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엄마 미안해”…‘공시생’의 안타까운 선택

입력 2017.04.28 (08:34) 수정 2017.04.2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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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공무원 시험 준비생을 가리켜 요즘 '공시생'이라고 부르죠.

전국의 이런 공시생은 26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매년 수능 시험 응시생이 60만 명 정도임을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청년이 공무원 시험에 뛰어들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경쟁도 치열합니다.

공시생 중에 3%만이 합격장을 받아들 수 있는 게 현실입니다.

시험에 떨어지길 반복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좌절감에 빠질 수밖에 없을 텐데요.

이런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안타까운 선택을 한 공시생도 최근 잇따르고 있습니다.

공무원 시험의 문턱에서 아파하고 있는 청춘들을 한 번 따라가 보겠습니다.

<리포트>

지난 24일, 충북 청주의 한 휴게소에 고속버스 한 대가 정차합니다.

버스에는 고향인 경북 구미로 가던 25살 남 모 씨와 어머니가 타고 있었습니다.

잠시 화장실을 간다던 아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녹취> 경찰관계자(음성변조) : "같이 고속버스 타고 내려오다가 화장실 다녀온다고 잠깐 밖에 나갔다 온다고. 그런데 그때 내렸다가 시간이 지나도 안 돌아오니까 어머니가 버스에서 내려서 확인하러 갔던 거죠."

아들은 화장실 안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습니다.

군 제대 후 3년 넘게 서울 노량진에서 경찰 공무원 준비를 해온 남 씨.

시험에 매번 낙방했고, 지난달 23일에도 필기시험에 떨어진 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왔다고 합니다.

<녹취> 경찰관계자(음성변조) : "'3월에 학원 개강에 맞춰서 올라간 지 한 달 정도 됐다'라고 했고 저희가 파악한 바로는 당일 아침인가 새벽인가에도 한 번 자살시도를 한 적이 있었어요."

경찰은 남 씨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남 씨가 떨어진 경찰 공무원 필기시험 발표날, 서울의 한 공원에서도 32살의 또 다른 공시생이 안타까운 선택을 했습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계속된 실패로 살아갈 힘이 없다는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이들이 공무원의 꿈을 꿨던 서울 노량진 학원가.

반지하 고시원에 공시생 4년 차 30살 이 모 씨의 방이 있습니다.

겨우 몸을 뻗고 누울 수 있는 1인용 침대와 책상이 맞닿아있는 작은 방.

이곳에서 매일 10시간 넘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오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OO(공시생 4년 차/음성변조) : "대학교 졸업하고 27살 때부터 지금 서른 살인데 27, 28, 29, 30. 3년 좀 더 넘은 것 같아요."

1~2년 열심히 하다 보면 합격증을 받아들 거로 생각했지만, 바늘구멍 같은 합격문을 통과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OO(공시생 4년 차/음성변조) : "이십 대 때는 솔직히 한 번 떨어지면 ‘아 내년에 공부해서 합격하면 되겠구나. 늦지 않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서른 살이 되니까 저는 여전히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는데 세상은 많이 바뀌었어요. 뭐 하나 이뤄낸 부분이 없으니까 이런 부분이 좀 힘듭니다."

부모님에게 더는 신세를 질 수 없어, 고시원 총무로 일하며 수험 비용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OO(공시생 4년 차/음성변조) : "공무원 준비할 때 도움을 많이 주셨는데 더 이상 받기가 너무 죄송스럽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든 돈 벌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고시원 총무밖에 없어서 병행하고 있어요."

주변 친구들의 합격 소식을 마냥 함께 기뻐해 줄 수도 없습니다.

<인터뷰> 이OO(공시생 4년 차/음성변조) : "합격한 사람들의 SNS라든지 사진으로 정말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아 정말 부럽더라고요. 제가 공무원 준비하면서 핸드폰을 계속 바꿨어요. 또 떨어졌다는 소식을 차마 말 못 하겠더라고요."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더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인터뷰> 이OO(공시생 4년 차/음성변조) : "마땅히 취업하려고 해도 스펙도 지금 다 단절돼있는 상태이고 공무원만 지금 계속 준비했던 터라서 이 길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현재는."

이 씨 같은 공시생들은 수험 기간이 길어질수록 더 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합니다.

