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까마귀들의 떼죽음…고달프고 잔인한 도시
입력 2017.05.06 (20:39)
수정 2017.05.06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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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아침 일본 사이타마 현 기타모토 시에서 까마귀들이 집단 폐사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갓길과 관목 숲 등에서 20여 마리의 까마귀 사체가 발견됐다. 주변에는 까마귀가 먹은 것으로 보이는 빵 조각이 발견됐다.
부검 결과, 까마귀의 위장에서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 까마귀들이 먹은 것으로 보이는 빵에서도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 해당 지자체는 누군가 농약을 빵에 넣어 까마귀가 먹게 한 것으로 추정했다. '누군가'에게 까마귀들이 그토록 미웠던 것일까?
까마귀 집단폐사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3월 24일 오후 도쿄 이타바시 구의 도립공원에서 까마귀 46 마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 현장은 즉시 출입이 금지됐다. 경시청과 도쿄도 등이 현장 조사에 들어갔다.
이튿날, 인접한 네리마 구에서도 폐사되거나 빈사상태의 조류 20여 마리가 발견됐다.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두 지역은 같은 공원으로 연결된 곳이다. 인근 주민들은 까마귀들이 나무에서 잇따라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현장 조사 중에도 까마귀가 나무 위에서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까마귀 뿐만 아니라 찌르레기 2마리도 발견됐다.
간이 검사 결과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검출되지 않았다. 알려진 독극물도 발견되지 않았다. 일부 조류 전문가는 NHK와의 인터뷰에서 '독극물이 검출되지 않았다면, 음식물 쓰레기 속의 유해 세균 또는 곰팡이 독소 등이 원인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까마귀들에게도 도시의 삶은 고단하고 위험하다.
도쿄, 사람들 사이에 까마귀가 산다
까마귀는 도시 곳곳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의 비둘기처럼 흔하다. 공원의 나무에도 있고, 전신주 위에도 있고, 고층 앞파트 발코니 언저리에도 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어디에서인가 목놓아 우는 까마리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까마귀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간다. 분수대에서 물을 마시고,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을 찾고, 매장의 야외 테이블 밑에서 먹을거리를 노린다. 빵부스러기라도 떨어지면 순식간에 낚아채 날아간다. 골목길의 간판 위에서 식당 문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녀석도 있다.
까마귀는 머리가 좋다. 사무실 인근 공원의 대형 쓰레기통에서 마주친 3마리. 사람처럼 분업을 한다. 번갈아 망을 보면서, 한 마리씩 봉지를 찢어 헤쳐가며 먹을거리를 찾는다. 자연에서 먹이를 찾기보다는 손쉬운 방법을 체득한 것이다.
까마귀는 잡식성이다. 식물 열매, 곡식 낱알, 곤충은 물론, 동물 시체까지 먹어 치운다. 자연의 청소부이다. 사람 거주지와 서식 환경이 겹치자 금새 적응했다. 음식물 찌꺼기도 잘 먹는다. 군대 다녀온 사람들은 잔반처리장 인근에 터잡고 살아가는 까마귀들의 토실토실 살찐 몸을 기억할 것이다.
버스정류장 옆 키작은 나무에서 출근길 직장인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녀석도 있다. 사람들 대부분은 무심한 표정으로 스쳐 지나친다. 까마귀는 도쿄의 일상 풍경 중 하나이다.
야생조류와 인류의 충돌 혹은 공존
도시에는 까마귀의 천적이 없다. 까마귀는 아무거나 잘 먹는다. 호기심이 왕성하데다 침팬지만큼이나 머리가 좋다. 도구를 이용해 벌레를 사냥하기도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먹이를 찾는 법을 안다. 음식물 쓰레기를 불투명 봉투나 종이상자에 꽁꽁 싸매 버려도, 금새 눈치챈다.
