었을 정도니 짐작할만 하다.

1960년 미국 대선에서 케네디는 TV 토론회의 우세를 바탕으로 부동표를 얻어 승리했다. 이미지 출처: CNN1960년 미국 대선에서 케네디는 TV 토론회의 우세를 바탕으로 부동표를 얻어 승리했다. 이미지 출처: CNN

"비디오 킬 더 라디오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

라디오 발명 이전에는 책이나 편지, 신문 등 활자 매체를 통해 정치적 소통이 이뤄졌고 이후 TV가 발명되면서 본격적인 이미지 정치 시대가 열렸다. 대표적인 사례로 1960년 9월 26일 처음 열린 미국 대통령 TV 토론회를 들 수 있다. 당시 존 F. 케네디는 매사추세츠 출신의 잘 알려지지 않은 상원의원이었다.

라디오를 통해 연설을 청취한 사람들은 공화당 후보였던 닉슨의 승리를 점쳤다. 그러나 1960년 당시 미국 가정의 TV 보급률은 90%에 육박했고 라디오 청취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사상 최초의 TV 토론회가 끝난 그날 밤 케네디는 엄청난 스타가 됐고 모두들 승리를 예감했다.

여유있는 태도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케네디의 젊고 열정적인 모습과 대조적으로 닉슨의 표정은 내내 불안했다. 김미현 정치학 박사는 "닉슨은 세부적인 공약 등 정보 전달에 주력했지만 케네디는 전반적인 내용만 알기 쉽고 부드럽게 설명하는 데 그쳤다"고 말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오는 "군주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필요가 없고 이것을 가진 것처럼 '외향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했다는 얘기다.

토론 전에는 두 후보의 지지율이 비슷했지만 4차까지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부동표가 케네디에게 쏠렸다. 토론 전에는 두 후보의 지지율이 비슷했지만 4차까지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부동표가 케네디에게 쏠렸다.

TV 토론 전에는 케네디와 닉슨에 대한 지지율이 엇비슷했다. 그런데 토론이 4차까지 진행될수록 닉슨의 지지율은 큰 변화가 없는 반면 부동표라고 답한 사람들 대다수가 케네디에게 마음을 돌린 것으로 나타났다. TV는 라디오와 다른 '쿨미디어'로 직접적인 정보 전달보다는 시각적이고 암시적인 정보로 시청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매체적 특성을 지닌다. 케네디의 경우 우연인지, 아니면 학습에 의한 것인지 쿨미디어의 속성에 정확히 부합했고 그 해 선거에서 닉슨에게 11만 2천여표 차이로 승리했다.

이후 84년 미국 대선 TV 토론회에선 73세의 나이로 재선에 도전한 레이건이 상대 후보로부터 고령에 대한 문제 제기를 받자 재치 있는 답변을 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도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나는 이번 대선에서 나이를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내 상대의 젊음과 정치적 무경험을 절대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졌고 먼데일 후보는 '그 순간 내가 졌다는 것을 직감했다'고 훗날 고백했다.

92년 재선에 도전한 조지 부시와 빌 클린턴의 TV 토론회에서도 명암은 분명히 갈렸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당하는 카메라 앞에서 부시는 성의 없고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젊고 똑똑한 클린턴은 질문자들에게 친절하면서 호소력 있는 태도로 일관해 큰 호감을 얻었다.


뚜렷한 승자 없어도 '패자'는 분명

대선을 앞두고 우리나라에서도 TV 토론회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뜨겁다. 인기 드라마에 맞먹는 시청률이 나오고 후보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며칠 뒤까지 회자될 정도다. 이제 2차례의 토론회만 남겨뒀는데, 아직까지 찍을 사람을 선택하지 못했다는 부동층이 여전히 많은 것으로 보인다.

표를 의식한 무책임한 답변이나 동문서답식의 대응, 악의적인 네거티브 공략은 토론회를 보는 시청자들을 실망하게 만든다. 질문과 대답 시간이 정해져있기 때문에 각 후보의 말이나 몸짓, 표정 등 전반적인 이미지는 실제보다 증폭돼 기억될 수밖에 없다. 부정적인 면이라면 더욱 그렇다. 따라서 부동층의 경우 토론회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비친 후보에 대해서 절대로 지지하면 안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승자는 뚜렷이 없더라도 '패자'는 분명하다는 얘기다.

또 구체적인 공약을 나열하더라도 토론회가 끝난 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복잡한 수식이 아닌 감정적인 이미지가 주로 남는다. 황상민 심리학 박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TV를 보면서 자기가 믿고 싶은 단서를 확인하는 '확증 편향'적 심리 상태를 보인다"고 분석했다. 토론회를 통해 전혀 새로운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막연하게 선호하거나 관심을 가졌던 후보에 대해 '바로 저 사람이야'하면서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된다는 뜻이다. 특히 '내재적 선호'를 갖고 있던 후보가 특정 이슈를 강조해 언급하면 '내가 이런 이유로 저 사람을 지지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충족감을 느낀다고 황 박사는 설명했다.

이때문에 가장 좋은 TV 토론 대응 방식은 일상적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습을 가장 자연스럽게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심리학자들은 공통적으로 강조한다. 대중들이 나에게 어떤 이미지를 기대하는지, 그것을 유지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변화를 주는 것이 좋을지 잘 판단해서 마지막 토론회까지 자연스럽게 임해야 한다는 얘기다. 2번 남은 토론회에서 대권 주자들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유권자들의 내면에서는 어떤 판단이 일어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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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27 16:24:38
    • 수정2017-04-27 16:53:13
    취재K

TV가 좀 더 일찍 발명됐다면 위대한 정치가인 링컨과 처칠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미국 16대 대통령인 링컨은 못 생긴 얼굴을 가리려고 수염을 기른 것으로 유명하다. 또 영국의 수상을 지낸 처칠은 말솜씨가 뛰어나 라디오 연설에서는 큰 인기를 얻었지만 역시 못생긴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영국의 한 연구팀이 '못생긴 사람일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라는 심리학 실험을 하면서 그 예로 처칠을 들었을 정도니 짐작할만 하다.

