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보고 싶어요”…30년 만에 ‘엄마 찾아 삼만리’

입력 2017.05.05 (08:34) 수정 2017.05.05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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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오늘 뉴스따라잡기에선 어린이날을 맞아 조금 특별한 분과 만나고 왔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이 낯선 입양아.

두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된 뒤 30년 만에 어머니를 찾아온 마리아 자혜 세비지 씨입니다.

한국을 떠날 때 두 살이던 아이는 벌써 결혼을 앞둔 30대 성인이 됐습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항상 마음속에 한국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살았다고 합니다.

특히, 결혼을 앞두고 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더 커졌다고 하는데요.

30년 만에 어머니를 찾아 나선 그녀의 먼 길을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리포트>

서울의 한 시민단체 사무실입니다.

해외로 떠났던 입양아들을 지원하는 이곳에 32살 마리아 자혜 세비지 씨가 머물고 있습니다.

<녹취> 마리아 자혜 세비지(한인 입양아) : "이건 입양 기관에서의 저예요. 한 살 때예요. 친모는 제가 9개월 때 저를 입양 기관에 데려갔어요."

자혜 씨는 30년 전 두 살 때 스웨덴계 미국인 부부에게 입양돼 한국을 떠났습니다.

입양 당시 한국에서 썼던 자혜라는 이름을 지금도 함께 쓰고 있습니다.

<녹취> 마리아 자혜 세비지(한인 입양아) : "한자로 적은 제 이름이에요. 성은 ‘이’고요. ‘자혜’라고 적혀있어요. 이건 제 삶의 중요한 일부분이에요. 미국에 가기 전에 제가 누구였는지 한국에 정말 존재했는지를 담고 있어요."

자혜 씨는 입양된 이후 2013년에 한국을 처음 방문했습니다.

<인터뷰> 마리아 자혜 세비지(한인 입양아) : : "2015년 가을까지 한국에 머물렀죠. 하지만 그때 제 친부모님을 찾지는 않았어요. 단지 현재의 한국이 어떤 모습인지 보고 싶었을 뿐이죠."

그러다 문득 지난해부터 친부모님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친어머니를 꼭 한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마리아 자혜 세비지(한인 입양아) : "제 친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항상 해 오긴 했어요. 저를 입양 보내고 난 후 어머니의 인생이 얼마나 힘드셨을지, 이제 제가 나이가 들고 제 가족을 꾸릴 때가 되어가니까 점점 더 어머니를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1987년 국내 입양기관에서 작성된 자혜 씨의 입양 서류입니다.

당시 자혜 씨를 입양기관에 맡긴 어머니의 나이는 23살, 공장에서 자혜 씨의 친아버지를 만났고, 헤어진 후 임신 사실을 알았다고 적혀있습니다.

자혜 씨는 1986년 3월,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에서 태어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어머니가 1년 가까이 아이를 혼자 키웠지만, 형편이 좋지 않아 입양을 보낸다고 돼있습니다.

30년 동안 어딘가에서 자책하고 있을지도 모를 어머니를 위해 자혜 씨는 용기를 내기로 했습니다.

강원도 원주로 향합니다.

현재로선 어머니의 흔적을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인터뷰> 마리아 자혜 세비지(한인 입양아) : "제가 태어난 곳의 사람들과 대화해보고 싶어요. 아주 작은 마을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제 가족이나 친모에 대해 알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이곳이 어머니의 고향이자, 자혜 씨가 태어난 곳입니다.

먼저 면사무소를 찾았습니다.

수백 번도 더 봤던 입양서류를

꺼내 도움을 청했습니다.

<녹취> 이용철(신림면 면장) : "지금 아마 여기서 떠난 지가 오래돼서 따님이. 그래서 아마 쉽게 찾기는 어려울 듯한데……."

실망한 표정의 자혜 씨.

면사무소 자료에는 어머니의 흔적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을 찾아 다시 수소문해보기로 했습니다.

<녹취> 손승삼(신림1리 이장) : "저보다 오래 사신 분한테 정보를 캐냈는데 그런 분은 없고 (옛날에 살던 사람들이) 90%는 안 계세요. 다 돌아가시고 (현재 주민들은) 다른 데서 다 이사 와서 살기 때문에 좀 찾기 힘들지 싶어요."