일본의 도시에서 까마귀는 불청객이다. 쓰레기를 파헤쳐 길거리를 난장판으로 만들기도 하고,종종 사람을 공격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야생 동물이 그러하듯, 개체수가 일정 범위를 넘어서면, 불편함과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석양을 배경으로 고층 빌딩 옆을 무리지어 배회하는 까마귀떼를 보고 세기말적인 불길함을 느끼기도 한다.
온갖 새들이 이미 도시 속으로 깊이 들어와 살고 있다. 사람이 새들의 보금자리가 있는 자연 속으로 깊이 들어가 살지 않았다면, 새들이 사람의 거주지로 깊이 들어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도쿄 도심에서 천적을 이용한 까마귀 퇴치 실험이 실시됐다. 훈련받은 매를 풀어서 까마귀를 쫓아내는 실험이었다. 까마귀 떼를 향해 매를 날려보냈더니, 이내 까마귀들은 쫓겨났다.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광범위한 지역에서 지속가능성이 있는 퇴치법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이미 도시 생태계의 일원으로 자리잡은 까마귀를 '한꺼번에 없애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혹 가능하다해도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유해조수 퇴치'라는 이름으로 '야생동물 대학살'을 벌이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개체수를 통제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 또한 쉽지가 않다. '주거지'와 '서식지'가 겹치는 곳에서 사람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와 투자가 필요한 이유이다.
부검 결과, 까마귀의 위장에서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 까마귀들이 먹은 것으로 보이는 빵에서도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 해당 지자체는 누군가 농약을 빵에 넣어 까마귀가 먹게 한 것으로 추정했다. '누군가'에게 까마귀들이 그토록 미웠던 것일까?
까마귀 집단폐사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3월 24일 오후 도쿄 이타바시 구의 도립공원에서 까마귀 46 마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 현장은 즉시 출입이 금지됐다. 경시청과 도쿄도 등이 현장 조사에 들어갔다.
이튿날, 인접한 네리마 구에서도 폐사되거나 빈사상태의 조류 20여 마리가 발견됐다.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두 지역은 같은 공원으로 연결된 곳이다. 인근 주민들은 까마귀들이 나무에서 잇따라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현장 조사 중에도 까마귀가 나무 위에서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까마귀 뿐만 아니라 찌르레기 2마리도 발견됐다.
간이 검사 결과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검출되지 않았다. 알려진 독극물도 발견되지 않았다. 일부 조류 전문가는 NHK와의 인터뷰에서 '독극물이 검출되지 않았다면, 음식물 쓰레기 속의 유해 세균 또는 곰팡이 독소 등이 원인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까마귀들에게도 도시의 삶은 고단하고 위험하다.
도쿄, 사람들 사이에 까마귀가 산다
까마귀는 도시 곳곳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의 비둘기처럼 흔하다. 공원의 나무에도 있고, 전신주 위에도 있고, 고층 앞파트 발코니 언저리에도 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어디에서인가 목놓아 우는 까마리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까마귀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간다. 분수대에서 물을 마시고,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을 찾고, 매장의 야외 테이블 밑에서 먹을거리를 노린다. 빵부스러기라도 떨어지면 순식간에 낚아채 날아간다. 골목길의 간판 위에서 식당 문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녀석도 있다.
까마귀는 머리가 좋다. 사무실 인근 공원의 대형 쓰레기통에서 마주친 3마리. 사람처럼 분업을 한다. 번갈아 망을 보면서, 한 마리씩 봉지를 찢어 헤쳐가며 먹을거리를 찾는다. 자연에서 먹이를 찾기보다는 손쉬운 방법을 체득한 것이다.
까마귀는 잡식성이다. 식물 열매, 곡식 낱알, 곤충은 물론, 동물 시체까지 먹어 치운다. 자연의 청소부이다. 사람 거주지와 서식 환경이 겹치자 금새 적응했다. 음식물 찌꺼기도 잘 먹는다. 군대 다녀온 사람들은 잔반처리장 인근에 터잡고 살아가는 까마귀들의 토실토실 살찐 몸을 기억할 것이다.
