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연차휴가 다 써라? ILO 협약이 뭐길래…

입력 2017.04.30 (09:01) 수정 2017.04.30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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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이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 따라 연차휴가를 다 사용하도록 의무화하겠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제시한 공약입니다.

눈치 보지 않고 휴가를 다 쓸 수 있으니 좋겠다는 평가부터 연차수당을 못 받게 하면 소득이 줄어든다는 볼멘소리까지 반응이 다양했습니다.

그런데 이 공약에 등장하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이라는 건 대체 뭘까요? 왜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이 아닌 ILO 협약에 따른다는 말이 나오는 걸까요?

ILO 협약, 노동권의 ‘글로벌 스탠더드’

국제노동기구(ILO)는 노동조건 개선과 노동자 지위 향상을 위해 존재하는 국제연합(UN)의 전문기구입니다. UN 회원국 대다수인 187개 나라가 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ILO는 1919년 탄생한 뒤로 노동권의 글로벌 스탠더드격인 '협약'을 꾸준히 만들어 국제 사회에 제시하고 있습니다. 협약은 이를 비준하는 나라에는 국내법과 같은 강제력을 갖습니다. 현재 189호까지 만들어졌는데, 제132호가 '연차유급휴가에 관한 협약'입니다.

연차휴가 협약의 여러 조항 가운데 핵심은 다음 3가지입니다.


즉, 비정규직을 포함한 모든 근로자에게 최소한 연간 21일(2주 이상의 연속사용)을 보장하고, 노동자가 퇴사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미사용 휴가에 대한 보상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연차휴가가 주말로 충족될 수 없는 휴식을 누리기 위한 제도라는 점, 돈으로 거래되어서는 안 되는 권리라는 점을 반영하자는 취지입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은 1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에게 15일을 보장하고, 다 쓰지 못할 경우 금전적 보상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ILO가 제시한 기준과는 특히 휴가 기간에서 큰 차이가 있지요.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아직 ILO 연차휴가 협약을 비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가기] ILO 협약 132호 ‘유급연차휴가에 관한 협약’ 비준국

187개 회원국 가운데 37개국만 비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제 기준에 미치지 못한 게 크게 부끄러워할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비준국 가운데 우리와 소득수준이 비슷하거나 낮은 나라도 여럿 포함됐다는 점에서 '연차휴가 협약'이 '먹고 살 만한 나라들의 사치품'이 아니라는 점은 주목할만합니다.

ILO 협약 비준...OECD 평균 61개, 한국은 29개

이렇게 ILO 협약은 노동기준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제시함으로써, 노동권에 관한 한 어느 나라가 선진국인지, 후진국인지를 가늠케 해주는 잣대 역할을 합니다.

가령, 국내에서 노동 법규나 제도와 관련해 논란이 생기면, 관련되는 ILO 협약을 찾아 그 내용을 살펴보고, 얼마나 많은 회원국이 비준했는지, 비준국 가운데 우리와 비슷한 소득 수준이나 문화를 가진 나라들이 얼마나 포함됐는지를 따져보면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하다는 얘깁니다.

현재 ILO 회원국들은 189개 협약 가운데 평균 47개를, OECD 국가들은 평균 61개를 비준했습니다. 우리나라는 29개를 비준했습니다. 양적 잣대로 따지면, 우리나라는 '노동 후진국'이라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습니다.


개수 말고도 중요한 기준이 있습니다. ILO는 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8개를 골라 '핵심 협약'으로 정해뒀습니다. 회원국이라면 반드시 비준하도록 하고, 지구촌의 모든 나라와 일터에 예외 없이 적용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 핵심 협약 8개 가운데 4개를 비준하지 않고 있습니다. 결사의 자유(87호, 98호)와 강제노동 금지(29호, 105호)에 관한 협약입니다.

‘핵심 협약’도 절반만 비준…왜?

노동 3권이 보장된 나라에서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협약을 비준하지 않는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지만, '강제노동 금지'와 관련된 협약의 경우에는 고민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ILO 협약 29호는 국방의무에 종사하는 군인은 강제노동으로 보지 않지만, 군 복무 대신 공공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것은 강제노동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공익근무요원' 제도가 그 경우입니다.

또, 협약 105호는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대한 처벌로서의 강제노동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국가보안법이나 집시법 위반, 파업에 의한 업무방해죄 등으로 징역형(강제노역 수반)을 선고받으면 이 협약에 어긋납니다.

