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010’ 보이스 피싱…별정 통신사의 묵인?

입력 2017.05.02 (17:53) 수정 2017.05.0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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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010’ 보이스 피싱…별정 통신사의 묵인?

[취재후] ‘010’ 보이스 피싱…별정 통신사의 묵인?

보이스피싱, '잡아도 잡아도'...줄지 않는 이유는?

"070으로 왔으면 내가 혹시 몰라서 의심을 했을텐데, 010으로 오니까 그거를 의심을 안 한 거지요. 한국 사람인 줄 알았지요."

73살 김 모 씨는 보이스피싱을 당하고 두 달이 더 지났지만 아직도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고 있습니다. 몸이 아파서 누워만 지냅니다. 김 씨는 지난 2월 말 아들을 납치했다는 보이스피싱에 속아 2800만 원을 뜯겼습니다. 김 씨가 "평생 천 원짜리 한 장도 안 써 가면서 모은 돈"입니다. 김 씨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지금까지 귓전에 남아있습니다.

2016년 경찰이 검거한 보이스피싱 조직원만 15,566명입니다. 열심히 잡았습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발생한 범죄는 17,040건에 이릅니다. 2015년 18,549건보다는 조금 줄었지만 큰 차이가 없습니다.

잡아도 잡아도 보이스피싱이 근절되지 않는 건, 검거 인원이 대부분 조직의 말단 조직원에 불과한 탓이 큽니다. 최근 2달 간 경찰이 보이스피싱 조직원을 검거했다고 낸 보도자료 5건을 보겠습니다. 검거 인원이 인출책이나 송금책, 대포통장 모집책 등에 불과합니다.

이들은 조직의 우두머리가 누구이고 체계가 어떻게 되는지 잘 모릅니다. 경찰은 보도자료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원'을 검거했다고 밝혔지만 '조직원'이라는 표현이 낮뜨거울 때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보이스피싱을 실질적으로 줄이려면 중국에 있는 '콜센터'를 폐쇄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중국의 콜센터는 우리의 형사사법권 밖에 있습니다. 보이스피싱에 사용된 전화 번호를 추적해도 최초 발신지가 중국으로 나오면 인터폴에 공조를 요청하는 거 외엔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일선 경찰서의 한 지능팀 수사관은 "번호 추적을 해도 명의가 도용됐거나 콜센터가 중국에 있어서 의미가 없다"면서 "차라리 그 시간에 국내에서 활동하는 범인을 한 명이라도 잡는 게 더 낫다"고 말했습니다.


'070 -> 010' 발신 번호 조작 서비스...별정 통신사 수사

그렇다면 보이스피싱 피해를 줄이는 방법은 아예 없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중국 콜센터를 폐쇄시킬 수 없다면 보이스피싱 전화를 사람들이 애초에 받지 않도록 하는 게 최선일 겁니다. 보이스피싱에 노출될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죠. 보이스피싱 조직의 '발신 번호 조작'을 막는 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보이스피싱 전화는 대부분 발신자 번호가 인터넷 전화인 070에서 010 또는 02로 바뀌어서 걸려옵니다. 사람들이 070 번호가 뜨는 전화는 잘 받지 않으니까 국내전화인 것처럼 발신 번호를 조작하는 겁니다. 또 검찰이나 금융감독원을 사칭하려면 발신 번호를 바꾸는 게 필수인 것이죠.

발신 번호 조작은 현행 전기통신사업상 금지돼 있습니다. 그런데도 발신 번호 조작이 이뤄지는 건, 별정 통신사들이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탓입니다. 최근 경찰이 서울의 한 별정 통신사를 압수수색했습니다. 이 업체는 발신 번호를 임의로 입력할 수 있는 인터넷 전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운영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즉, 가입 번호는 070으로 시작하지만 이와 별개로 자신이 원하는 발신 번호를 설정할 수 있는 겁니다. 이 애플리케이션 가입자는 3300여 명에 이릅니다. 전기통신사업법에는 '발신 번호를 거짓으로 표시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발신 번호를 조작 서비스를 제공하다 적발된 별정 통신사는 지난 2년 동안 29곳이나 됩니다.(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실 자료) 인터넷진흥원 관계자는 "일부 별정 통신사들은 불법이라는 걸 알면서도 보이스피싱 조직과 공모해 발신 번호를 조작해주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별정 통신사 560여 개로 늘어나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보이스피싱에 악용되는 것도 묵인한다는 겁니다.

적발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게 문제입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적발된 29곳에 대해 시정명령이나 벌칙만 부과했습니다. 수사 의뢰를 한 건 1건도 없습니다. 점검도 제대로 안 되고 있습니다. 미래부가 별정 통신사를 점검한 실적을 보면, 2015년 71곳, 2016년 121곳에 불과합니다. 별정 통신사가 560여 개니까 2년 동안 전체의 절반도 점검을 하지 못 한 셈입니다. 허술한 관리 감독 속에 오늘도 발신 번호 조작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연관 기사] [뉴스9] 발신번호 조작 돕는 별정 통신사 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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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010’ 보이스 피싱…별정 통신사의 묵인?
    • 입력 2017-05-02 17:53:52
    • 수정2017-05-02 17:54:42
    취재후·사건후
보이스피싱, '잡아도 잡아도'...줄지 않는 이유는?