버스정류장 옆 키작은 나무에서 출근길 직장인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녀석도 있다. 사람들 대부분은 무심한 표정으로 스쳐 지나친다. 까마귀는 도쿄의 일상 풍경 중 하나이다.
야생조류와 인류의 충돌 혹은 공존
도시에는 까마귀의 천적이 없다. 까마귀는 아무거나 잘 먹는다. 호기심이 왕성하데다 침팬지만큼이나 머리가 좋다. 도구를 이용해 벌레를 사냥하기도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먹이를 찾는 법을 안다. 음식물 쓰레기를 불투명 봉투나 종이상자에 꽁꽁 싸매 버려도, 금새 눈치챈다.
일본의 도시에서 까마귀는 불청객이다. 쓰레기를 파헤쳐 길거리를 난장판으로 만들기도 하고,종종 사람을 공격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야생 동물이 그러하듯, 개체수가 일정 범위를 넘어서면, 불편함과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석양을 배경으로 고층 빌딩 옆을 무리지어 배회하는 까마귀떼를 보고 세기말적인 불길함을 느끼기도 한다.
온갖 새들이 이미 도시 속으로 깊이 들어와 살고 있다. 사람이 새들의 보금자리가 있는 자연 속으로 깊이 들어가 살지 않았다면, 새들이 사람의 거주지로 깊이 들어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도쿄 도심에서 천적을 이용한 까마귀 퇴치 실험이 실시됐다. 훈련받은 매를 풀어서 까마귀를 쫓아내는 실험이었다. 까마귀 떼를 향해 매를 날려보냈더니, 이내 까마귀들은 쫓겨났다.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광범위한 지역에서 지속가능성이 있는 퇴치법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이미 도시 생태계의 일원으로 자리잡은 까마귀를 '한꺼번에 없애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혹 가능하다해도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유해조수 퇴치'라는 이름으로 '야생동물 대학살'을 벌이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개체수를 통제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 또한 쉽지가 않다. '주거지'와 '서식지'가 겹치는 곳에서 사람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와 투자가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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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아침 일본 사이타마 현 기타모토 시에서 까마귀들이 집단 폐사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갓길과 관목 숲 등에서 20여 마리의 까마귀 사체가 발견됐다. 주변에는 까마귀가 먹은 것으로 보이는 빵 조각이 발견됐다.
부검 결과, 까마귀의 위장에서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 까마귀들이 먹은 것으로 보이는 빵에서도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 해당 지자체는 누군가 농약을 빵에 넣어 까마귀가 먹게 한 것으로 추정했다. '누군가'에게 까마귀들이 그토록 미웠던 것일까?
까마귀 집단폐사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3월 24일 오후 도쿄 이타바시 구의 도립공원에서 까마귀 46 마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 현장은 즉시 출입이 금지됐다. 경시청과 도쿄도 등이 현장 조사에 들어갔다.
이튿날, 인접한 네리마 구에서도 폐사되거나 빈사상태의 조류 20여 마리가 발견됐다.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두 지역은 같은 공원으로 연결된 곳이다. 인근 주민들은 까마귀들이 나무에서 잇따라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현장 조사 중에도 까마귀가 나무 위에서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까마귀 뿐만 아니라 찌르레기 2마리도 발견됐다.
간이 검사 결과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검출되지 않았다. 알려진 독극물도 발견되지 않았다. 일부 조류 전문가는 NHK와의 인터뷰에서 '독극물이 검출되지 않았다면, 음식물 쓰레기 속의 유해 세균 또는 곰팡이 독소 등이 원인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까마귀들에게도 도시의 삶은 고단하고 위험하다.
도쿄, 사람들 사이에 까마귀가 산다
까마귀는 도시 곳곳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의 비둘기처럼 흔하다. 공원의 나무에도 있고, 전신주 위에도 있고, 고층 앞파트 발코니 언저리에도 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어디에서인가 목놓아 우는 까마리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까마귀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간다. 분수대에서 물을 마시고,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을 찾고, 매장의 야외 테이블 밑에서 먹을거리를 노린다. 빵부스러기라도 떨어지면 순식간에 낚아채 날아간다. 골목길의 간판 위에서 식당 문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녀석도 있다.