<인터뷰> 장정원(공시생 5년 차) : "네 번째 시험 떨어졌을 때는 될 것 같았는데 저도 안 되니까 많이 힘들고 포기하고 싶고 부모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에다가 저 자신한테 자괴감이 진짜 많이 들었어요."

<인터뷰> 김재황(공시생 1년 차) : "주변에서 또 어떤 사람들은 되고, 지인들은 되고 나는 안 됐을 때 그때 좌절감도 좀 생기고……."

경제적인 부분도 공시생들에겐 큰 고민입니다.

학원비와 교재비, 생활비 등 아무리 아껴 써도 시험 준비에 한 달 평균 1백만 원 이상이 들어갑니다.

<인터뷰> 문형후(공시생 2년 차) : "아무래도 금전적인 문제가 제일 힘들죠. 왜냐면 학원비도 되게 비싸고 책도 요새는 되게 많이 비싸더라고요. 그리고 체력학원이나 면접학원도 돈이 또 들어가고……."

현재 전국의 공무원 시험 준비생은 25만여 명가량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합격의 문턱을 넘는 사람은 응시생 1백 명 중에 3명꼴도 안 되는 상황입니다.

지난 8일 치러진 9급 공무원 시험에는 17만여 명이 응시했는데, 역대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인터뷰> 장정원(공시생 5년 차) : "망설이죠. 다시 할까 말까? 하다가도 결국 요새 취업이 되기 힘드니까 그나마 이거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다시 준비하는 거죠. 어쩔 수 없이."

편하고 안정적인 곳을 찾아 스스로 한 선택이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지만, 이들에겐 화려한 스펙 없이도 청년 취업난을 뚫고 꿈을 펼칠 수 있다는 희망이 공무원 시험입니다.

<인터뷰> 문형후(공시생 2년 차) : "이제 공무원 돼서 돈도 벌고 부모님께 좀 떳떳한 아들이 되는 거? 그게 제일 바라는 것 같아요."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청년 취업 시장의 현실.

전문가들은 수험 기간이 길어질수록 수험생들의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주변에서 관심으로 보듬어줘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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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엄마 미안해”…‘공시생’의 안타까운 선택
    • 입력 2017-04-28 08:37:09
    • 수정2017-04-28 09: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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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시험 준비생을 가리켜 요즘 '공시생'이라고 부르죠.

전국의 이런 공시생은 26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매년 수능 시험 응시생이 60만 명 정도임을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청년이 공무원 시험에 뛰어들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경쟁도 치열합니다.

공시생 중에 3%만이 합격장을 받아들 수 있는 게 현실입니다.

시험에 떨어지길 반복하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좌절감에 빠질 수밖에 없을 텐데요.

이런 심리적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안타까운 선택을 한 공시생도 최근 잇따르고 있습니다.

공무원 시험의 문턱에서 아파하고 있는 청춘들을 한 번 따라가 보겠습니다.

<리포트>

지난 24일, 충북 청주의 한 휴게소에 고속버스 한 대가 정차합니다.

버스에는 고향인 경북 구미로 가던 25살 남 모 씨와 어머니가 타고 있었습니다.

잠시 화장실을 간다던 아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녹취> 경찰관계자(음성변조) : "같이 고속버스 타고 내려오다가 화장실 다녀온다고 잠깐 밖에 나갔다 온다고. 그런데 그때 내렸다가 시간이 지나도 안 돌아오니까 어머니가 버스에서 내려서 확인하러 갔던 거죠."

아들은 화장실 안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습니다.

군 제대 후 3년 넘게 서울 노량진에서 경찰 공무원 준비를 해온 남 씨.

시험에 매번 낙방했고, 지난달 23일에도 필기시험에 떨어진 후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왔다고 합니다.

<녹취> 경찰관계자(음성변조) : "'3월에 학원 개강에 맞춰서 올라간 지 한 달 정도 됐다'라고 했고 저희가 파악한 바로는 당일 아침인가 새벽인가에도 한 번 자살시도를 한 적이 있었어요."

경찰은 남 씨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남 씨가 떨어진 경찰 공무원 필기시험 발표날, 서울의 한 공원에서도 32살의 또 다른 공시생이 안타까운 선택을 했습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계속된 실패로 살아갈 힘이 없다는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이들이 공무원의 꿈을 꿨던 서울 노량진 학원가.