따라서, '강제노동'과 관련된 협약을 비준하려면 공익근무요원 제도나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한 징역형 부과 등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되는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합니다. 특수성을 고려한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정부의 해명을 마냥 비판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노동 후진국’으로 불리는 이유…87호·98호 협약

하지만, '결사의 자유' 협약인 87호와 98호 비준 문제는 사정이 좀 다릅니다. 우리나라가 국내 노동계는 물론 국제 사회로부터 '노동 후진국'이라는 비판을 받는 주된 근거가 돼왔습니다. 87호와 98호는 노동기본권과 관련된 '핵심 중 핵심' 협약으로 꼽히기 때문입니다.


이들 협약은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문제와 필수공익사업장 필수유지업무, 해고노동자 노조가입, 특수고용직 등 비정규직의 노조활동 보장, 교사·공무원의 단체교섭권 보장 등 우리 사회의 뜨거운 노동 이슈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예컨대, 협약 87호는 군인과 경찰을 제외한 노동자들의 포괄적인 노조 결성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협약을 비준하고 그에 맞춰 국내 법규를 고치면 지금처럼 해직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했다는 이유로 전교조의 노조 자격을 박탈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게 됩니다.

또, 학습지 교사나 택배 기사 등 우리나라에서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도 노동 3권을 보장받게 됩니다.

정부는 이 두 협약을 비준하지 못하는 이유로 "공무원 노조 가입 자격을 6급 이하로 한정한 국내 법과 충돌한다" "노사 간 이해관계가 엇갈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등의 견해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미국도 이 두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으니 우리만 문제 삼을 일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두 협약을 비준한 나라는 각각 154개국과 164개국에 이릅니다. 아시아의 일본과 방글라데시부터 아프리카의 가봉과 콩고, 중동의 리비아와 이스라엘, 중미의 멕시코와 쿠바, 대다수 유럽 국가까지... ILO 회원국의 80%를 넘습니다. 특히, OECD 국가 가운데 이 두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나라는 우리나라와 미국밖에 없습니다.

국내에서는 어떻게 해직 교사가 교직원 노조에 가입하고 고위 공무원이 노조원이 될 수 있느냐며 논쟁이 벌어지지만, 눈을 나라 밖으로 돌려보면 소득 수준과 문화적 차이를 넘어 대다수 국가가 오래전부터 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OECD 가입 서한 “결사의 자유 등 국제 기준 약속”

1996년 12월 당시 우리 정부는 한국 사회의 여러 규범을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담은 편지를 OECD 사무총장에게 보냈습니다. 선진국 모임인 OECD에 가입하기 위해섭니다. 편지에는 '결사의 자유' 등 노동기본권을 국제 기준에 맞춰 개정하겠다는 약속도 포함됐습니다.


그 후 우리나라의 노동권은 조금씩 개선돼왔지만, 국제적인 기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2010년에는 유럽연합(EU)과 공동서명한 자유무역협정문에도 노동권에 관한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키겠다는 약속을 담았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도 대한민국의 노동권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미흡하다는 평가를 국제 사회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전교조의 노조 자격 박탈에서 보듯, 오히려 퇴보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대선에 등장한 ‘ILO 협약’, 이번에는 다를까?

1996년 OECD 회원국이 된 뒤, 우리는 다양한 분야에 'OECD 평균'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삶의 질을 끌어올려 왔습니다. 우리 노동자들이 OECD 평균보다 연간 수백 시간을 더 일한다는 사실은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사회적 요구로, 대선 후보들의 단골 공약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OECD보다 5년 앞서 ILO 회원국이 됐고 18년 연속으로 ILO 이사국을 지냈음에도, ILO가 제시한 노동권의 '글로벌 스탠더드' 상당수는 아직 우리 사회에 낯설게 느껴집니다.

대다수 국민은 ILO 협약이 무엇인지, 우리가 국제 사회에 노동권과 관련해 어떤 약속을 했는지, '핵심 협약' 비준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대다수 국가가 받아들인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도 우리 경제 수준에서는 과분한 것이 아닌지,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건 아닌지 우려가 나오는 게 현실입니다.

화려한 공약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이번 대선에 나온 후보들 가운데 상당수가 ILO 협약을 거론하며 국내 법규를 개정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일부 '핵심 협약'을 우선 비준하겠다고 못 박은 후보도 있습니다.