30년이라는 세월 탓인지, 자혜 씨의 어머니를 기억하는 사람을 찾긴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 마을에 있었던 초등학교에는 혹시 단서가 없을지, 친어머니 나잇대로 추정되는 졸업생들의 졸업앨범을 뒤져봤습니다.

<녹취> "이게 그때 마을 모습이에요? (네, 그때 당시예요.) 그때 당시 마을 모습이 정말 궁금했어요."

어머니와 관련된 건 무엇이든지 보고 싶었다는 자혜 씨, 이 앨범 한장 한장이 소중하기만 합니다.

<녹취> "제 친어머니가 여기 안 계신다고 하더라도 누군가 제 친어머니를 알 수 있다는 게 정말 엄청난 것 같아요."

졸업사진을 천천히 훑어보던 자혜 씨의 시선이 한 사진에 멈춥니다.

<녹취> "이 분 저랑 닮은 것 같아요. 저 어렸을 때 이렇게 생겼었어요. 머리카락도 저랑 비슷해요. 끝부분이 반 곱슬머리인 게요. 비슷한 모습을 찾고 싶어요."

사진을 보고 또 보지만, 사진 속 아이가 어머니인지는 당장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인터뷰> 마리아 자혜 세비지(한인 입양아) : "친어머니 이름이 진짜가 아닐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도 들었고 제 친어머니일 가능성이 있는 분들의 이름도 보고 사진도 보고 그 사진 속 분들과 공통점도 있었어요. 제가 답을 찾을 때까지 계속 노력하고 싶어요."

결혼 후에도 한국에 정착해 자신과 같은 입양아들의 친부모 찾기를 도울 생각이라는 자혜 씨.

어딘가에 있을 어머니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인터뷰> 마리아 자혜 세비지(한인 입양아) : "사랑해요. 그리고 전 화나지 않았어요. 제 인생 대부분은 행복했지만 우리가 떨어진 것 때문에 여전히 공허함이 느껴져요. 언젠가 서로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랑해요."

1986년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에서 아이를 낳고, 이듬해 입양 기관에 맡겼던 당시 23살 어머니의 연락을 자혜 씨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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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보고 싶어요”…30년 만에 ‘엄마 찾아 삼만리’
    • 입력 2017-05-05 08:36:15
    • 수정2017-05-05 09:5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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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오늘 뉴스따라잡기에선 어린이날을 맞아 조금 특별한 분과 만나고 왔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이 낯선 입양아.

두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된 뒤 30년 만에 어머니를 찾아온 마리아 자혜 세비지 씨입니다.

한국을 떠날 때 두 살이던 아이는 벌써 결혼을 앞둔 30대 성인이 됐습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항상 마음속에 한국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살았다고 합니다.

특히, 결혼을 앞두고 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더 커졌다고 하는데요.

30년 만에 어머니를 찾아 나선 그녀의 먼 길을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리포트>

서울의 한 시민단체 사무실입니다.

해외로 떠났던 입양아들을 지원하는 이곳에 32살 마리아 자혜 세비지 씨가 머물고 있습니다.

<녹취> 마리아 자혜 세비지(한인 입양아) : "이건 입양 기관에서의 저예요. 한 살 때예요. 친모는 제가 9개월 때 저를 입양 기관에 데려갔어요."

자혜 씨는 30년 전 두 살 때 스웨덴계 미국인 부부에게 입양돼 한국을 떠났습니다.

입양 당시 한국에서 썼던 자혜라는 이름을 지금도 함께 쓰고 있습니다.

<녹취> 마리아 자혜 세비지(한인 입양아) : "한자로 적은 제 이름이에요. 성은 ‘이’고요. ‘자혜’라고 적혀있어요. 이건 제 삶의 중요한 일부분이에요. 미국에 가기 전에 제가 누구였는지 한국에 정말 존재했는지를 담고 있어요."

자혜 씨는 입양된 이후 2013년에 한국을 처음 방문했습니다.

<인터뷰> 마리아 자혜 세비지(한인 입양아) : : "2015년 가을까지 한국에 머물렀죠. 하지만 그때 제 친부모님을 찾지는 않았어요. 단지 현재의 한국이 어떤 모습인지 보고 싶었을 뿐이죠."