까마귀는 머리가 좋다. 사무실 인근 공원의 대형 쓰레기통에서 마주친 3마리. 사람처럼 분업을 한다. 번갈아 망을 보면서, 한 마리씩 봉지를 찢어 헤쳐가며 먹을거리를 찾는다. 자연에서 먹이를 찾기보다는 손쉬운 방법을 체득한 것이다.
까마귀는 잡식성이다. 식물 열매, 곡식 낱알, 곤충은 물론, 동물 시체까지 먹어 치운다. 자연의 청소부이다. 사람 거주지와 서식 환경이 겹치자 금새 적응했다. 음식물 찌꺼기도 잘 먹는다. 군대 다녀온 사람들은 잔반처리장 인근에 터잡고 살아가는 까마귀들의 토실토실 살찐 몸을 기억할 것이다.
버스정류장 옆 키작은 나무에서 출근길 직장인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녀석도 있다. 사람들 대부분은 무심한 표정으로 스쳐 지나친다. 까마귀는 도쿄의 일상 풍경 중 하나이다.
야생조류와 인류의 충돌 혹은 공존
도시에는 까마귀의 천적이 없다. 까마귀는 아무거나 잘 먹는다. 호기심이 왕성하데다 침팬지만큼이나 머리가 좋다. 도구를 이용해 벌레를 사냥하기도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먹이를 찾는 법을 안다. 음식물 쓰레기를 불투명 봉투나 종이상자에 꽁꽁 싸매 버려도, 금새 눈치챈다.
일본의 도시에서 까마귀는 불청객이다. 쓰레기를 파헤쳐 길거리를 난장판으로 만들기도 하고,종종 사람을 공격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야생 동물이 그러하듯, 개체수가 일정 범위를 넘어서면, 불편함과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석양을 배경으로 고층 빌딩 옆을 무리지어 배회하는 까마귀떼를 보고 세기말적인 불길함을 느끼기도 한다.
온갖 새들이 이미 도시 속으로 깊이 들어와 살고 있다. 사람이 새들의 보금자리가 있는 자연 속으로 깊이 들어가 살지 않았다면, 새들이 사람의 거주지로 깊이 들어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도쿄 도심에서 천적을 이용한 까마귀 퇴치 실험이 실시됐다. 훈련받은 매를 풀어서 까마귀를 쫓아내는 실험이었다. 까마귀 떼를 향해 매를 날려보냈더니, 이내 까마귀들은 쫓겨났다.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광범위한 지역에서 지속가능성이 있는 퇴치법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이미 도시 생태계의 일원으로 자리잡은 까마귀를 '한꺼번에 없애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혹 가능하다해도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유해조수 퇴치'라는 이름으로 '야생동물 대학살'을 벌이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개체수를 통제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 또한 쉽지가 않다. '주거지'와 '서식지'가 겹치는 곳에서 사람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와 투자가 필요한 이유이다.
부검 결과, 까마귀의 위장에서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 까마귀들이 먹은 것으로 보이는 빵에서도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 해당 지자체는 누군가 농약을 빵에 넣어 까마귀가 먹게 한 것으로 추정했다. '누군가'에게 까마귀들이 그토록 미웠던 것일까?
까마귀 집단폐사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3월 24일 오후 도쿄 이타바시 구의 도립공원에서 까마귀 46 마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 현장은 즉시 출입이 금지됐다. 경시청과 도쿄도 등이 현장 조사에 들어갔다.
이튿날, 인접한 네리마 구에서도 폐사되거나 빈사상태의 조류 20여 마리가 발견됐다.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두 지역은 같은 공원으로 연결된 곳이다. 인근 주민들은 까마귀들이 나무에서 잇따라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현장 조사 중에도 까마귀가 나무 위에서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까마귀 뿐만 아니라 찌르레기 2마리도 발견됐다.