1960년 미국 대선에서 케네디는 TV 토론회의 우세를 바탕으로 부동표를 얻어 승리했다. 이미지 출처: CNN
"비디오 킬 더 라디오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

라디오 발명 이전에는 책이나 편지, 신문 등 활자 매체를 통해 정치적 소통이 이뤄졌고 이후 TV가 발명되면서 본격적인 이미지 정치 시대가 열렸다. 대표적인 사례로 1960년 9월 26일 처음 열린 미국 대통령 TV 토론회를 들 수 있다. 당시 존 F. 케네디는 매사추세츠 출신의 잘 알려지지 않은 상원의원이었다.

라디오를 통해 연설을 청취한 사람들은 공화당 후보였던 닉슨의 승리를 점쳤다. 그러나 1960년 당시 미국 가정의 TV 보급률은 90%에 육박했고 라디오 청취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사상 최초의 TV 토론회가 끝난 그날 밤 케네디는 엄청난 스타가 됐고 모두들 승리를 예감했다.

여유있는 태도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케네디의 젊고 열정적인 모습과 대조적으로 닉슨의 표정은 내내 불안했다. 김미현 정치학 박사는 "닉슨은 세부적인 공약 등 정보 전달에 주력했지만 케네디는 전반적인 내용만 알기 쉽고 부드럽게 설명하는 데 그쳤다"고 말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오는 "군주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필요가 없고 이것을 가진 것처럼 '외향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원칙에 충실했다는 얘기다.

토론 전에는 두 후보의 지지율이 비슷했지만 4차까지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부동표가 케네디에게 쏠렸다.
TV 토론 전에는 케네디와 닉슨에 대한 지지율이 엇비슷했다. 그런데 토론이 4차까지 진행될수록 닉슨의 지지율은 큰 변화가 없는 반면 부동표라고 답한 사람들 대다수가 케네디에게 마음을 돌린 것으로 나타났다. TV는 라디오와 다른 '쿨미디어'로 직접적인 정보 전달보다는 시각적이고 암시적인 정보로 시청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매체적 특성을 지닌다. 케네디의 경우 우연인지, 아니면 학습에 의한 것인지 쿨미디어의 속성에 정확히 부합했고 그 해 선거에서 닉슨에게 11만 2천여표 차이로 승리했다.

이후 84년 미국 대선 TV 토론회에선 73세의 나이로 재선에 도전한 레이건이 상대 후보로부터 고령에 대한 문제 제기를 받자 재치 있는 답변을 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도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나는 이번 대선에서 나이를 문제 삼지 않을 것이다. 내 상대의 젊음과 정치적 무경험을 절대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졌고 먼데일 후보는 '그 순간 내가 졌다는 것을 직감했다'고 훗날 고백했다.

92년 재선에 도전한 조지 부시와 빌 클린턴의 TV 토론회에서도 명암은 분명히 갈렸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당하는 카메라 앞에서 부시는 성의 없고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젊고 똑똑한 클린턴은 질문자들에게 친절하면서 호소력 있는 태도로 일관해 큰 호감을 얻었다.


뚜렷한 승자 없어도 '패자'는 분명

대선을 앞두고 우리나라에서도 TV 토론회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뜨겁다. 인기 드라마에 맞먹는 시청률이 나오고 후보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며칠 뒤까지 회자될 정도다. 이제 2차례의 토론회만 남겨뒀는데, 아직까지 찍을 사람을 선택하지 못했다는 부동층이 여전히 많은 것으로 보인다.

표를 의식한 무책임한 답변이나 동문서답식의 대응, 악의적인 네거티브 공략은 토론회를 보는 시청자들을 실망하게 만든다. 질문과 대답 시간이 정해져있기 때문에 각 후보의 말이나 몸짓, 표정 등 전반적인 이미지는 실제보다 증폭돼 기억될 수밖에 없다. 부정적인 면이라면 더욱 그렇다. 따라서 부동층의 경우 토론회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비친 후보에 대해서 절대로 지지하면 안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승자는 뚜렷이 없더라도 '패자'는 분명하다는 얘기다.

또 구체적인 공약을 나열하더라도 토론회가 끝난 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복잡한 수식이 아닌 감정적인 이미지가 주로 남는다. 황상민 심리학 박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TV를 보면서 자기가 믿고 싶은 단서를 확인하는 '확증 편향'적 심리 상태를 보인다"고 분석했다. 토론회를 통해 전혀 새로운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막연하게 선호하거나 관심을 가졌던 후보에 대해 '바로 저 사람이야'하면서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된다는 뜻이다. 특히 '내재적 선호'를 갖고 있던 후보가 특정 이슈를 강조해 언급하면 '내가 이런 이유로 저 사람을 지지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충족감을 느낀다고 황 박사는 설명했다.

이때문에 가장 좋은 TV 토론 대응 방식은 일상적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습을 가장 자연스럽게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심리학자들은 공통적으로 강조한다. 대중들이 나에게 어떤 이미지를 기대하는지, 그것을 유지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변화를 주는 것이 좋을지 잘 판단해서 마지막 토론회까지 자연스럽게 임해야 한다는 얘기다. 2번 남은 토론회에서 대권 주자들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유권자들의 내면에서는 어떤 판단이 일어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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