그러다 문득 지난해부터 친부모님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친어머니를 꼭 한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마리아 자혜 세비지(한인 입양아) : "제 친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항상 해 오긴 했어요. 저를 입양 보내고 난 후 어머니의 인생이 얼마나 힘드셨을지, 이제 제가 나이가 들고 제 가족을 꾸릴 때가 되어가니까 점점 더 어머니를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1987년 국내 입양기관에서 작성된 자혜 씨의 입양 서류입니다.

당시 자혜 씨를 입양기관에 맡긴 어머니의 나이는 23살, 공장에서 자혜 씨의 친아버지를 만났고, 헤어진 후 임신 사실을 알았다고 적혀있습니다.

자혜 씨는 1986년 3월,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에서 태어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어머니가 1년 가까이 아이를 혼자 키웠지만, 형편이 좋지 않아 입양을 보낸다고 돼있습니다.

30년 동안 어딘가에서 자책하고 있을지도 모를 어머니를 위해 자혜 씨는 용기를 내기로 했습니다.

강원도 원주로 향합니다.

현재로선 어머니의 흔적을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인터뷰> 마리아 자혜 세비지(한인 입양아) : "제가 태어난 곳의 사람들과 대화해보고 싶어요. 아주 작은 마을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제 가족이나 친모에 대해 알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이곳이 어머니의 고향이자, 자혜 씨가 태어난 곳입니다.

먼저 면사무소를 찾았습니다.

수백 번도 더 봤던 입양서류를

꺼내 도움을 청했습니다.

<녹취> 이용철(신림면 면장) : "지금 아마 여기서 떠난 지가 오래돼서 따님이. 그래서 아마 쉽게 찾기는 어려울 듯한데……."

실망한 표정의 자혜 씨.

면사무소 자료에는 어머니의 흔적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을 찾아 다시 수소문해보기로 했습니다.

<녹취> 손승삼(신림1리 이장) : "저보다 오래 사신 분한테 정보를 캐냈는데 그런 분은 없고 (옛날에 살던 사람들이) 90%는 안 계세요. 다 돌아가시고 (현재 주민들은) 다른 데서 다 이사 와서 살기 때문에 좀 찾기 힘들지 싶어요."

30년이라는 세월 탓인지, 자혜 씨의 어머니를 기억하는 사람을 찾긴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 마을에 있었던 초등학교에는 혹시 단서가 없을지, 친어머니 나잇대로 추정되는 졸업생들의 졸업앨범을 뒤져봤습니다.

<녹취> "이게 그때 마을 모습이에요? (네, 그때 당시예요.) 그때 당시 마을 모습이 정말 궁금했어요."

어머니와 관련된 건 무엇이든지 보고 싶었다는 자혜 씨, 이 앨범 한장 한장이 소중하기만 합니다.

<녹취> "제 친어머니가 여기 안 계신다고 하더라도 누군가 제 친어머니를 알 수 있다는 게 정말 엄청난 것 같아요."

졸업사진을 천천히 훑어보던 자혜 씨의 시선이 한 사진에 멈춥니다.

<녹취> "이 분 저랑 닮은 것 같아요. 저 어렸을 때 이렇게 생겼었어요. 머리카락도 저랑 비슷해요. 끝부분이 반 곱슬머리인 게요. 비슷한 모습을 찾고 싶어요."

사진을 보고 또 보지만, 사진 속 아이가 어머니인지는 당장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인터뷰> 마리아 자혜 세비지(한인 입양아) : "친어머니 이름이 진짜가 아닐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도 들었고 제 친어머니일 가능성이 있는 분들의 이름도 보고 사진도 보고 그 사진 속 분들과 공통점도 있었어요. 제가 답을 찾을 때까지 계속 노력하고 싶어요."

결혼 후에도 한국에 정착해 자신과 같은 입양아들의 친부모 찾기를 도울 생각이라는 자혜 씨.

어딘가에 있을 어머니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인터뷰> 마리아 자혜 세비지(한인 입양아) : "사랑해요. 그리고 전 화나지 않았어요. 제 인생 대부분은 행복했지만 우리가 떨어진 것 때문에 여전히 공허함이 느껴져요. 언젠가 서로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랑해요."

1986년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에서 아이를 낳고, 이듬해 입양 기관에 맡겼던 당시 23살 어머니의 연락을 자혜 씨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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