간이 검사 결과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검출되지 않았다. 알려진 독극물도 발견되지 않았다. 일부 조류 전문가는 NHK와의 인터뷰에서 '독극물이 검출되지 않았다면, 음식물 쓰레기 속의 유해 세균 또는 곰팡이 독소 등이 원인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까마귀들에게도 도시의 삶은 고단하고 위험하다.
도쿄, 사람들 사이에 까마귀가 산다
까마귀는 도시 곳곳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의 비둘기처럼 흔하다. 공원의 나무에도 있고, 전신주 위에도 있고, 고층 앞파트 발코니 언저리에도 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어디에서인가 목놓아 우는 까마리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까마귀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간다. 분수대에서 물을 마시고,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을 찾고, 매장의 야외 테이블 밑에서 먹을거리를 노린다. 빵부스러기라도 떨어지면 순식간에 낚아채 날아간다. 골목길의 간판 위에서 식당 문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녀석도 있다.
까마귀는 머리가 좋다. 사무실 인근 공원의 대형 쓰레기통에서 마주친 3마리. 사람처럼 분업을 한다. 번갈아 망을 보면서, 한 마리씩 봉지를 찢어 헤쳐가며 먹을거리를 찾는다. 자연에서 먹이를 찾기보다는 손쉬운 방법을 체득한 것이다.
까마귀는 잡식성이다. 식물 열매, 곡식 낱알, 곤충은 물론, 동물 시체까지 먹어 치운다. 자연의 청소부이다. 사람 거주지와 서식 환경이 겹치자 금새 적응했다. 음식물 찌꺼기도 잘 먹는다. 군대 다녀온 사람들은 잔반처리장 인근에 터잡고 살아가는 까마귀들의 토실토실 살찐 몸을 기억할 것이다.
버스정류장 옆 키작은 나무에서 출근길 직장인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녀석도 있다. 사람들 대부분은 무심한 표정으로 스쳐 지나친다. 까마귀는 도쿄의 일상 풍경 중 하나이다.
야생조류와 인류의 충돌 혹은 공존
도시에는 까마귀의 천적이 없다. 까마귀는 아무거나 잘 먹는다. 호기심이 왕성하데다 침팬지만큼이나 머리가 좋다. 도구를 이용해 벌레를 사냥하기도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먹이를 찾는 법을 안다. 음식물 쓰레기를 불투명 봉투나 종이상자에 꽁꽁 싸매 버려도, 금새 눈치챈다.
일본의 도시에서 까마귀는 불청객이다. 쓰레기를 파헤쳐 길거리를 난장판으로 만들기도 하고,종종 사람을 공격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야생 동물이 그러하듯, 개체수가 일정 범위를 넘어서면, 불편함과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석양을 배경으로 고층 빌딩 옆을 무리지어 배회하는 까마귀떼를 보고 세기말적인 불길함을 느끼기도 한다.
온갖 새들이 이미 도시 속으로 깊이 들어와 살고 있다. 사람이 새들의 보금자리가 있는 자연 속으로 깊이 들어가 살지 않았다면, 새들이 사람의 거주지로 깊이 들어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도쿄 도심에서 천적을 이용한 까마귀 퇴치 실험이 실시됐다. 훈련받은 매를 풀어서 까마귀를 쫓아내는 실험이었다. 까마귀 떼를 향해 매를 날려보냈더니, 이내 까마귀들은 쫓겨났다.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광범위한 지역에서 지속가능성이 있는 퇴치법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이미 도시 생태계의 일원으로 자리잡은 까마귀를 '한꺼번에 없애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혹 가능하다해도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유해조수 퇴치'라는 이름으로 '야생동물 대학살'을 벌이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개체수를 통제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 또한 쉽지가 않다. '주거지'와 '서식지'가 겹치는 곳에서 사람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와 투자가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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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신하 기자 danie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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