'ILO 협약'의 의미를 헤아리고 곱씹어볼수록 그 약속의 의미는 무거워지고, '노동자가 더 행복한 나라'도 앞당겨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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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30 09:01:09
    • 수정2017-04-30 10:22:49
    취재후·사건후
"노동자들이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 따라 연차휴가를 다 사용하도록 의무화하겠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제시한 공약입니다.

눈치 보지 않고 휴가를 다 쓸 수 있으니 좋겠다는 평가부터 연차수당을 못 받게 하면 소득이 줄어든다는 볼멘소리까지 반응이 다양했습니다.

그런데 이 공약에 등장하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이라는 건 대체 뭘까요? 왜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이 아닌 ILO 협약에 따른다는 말이 나오는 걸까요?

ILO 협약, 노동권의 ‘글로벌 스탠더드’

국제노동기구(ILO)는 노동조건 개선과 노동자 지위 향상을 위해 존재하는 국제연합(UN)의 전문기구입니다. UN 회원국 대다수인 187개 나라가 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ILO는 1919년 탄생한 뒤로 노동권의 글로벌 스탠더드격인 '협약'을 꾸준히 만들어 국제 사회에 제시하고 있습니다. 협약은 이를 비준하는 나라에는 국내법과 같은 강제력을 갖습니다. 현재 189호까지 만들어졌는데, 제132호가 '연차유급휴가에 관한 협약'입니다.

연차휴가 협약의 여러 조항 가운데 핵심은 다음 3가지입니다.


즉, 비정규직을 포함한 모든 근로자에게 최소한 연간 21일(2주 이상의 연속사용)을 보장하고, 노동자가 퇴사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미사용 휴가에 대한 보상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연차휴가가 주말로 충족될 수 없는 휴식을 누리기 위한 제도라는 점, 돈으로 거래되어서는 안 되는 권리라는 점을 반영하자는 취지입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은 1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에게 15일을 보장하고, 다 쓰지 못할 경우 금전적 보상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ILO가 제시한 기준과는 특히 휴가 기간에서 큰 차이가 있지요.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아직 ILO 연차휴가 협약을 비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가기] ILO 협약 132호 ‘유급연차휴가에 관한 협약’ 비준국

187개 회원국 가운데 37개국만 비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제 기준에 미치지 못한 게 크게 부끄러워할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비준국 가운데 우리와 소득수준이 비슷하거나 낮은 나라도 여럿 포함됐다는 점에서 '연차휴가 협약'이 '먹고 살 만한 나라들의 사치품'이 아니라는 점은 주목할만합니다.

ILO 협약 비준...OECD 평균 61개, 한국은 29개

이렇게 ILO 협약은 노동기준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제시함으로써, 노동권에 관한 한 어느 나라가 선진국인지, 후진국인지를 가늠케 해주는 잣대 역할을 합니다.

가령, 국내에서 노동 법규나 제도와 관련해 논란이 생기면, 관련되는 ILO 협약을 찾아 그 내용을 살펴보고, 얼마나 많은 회원국이 비준했는지, 비준국 가운데 우리와 비슷한 소득 수준이나 문화를 가진 나라들이 얼마나 포함됐는지를 따져보면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하다는 얘깁니다.

현재 ILO 회원국들은 189개 협약 가운데 평균 47개를, OECD 국가들은 평균 61개를 비준했습니다. 우리나라는 29개를 비준했습니다. 양적 잣대로 따지면, 우리나라는 '노동 후진국'이라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습니다.


개수 말고도 중요한 기준이 있습니다. ILO는 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8개를 골라 '핵심 협약'으로 정해뒀습니다. 회원국이라면 반드시 비준하도록 하고, 지구촌의 모든 나라와 일터에 예외 없이 적용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 핵심 협약 8개 가운데 4개를 비준하지 않고 있습니다. 결사의 자유(87호, 98호)와 강제노동 금지(29호, 105호)에 관한 협약입니다.

‘핵심 협약’도 절반만 비준…왜?

노동 3권이 보장된 나라에서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협약을 비준하지 않는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지만, '강제노동 금지'와 관련된 협약의 경우에는 고민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ILO 협약 29호는 국방의무에 종사하는 군인은 강제노동으로 보지 않지만, 군 복무 대신 공공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것은 강제노동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공익근무요원' 제도가 그 경우입니다.

또, 협약 105호는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대한 처벌로서의 강제노동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국가보안법이나 집시법 위반, 파업에 의한 업무방해죄 등으로 징역형(강제노역 수반)을 선고받으면 이 협약에 어긋납니다.