"070으로 왔으면 내가 혹시 몰라서 의심을 했을텐데, 010으로 오니까 그거를 의심을 안 한 거지요. 한국 사람인 줄 알았지요."

73살 김 모 씨는 보이스피싱을 당하고 두 달이 더 지났지만 아직도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고 있습니다. 몸이 아파서 누워만 지냅니다. 김 씨는 지난 2월 말 아들을 납치했다는 보이스피싱에 속아 2800만 원을 뜯겼습니다. 김 씨가 "평생 천 원짜리 한 장도 안 써 가면서 모은 돈"입니다. 김 씨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지금까지 귓전에 남아있습니다.

2016년 경찰이 검거한 보이스피싱 조직원만 15,566명입니다. 열심히 잡았습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발생한 범죄는 17,040건에 이릅니다. 2015년 18,549건보다는 조금 줄었지만 큰 차이가 없습니다.

잡아도 잡아도 보이스피싱이 근절되지 않는 건, 검거 인원이 대부분 조직의 말단 조직원에 불과한 탓이 큽니다. 최근 2달 간 경찰이 보이스피싱 조직원을 검거했다고 낸 보도자료 5건을 보겠습니다. 검거 인원이 인출책이나 송금책, 대포통장 모집책 등에 불과합니다.

이들은 조직의 우두머리가 누구이고 체계가 어떻게 되는지 잘 모릅니다. 경찰은 보도자료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원'을 검거했다고 밝혔지만 '조직원'이라는 표현이 낮뜨거울 때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보이스피싱을 실질적으로 줄이려면 중국에 있는 '콜센터'를 폐쇄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중국의 콜센터는 우리의 형사사법권 밖에 있습니다. 보이스피싱에 사용된 전화 번호를 추적해도 최초 발신지가 중국으로 나오면 인터폴에 공조를 요청하는 거 외엔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일선 경찰서의 한 지능팀 수사관은 "번호 추적을 해도 명의가 도용됐거나 콜센터가 중국에 있어서 의미가 없다"면서 "차라리 그 시간에 국내에서 활동하는 범인을 한 명이라도 잡는 게 더 낫다"고 말했습니다.


'070 -> 010' 발신 번호 조작 서비스...별정 통신사 수사

그렇다면 보이스피싱 피해를 줄이는 방법은 아예 없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중국 콜센터를 폐쇄시킬 수 없다면 보이스피싱 전화를 사람들이 애초에 받지 않도록 하는 게 최선일 겁니다. 보이스피싱에 노출될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죠. 보이스피싱 조직의 '발신 번호 조작'을 막는 게 중요한 이유입니다.

보이스피싱 전화는 대부분 발신자 번호가 인터넷 전화인 070에서 010 또는 02로 바뀌어서 걸려옵니다. 사람들이 070 번호가 뜨는 전화는 잘 받지 않으니까 국내전화인 것처럼 발신 번호를 조작하는 겁니다. 또 검찰이나 금융감독원을 사칭하려면 발신 번호를 바꾸는 게 필수인 것이죠.

발신 번호 조작은 현행 전기통신사업상 금지돼 있습니다. 그런데도 발신 번호 조작이 이뤄지는 건, 별정 통신사들이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탓입니다. 최근 경찰이 서울의 한 별정 통신사를 압수수색했습니다. 이 업체는 발신 번호를 임의로 입력할 수 있는 인터넷 전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운영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즉, 가입 번호는 070으로 시작하지만 이와 별개로 자신이 원하는 발신 번호를 설정할 수 있는 겁니다. 이 애플리케이션 가입자는 3300여 명에 이릅니다. 전기통신사업법에는 '발신 번호를 거짓으로 표시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발신 번호를 조작 서비스를 제공하다 적발된 별정 통신사는 지난 2년 동안 29곳이나 됩니다.(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실 자료) 인터넷진흥원 관계자는 "일부 별정 통신사들은 불법이라는 걸 알면서도 보이스피싱 조직과 공모해 발신 번호를 조작해주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별정 통신사 560여 개로 늘어나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가입자를 늘리기 위해 보이스피싱에 악용되는 것도 묵인한다는 겁니다.

적발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게 문제입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적발된 29곳에 대해 시정명령이나 벌칙만 부과했습니다. 수사 의뢰를 한 건 1건도 없습니다. 점검도 제대로 안 되고 있습니다. 미래부가 별정 통신사를 점검한 실적을 보면, 2015년 71곳, 2016년 121곳에 불과합니다. 별정 통신사가 560여 개니까 2년 동안 전체의 절반도 점검을 하지 못 한 셈입니다. 허술한 관리 감독 속에 오늘도 발신 번호 조작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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