반지하 고시원에 공시생 4년 차 30살 이 모 씨의 방이 있습니다.

겨우 몸을 뻗고 누울 수 있는 1인용 침대와 책상이 맞닿아있는 작은 방.

이곳에서 매일 10시간 넘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오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OO(공시생 4년 차/음성변조) : "대학교 졸업하고 27살 때부터 지금 서른 살인데 27, 28, 29, 30. 3년 좀 더 넘은 것 같아요."

1~2년 열심히 하다 보면 합격증을 받아들 거로 생각했지만, 바늘구멍 같은 합격문을 통과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OO(공시생 4년 차/음성변조) : "이십 대 때는 솔직히 한 번 떨어지면 ‘아 내년에 공부해서 합격하면 되겠구나. 늦지 않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서른 살이 되니까 저는 여전히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는데 세상은 많이 바뀌었어요. 뭐 하나 이뤄낸 부분이 없으니까 이런 부분이 좀 힘듭니다."

부모님에게 더는 신세를 질 수 없어, 고시원 총무로 일하며 수험 비용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OO(공시생 4년 차/음성변조) : "공무원 준비할 때 도움을 많이 주셨는데 더 이상 받기가 너무 죄송스럽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든 돈 벌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고시원 총무밖에 없어서 병행하고 있어요."

주변 친구들의 합격 소식을 마냥 함께 기뻐해 줄 수도 없습니다.

<인터뷰> 이OO(공시생 4년 차/음성변조) : "합격한 사람들의 SNS라든지 사진으로 정말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아 정말 부럽더라고요. 제가 공무원 준비하면서 핸드폰을 계속 바꿨어요. 또 떨어졌다는 소식을 차마 말 못 하겠더라고요."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더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인터뷰> 이OO(공시생 4년 차/음성변조) : "마땅히 취업하려고 해도 스펙도 지금 다 단절돼있는 상태이고 공무원만 지금 계속 준비했던 터라서 이 길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현재는."

이 씨 같은 공시생들은 수험 기간이 길어질수록 더 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합니다.

<인터뷰> 장정원(공시생 5년 차) : "네 번째 시험 떨어졌을 때는 될 것 같았는데 저도 안 되니까 많이 힘들고 포기하고 싶고 부모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에다가 저 자신한테 자괴감이 진짜 많이 들었어요."

<인터뷰> 김재황(공시생 1년 차) : "주변에서 또 어떤 사람들은 되고, 지인들은 되고 나는 안 됐을 때 그때 좌절감도 좀 생기고……."

경제적인 부분도 공시생들에겐 큰 고민입니다.

학원비와 교재비, 생활비 등 아무리 아껴 써도 시험 준비에 한 달 평균 1백만 원 이상이 들어갑니다.

<인터뷰> 문형후(공시생 2년 차) : "아무래도 금전적인 문제가 제일 힘들죠. 왜냐면 학원비도 되게 비싸고 책도 요새는 되게 많이 비싸더라고요. 그리고 체력학원이나 면접학원도 돈이 또 들어가고……."

현재 전국의 공무원 시험 준비생은 25만여 명가량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합격의 문턱을 넘는 사람은 응시생 1백 명 중에 3명꼴도 안 되는 상황입니다.

지난 8일 치러진 9급 공무원 시험에는 17만여 명이 응시했는데, 역대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인터뷰> 장정원(공시생 5년 차) : "망설이죠. 다시 할까 말까? 하다가도 결국 요새 취업이 되기 힘드니까 그나마 이거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다시 준비하는 거죠. 어쩔 수 없이."

편하고 안정적인 곳을 찾아 스스로 한 선택이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지만, 이들에겐 화려한 스펙 없이도 청년 취업난을 뚫고 꿈을 펼칠 수 있다는 희망이 공무원 시험입니다.

<인터뷰> 문형후(공시생 2년 차) : "이제 공무원 돼서 돈도 벌고 부모님께 좀 떳떳한 아들이 되는 거? 그게 제일 바라는 것 같아요."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청년 취업 시장의 현실.

전문가들은 수험 기간이 길어질수록 수험생들의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주변에서 관심으로 보듬어줘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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