따라서, '강제노동'과 관련된 협약을 비준하려면 공익근무요원 제도나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한 징역형 부과 등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되는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합니다. 특수성을 고려한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정부의 해명을 마냥 비판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노동 후진국’으로 불리는 이유…87호·98호 협약

하지만, '결사의 자유' 협약인 87호와 98호 비준 문제는 사정이 좀 다릅니다. 우리나라가 국내 노동계는 물론 국제 사회로부터 '노동 후진국'이라는 비판을 받는 주된 근거가 돼왔습니다. 87호와 98호는 노동기본권과 관련된 '핵심 중 핵심' 협약으로 꼽히기 때문입니다.


이들 협약은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문제와 필수공익사업장 필수유지업무, 해고노동자 노조가입, 특수고용직 등 비정규직의 노조활동 보장, 교사·공무원의 단체교섭권 보장 등 우리 사회의 뜨거운 노동 이슈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예컨대, 협약 87호는 군인과 경찰을 제외한 노동자들의 포괄적인 노조 결성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협약을 비준하고 그에 맞춰 국내 법규를 고치면 지금처럼 해직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했다는 이유로 전교조의 노조 자격을 박탈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게 됩니다.

또, 학습지 교사나 택배 기사 등 우리나라에서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도 노동 3권을 보장받게 됩니다.

정부는 이 두 협약을 비준하지 못하는 이유로 "공무원 노조 가입 자격을 6급 이하로 한정한 국내 법과 충돌한다" "노사 간 이해관계가 엇갈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등의 견해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미국도 이 두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으니 우리만 문제 삼을 일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두 협약을 비준한 나라는 각각 154개국과 164개국에 이릅니다. 아시아의 일본과 방글라데시부터 아프리카의 가봉과 콩고, 중동의 리비아와 이스라엘, 중미의 멕시코와 쿠바, 대다수 유럽 국가까지... ILO 회원국의 80%를 넘습니다. 특히, OECD 국가 가운데 이 두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나라는 우리나라와 미국밖에 없습니다.

국내에서는 어떻게 해직 교사가 교직원 노조에 가입하고 고위 공무원이 노조원이 될 수 있느냐며 논쟁이 벌어지지만, 눈을 나라 밖으로 돌려보면 소득 수준과 문화적 차이를 넘어 대다수 국가가 오래전부터 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OECD 가입 서한 “결사의 자유 등 국제 기준 약속”

1996년 12월 당시 우리 정부는 한국 사회의 여러 규범을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담은 편지를 OECD 사무총장에게 보냈습니다. 선진국 모임인 OECD에 가입하기 위해섭니다. 편지에는 '결사의 자유' 등 노동기본권을 국제 기준에 맞춰 개정하겠다는 약속도 포함됐습니다.


그 후 우리나라의 노동권은 조금씩 개선돼왔지만, 국제적인 기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2010년에는 유럽연합(EU)과 공동서명한 자유무역협정문에도 노동권에 관한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키겠다는 약속을 담았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도 대한민국의 노동권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미흡하다는 평가를 국제 사회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전교조의 노조 자격 박탈에서 보듯, 오히려 퇴보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대선에 등장한 ‘ILO 협약’, 이번에는 다를까?

1996년 OECD 회원국이 된 뒤, 우리는 다양한 분야에 'OECD 평균'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삶의 질을 끌어올려 왔습니다. 우리 노동자들이 OECD 평균보다 연간 수백 시간을 더 일한다는 사실은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사회적 요구로, 대선 후보들의 단골 공약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OECD보다 5년 앞서 ILO 회원국이 됐고 18년 연속으로 ILO 이사국을 지냈음에도, ILO가 제시한 노동권의 '글로벌 스탠더드' 상당수는 아직 우리 사회에 낯설게 느껴집니다.

대다수 국민은 ILO 협약이 무엇인지, 우리가 국제 사회에 노동권과 관련해 어떤 약속을 했는지, '핵심 협약' 비준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대다수 국가가 받아들인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도 우리 경제 수준에서는 과분한 것이 아닌지,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건 아닌지 우려가 나오는 게 현실입니다.

화려한 공약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이번 대선에 나온 후보들 가운데 상당수가 ILO 협약을 거론하며 국내 법규를 개정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일부 '핵심 협약'을 우선 비준하겠다고 못 박은 후보도 있습니다.

'ILO 협약'의 의미를 헤아리고 곱씹어볼수록 그 약속의 의미는 무거워지고, '노동자가 더 행복한 나라'도 앞당겨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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